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불 길 - 유진오(兪鎭五) 그리운 사람이 있음으로 해 더 한층 쓸쓸해지는 가을밤인가 보다 내사 퍽이나 무뚝뚝한 사나이 그러나 마음 속 숨은 불길이 사뭇 치밀려오면 하늘도 땅도 불꽃에 싸인다 아마 이 불길이 너를 태우리라 이 불길로 해 나는 쓸쓸하고 안타까운 밤은 숨막힐 듯 .. 한국현대시 2016.03.25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그 리 움 - 이용악(李庸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 내리는가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白茂線) 철길 위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 사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 한국현대시 2016.03.24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봄 날 - 여상현(呂尙玄) 논두렁가로 바스락 바스락 땅강아지 기어나고 아침 망웃 뭉게뭉게 김이 서리다 꼬추잠자리 저자를 선* 황토물 연못가엔 약에 쓴다고 비단개구리 잡는 꼬마둥이 녀석들이 움성거렸다 바구니 낀 계집애들은 푸른 보리밭 고랑으로 기어들고 까투리는 쟁끼* 꼬리.. 한국현대시 2016.03.23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순 아 - 박세영(朴世永) 순아 내 사랑하는 동생, 둘도 없는 내 귀여운 누이 내가 홀홀이 집을 떠날 제 너는 열 여섯의 소녀. 밤벌레같이 포동포동하고 샛별 같은 네 눈, 내 어찌 그 때를 잊으랴. 순아 너, 내 사랑하는 순아, 너는 오빠 없는 집을 버리려고 내가 집을 떠나자마자 .. 한국현대시 2016.03.22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병든 서울 - 오장환(吳章煥) 8월 15일 밤에 나는 병원에서 울었다. 너희들은 다 같은 기쁨에 내가 운 줄 알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 천황의 방송도, 기쁨에 넘치는 소문도, 내게는 곧이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병든 탕아(蕩兒)로 홀어머니 앞에서 죽는 것이 .. 한국현대시 2016.03.21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산상(山上)의 노래 - 조지훈(趙芝薰) 높으디 높은 산마루 낡은 고목에 못박힌듯 기대여 내 홀로 긴 밤을 무엇을 간구하며 울어왔는가. 아아 이 아침 시들은 핏줄의 구비구비로 싸늘한 가슴의 한복판까지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이제 눈 감아도 오히려 꽃다운 하늘이거니 내 영혼의 촛.. 한국현대시 2016.03.17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 김종한(金鐘漢)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가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떨어져 있는 윤사월(閏四月) 아주머님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 놈일까요?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 한국현대시 2016.03.16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낙화(落花) - 조지훈(趙芝薰)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 한국현대시 2016.03.15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완화삼(玩花衫) 목월(木月)에게 - 조지훈(趙芝薰)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 한국현대시 2016.03.14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승무(僧舞) - 조지훈(趙芝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 한국현대시 201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