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겨울 강에서 - 정호승 -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겨울 강 강 언덕에 눈보라 몰아쳐도 눈보라에 으스스 내 몸이 쓰러져도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리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강물은 흘러가 흐느끼지 않아도 끝끝내 흔들리지 않는 갈대가 되어 쓰러지면 일어서는 갈대가 되어 청산.. 한국현대시 2017.03.13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검은 강 - 박인환 - 신(神)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최후의 노정(路程)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역전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합창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와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情欲)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 한국현대시 2017.03.1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거짓 이별 - 한용운 - 당신과 나와 이별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령 우리가 좋을 대로 말하는 것과 같이, 거짓 이별이라 할지라도 나의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닿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거짓 이별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떠날 것인가요. 한 해 두 해 가는 것이 얼마 아니 된다고 .. 한국현대시 2017.03.09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거울 - 박남수 - 살아 있는 얼굴을 죽음의 굳은 곳으로 데리고 가는 거울의 이쪽은 현실이지만 저쪽은 뒤집은 현실. 저쪽에는 침묵(沈默)으로 말하는 신(神)처럼 온몸이 빛으로 맑게 닦아져 있다. 사람은 거울 앞에서 신의 사도(使徒)처럼 어여쁘게 위장(僞裝)하고 어여쁘게 속임말을 하는 .. 한국현대시 2017.03.08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거울 - 이 상 -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 것이요.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알아듣지 못하는딱한귀가두 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 때문에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 한국현대시 2017.03.07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개화(開花) - 이호우 - 꽃이 피네, 한 잎 두 잎. 한 하늘이 열리고 있네. 마침내 남은 한 잎이 마지막 떨고 있는 고비.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네. 나도 가만 눈을 감네. -<이호우 시조집>(1955)- ------------------------------------------- 사랑법 김수자 손 타면 다칠까봐 시렁에 얹어 놓고 햇살 무.. 한국현대시 2017.03.0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감초(甘草) - 김명수 - 어느 건재약방 천장마다 황지봉투 속에 매달린 감초여 어느 약탕관, 약봉다리 속에도 빠지지 않고 들어 있는 감초여 오만한 노란색의 얼굴로 건방지게 들어 있는 감초 토막이여 단맛 하나로 오직 달콤한 맛 한가지로 이 세상 온갖 인간들의 병치레에 군림만 하려드.. 한국현대시 2017.03.03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한국현대시 2017.03.02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간격 - 안도현 - 숲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 때는 몰랐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루는 줄 알았다. 나무와 나무 사이 넓거나 좁은 간격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 되는,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나무와.. 한국현대시 2017.02.27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간(肝) 윤동주 바닷가 햇빛 바른 바위 우에 습한 간을 펴서 말리우자. 코카서스 산중에서 도망해 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려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찌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거북이야! 다시는 용궁의 유혹에 안 떨어.. 한국현대시 2017.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