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5. 24.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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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시절 - 이성복 -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 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 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키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이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시집 <그 여름의 끝>(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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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 김기창화백 영전에 구상

 

하늘의 섭리런가 일찍이 청각을 잃으시고

오롯이 한 평생을 만물의 진수 그려

이 나라 고유미술의 금자탑을 이뤘네

 

체구는 장대하나 숫되기가 소년 같아

만나는 사람마다 허울을 벗게 하니

가시매 그 예술 그 인품 더욱 기려 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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