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대장간의 유혹 - 김광규 - 제 손으로 만들지 않아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 한국현대시 2017.08.14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대숲 아래서 - 나태주 -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서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을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 한국현대시 2017.08.11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대기 왕고모 -고은- 들길로 시오리 길 대기 마을에서 왕고모 올 때는 길 가득합니다 그 왕고모가 할머니 죽은 날 오자마자 큰 몸뚱이 들썩이며 울부짖었습니다. 땅도 치고 허벅 치고 울부짖더니 성님 이게 웬일이여 나하고 회현장에서 만나 국수가 오래 불어터져서 우동된 놈 사먹고 또 .. 한국현대시 2017.08.1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 한국현대시 2017.08.09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당나귀 길들이기 –T.V론 - 오종환 - 당나귀 한 마리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아침, 저녁으로 반복 훈련이 필요합니다. 당나귀의 불온한 상상력을 거세(去勢)하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도 쉬지 않습니다. 간혹 당신의 성급한 채찍에 뒷발질로 날뛰는 당나귀가 있더라도 안심하십시오, 그 .. 한국현대시 2017.08.08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담쟁이 - 도종환 -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한국현대시 2017.08.07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다시 밝은 날에 - 서정주 -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 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랑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아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 한국현대시 2017.07.28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님의 침묵 - 한용운 -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 한국현대시 2017.07.27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능금 - 김춘수 - Ⅰ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 손 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 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Ⅱ 이미 가 버린 그 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 날.. 한국현대시 2017.07.2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눈이 내리느니 - 김동환 - 북국에는 날마다 밤마다 눈이 내리느니 회색 하늘 속으로 흰 눈이 퍼부을 때마다 눈 속에 파묻히는 하아얀 조선이 보이느니 가끔 가다가 당나귀 울리는 눈보라가 막북강(漠北江) 건너로 굵은 모래를 쥐어다가 추위에 얼어 떠는 백의인(白衣人)의 귓불을 때리느.. 한국현대시 2017.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