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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잎의 여자 –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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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비아 꽃밭 앞에서/박병순
오뉴월 남방부터 벌겋게 피어나서
여름 내내 내 가슴을 사르고도 남아
구월도 꼬박 이 안에 불을 질러 타누나.
사르비아 넌 날 어쩌자는 것이냐
사르비아 넌 날 어쩌라는 것이냐
남 몰래 활활 타는 속을 더 어떻게 사르리아!
날마다 너를 찾아와 너를 바라보는 것은
때때로 너를 찾아 너를 그리는 것은
타자던 그 불꽃 속에 뛰어들고 싶어서다.
사르비아가 피어나듯이 우리 벌겋게 피어나서
사르비아가 타듯이 우리도 벌겋게 타다가
벌겋게 벌겋게 타다가 저승길도 벌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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