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가즈랑집 -백 석- 승냥이가 새끼를 치는 전에는 쇠메 든 도적이 났다는 가즈랑 고개 가즈랑집은 고개 밑의 산 너머 마을서 도야지를 잃는 밤 짐승을 쫓는 깽제미 소리가 무서웁게 들려오는 집 닭 개 짐승을 못 놓는 멧도야지와 이웃 사촌을 지나는 집 예순이 넘은 아들 없는 가즈랑집 할머.. 한국현대시 2017.02.23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가정 --이 상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 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 한국현대시 2017.02.22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가 정 - 박목월 -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십 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 한국현대시 2017.02.21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가을비 - 도종환 - 어제 우리가 함게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 한국현대시 2017.02.2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 한국현대시 2017.02.1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가구의 힘 박형준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나의 외삼촌이다. 나는 그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그때마다 이유를 만들어 한번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마다 사각 브라운관 TV들이 한 대씩 놓여있는 것이 여간 부러운 게 아닌지 다녀오신 얘기를 하며 시장에서 사.. 한국현대시 2017.02.15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 한국현대시 2017.02.14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 희 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일이 끝나 저물어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한국현대시 2017.02.13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맨발 - 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 한국현대시 2017.02.1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비망록 -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 한국현대시 2017.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