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7. 4. 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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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 백 석 -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 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 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한 것은 무엇인가.

 

-<문장>(194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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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강가에서

 

알 듯이 모를 듯이

어정쩡한 말씀으로

 

시가 어떻고

인생 또한 이렇다는

 

참으로 기괴한 추상을

듣는 이가 몇일까.

 

소중한 하루해가

저무는 강가에서

 

채우려 허둥대던

욕망의 흔적들을

 

가볍게 베어버리듯이

물살 위에 띄운다.

 

-김준 시조집(쓸쓸하지 않는 연습)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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