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4. 1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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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 심 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 날이 오면>(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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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雪原)에서 이근구

 

당신이 적어보낸

새하얀 편지 한 장

발신인 수신인 인사말도 없지만

순백의 은밀한 사연

눈부시게 읽었소.

 

나목에 걸터앉아 침묵에 잠겨있는

그것은 젊은 날 당신의 초상

티없는 백자

회상은 잃어버린 꿈

얼어붙은 눈물이외다.

 

추억은 청솔가지

눈꽃으로 쌓이고

그 무게 감당 못해 찢어지는 육신이여

그것은 젊은 날의 유산

평생의 업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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