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생이 집에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하는데 대개가 한두 번씩은 상관한 위인들이다. 한 사람이 먼저 와서 자리에 앉아 있는데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또 들어온다. 그러자 기생이 하는 말이
“마부장(馬部長)과 우별감(禹別監)이 오시는군.”
얼마 후에 또 두 사람이 들어오니
“여초관(呂哨官)과 최서방이 오시는도다.”
한다. 먼저 온 자가 가만히 바라보니 지금 들어 온 네 사람의 성이 김씨요, 이씨인데 마씨니 여씨니 우씨니 최씨니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네 사람이 각각 돌아간 후 기생에게 묻는다.
“네가 손님들의 성씨를 그토록 모르느냐”
“그 분들이 다 나하고 친한지 오래된 사람들인데 모를 리가 있소이까? 마씨,여씨 등의 성을 붙인 것은 밤일을 치룬 다음 제가 지은 별호(別號)들이 올시다”
하고 설명한다.
“그중 아무개는 덩치가 크고 양물(陽物)도 크니 성이 마(馬 말)씨인 것이 분명하고 아무개는 몸은 작으나 아랫것은 몹시 크니 성이 여(呂)씨요, 또 아무개는 한번 꽂으면 금방 토하니 성이 우(牛 소)씨요, 아무개는 위로 오르고 아래로 내렸다 하기를 변화무쌍하니 최(崔)씨라. 참새가 아래 위로 잘 오르내리니까 곧 작(雀 참새)이지요”
이어 먼저 와서 앉은 자가
“그럼 나는 무엇으로 별호를 주겠느냐”
하자
“나날이 헛되이 왔다가 헛되이 가서 헛되이 세월만 보내니 마땅히 허생원 (許生員)으로 부르는 것이 적격일까 하오.”
하니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어수록(禦睡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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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어화(解語花)는 당나라 현종(玄宗)이 비빈(妃嬪)과 궁녀들을 거느리고 연꽃 구경하다가 양귀비(楊貴妃)를 가리켜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이해하는 이 꽃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고 말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해어지화(解語之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중국 오대(五代)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장안성 태액지(太液池)에 천 송이의 흰 연꽃이 피었다. 그 중 몇 가지는 꽃이 무성했다.
황제가 양귀비와 함께 잔치를 베풀고 오랫동안 구경하다가 양귀비를 가리키며 좌우에게 말했다.
“ 과연 내 말을 이해하는 이 꽃과 견줄 만하도다."
신하 모두가 연못에 피어 있는 연꽃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바라보자 현종이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알아듣는 이 꽃(양귀비)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면서 양귀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표현했던 것이다.
양귀비는 촉주(蜀州) 사호(司戶)였던 양현담(楊玄啖)의 딸로 어렸을 때 이름은 옥환(玉環)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숙부 밑에서 자랐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의 18번째 아들 수왕(壽王)의 비(妃)였으나 아비인 현종의 눈에 띄어 그녀 나이 27세 때 귀비(貴妃)로 책봉됐다. 그 후 현종의 총애를 받아 그 일족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오르는 등 영화를 누렸으나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피난 가던 중 길가 불당에서 교살 당했다.
우리역사에서 조선시대 일부 기생들은 비록 신분은 천했으나 명문고관 들과 함께 대작을 할 만큼 시와 글에 능했다. 그래서 이능화(李能華)는 조선해어화사라는 책에서 이들을 해어화(解語花)라 불렀다.
거역할 수 없는 인욕의 삶, 그 세월을 한하면서도 필명을 후세에 남길 수 있었던 조선의 기생들, 그런 기생이 해어화였다. 각박한 요즘, 이런 해어화가 있다면 이 세상이 그렇게 삭막하지 않을텐데....
남자의 욕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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