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나목(裸木) - 신경림 -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 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 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밴 구.. 한국현대시 2017.06.05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 한국현대시 2017.06.01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나는 별아저씨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별아 나는 너의 삼촌 나는 별아저씨. 나는 바람남편 바람아 나를 서방이라고 불러다오 너와 나는 마음이 아주 잘 맞아 나는 바람남편이지. 나는 그리고 침묵의 아들 어머니이신 침묵 언어의 하느님이신 침묵의 돔(Dome) .. 한국현대시 2017.05.31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 황동규 -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자전거 유모차 리어카의 바퀴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가쁜 언덕을 오를 때 자동차 바퀴도 굴리고 싶어진다. 길 속에 모든 것이 안 보이고 보인다, 망가뜨리고 싶은 어린날도 안 보.. 한국현대시 2017.05.3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나그네 - 박목월 -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상아탑>(1946)- ----------------------------------------- 동전은 왜 둥근가 - 최길하 - 모가 난 것일수록 상처 내기 쉬운 것, .. 한국현대시 2017.05.2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김영랑 -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돋쳐 오르는 아침 날빛이 빤질한 은결을 돋우네. 가슴엔 듯 눈엔 듯 또 핏줄엔 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 있는 곳 내 마음의 어딘 듯 한 편에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시문학 창간호>(1930)- ----------------.. 한국현대시 2017.05.25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꽃 피는 시절 - 이성복 -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 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 한국현대시 2017.05.24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꽃처럼 웃을 날 있겠지요 - 김용택 - 작년에 피었던 꽃 올해도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 피어 새롭습니다. 작년에 꽃 피었을 때 서럽더니 올해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이 피어나니 다시 또 서럽고 눈물납니다. 이렇게 거기 그 자리 피어나는 꽃 눈물로 서서 바라보는 것은 꽃 피는 그 자리 거.. 한국현대시 2017.05.23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꽃잎 절구 - 신석초 - 꽃잎이여 그대 다토아 피어 비 바람에 뒤설레며 가는 가냘픈 살갗이여. 그대 눈길의 머언 여로(旅路)에 하늘과 구름 혼자 그리워 붉어져 가노니 저문 산 길가에 져 뒤둥글지라도 마냥 붉게 타다 가는 환한 목숨이여. -<시문학>(1972)- ------------------------------------- 노.. 한국현대시 2017.05.22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꽃을 위한 서시 - 김춘수 -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存在)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追憶)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 한국현대시 2017.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