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11. 8. 07:26
728x90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1978>

-----------------------------------------


사르비아 꽃밭 앞에서/박병순


오뉴월 남방부터 벌겋게 피어나서

여름 내내 내 가슴을 사르고도 남아

구월도 꼬박 이 안에 불을 질러 타누나.

 

사르비아 넌 날 어쩌자는 것이냐

사르비아 넌 날 어쩌라는 것이냐

남 몰래 활활 타는 속을 더 어떻게 사르리아!

 

날마다 너를 찾아와 너를 바라보는 것은

때때로 너를 찾아 너를 그리는 것은

타자던 그 불꽃 속에 뛰어들고 싶어서다.

 

사르비아가 피어나듯이 우리 벌겋게 피어나서

사르비아가 타듯이 우리도 벌겋게 타다가

벌겋게 벌겋게 타다가 저승길도 벌겋게.


'한국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6.11.1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6.11.09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6.11.07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6.11.04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2016.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