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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 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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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깨달음 / 정 표 년
여벌로 마련해 둔
목숨이 있다하면
내자리 비워야 할 때
돌려 쓸 수 있을 텐데
손놓고 누워버리니
차마 적막이더군
사는 게 정신없어
아플 새도 없었는데
어느 날 대책없이
자리에 눕고보니
그제야 알겠더라고
돌아가는 이치를
한 사람 없더라도
세상은 돌아가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제 할일 다 잘하고
없는자 빈자리에는
뭔가로든 찬다는 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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