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서울 길 - 김지하(金芝河)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 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 한국현대시 2016.08.11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개봉동과 장미 - 오규원(吳圭原) 개봉동 입구의 길은 한 송이 장미 때문에 왼쪽으로 굽고, 굽은 길 어디에선가 빠져나와 장미는 길을 제 혼자 가게 하고 아직 흔들리는 가지 그대로 길 밖에 선다. 보라 가끔 몸을 흔들며 잎들이 제 마음대로 시간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을. 장미는 이곳 주민.. 한국현대시 2016.08.10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姜恩喬)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 한국현대시 2016.08.09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자수(刺繡) - 허영자(許英子)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수를 놓는다. 금실 은실 청홍(靑紅) 실 따라서 가면 가슴 속 아우성은 절로 갈앉고 처음 보는 수풀 정갈한 자갈돌의 강변에 이른다. 남향 햇볕 속에 수를 놓고 앉으면 세사 번뇌(世事 煩惱) 무궁한 사랑의 슬픔을 참아내올 듯 머언 극락 .. 한국현대시 2016.07.29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벼 - 이성부(李盛夫) 벼는 서로 어우러져 기대고 산다. 햇살 따가워질수록 깊이 익어 스스로를 아끼고 이웃들에게 저를 맡긴다. 서로가 서로의 몸을 묶어 더 튼튼해진 백성들을 보아라. 죄도 없이 죄지어서 더욱 불타는 마음들을 보아라. 벼가 춤출 때, 벼는 소리없이 떠나간다. 벼는 가을 .. 한국현대시 2016.07.27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풍장(風葬)․1 - 황동규(黃東奎)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 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 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 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 한국현대시 2016.07.26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黃東奎)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늘 그대 뒤를 따르던 길 문득 사라지고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여기저기서 어린 날 우리와 놀아 주던 돌들이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가득한 저녁 하늘에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성긴 .. 한국현대시 2016.07.25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화살 - 고은(高銀)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던가 뭣이라.. 한국현대시 2016.07.22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눈 길 - 고은(高銀)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들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써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한국현대시 2016.07.21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목계 장터 - 신경림(申庚林)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靑龍) 흑룡(黑龍)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 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 한국현대시 201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