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11. 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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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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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묵상 / 이 채 란

 

 

다 떠나간 자리

두고 간 향긋한 체온

 

우리 둘 걸린 옷자락

아 무상도 걸렸을까

 

창밖엔 두어 자락 구름

나무 위에 얹혀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피와 땀 얼룩진 활자

 

수행자 인격자 위선자

당신은 미소 띤 하늘

 

찌들은 마음 감추인

내 눈물은 정토(淨土)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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