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노정기(路程記) - 이육사 -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이 구죽죽한 어촌보다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매었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를 밀항하는 쩡크와 같아 소금에 절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 한국현대시 2017.07.0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노동의 새벽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지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 한국현대시 2017.07.05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2004)- ------------------------------------------------------- 기 원 고정흠(1930년 : 동아일보) 삼각산 제1봉에 검은 구름 뭉그리네. 저 구름 비가 되어 이 강산에 뿌려.. 한국현대시 2017.07.04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너를 사랑한다 - 강은교 - 그땐 몰랐다 빈 의자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의자의 이마가 저렇게 반들반들해진 것을 보게 의자의 다리가 저렇게 흠집 많아진 것을 보게 그땐 그걸 몰랐다 신발들이 저 길을 완성한다는 것을 저 신발의 속가슴을 보게 거무뎅뎅한 그림자 하나 이.. 한국현대시 2017.06.3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 한국현대시 2017.06.29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내 마음을 아실 이 - 김영랑 -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데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 한국현대시 2017.06.28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납작납작 - 박수근 화법을 위하여 - 김혜순 - 드문 드문 세상을 끊어내어 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걸어 놓고 바라본다. 흰 하늘과 쭈그린 아낙네들이 벽 위에 납작하게 뻗어 있다. 가끔 심심하면 여편네와 아이들도 한 며칠 눌렀다가 벽에 붙여 놓고 하나님 보시기 어떻습니까? 조심스럽게 .. 한국현대시 2017.06.27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남으로 창을 내겠소 - 김상용-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문학2호>(1934) - ----------------------------------- 영원을 그리며 동옥균 .. 한국현대시 2017.06.2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 - 백 석 -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한국현대시 2017.06.23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남사당 -노천명 - 나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삼단 같은 머리를 땋아 내린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라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두르고 나는 향단이가 된다. 이리하여 장터 어느 넓은 마당을 빌어 램프불을 돋운 포장 속에선 내 남성(男聲)이 십분 굴욕되다. 산 넘어 .. 한국현대시 201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