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우리말의 어원 59

임기종 2016. 3. 15.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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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인

본디 생겨났을 때의 뜻과는 다르게 지금 쓰이는 말들이 있다. 말에도 생명이 있는 것이므로 세월의 흐름 따라 뜻에 가지를 쳐가는 것이야 당연하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잘못 가지쳐서 쓰이는 사례도 없지 않다. 우리가 흔히 쓰고 듣는 "사모님"의 경우도 그렇지만 "미망인"(未亡人)이란 말도 그 경우이다.

"미망인"이란 말은 한자의 뜻으로 새겨 본다 해도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 된다. 그 뜻 그대로 이 말의 시작은 아직 죽지 못해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칭이었다.

좌전(春秋左氏傳)에 이런 얘기가 있다.()나라 영윤(令尹:재상)인 자원(子元)이 돌아간 문왕(文王)의 부인을 유혹할 양으로 부인의 궁전 옆에 자기 관사를 짓고 은()나라의 탕왕(湯王)이 만들었다는 만()이라는 춤을 추게 하며 풍악을 울렸다.이에 문왕 부인이 말했다.

"선군(先君)은 이 무악(舞樂)을 군사 훈련 때에 한해서 썼다. 이제 영윤이 이것을 원수 갚는 일에 쓰지 않고 이 미망인 옆에서 하고 있으니 이상하지 않은가?"

부인의 시종(侍從)이 이 말을 자원에게 고했다. 자원도 여기서 마음을 돌려 수레 6백대를 끌고 정()나라로 쳐들어간다.미망인이란 말은 여기에 처음 나온 것인데 과부가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고 있다. 좌전에는 그 밖에도 몇 군데 더 이 말이 쓰이고 있지만 어느 것이고 죽은 남편을 생각해서 자신을 낮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여필종부(女必從夫)의 냄새까지 깔린 말이고 보면 더 더구나 오늘의 쓰임에서는 생각해 볼 대목이기도 하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목숨이라는 자칭을 남이 쓴다고 할 때는 사실 말뜻이 이상해진다. "당신은 당신의 남편이 죽었는데 왜 아직도 죽지 않고 살아 있소" 하는 힐책(詰責)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누구누구의 미망인이 타계했다고 하는 기사는 "제 남편이 죽었는데도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더니 이제야 눈을 감았군"하는 이죽거림을 곁들인다고도 할 것이다.물론 말은 현실에서의 쓰임이 중요하다. 그렇게 근본을 따지기로 들자면 잘못 쓰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과부"를 높이면서 쓰고 있는 "미망인"을 굳이 탓할 게 있느냐는 말도 그래서 나올 수는 있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망인"의 경우는 근본을 캐보자니 상대방에게 너무 실례가 되어서 걸린다. 일반적으로는 "미망인" 할 데에 "부인"(夫人)으로 갈음한다 해서 잘못됐달 것이 없다. 출처 : [박갑천,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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