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저 녁 놀 - 유치환(柳致環) 굶주리는 마을 위에 놀이 떴다. 화안히 곱기만 한 저녁놀이 떴다. 가신 듯이 집집이 연기도 안 오르고 어린 것들 늙은이는 먼저 풀어져 그대로 밤자리에 들고, 끼니를 놓으니 할 일이 없어 쉰네도 나와 참 고운 놀을 본다. 원도 사또도 대감도 옛같이 없.. 한국현대시 2016.04.12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행복 (幸福) - 유치환(柳致環)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 한국현대시 2016.04.11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울 릉 도 - 유치환(柳致環)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 쪽빛 바람.. 한국현대시 2016.04.07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신부(新婦) - 서정주(徐廷柱)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 한국현대시 2016.04.06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꽃밭의 독백(獨白) - 사소(娑蘇) 단장(斷章) - - 서정주(徐廷柱)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 한국현대시 2016.04.05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광화문(光化門) - 서정주(徐廷柱) 북악(北岳)과 삼각(三角)이 형과 그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형의 어깨 뒤에 얼굴을 들고 있는 누이처럼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다가 어느새인지 광화문 앞에 다다랐다. 광화문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宗敎). 조선 사람은 흔히 그 머리.. 한국현대시 2016.04.04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무등(無等)을 보며 - 서정주(徐廷柱)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 한국현대시 2016.04.01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국화 옆에서 - 서정주(徐廷柱)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 한국현대시 2016.03.31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은 수 저 - 김광균(金光均)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 저녁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기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한밤중에 바람이 분다 바람 속에서 애기가 웃는다 애기는 방속을 들여다 본다 들창을 열었다 다시 닫는다 먼 들길을 애기가 간다 맨발 벗은 .. 한국현대시 2016.03.30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향 수 - 유진오(兪鎭五) 금시에 깨어질듯 창창한 하늘과 별이 따로 도는 밤 엄마여 당신의 가슴 우에 서리가 나립니다 세상메기 젖먹이 말썽만 부리던 막내놈 어리다면 차라리 성가시나마 옆에 앉고 보련만 아! 밤이 부스러지고 총소리 엔진소리 어지러우면 파도처럼 철렁 소금 먹.. 한국현대시 2016.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