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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오면 - 심 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 날이 오면>(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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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雪原)에서 이근구
당신이 적어보낸
새하얀 편지 한 장
발신인 수신인 인사말도 없지만
순백의 은밀한 사연
눈부시게 읽었소.
나목에 걸터앉아 침묵에 잠겨있는
그것은 젊은 날 당신의 초상
티없는 백자
회상은 잃어버린 꿈
얼어붙은 눈물이외다.
추억은 청솔가지
눈꽃으로 쌓이고
그 무게 감당 못해 찢어지는 육신이여
그것은 젊은 날의 유산
평생의 업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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