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가는 길 - 김소월 -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개벽>(1923.10)- ---------------------------- 징검다리/.. 한국현대시 2016.08.2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 한국현대시 2016.08.25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가을의 기도 - 김현승 -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 나.. 한국현대시 2016.08.24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도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 한국현대시 2016.08.23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섬진강 1 - 김용택(金龍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한국현대시 2016.08.22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세속도시의 즐거움 - 최승호(崔勝鎬) 상복 허리춤에 전대를 차고 곡하던 여인은 늦은 밤 손익을 계산해 본다. 시체 냉동실은 고요하다. 끌어모은 것들을 다 빼앗기고 (큰 도적에게 큰 슬픔 있으리라) 누워 있는 알거지의 빈 손, 죽어서야 짐 벗은 인간은 냉동실에 알몸거지로 누워 있는데 .. 한국현대시 2016.08.19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그 날 - 이성복(李晟馥) 그 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 날 역전에는 대낮부터 창녀들.. 한국현대시 2016.08.18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金光圭)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 한국현대시 2016.08.17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슬픔으로 가는 길 - 정호승(鄭浩承) 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 한국현대시 2016.08.1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정님이 - 이시영(李時英) 용산 역전 늦은 밤거리 내 팔을 끌다 화들짝 손을 놓고 사라진 여인 운동회 때마다 동네 대항 릴레이에서 늘 일등을 하여 밥솥을 타던 정님이 누나가 아닐는지 몰라 이마의 흉터를 가린 긴 머리, 날랜 발 학교도 못 다녔으면서 운동회 때만 되면 나보다 더 좋아라 .. 한국현대시 2016.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