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상한 영혼을 위하여 -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소쩍새 追億 김동직
안개 낀 뒷동산에 소쩍새 울어대고
달무리 붉게 타면 흉년이 들었다며
새벽녘 이슬을 털고 별을 줍던 그 시절.
초여름 보리밭에 풀물만 들여놓고
어머니 시집올 때 가마 타고 울었다며
길들인 가난을 접고 추억 속에 잠긴다.
땀내 난 마늘 한 접 십리 장터 이고 나와
어쩌다 고기 한칼 토방 위에 올린 날은
철이 든 자식들 앞에 허풍선이 약이었다.
상머리 주름잡던 그 생각을 들춰가며
돋보기 먼발치 지는 놀을 훑다가도
그래도 그때 그 시절 좋았노라 우긴다.
'한국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6.12.29 |
---|---|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6.12.28 |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6.12.26 |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6.12.23 |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0) | 2016.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