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꽉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 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文義)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주(註) : 문의(文義)-충북 청원군의 한 마을.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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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思母曲)/전 태 규
가랑잎 하나로 허무의 집을 짓고
몽당연필 하나로 구원의 시를 쓰며
밤마다 청산을 베고 어머님, 불러 봅니다.
산마루 빗겨가며 손짓하는 저 구름
바람도 숨이차서 고향 달빛 찾아드니
지붕 위 새하얀 박꽃 꿈속에서 반깁니다.
사랑의 문을 열면 먼 발치 그리운 꽃
다가서면 가슴 떨려 눈물 절로 나오고
어머님, 그리움 모아 연꽃으로 핍니다.
가을 아침 꽃잎 새로 곱게 맺힌 눈망울
두고 온 고향산천 언제 다시 찾을건가
어머님, 사립문 여시고 새벽길 가십니까.
시원한 마루에서 재봉틀 돌리시던
어머님 손재주에 새옷 한 벌 생겨나고
지금도, 달, 달, 달 소리 살아계신 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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