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고고(孤高) - 김종길 - 북한산(北漢山)이 다시 그 높이를 회복하려면 다음 겨울까지는 기다려야만 한다. 밤사이 눈이 내린, 그것도 백운대(白雲臺)나 인수봉(仁壽峰) 같은 높은 봉우리만이 옅은 화장을 하듯 가볍게 눈을 쓰고 왼 산은 차가운 수묵으로 젖어 있는,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까.. 한국현대시 2016.09.29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고개 - 이시영 - 앞산길 첩첩 뒷산길 첩첩 돌아보면 정든 봉 첩첩 아재야 아재야 정갭이 아재야 지게목 떨어진다 한 가락 뽑아라 네 소리 아니고는 못 넘어가겠다 기러기떼 돌아 넘는 천황재 아홉 굽이 내 오늘 너를 묶어 이 고개 넘는다만 언제나 벗어나리, 가도 가도 서러운 머슴살이 우.. 한국현대시 2016.09.27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견우의 노래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 한국현대시 2016.09.2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겨울 일기 -문정희- 나는 이 겨울을 누워 지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 버려 염주처럼 윤나게 굴리던 독백도 끝이 나고 바람도 불지 않아 이 겨울 누워서 편히 지냈다. 저 들에선 벌거벗은 나무들이 추워 울어도 서로 서로 기대어 숲이 되어도 나는 무관해서 문 한번 열지 않고 반추동물.. 한국현대시 2016.09.23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겨울 숲에서 - 안도현 -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서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 한국현대시 2016.09.22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겨울 바다 김남조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海風)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남.. 한국현대시 2016.09.21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겨울 들녘에 서서 - 오세영 -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 한국현대시 2016.09.20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검은 강 - 박인환 - 신(神)이란 이름으로서 우리는 최후의 노정(路程)을 찾아보았다. 어느 날 역전에서 들려오는 군대의 합창을 귀에 받으며 우리는 죽으러 가는 자와는 반대 방향의 열차에 앉아 정욕(情欲)처럼 피폐한 소설에 눈을 흘겼다. 지금 바람처럼 교차하는 지대 거기엔 일체의 불.. 한국현대시 2016.09.19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거짓 이별 - 한용운 - 당신과 나와 이별한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령 우리가 좋을 대로 말하는 것과 같이, 거짓 이별이라 할지라도 나의 입술이 당신의 입술에 닿지 못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거짓 이별은 언제나 우리에게서 떠날 것인가요. 한 해 두 해 가는 것이 얼마 아니 된다고 .. 한국현대시 2016.09.13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거울 - 이 상 -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 것이요.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알아듣지 못하는딱한귀가두 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요.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 ---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요. 거울때문에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 한국현대시 2016.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