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꽃밭의 독백 -사소단장 - 서정주 -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한국현대시 2017.05.18
한국 현대시와시조 1수 꽃덤불 - 신석정 -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 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달빛이 흡사 비 오듯 쏟아지는 밤에도 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매이면서 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 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 가슴을 쥐어뜯으며 이야기하며 이야기하며 가슴을 쥐어.. 한국현대시 2017.05.17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꽃 - 이육사 - 동방은 하늘도 다 끝나고 비 한방울 내리잖는 그때에도 오히려 꽃은 빨갛게 피지 않는가 내 목숨을 꾸며 쉬임 없는 날이여.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 눈속 깊이 꽃 맹아리가 옴작거려 제비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 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約束)이여 한 바다 복.. 한국현대시 2017.05.1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꽃 - 박두진 -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엇갈림의 핏방울. 꺼질 듯 보드라운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 시집 <거미와 성좌>.. 한국현대시 2017.05.15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꽃 - 김춘수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 한국현대시 2017.05.12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 한국현대시 2017.05.11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깃발 - 유치환 -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 한국현대시 2017.05.1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길 - 정희성 -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셨고 가난으로 평생을 찌드신 어머니는 아들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어쩌다 시에 눈이 뜨고 애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나는 부모의 뜻과는 먼 길을 걸어왔다. 나이 사십에도 궁티를 못 벗은 나를 살 붙이고 살아온.. 한국현대시 2017.05.08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길 - 윤동주 -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한국현대시 2017.05.02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길 - 김기림 -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혼자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 한국현대시 2017.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