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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밤에(梅蘭菊竹)
梅
검버섯 덕지덕지 긴 세월 묻은 고목
희미한 그림자만 달빛에 어른거려
저 향기 마저 없다면 이 봄 그냥 놓칠뻔.
蘭
고요도 숨을 죽인 어스름 삼경(三更)인데
한지 바른 창문에 덧그려진 수묵화
지나다 멈춘 바람이 가늘게 흐느끼고.
菊
봄여름 지낸 후라 찬바람 맞은채로
있는 듯 없는 듯이 살아온 세월속에
흘리는 고고한 기품 가을이 깊어 가네.
竹
새벽녘 들려오는 귀뚜리 울음소리
가녀린 그믐달이 눈썹마냥 고운데
창에서 흔들거리는 대나무 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