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12. 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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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이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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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묵상 / 이 채 란

 

다 떠나간 자리

두고간 향긋한 체온

 

우리 둘 걸린 옷자락

아 무상도 걸렸을까

 

창밖엔 두어 자락 구름

나무 위에 얹혀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피와 땀 얼룩진 활자

 

수행자 인격자 위선자

당신은 미소 띤 하늘

 

찌들은 마음 감추인

내 눈물은 정토(淨土)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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