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귀뚜라미 - 나희덕 -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 한국현대시 2017.04.11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귀고(歸故) -유치환- 검정 사포를 쓰고 똑딱선을 내리면 우리 고향의 선창가는 길보다도 사람이 많았소. 양지 바른 뒷산 푸른 송백(松栢)을 끼고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기빨처럼 다정하고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를 들어가니 내가 트던 돌다리와 집들이 소리 높이 창가하고 돌아가던 저녁놀.. 한국현대시 2017.04.1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국수 - 백 석 -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 한국현대시 2017.04.0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구두 - 송찬호 -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 한국현대시 2017.04.05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교외(郊外) Ⅲ - 박성룡 - 바람이여, 풀섶을 가던, 그리고 때로는 저기 북녘의 검은 산맥을 넘나들던 그 무형(無形)한 것이여, 너는 언제나 내가 이렇게 한낱 나뭇가지처럼 굳어 있을 땐 와 흔들며 애무했거니, 나의 그 풋풋한 것이여. 불어 다오, 저 이름 없는 풀꽃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아.. 한국현대시 2017.04.04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교목 - 이육사 -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세월에 불타고 우뚝 남아서서 차라리 봄도 꽃피진 말아라. 낡은 거미집 휘두르고 끝없는 꿈길에 혼자 설레이는 마음은 아예 뉘우침 아니라. 검은 그림자 쓸쓸하면 마침내 호수(湖水) 속 깊이 거꾸러져 차마 바람도 흔들진 못해라. -<인문평론>(19.. 한국현대시 2017.04.03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광야(廣野) - 이육사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서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 한국현대시 2017.03.31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고향길 - 신경림 -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여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윗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한국현대시 2017.03.3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고향 - 정지용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 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 쓰다. 고.. 한국현대시 2017.03.29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고향 - 백 석 -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 한국현대시 2017.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