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1. 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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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 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 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千佛山)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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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 김종원 -

 

태고적 그 사연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비바람 그 세월을

침묵으로 견뎌내고

 

오늘도

얌전히 앉아

허심으로 살라하네

 

한민족 맺힌 한이

바위가 되었을까

 

울분도 삭여 넣고

기쁨도 녹여 넣고

 

영겁도

또 찰라인 양

의연히 앉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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