고풍의상 - 조지훈 -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 끝 곱게 늘이운 주렴(珠簾)에 반월(半月)이 숨어
아른아른 봄 밤이 두견(杜鵑)이 소리처럼 깊어 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주빛 호장을 받힌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곡선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치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고전(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胡蝶)인 양 사풋이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 줄 골라 보리니
가는 버들인 양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문장3호>(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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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水彩畵)/이병기
상쾌한 청명일(淸明日)에 밖에 나와 거닐어 보다
모란이 물 오르고 연한 수국(水菊) 속잎 피고
황량한 안뜰 그림자 비 온 뒤라 서늘하다.
어디나 오늘 따라 새로 찾는 산길 같고
마음은 어린 시절 욕심없이 맑아야지
살오른 물결도 좋아 날(蘭) 내음을 살리리라.
이런 때 상냥한 살결 서느러이 그려볼까
가장 아름답다는 말 이전에 사로잡은 빛
눈감고 앉는 사이에 구름 비껴 달로 뜨고.
이내 개인 아침 수채화 보는 마음이다
무언가 흐린 생각 종소리를 마셔가며
맑아서 심호흡 맞춰 늘 새롭게 거닐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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