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11. 2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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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 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 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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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깨달음 / 정 표 년

 

 

여벌로 마련해 둔

목숨이 있다하면

내자리 비워야 할 때

돌려 쓸 수 있을 텐데

손놓고 누워버리니

차마 적막이더군

 

사는 게 정신없어

아플 새도 없었는데

어느 날 대책없이

자리에 눕고보니

그제야 알겠더라고

돌아가는 이치를

 

한 사람 없더라도

세상은 돌아가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제 할일 다 잘하고

없는자 빈자리에는

뭔가로든 찬다는 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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