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4. 1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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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 이성복 -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 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 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 치는 노인과 변통(便桶)

다정함을 그 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 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 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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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노래 최현배

 

내 고향은 병영이다 경상도 좌병영이

날 길러준 이 고장이 언제나 나의 그림

그림을 한 아름 안고 또다시 들렀세라

 

십칠세 홍안소년 책보끼고 떠났더니

칠십에 흰 머리로 못잊어 다시왔네

길거리 닫는 아이야 너가 누구 소자인가

 

저 집이 국민학교 옛날에 배울털세

서당을 파하고서 옮아들은 [일신학교]

양숫자 첨 배우던 일 아직도 선하구나

 

三一祠 여기로다 문을 열고 경례하니

을미년 만세운동 어제련듯 도로 생각

왜총에 쓰러진 충혼 이 고장을 지키누나

 

자갈길 밟으면서 동문으로 가노라니

이집 저집 간데없고 배추밭이 되었구나

어즈버 울산의 신흥도시 어이 이리 처량한고

 

고향 온 나그네가 예 살던 집 찾아보니

아랫채에 살던 사람 어데 가고 비었는데

몸체는 지붕마자 꺼졌으니 한숨에 눈물진다

 

회포를 가득 안고 동문성터 올라서니

동문루는 간데없고 가을바람 소슬하다

"산전물"이고 가는 이 없어 더욱 답답하구나

 

성곽은 허물어져 평지나 다름없고

이젯사람 밭을 갈아 고추가 붉어있다

갈바람 찾아온 손이 못내 설워 하노라

 

성우에 둘러섰던 백년 고목 간데없고

망월루 옛터에는 초석조차 안 보인다

좌병영 나라 지키던 일 꿈이런가 하노라

 

비석옆에 노송 하나 굽게 휘어 늙어 있다

우리 엄마 이 낙에서 아들 배웅 서울 갔다

이 솔아 네거 정녕 그 솔이거든 말좀하여 주렴.

1974.10

*산전물 -山田동네에 있는 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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