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농무(農舞) - 신경림(申庚林)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 한국현대시 2016.07.18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파장(罷場) - 신경림(申庚林)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먹걸리들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 한국현대시 2016.07.15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갈대 - 신경림(申庚林)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 한국현대시 2016.07.14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申東曄)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 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 한국현대시 2016.07.13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申東曄)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 한국현대시 2016.07.12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종로 5가 - 신동엽(申東曄)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쫓기는 군상(群像)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 새로 사 신은 .. 한국현대시 2016.07.11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진달래 산천(山川) - 신동엽(申東曄) 길가엔 진달래 몇 뿌리 꽃 펴 있고, 바위 모서리엔 이름 모를 나비 하나 머물고 있었어요. 잔디밭엔 장총(長銃)을 버려 던진 채 당신은 잠이 들었죠. 햇빛 맑은 그 옛날 후고구렷적 장수들이 의형제를 묻던, 거기가 바로 그 바위라 하더군요. 기다림에 .. 한국현대시 2016.07.08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金洙暎)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淫蕩)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 한국현대시 2016.07.07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푸른 하늘을 - 김수영(金洙暎)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 한국현대시 2016.07.06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귀천(歸天) - 천상병(千祥炳)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 한국현대시 2016.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