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김선달의 무전여행

임기종 2014. 5. 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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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달의 무전여행

    이야기꾼 이훈종 지음

  한길사

     

 

 

 

 

 

 

 

 

 

 

 

 

 

 

김선달의 무전여행

   지은이 이훈종은 서울에서 자라 1938년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이후 중국문화학원 중문 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1978년 중화학술원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학교 교사, 중고등학교 교사 교감, 건국대학교 문리과 대학장등을 지냈다. 현재 우리문화연구장으로 있다.   저서로 우리의 전통적인 국학자료를 도해하고 설명한 <민족생활어 사전>이있고 지난 60년간 이 땅에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4권으로 묶는 작업에서 첫째, 둘째 마당으로 <오사리 잡놈들> <흥부의 작은마누라>를 냈고, 이번에 전래 소화들을 셋째, 넷째 마당으로 모두 묶어 냈다.

  그림설명

    작가미상의 <일월십이지도> 19세기 후기

  십이지를 사람에 비겨서 그린 그림으로, 의인화된 이야기들이 친근감 있게 전해오고 있다.

  그림설명

    서울 청계천의 수표교 1910

  196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 전의 모습으로, 봉이 김선달의 주요 활동무대였다.

  그림설명

    조랑말과 나그네, 조선 후기

  조선의 조랑말은 체구가 왜소하고 난폭하지만, 체력이 강해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가 애용했던 교통수단이었다.

  그림설명

    강릉장터 1930년대

  강릉은 관동팔경의 중심지로 조선 초기부터 발달해 큰 시장이 자주 열렸다.

  그림설명

    청진항 1908

  천혜의 영향으로 닻을 내린 선박들로 늘 붐볐는데, 개화기 이후 많은 시련을 겪었다.

  그림설명

    닭장수, 조선 후기

  장날이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행상을 했던 이들은 입담도 좋고 생활력도 강했다.

  그림설명

    상장수, 조선 후기

  그림설명

    참나무 장수, 조선 후기

  그림설명

    옹기장수, 조선후기

  그림설명

    조영석 <사제첩>에서 <새참> <바느질>, 조선 후기

  앉아 있는 자세와 표정이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어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느낄 수 있다.

  그림설명

    홍필우 <오로첩>에서 <오로도>, 1803

  관직에서 물러난 다섯 노인의 사회도로 예로부터 노인을 귀히 여기고 그들의 지혜를 높이 샀다.

  그림설명

    오명현 <점괘도>, 18세기

  사주팔자와 길흉화복을 점쳐 주던 점쟁이들은 서민에게 희망을 주는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었다.

  그림설명

    신윤복 <주사거베>, 조선후기

  술집이자 밥집이자 여관의 구실까지 다용도로 활용된 주막은 각 지방 물물교류의 역할까지 했다.

  그림설명

    강세황 <현정승집도>, 1747

  조선 후기 사대부 사회에서 유행한 사회도의 한 전형으로 이런 풍조가 일반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림설명

    작가미상의 <호렵도>, 19세기 전기

  호랑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동물로, 호랑이 사냥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냥꾼들이 많았다.

 

    (김선달의 무전여행) 제목에 부치는 말

  같은 애기라도 부풀어 오르면 풍을 떤다고 하는데, 용하게 둘러 맞추면 수단이 좋다, 또는 능갈친다고 하며 도가 지나치면 잡놈이라느니 하여 도의적으로 따져서 평하는 이가 있으나, 우리는 그의 능글맞은 기지를 사랑하지 도덕적으로 따질 관계가 아니니 한손 접어 놓고 들어들 두시라.

  먼 길을 나서려면 우장 한 벌하고 거짓말 세 가지는 가지고 떠나야 한다는 경상도 말이 있다던데, 막다른 골목에 닥쳤을 때 모면할 지혜는 풍족하게 가질수록 좋을 것이다어떤 친구 둘이서 같이 길을 나서며 노자 걱정을 하니까, 한 친구가 돈 없이도 천리를 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 반신반의하면서 따라갔다한 곳에 이르니 농사꾼들이 점심밥을 내어다놓고 둘러앉아 먹는데 입에 침이 고인다. 시골 인심이 밥 먹을 때 행인이 지나가면 불러들여 같이 먹는 것이 예사건만 워낙 큰길가다 보니 그런 선심은 삭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보니 밥터 가까이 논 가운데 깎짓동만한 돌이 하나 박혀 있다.

  "저걸 들어내지 못하고 불편하게 놓아두고 농사를 짓고 있담?"

  농사꾼 한 사람이 듣고 말한다.

  "불편한 줄 누군 몰라서 놔 두고 짓는 줄 알우? 당신이 들어낼 수 있겠수?"

   들어낼 만하니까 애길 꺼냈지. 누군 익은 밥 먹고 선 소리 하는 줄 아우?

  이렇게 수작이 오간 끝에 둘이는 밥터에 불려 들어가 점심을 두둑이 대접받았다. 담배 한 대씩 피우고 나자 그는 일어서서 바지를 걷어 올리고 웃통을 벗고 논 가운데로 들어가서 박혀 있는 바위 옆으로가 상반신을 굽혔다.

  "! 내가 져낼 게니 여럿이 들어서 잔등에 얹어주."

  " ...?"

  "제에기, 들어 주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져내란 말이여?"

  " ?!"

  나도 이런 애깃거리가 있다.

늘 나가서 물장구치며 놀던 개울에서 멀지않은 논바닥 가운데 그런 바위가 박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저게 농사짓는 데 무척 불편한 거 아녜요?"

  "불편한들 어쩌겠니? 단단하니 깨뜨리지도 못하고, 커서 들어낼 수도 없고....."

  "옆을 깊이 파고 쓸어 묻으면 될텐데요 뭐!"

  마흔이 넘어서 낳아 열 살도 채 안된 내 얼굴을 아버지는 물끄러미 바라보셨다.

  "흉한 녀석!" 이렇게 한 마디 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여러 해 뒤에 그 논은 우리 집 소유가 되었고, 그 육중한 바위는 논바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애기는 본론으로 돌아가, 둘이는 저녁때 길가 어느 동네로 들어서자, 저녁을 지으려고 아낙네들이 쌀을 씻느라 모여 앉은 대동우물 앞에 이르러 목청을 높여서 외쳤다.

  "바늘귀 때려!"

  중국을 거쳐 독일 제품이 수입되기 전에는 바늘이 무척 귀하였다.

솜씨있는 대장장이가 일일이 망치로 두들겨서 만들어 냈으니 그럴 수 밖에... 그래서 바늘귀가 떨어지면 부인네들은 울상이 되어 다음 장날 서방님이 장터에서 사다주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 귀가 솔깃할 수 밖에...  그때 의논이 오가 어느 집 시랑에 들어 저녁을 먹고 났는데, 부인네들이 귀 떨어진 바늘을 들고 모여들었다.

  "어두운 초롱불 밑에서 무슨 수로 땐단 말입니껴? 낼 아침이나 들봅세다."

  세밀한 작업이라 하긴 그렇겠다. 그래 이튿날이 환하게 밝아 아침을 얻어먹고 나니 또 부인네들이 몰려왔다맨 첫번 부인네 것을 받아들고 묻는다.

  ", 귀 떨어진 거 가지고 왔는교? 떨어진 쇳조각도 없이 무엇으로 어떻게 때란 말입니껴? 틀렸수."

  줄을 섰던 중에 떨어진 바늘귀를 챙겨 두었다 가져온 이는 아무도 없다.

  "아니될 일을 가지고 공연히 시간만 허비했지 뭡니까?"

  툭툭 털고 일어서 동구 밖엘 나오자 동행했던 친구는 그랬다.

  "너나 돈없이 천리나 가거라. 나는 집으로 도로 가련다."

  일찍 알려졌더라면 봉이 김선달이 그랬다고 전해졌을 만한 얘기다.

  길에 나서면 말 탄 사람도 보고 소 탄 사람도 본다고 했다. (삼국지)를 세번 읽지 않은 사람하고는 얘기가 안 통한다는 분도 있는데, 이 책에는 눈물 섞여 찝찔한 맛이 나는 얘기, 듣다 보면 땀내에 섞여 발 고랑내도 나는 그런 얘기들이 평소의 거짓말만큼 심심치 않게 섞여 있다. 그 냄새 그 맛을 역겹지 않게 느낀다면 그제사 우리는 얘기가 통한다.  19953  이훈종

 

 

차례

    (김선달의 무전여행) 제목에 부치는 말

    사주 팔자 같은 두 사람천하의 명답대감 등에 업힌 하인길 동무두 얼굴의 운명서울사람이 다해 먹지호걸남아가 귀양길에 사약을 받았는데진짜 알맹이가 든 염불 한 마디이성계에게 활솜씨 가르쳐 준 노인서울 출입 한번 안하시렵니까사주 팔자 같은 두 사람사람 목숨 하나 들어 있는 글씨노총각 짚신보다 홀아비 짚신이 낫지월명사 중과 일명사 중이 만들어낸 성씨깎을 건 깎아야봉변당한 김선달삭탈관직을 기다리는 대감이 금 안에 들어오는 놈은별난 복대림깨끗하게 처리된 송사봉변당한 김선달백곡은 바보거짓말 한번 되직하다너는 날아와 좋고, 나는 입맞춰 좋고까막눈의 위기모면옳니 그르니 따지는 놈은 누렁개 아들어느 서울 손님의 말년에 운틘 사건부자가 되려면 불을 질러라/    귀머거리 세 늙은이의 옛날 이야기오래 살아 뭘 해무르팍이 귀를 넘도록까지 살아야또 백 살까지야 바라겠냐만입이환출, 편안하신가?/  올핸 깨농사를 못지어서나도 마누라가 있다의좋은 부부도 다툴 때 있네아버지가 둘이래요귀머거리 세 늙은이의 옛날 이야기복을 톡톡 털어내는 짓토정선생이 즐겨 먹는 음식그 봉우리가 워낙 뾰족하더라니/    울 엄마 청춘으로 과부노릇 힘들어라뱃속에 글이 가득해미인을 보면 곧 붙더라오입쟁이엔 서춘보가 제일이라지만이가 문 덕분에 생긴 아들이라서//  울 엄마 청춘으로 과부노릇 힘들어라잡놈끼린 서로 통해어쩐지 밤출입이 잦더라니감쪽 같은 뒤처리그걸 뽑으면 힘을 못써망할 놈의 동네, 불이 씨가 졌나?/  버젓한 아버지를 두고 웬일이야?/  인경치는 데는 소승이 제일/    여우대감이 아니니 불여우대감이지여기에 소변볼 수 없습니다호랑이에게 물려간 장인을 구한답시고까마귀의 죄일까요, 병 때문일까요?/  유식한 사람을 무식하게 때리다니남의 잔칫상에서 그 무슨 소리냐여우대감이 아니니 불여우대감이지지겹게도 비는 놈장정 30명분의 힘을 얻는 비결떠돌이 머슴에게도 희망은 있다/    공술 얻어먹으러 다니는 친구메뚜기의 이마는 왜 벗겨졌나?/  주색을 너무 밝혀 탈이야모기가 제일 싫어하는 것그뒤 남편은 죽어서 수탉이 되었단다빈 대라서 빈대저 돼지, 웃는 상인가 우는 상인가산밑 동네의 불개보는 족족 죽여라/  3천 년 묵은 멸치가 최생원 낚싯대를 무니배고픈 호랑이가 먹이를 만났는데칠보산 밑의 하얀 호랑이공술 얻어먹으러 다니는 친구어떤 포수의 솜씨 자랑, 담력 자랑이것이 바로 꿩먹고 알먹고라네술독에 빠진 멧돼지발끝이 나무통에 박히면 끝장/    맏며느리가 먹어버린 복옥황상제 마나님의 부지깽이 때문에색시에 돈까지 꿈이냐 생시냐글 배웠다고 어디 더 잘사나장터길 한 행보에 황소가 한 마리맏며느리가 먹어버린 복찜보를 마당에 팽개친 사연유도신문뒷간에서 팥죽 들고 마주쳤으니곶감국은 토장에 끓여야 제맛?/  사랑채 헐어야 해그러기에 인심 박하게 쓰지 말아야정말 감옥은 담도 창살도 없지몽촌대감 배 위에 뱀이 똬리 틀었네춘향이 옥중에/서 잠이 들 제/    뒤늦에 음양을 깨달은 사위술독에 빠진 새 신랑혼인한 지 하루 만에 아들 낳으라니너도 처가에서 겨났니?/  머저리 신랑이 처가엘 다니러 갔는데그러기에 식칼은 거기 두는 게 아니지뒤늦게 음양을 깨달은 사위오전짜리 술이 십전으로 둔갑하니밑지고 싶으면 가져가라지그럼 족제비 꼬리나 잘라가게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총각배꼽 아래가 치아갓끈 매기도 귀찮은데 떡보를 끌러?/  나도 외갓집은 한다 하는 양반상놈과 양반의 차이자린고비보다 더한 놈/    거짓말 꼭 한 마디만끝없는 이야기천 냥짜리 얘기소를 이고 뛴 처녀애당초 욕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오뉴월 오이 대가리새까만 소와 새까만 새누룩 기울에 붉은 점 푸른 점 찍으니아랫도리는 또 마누랄 닮았군내 계집이라야 네 계집이라니?/  중과 고자가 맞붙어 싸우니보리알은 갈 테니어린 신랑에게 꼭 쥐어살게 된 색시거짓말 꼭 한 마디만/    엉큼한 원님의 수수께끼술 거르는 게 아니라 풀 거르데요어린 신랑의 밤서리용은 길고 범은 짧은 것은 무슨 이치궁예의 총각시절엉큼한 원님의 수수께끼근거 있는 판단생사람 잡은 금덩이식구 같기도 하고 남 같기도 하고아무때나 갚고 싶을 때 갚기로 한다안방으로 소를 몰고간 사나이남산골 영감의 환갑상 때문에모르겠다, 살림에 보태 써라똑딴 미인 하나 손에 넣고과년한 딸 셋과 노총각 하나요는 덮으시려구요?/  알몸으로 남의 집 안방에 뛰어드니이웃나라에서 보낸 문제서당 선생 마음은 오랑캐와 같고/    중은 요 고개로, 기생은 조 고개로이놈의 소, (맹자)를 가르칠라이놈은 왜 저승출입이 잦아?/  기유년 이월 보름에 죽으리라저 타고난 복분이 넘쳐서수레바퀴 동자의 타고난 복을 나눠받아/  3천냥 짜리 사주보기소원을 들어주는 연적형수와 시동생은 의심스러운 사이?/  개성 3형제의 재산싸움중은 요 고개로, 기생은 조 고개로/  200냥짜리가 수탉이냐 봉이냐김선달의 무전여행어떤 놈이 수절과부의 방을 넘봐?/

 

 

 

 

 

      사주 팔자 같은 두 사람

    천하의 명답

  홍문관이라면 고려 때부터 조선 말엽까지 있었던 일종의 학문 연구기관으로 그 이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 홍문관을 세상에서는 흔히 옥당이라 불렀다조선 중종 때 홍문관에서는 두루미()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이것을 놓고 학사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렸다어떤 분은 두루미는 꼬리가 검다 하고, 어떤 분은 날개가 검은 것이라고 우겼다. 사실은 날개 끝이 검지만 날개를 접고 있으면 꼬리가 검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두 패로 갈려서 서로 자기들 주장이 옳다고 우기자, 가만히 듣고 있던 늙은 아전이 말하였다.

  "날아갈 때는 날개가 검고 서 있을 때는 꼬리가 검은 법이올시다."

  사실은 어느 편도 들기가 난처하여서 아리송하게 대답하였지만, 이 대답은 두루미를 가장 자세히 말한 것이 되었다황희 정승이 윗자리에 앉아 저 아는 사람만 끌어다 등용하니 뒷공론이 돌았다. 그 소문이 세종대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경이 아는 사람만 너무 쓴다고 뭐라지 않을꼬?"

  "아는 사람도 믿기 어려운 세상에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쓰오이까? 신이 익히 보아 유능하기에 일을 맡겼사오며 달리 무슨 뜻은 없사옵니다."

 

 

    대감 등에 업힌 하인

  광주군 몽촌(지금은 올림픽 경기장이 들어섰다)에 청풍 김씨의 양대 정승을 지낸 분이 살았었다.

  늘그막에 치사(벼슬길에서 물러나는 것)하고 시골에 와 사는데, 심심하여 뒷내에서 낚시질로 소일하는 날이 많았다하루는 다 저녁때인데 남한산성(그 당시는 광주부가 고을도 크고 권세도 부렸다)의 구종(관원을 모시고 다니는 하인)하나가 서울을 다녀오다가 내를 건너야겠는데, 발 빼기가 귀찮아 두리번거리다가 삿갓을 눌러 쓰고 낚시질하는 사람을 보자,

  "여보, 나 월천 좀 서 주구려."

  개울을 업어 건네 달라는 얘기다대감이 가서 등을 돌려대니까 업히기는 했는데, 평생 힘든 일을 안해 본 분이 장정을 업었으니 허리가 자꾸 굽어 쓰고 있던 삿갓전이 업힌 놈 목을 슬근거린다.

  천생 못되먹은 놈이라,

  "이 놈의 늙은이! 삿갓은 제미 껴 만들었나?"

  훌떡 젖히고 보니 새하얀 머리에 상투는 고추만하고 금 동곳에 양 귀 뒤로는 도리옥관자(, 1품 이상 대감이라야 다는 옥으로 만든 구슬)가 눈이 부시다.

  '이크! 몽촌에 대신이 사신다드니 잘못 걸렸다.' 그냥 내리려고 버둥거리니까,

  "가만 있거라, 이 놈아! 나 넘어지겠다."

  건너다 내려놓자 넙죽 엎드린다.

  "그저 죽을 때라 몰라뵙고...."

  "아니다. 길이 바쁘니 어서 가거라."

  이놈은 성안에 돌아가 친지를 두루 찾으며 술을 퍼마셨다.

  "이제 난 죽은 목숨이다."

  며칠 그러고 지내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 '이제는 살았구나안심하면서도,

  "나 그렇게 무서워해 보기는 생전 처음일세."

 

  전주 출신에 전의 이씨로 만암 이상진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노후에 벼슬을 내놓고 낙향해 낚시질로 세월을 보내는데, 하루는 관청 하인이 지나다가 월천을 서달란다.   업혀서 건너는 자가 가만히 보니 너무나 점잖은지라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묻는다.

  "영감! 어디 살며 성명은 뭐요?"

  바로 얘기했더니 놈도 햇내기가 아니다.

  "예끼 이 사람! 촌 보리동지가 어쩌다가 성명이 만암 대감하고 같으면 고칠 일이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꼭 속겠소."

  대감이 웃으며 놈의 어깨를 투덕였다.

  "됐다! 그렇지만 너 이 광경을 우리 하인들이 봤다면 혼날게다. 저쪽으로 가지 말고 이리해서 빨리 가거라."

 

 

    길 동무

  정객으로 유명한 몽양 여운형 선생의 고향은 옛날엔 광주 땅이요, 지금은 양주인 수청리로 서울까지 가까운 하루길이다신착립(초립을 벗고 갓을 쓴 신랑) 때 괴나리봇짐에 일용품을 챙겨 지고 길을 나섰다가 도중에 만난 친구더러,

  "여보게! 이 짐 좀 지고 가세."

하여 봐서 선뜻 받아 지고 따라오면 주막마다 들러서 한잔씩 하면서도 자네한잔 먹어 보라는 말 한마디 없이 서울까지 와서는 짐을 도로 찾고 헤어지는 것이 예사였다. 그런데 똑같이 그렇게 말해봤다가,

  "내가 왜 노형의 짐을 지고 가오?"

하고 항거하면 속으로 '됐어!' 하고는, 주막마다 들러서는 자기 돈으로 술을 사 나눠먹으며 서울까지 오고, 도중 애기를 나눠봐서 자기가 상합하면 성명도 통하고 주소도 일러주어 계속 상종하더라는 애기다.

30, 40, 50대의 세 남자가 어느 술집에서 기생을 데리고 술을 마시며 신나게 노는데, 50대는 양기가 모두 입으로만 올라서 시종 음담으로 일관하고, 그 바람에 30대는 충동을 이기지 못해 여자를 차고 딴 방으로 가버렸다.

  40대는 가만히 생각을 하더니,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아?"

  그날 계산을 담당해 치렀다.

 

    두 얼굴의 운명

  어떤 젊은 선비가 외출에서 돌아와 어머니 앞에서 인사를 드리며 하는 말이다.

  "아무데 사는 아무씨 자제 아무개 있지 않아요? 그 사람, 생각보다 점잖은 사람입니다. 아무하고 셋이 작반해 길을 가는데, 저쪽에서 절세의 미인이 오고 있지 않겠어요. 저 그런 미색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래, 저희 둘은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는데 그 사람만은 까딱 없었어요. 부채 차면을 하고 예사로 지나치는데, 그만큼 수양 쌓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애기란 듣는 상대로 하여금 동조해주기를 바라고 하는 것인데 어머니의 분부는 의외였다.

  ", 지금 웃옷 입은 그대로 잠깐 그 사람 집에까지 갔다오너라.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다른 이유 들 것 없이 단순히 모명이라 말하고 절교를 선언하고 돌아오너라. 다른 이유는 물을 것 없다."

하고 엄숙하게 말씀하시니까 단 한마디 반문도 못하고 곧장 말씀대로 친구를 찾아가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딱 잘라 말했다.

  ", 자네하곤 절교했어. 다시는 자네를 친구로 안 알 테니 자네도 나를 친구로 여기지 말게."

  맑은 하늘에 벽력같은 의외의 선언이라 모두가 놀랐고, 그것은 서울 장안 사환하는 집안에 얘깃거리로 퍼졌다.

  그뒤 그 군자라던 사나이는 역모에 가담해서 그와 가까운 친구들이 많이 다쳤는데, 이 사람만은 절교한 사실이 분명해 깨끗이 벗어날 수가 있었다.

  "어머니, 그럴 줄 어떻게 미리 아셨사와요?"

  "남녀간을 막론하고 뛰어난 이성을 볼 때 자연 마음이 동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야. 아직 젊은 사람이 그것을 극복한 체하는 것은 가면인데,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어찌 남을 안 속일쏘냐? 일후로는 사람을 보더라도 눈여겨 봐둬야 할 것이니라."

 

 

    서울 사람이 다해 먹지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면서 사공에게 물었다.

  "이 생활이 위험하지 않으슈?"

  대답은 않고 반문한다.

  "당신은 대대로 뭍에서 사는 모양인데, 조부장은 어디서 돌아가셨소? 선고장은두 뭍에서 돌아가셨구려! 그러고 보니 우리보다도 더 위험한데 살고 계시는구먼."

  어떤 서울 사람이 인천 앞바다에서 돛단배를 탔다. 삼복더위가 어디 있더냐?

  건들바람에 돛을 높이 달고 잔잔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이 가는데,

  "어어이!"하고 누군가가 소리치기에 보니, 노 젓는 배를 탄 사람이 부르면서 밧줄을 던진다.

  그렇게 힘 안 들이고 배 두 척을 끌어다 주니 사례금을 두둑이 내고 따로 떨어져간다. 목적한 섬에 닿자 감탄하듯이 말했다.

  ", 뱃사람 생활이 실속도 있고 멋있구랴!"

  사공은 밧줄을 서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풍랑이라는 것만 없어 보슈. 서울사람이 다하지, 우리 차례 오겠수?"

 

    호걸남아가 귀양길에 사약을 받았는데

  조선 명종 때의 임형수는 문장가로 이름나 호당에 사가독서의 특전까지 받는 수재였다. 당파 싸움에 휘말리어 귀양길에 사약을 받게 되었는데, 워낙 천품이 강건한 탓인지 몇 그릇의 극약을 먹었어도 안 죽어지니까 금부도사에게 청했다.

  "어명을 받들고 지체하기 송구스러우니, 내 이 끈을 목에 걸게 밖에서 당기시오. 죽기는 일반 아니오?"

  한참을 힘주어 당기다가 아무 반응이 없어서 방문을 열고 보니, 방바닥에 활개를 펴고 누워서 웃고 있다. 그때까지 당긴 건 목침에 맨 끈이었다.

  "내 평생에 호기 있는 남아로 자타가 공인했던 터이라, 죽기 전에 장난 한번 쳐본 것이오. 이젠 진짜로 묶었으니 고생 덜 되게 힘껏 당기시오."

  그리하여 일세의 호걸남아는 중도에 비명으로 세상을 떴다.

 

    진짜 알맹이가 든 염불 한 마디

  한 사람이 불도를 숭상해, 일상에 잠길 때 외에는 그저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죽어 저승에 갔는데 염라대왕이 묻는다.

  "너 평생에 무어 남달리 한 것이 있느냐?"

  "별것은 없사옵고, 그저 일생 동안 염불을 하여 왔사옵니다."

  "그래?"

  왕이 돌아보니까 서기가 부지런히 달려가 합을 하나 가져다 놓는다. 뚜껑을 여니까 뽀오얀 가루가 소복하게 담겨 있다.

  "! 그놈 염불 한번 쑬명하게 했다. 그런데 어디 보자."

  후우 부니까 그 소복하던 것이 비누거품처럼 날아가며 싸악 없어져 보이질 않는다.

  "에잉, 염불이라고 모두 입으로만 건성했구나. 그런데 요것 봐라, 여기 건더기가 하나 딱 있다. 이건 진짠데. 너 언제 했는지 짚이는 데가 있느냐?"

  "한번은 산으로 밤을 주우러갔는데, 정신없이 줍는 중에 주위 공기가 좀 이상한 것 같아서 고개를 들어보니 큰 호랑이가 주홍 같은 입을 열고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자세로 섰지 뭡니까? 그만 털석 주저앉으며 나무아미타불을 했사온데, 아마 그때 그것이 알맹이가 들었던 모양이옵니다."

  "으음, 그럴 테지."

 

    이성계에게 활솜씨 가르쳐 준 노인

  조선의 태조 이성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한다.

손님과 같이 앉아 얘기하다가 천장으로 쥐가 기어가는 것을 활로 쏘면 쥐도 화살도 같이 떨어지는데, 쥐는 그대로 다친 데 없이 기어가더라고 한다.

  본시 소질도 있었겠지만, 아침이고 저녁이고 틈만 나면 늘 빈 활을 당겼다가 놓고 당겼다간 놓고 하는데, 하룻저녁은 그냥 당기느니 무얼 목표로 정하고 당기고 싶었다마침 사랑채 앞 촌가의 불빛이 새어나서 반짝반짝 한다. 그것을 겨냥하여 빈 활을 당겨 쏘았다.

  "아니, 왜 불이 꺼질까?"

  식구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나며 이내 다시 불을 켠다.

  "?!"

  '설마! 우연이겠지.'

  또 겨냥하여 활을 당겼다. 물론 빈 활이다. 그런데도 불은 꺼졌다.

  '그렇지만 설마?'

  3번째 또 활을 당겼다.

  "?!"

  그는 속으로 은근히 자신이 생겼다며칠 후 사냥을 갔다. 그러다 저물어 어느 산간에서 쉬게 되었는데, 주인노인이 활과 살을 보더니 말한다.

  "대단한 활이외다. 내일은 우리 일찍 일어나 활이나 한순씩 쏘아봅시다."

  속으론 좀 아니꼽게 생각이 되었지만 내색은 않고 그냥 잤다이튿날 아침 주인과 손은 활과 화살을 들고 집 뒤 언덕으로 나왔다. 잔디밭 저쪽에 주인 할머니가 보자기를 펴서 양 발가락 새에 끼고 두 손으로 벌려들고 앉는다.

  "내가 먼저 쏘지요."

  "아니 제가 먼저   ."

  활에서는 나중 쏘라는 게 인사다. 나이 차례도 있고 하여 손이 먼저 쐈다. ""소리를 내며 날아간 살은 베보자기를 톡 건드리고는 똑 떨어졌다.

  "대단한 솜씨로군!"

  영감이 칭찬을 하는데 할머니가 뛰쳐 일어나며 야단을 친다.

  "남의 3대째 내려오는 소포(헝겊 과녁)를 한 방에 흠집을 내놨으니 이런 분 상대하다간 보자기 안 남아 나겠소."

  "아이, 시끄러. 알았소, 알았어! , 마누라 어서 가 다시 과녁이나 잡아요."

  주인 영감이 쏜다. 무서운 기세로 날아간 화살은 과녁을 머리카락만큼 남기고 토르락 떨어진다. 손은 그만 활을 던지고 넙죽 엎드렸다.

  "몰라 뵈었습니다."

  "아니, 이러지 마시고 , 장군께서는 앞으로 하실 일이 많으십니다. 부디 보중하셔서 대업을 이루시오."

  이리하여 이성계는 더욱 조심성 있게 자기 포부를 펼 기틀을 닦았다고 한다.

 

 

    서울 출입 한번 안 하시렵니까

  함경도에 우상하라고 숨은 명필이 있었는데, 홀로 된 조카딸이 찾아와 무슨 수로든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다.

  "모르겠다. 이거나 가지고 다니면서 양식을 바꿔다 먹든지 하렴."

  글씨를 써서 주니, 조카딸은 그것을 가지고 자연 바꾸기 쉬운 대로변의 장사꾼들을 찾았다. 그리하여 큰 길가의 점포마다 그의 글씨가 나붙지 않은 집이 없게 되었다서울과 회령 국경까지는 거의 외길이라 오가는 여행자들이 보고 놀랐다.

  "시골 구석에 이런 명필이 나붙다니."

  그중에도 호사가는 얼마 안되는 돈을 주고 그 글씨를 떼어서 갖고 갔다이에 맛을 들인 길갓집들은 일부러 글씨를 받아두었다가 재미를 보고, 조카딸은 어린것들 데리고 살림을 꾸려나갔다. 그러는 동안에 그의 글씨는 함경도 여행자의 기념품이 되다시피 해 서울 대갓집 사랑에 안붙은 데가 없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

  몇 해를 그리해 이름이 충분히 나게 되자, 그는 다시 찾아온 조카딸에게 일렀다.

  "너도 이젠 살림의 기초가 잡혔을 게니 그 짓을 그만해라."

  글씨 내보내는 일을 딱 끊으니, 난처해진 것은 글씨 수요가들이다벼슬살다 가는 이의 선물거리가 없어지고, 전위해 다니던 장사꾼의 수입이 끊겼다. 그래 그들은 자택을 찾아들었다. 줄을 당겼다 늦췄다, 그의 수단에 글씨 값은 나날이 뛰었다.

  드디어 "서울 출입 한번 안 하시렵니까?"하는 교섭까지 생겨, 한껏 튕기다가 상경한 그는 일약 서예가 사이에 교유를 터서 일등 서예가로서의 기반을 굳혔다.

 

 

    사주 팔자 같은 두 사람

  조선 말엽 명신에 양파 호를 가진 정태화라는 재상이 있었다. 500년 동안 제일가는 팔자라고 하는 그에게 이런 얘기가 전한다젊어서(지금으로 치면 어린 나이겠지만) 과거 공부를 하러 삼각산 한 절간엘 갔는데, 승려가 지정해준 방에는 이미 한 젊은이가 와 글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어찌나 열심히 읽고 있는지 말을 붙여볼 엄두도 못 내고, 자기 역시 행장을 풀고 곁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였다. 둘이 다 하 열심으로 공부하다 보니 한방에 나란히 앉아 지내건만, 서로 통성명해 인사도 못한 채 여러 날이지났다.

  어느날 우연히 둘이 같이 책읽기를 마쳐 비로소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서로 성명과 거주를 통하고 나서 같은 또래고 하여 나이를 물으니 동갑이다. 다시 생일을 물으니 한달 한날이다. 난 시를 물으니 시도 같다.

  청년은 아무 말도 않고 돌아앉아 행구를 수습한다. 깜짝 놀라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대답이 이러하다. 자기 집은 도저히 자기를 절에 보내 공부시킬 만한 계제가 못되는데, 용하다는 이에게 사주를 풀어보니 과거하고 벼슬하여 정계에 나아가 오래 오래 재상 지위에 있어 부귀를 겸전할 것이라고 하여, 사뭇 온 집안이 힘을 모아자기를 후원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걸 지금 당신을 만나 둘의 사주를 대어보니 완전히 일치가 돼, 그렇다면 누대 재상가 자제인 당신한테로 차례가 가지 내게 당키나 하겠소? 그래, 일찌감치 다른 방도를 차리느니만 같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돌아가는 것이니, 어찌 알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시오. 나와 일치된 사주라면 부귀와 공명이 가득할 것은 정한 이치 아니겠소? , 그러면 기회 있으면 또 만납시다."

  청년은 훌훌 소매를 떨치고 떠나버렸다. 과연 청년의 말대로 정태화의 앞길은 막힌 적이 없었다. 아주 순탄하게 과거하고 벼슬길에 올라 20년이나 재상 자리에 있어 나라의 복수로 뽑히기도 여러 차례, 수 팔십에 이제는 집에 누워 한가하게 여생을 즐기는 팔자가 되었다조용한 시간을 얻어 지나간 일생을 돌이켜보니, 남 보기엔 호화로웠을지 모르나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이제 할 일 다 했으니 죽을 날이나 기다릴 밖에. 그런데 그때 그 청년, 나하고 사주가 똑같던 그는 그 뒤 어떻게 됐을까? 그의 사주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도 남부럽지 않은 업적을 남겼으련만.'

  그러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이러이러한 분이 뵙겠단다고 청지기가 거래를 드린다.

  ', 그때 그 청년이다.'

  "어서 듭시라고 여쭈어라."

  방에 들어서는 것을 보니 홍안백발의 호풍체라. 서로 반겨 손을 잡으며 그동안 지낸 내력을 물었다.

  "대감 동정은 제가 익히 들어 아는 바이옵고, 저의 지난 얘기나 대충 올립죠. 앞길이 총총해서...."

  사주가 좋은데 자신을 갖고 공부하다가, 같은 사주의 권문세가 자제가나타나는 바람에 학업을 집어치운 그는 가산을 정리하여 강원도의 두메를 답사하였다새로 개간할 만한 넓은 터전을 눈여겨본 그는 돌아와 광고를 냈다.

  "과부, 소박데기, 혼기를 놓친 노처녀, 혼자 지낼 수 없는 사람은 누구든지 모두 모이라."

  그리하여 수백 명 여인을 이끌고 산골로 들어간 그는 우선 재목을 베어 의지할 데를 만들고, 논밭을 일구어 식량의 자급책을 마련하였다그리하여 오늘은 이 집, 내일은 저 집 이렇게 묵으며 돌아다니니, 이듬해에는 이 집에서 "응애", 저 집에서 "응애", 때로는 같은 날 두 집에서 "응애,응애" 아들 딸들이 쏟아져 나왔다.

  저 먹을 것은 저마다 타고 난다지만, 재주 좋은 놈은 글 가르치고, 힘 좋은 놈은 상일 가르쳐 수백 명의 아들, 딸들은 모두 저 나름으로 들 성취하였다이른 데서는 증손자, 현손자까지 낳았는데, 서울서 파주 사이에 이사를 시켜 제각기 살게 해주었다. 이제 앞길도 얼마 안 남은 몸이라, 죽기 전에 자식, 손자, 증손현손들 한번 씩 대면이나 하자고 나선 길에, 이렇게 육십여 년 만에 대감을 만나러 온 것이라는 게 그의 대강 얘기였다.

  앞길이 총총하다면서 일어서는 그를 전송하고 나서 영리한 하인을 뒤쫒아 보냈다.

  ", 저 영감 가는 데로 따라가며 어떻게 하나 잘 보고 오라."

  솟을대문 밖에 나서니 보교가 하나 놓였는데 가마꾼들이 다가서며,

  "할아버지, 이제 나오셔요?"

  너 댓 발짝 갔을까, 어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며,

  "외할아버지 오신다. 증조할아버지 오신다."

  아우성들이다. 잠깐 가마에서 내려 안에 들어가 앉지도 않고 나온 모양인데, 다시 가마에 올라앉으니 이번엔 여남은 발짝어디서는 사뭇 십여 채 집이 연이어 있어 가마는 저만치 기다리게 해놓고 걸어서 집집을 뒤진다.

  '이 놈을 딸려 보낸지 여러 날 되는데, 왜 이리 안 돌아오노?'

  십여 일 만에 다른 하인을 시켜 중간보고가 들어왔다.

  "지금 녹번리에서 연서역 근처를 더듬고 있는데, 아직도 계속 중입니다."

  다시 월여 만에 또 중간보고다.

  "지금 공릉 장터 근처를 더듬고 있습니다."

  석달 만에야 먼저 하인이 돌아왔다.

  "아이구, 말씀 마십쇼. 엊그제까지 사이에 파주, 문산을 마져 더듬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실히 보고 돌아오느라고 이렇게 늦었습니다."

  양파 대감은 눈을 지그시 감고 듣다가 번쩍 뜨며 침통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 내가 졌구나!"

 

    사람 목숨 하나 들어 있는 글씨

  옛날에 어떤 부자가 금박을 발라 금병풍을 꾸며놓고 천하 명필을 불러 글씨를 받겠다고 널리 광고를 하였다.

  한 건달이 술밥에 주렸던 끝이라,

  "에라, 어찌 되었든 가 부딪쳐보자."

하고 찾아가 자칭 명필이로라 하긴 하였으나 기실 전혀 무식꾼이다식사 대접을 잘 받고 하는 말이,

  "좋은 글씨를 쓰자면 한 달 동안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니 그 동안 내게 글씨 얘기는 묻지도 말라."

  그래 놓고는 매일 세 때씩 술에 밥에 그냥 얻어먹으면서 편하게 잘 지냈다. 그러나 한 달이 다 가고 보니 할 말이 있나?

  "먹을 가는 동안이 길면 좋은 글씨가 된다."

해놓고 또 한 달을 먹을 갈며 얻어먹었다그 뒤 붓을 매만진답시고 한 열흘 더 먹어놓고, 이제는 핑계 댈래야 댈말이 없다. 그래 아무렇게든 먹칠이나 해놓고 도망칠 생각이다. 병풍을 펴 놓으라 이르고, 큰 붓에 종이에 가득한 먹을 푹 찍더니 한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한숨에 한 일 자를 내그었다그러곤 붓대를 던지고 도망치는데 댓돌에서 굴러 떨어지더니 그냥 숨을 거두고 말았다.

  주인의 입장으로 보면 딱하기 이를 데 없는 노릇이다. 멀쩡한 놈을 칙사 대접하듯 몇 달씩 먹여놓았더니, 병풍 버리고 팔자에 없는 송장 치우고 . 그 뒤 그 병풍을 접어 얹어둔 곳간에서 밤이면 훤한 빛이 난다. 이상하다고 하였더니 어떤 박물군자가 한번 보잔다. 병풍을 펴 놓으니까 깜짝 놀란다.

  "천하 명필이다. 사람 목숨 하나 들였구나!"

  주인이 깜짝 놀라며 내력을 얘기하니 그럴 거라고 하며 밤에 다시 펴보라고 한다. 그래 밤에 깜깜한 데 펴놓고 보니 글자 획에서 훤하게 빛이 난다.

  "그것 보시오. 그 놈이 오던 날서부터 얻어먹으면서도 노상 마음 가득히 잠긴 걱정은 글씨 쓸 일이라, 석 달 동안이나 온 정신이 온통 글씨에만 쏠렸는데, 이 한 획을 긋느라고 정력을 몽땅 쏟아놓았으니 그 땐 죽었지 별수 있소?"

  사람의 목숨이란 그렇게도 값진 것이다.

    노총각 짚신보다 홀아비 짚신이 낫지

  어떤 지독히도 못사는 가문이 있어, 홀아비 늙은이와 노총각 부자가 움막을 짓고 짚신을 삼아 팔아서 연명을 한다죽이 차서 내다 팔게 되면 아비가 삼은 것이 언제나 아들이 만든 것 보다 먼저 나가는 것이라, 아들은 늘 이상하게 여겼다. 자신은 언제나 보자마자 첫눈에 사가고 싶게 삼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나긴 겨울철이 지나고 해동 무렵인데, 아비가 우연히 감기가 들더니 워낙 삐친 끝이라 힘없이 죽어가게 되었다. 아들이 머리맡을 지키고 앉았다가 아버지 숨 넘어 가려고 할 때에 그 짚신 좀 빨리 팔리게 삼는 비결을 일러달라고 졸랐다그랬더니 청기와장수 심사로 혼자만 알고 있으려던 것을 이제 숨 넘어 가는 마당에 아까울 것 있으랴 싶어, 떠 넣어 주는 물을 한 모금 간신히 받아먹고는 턱을 떨며 말한다.

  "   ."

  털을 잘 뜯어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다물건 만들 때 원리원칙은 맞았더라도 얼만큼 본때 있게, 때가 벗게 하는가는 현대공업에서도 중요한 조건에 든다.

 

 

    월명사 중과 일명사 중이 만들어낸 성씨

  구씨를 음이 구와 같다고 개라 하는 것은 비약한 얘긴데, 흔히 가문이 좋다고 5지공 자손이라 추켜세우는데, 그 유래는 이렇다.

  낙지초명 강아지

  평생소원 누룽지

  무상출입 개궁지

  고대광실 아궁지

  영결종천 올감지

  아궁지를 천하 명당으로 하고, "평생소외 갈가지"를 넣은 수도 있으니 무엇을 빼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머저리 같은 노총각을 머슴으로 들일까 하여 주인이 물었다.

  "장가 갔나?"

  멈칫멈칫하고 대답을 잘 않으니까 벌컥 소리를 질렀다.

  "장가 갔느냐고 물었지 않아?"

  때마침 그 집에 와 여러 날 공밥을 먹으며 묵던 장가 성 가진 뻔뻔한 손이 마당에 있다가 그 소릴 듣고 말한다.

  "장가 가고 안 간 건 왜 물어?"

 

  어느 곳에 산판이나 금전 같은 것이 벌어졌던지, 한 사람이 주인을 잡고 앉았는데 성명이 '손의부'라고 한다.

  이 자가 한참 얘기하다가는 자기 성명(성은 바꾸면 망발이라 진짜겠지만 이름은 미심한 데가 많다)을 내걸고는 손의부 곧 당신의 아버지라 하여 들씌우는데, 무모한 촌사람들이 연속 망신을 하고 돌아왔다는 얘기다.

  글방에서 이 얘기를 전해들은 초립동이들이 상의를 하였다. 그리하여 주,, 오 성 가진 세 사람을 불러 계교를 일러주었다. 지도를 받은 셋은 손의부의 사처를 찾아갔다.

  "처음 뵙겠소. 인사합시다."

  "나 손의부라고 하오."

  "그렇소? 난 주인조요."

  글자는 아무래도 좋다. 주인의 할아비라고 풀 수 있다.   둘째 사람이 대답했다.

  "나도기요."

  이름 '도끼'는 흔히 쓰는 순 우리말 이름이고, 풀면 나도 '', 즉 나도 그것, 주인의 할아비라는 뜻이다.

  "오역연이외다."

  나 역시 그렇소하는 뜻이다. 그래서 '손의부'의 항복을 받고 다시는 그따위 버릇을 못하게 해줬다는 얘기다.

 

 

  내시라면 대개 학식은 있고 시간은 남아돌아 입심이 남 유달리 센게 특징이다. 어느 사랑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노는데, 명가 성 가진 내시가 가끔 와서는, 그 출중한 입심으로 많은 사람을 곯려주는데 당할 도리가 없다.

  하루는 탁발 나왔던 승려가 하나 재워달라고 들어왔는데, 문견도 많고 구변도 있어 이분에게 부탁하였다.

  "대사, 그 언변으로 그놈 좀 납작하게 만들어주."

  얼마 있자니 정말로 그 내시가 들어와 앉으며 말을 걸었다.

  "대사, 어느 절에서 왔으며 성씨는 뭐요?"

  대답을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간 저 자에게 말려들 판이다.

  "있기는 아무 산 무슨 절에 있지오만 성이라고 창피해서요, !"

  "무슨 성이기에  ?"

  "글쎄, 어미라는 것 행실 좀 봅쇼. 뒤산 월명사 중하고 일명사 중에게 번갈아 드나들다가 소승이 생겼다지 뭡니까? 그래 동네 글방에서 양쪽 절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명가를 만들어주었는데, 그게 창피해 속세를 하직하고 이렇게 중노릇을 하며 지냅죠."

  "?!"

 

    깎을 건 깎아야

  한 사람이 서울을 간다니 친구가 조언을 한다.

  "서울이란 데는 에누리가 심해 무엇이든 그저 반 이하로 깎아야 하느니."

  이것을 새겨듣고 떠나왔는데, 처음 만나 인사한 사람의 성이 조씨더란다.

  "무슨 조가야, 천가인 게지."

  불행히 억가도 만가도 없다보니 깎아도 너무 깎았다. 다음번 정작 천씨하고 인사하게 되었다.

  "당신 정말 성은 백씨 아니오?"

  그 다음 백씨라는 분을 만났을 때는,

  "이이가 필연 구가렸다."

  "구 아무개올시다."

  "옳지. 육가가 괜히 그러는군."

  육씨를 만났을 때는 많이 못 깎았다. 오씨가 있으니까. 오씨를 만나서는 한참 망설였다. 사마씨 사공씨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복성이요,사씨가 있다더구먼도 잘 모르겠고, 엣다.

  "당신 이씨 아니오?"

  흔해빠진 이가를 만나서는 '저 이가 한간데 그러겠지' 하는 중에, 정작 한씨를 만나게 됐다.

  "당신 반씨로구랴!"

 

      봉변당한 김선달

    삭탈관직을 기다리는 대감

  옛날 법에 높은 벼슬을 하였더라도 삭탈관직을 당했으면 자신을 급제라고밖에 못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것은 일종의 학위라 그것만은 어쩌지 못하였던 모양이다한음(이덕형)이 영의정으로서 삭직을 당해 급제라 하게 되었는데, 오성(이항복)이 이때에 좌의정으로서 또한 논의대상이 되었다. 광해군 당시에 폐모론으로 원로대신들이 이렇게 핍박을 당하였다오성(별호는 백사건만 오성부원군이라 하여 흔히 그렇게 부른다)이 어이없는 세상 형편을 보고 한마디 하였다.

  "나의 동접(같은 글방의 동급생)은 급제를 했는데, 나는 언제나 급제할 것인고?"

  동대문 밖에 가 있을 때 한 백성이 와 뵙고 말한다.

  "신역(국민된 의무로 일을 하여 몸으로 치르는 것)으로 편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오성의 대답이 걸작이다.

  "나는 호역(집집이 매기는 부역)으로 편편치 못하다네!"

  호역은 호역(역적을 두호한 죄. 그래서 성을 나와 대기하였던 터라)과 음이 같아 이렇게 우스개로 답하였더란다.

 

 

    이 금안에 들어오는 놈은

  김선달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도 나돌아 다니지만 대개는 한낱 우스개들이다.

이따위 짓만 하고  다닌다고 밥이 생기나? 그래 가끔 협잡도 좀 하다 보니 피해 입는 사람도 생길밖에.

  그래 평양으로 그 아버질 찾아가 항의를 한다. 하도 그 아버지에게 여러 번 항의가 겹쳐 들어와 아버지는 잔뜩 똥보가 부어 있는데, 선달이 어슬렁어슬렁 기어들어온다.

  "이놈의 새끼 때려 죽인다"고 작대길 메고 따라나서는데, 늙은이가 얼마나 따라오랴 싶어 얼마를 달렸는데, 근력이 좋아 그랬던지 끈덕지게 쫒아온다. 이젠 숨이 차 더 뛸래야 뛸 수가 없다얼핏 막대기 하나를 집어가지고 땅바닥에다 커다랗게 동그라미를 긋고는,

  "이 안에 들어오는 놈은 개새끼다."

  그랬더니 아버지라는 분, 작대기를 을러메고 금 밖을 빙빙 돌며,

  "오냐! 이놈의 새끼 나오기만 해라."

  한번은 또 어디가 무슨 협잡을 했는지 아버지가 잔뜩 벼르고 있는데 집엘 들어왔다.

  "이런 집안 망칠 자식은 죽여 없앤다."

  이번엔 쇠스랑을 메고 쫒아 나서는데 큰일났다. 작대기 같으면 몇 대 맞고 말겠지만, 이번엔 결사적이다. 그냥 줄달음을 쳐 달아나다 보니 여전히 쫒아온다. 대동문을 나서서 돌아다봐도 그냥 쫒아온다.

  강가까지 내닫고 보니 이젠 더 갈래야 갈 데도 없고, 물가로 쭉 매놓은 배 안엘 뛰어들었다.

  "임자식, 내가 놓칠 줄 아니?"

  배에까지 따라 들어온다. 잽싸게 몸을 돌이켜 육지로 뛰어내리니까 역시 몸을 돌려 뛰어내린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손을 내밀어 아비 손목을 덥석 쥐며,

  "이거 동생, 인제 나오나."

  "임자식이 이젠 눈깔이 뵈는게 없나? 애비 보고 동생이라니!"

  ", 이 사람아! 한 뱃속에서 나중 나왔으면 동생이지 뭔가?"

 

    별난 복대림

  '도르리'라고 하면 회원을 모아 똑같이 경비를 나눠 물면서 먹는 모임을 말하는데, "한잔 술에 눈물난다"고 의당 끼워줄 자리에 빼놓으면 섭섭한 법이다.

  말복날 개 도르리를 하는 모양인데 김선달이 그 모임에 빠졌다. 친구 몇몇을 따로 불러 공론을 하고, 김선달이 먼저 그 자리를 찾아들었다.

  "아 글쎄, 저 아랫마을에서는 미친개를 모르고 잡아먹어서 여러 사람이 미쳐 날뛴다지 뭐야? 이건 성한 갠가?"

  자신이 없는지 아무도 대답을 않는다.

  "제기 살만큼 살았으면 됐지, 목숨은 더럽게 아까운가배. 우선 내 한번 먹어보고...."

  푸짐하게 몇 점을 먹더니 눈자위가 틀리며 침을 질질 흘린다. 기분 나빠서 쳐다들 보는데, 별안간 눈을 희번덕거리며 옆의 사람에게 대들었다.

  "! ! 으으응!"

  손을 들어 막다가 팔죽지를 물어뜯겼다. 그 사람이 피해가니까 이번에 반대편 사람을 물어뜯는다.

  ", ....."

  모였던 친구들이 기분이 상해서 모두 헤어지니까, 그는 시치밀 뚝떼고 의젓하게 일어서 손짓을 했다.

  "여보게들! , 됐으니 어서들 오게."

  그리하여 복대림을 푸짐하게 잘했다.

 

    깨끗하게 처리된 송사

  어느 고을을 오래 끌어온 송사가 있었다. 본시는 떠돌아왔지만 자리를 굳혀서 집강(지금 같으면 이장)까지 보아 착실하다고 소문이 난 청년이 있었는데, 토박이 부자에게 많은 돈을 얻어다 쓰고 딱 잡아떼는 것이었다. 한가지 문제는 증인이라고 세운 부자의 아내마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부자는 돈 떼인 것 보다는 텃세한다는 공론이 싫어서 정소(소장을 관청에 내는 것)한 것인데, 증거가 희미해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선달이 마침 이 고을을 들렀다가 이 말을 듣고 꾀를 내었다. 뒤주 셋을 내다놓고 하나에다가는 부자, 또 하나에는 집강 보던 사나이, 나머지 하나엔 부자의 계집을 넣고 잠가 따로따로 두게 했다.

  먼저 부자를 불러내 계집년 든 뒤주를 지고 읍내를 한바퀴 돌라고 일렀다. 뉘 알았으리! 그 뒤주에는 계집과 바꿔치기로 선달이 들어 앉았는 것이다. 부자는 그것을 지고 호젓한 곳을 지나게 되자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

  "망할년 같으니, 나이 값도 못하고. 그래 그 돈을 빼내서 놈팽이하고 붙어서 어쩌잔 얘기냐? 그저 자식새끼들만 없으면 요절을 내버리겠다만..... 아이구, 속 터진다."

  물론 계집은 대꾸 한 마디 없다. 다음 젊은 녀석이 여자 든 뒤주를 지고 나섰는데, 역시 호젓한 데 이르더니 속삭인다.

  "내내 모른다고 잡아떼어. 성사만 되면 놈은 거덜나! 그러면 그것마저 챙겨가지고 우리 단둘이서....."

  관청 마당엔 원님 이하 두 남자까지 늘어섰는데, 둘이서 번갈아 지고 돌아온 뒤주의 열쇠를 열었다. 한참만에야 천천히 나타나는데, 웬 상투가 보이더니 이내 낯선 사나이가 일어서서 싱그레 웃으며 사령들의 부축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이리하여 그 송사는 깨끗하게 처리가 되었다.

 

 

    봉변당한 김선달

  팔도에 이름난 김선달이 하루는 저녁때 자기하고는 연고지인 수표교 다리께를 지나려니까, 밉지 않게 생긴 여인 하나가 큼직한 보따리를 이고 나오며 말을 건넨다.

  "여보셔요, 선비님. 사람 살리는 셈치고 내 말 좀 들어주셔요. 나는 이 골목 안에 사는 여잔데, 서방이란 녀석이 어떻게나 술만 먹고 못살게 구는지 단연 헤어지기로 하고 나온 길인데..."

  하며 두리번거린다.

  '그러면 도망꾼이구나!'

  도망꾼이면 붙잡은 사람이 데리고 살게 마련이다.

  "내 또 한 보따리 가지고 나올 테니 이걸 가지고 예서 좀 기다리셔요. ? 곧 올게요."

  김선달 마음에 반겨 듣고 보따리를 받아 다리 난간에 놓고 골목 어귀를 기웃거리며 기다린다. 앞으로 재미 볼 별별 생각을 다하면서, 그러는데 안오는 것이다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가 어느덧 아주 깜깜하게 어두워졌다.

  '이게 정말 안 오려는 건가?'

  이러나저러나 무얼 싸가지고 온 건지 보따리나 끌러볼 밖에. 헌 누더기로 싸고 또 쌌는데 마지막 끌러보니, ? 돌이나 됐을까 한 어린아이 시체다. 저쪽에서 저벅저벅 두어 사람의 징박은 발짝 소리가 가까이 온다.

  "여보, 여보! 거기서 뭐하는 거요?"

 

    백곡은 바보

  백곡 김득신이 출입할 때면 늘 나귀 고삐를 잡던 하인이 하루는 찾아와서 하소연이다.

  "소인도 이제 힘이 부치오니 댁의 묘토 중에 얼마를 맡겨주시오면, 성실하게 농사지어 드리면서 여생을 보낼까 합니다."

  양반 대가에서는 으레 요새 사장님이 운전사를 돌봐주듯 마부 출신은 묘지기 같은 것으로 안정시켜 돌봐주는 법이라, 이 마부도 그래서 여쭌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분부가 내렸다.

  "갈 테면 가려무나!"

  ' 아니, 이렇게 매정스럽고 퉁명스러울 데가 있나?'

  어이가 없어서 무료히 돌아서 나오는데 대감이 부르는게 아닌가?

  "! ! 너 명쇠 아니냐? 아무 골에 선대 산소가 몇 분상 계신데 위토도 논 섬지기가 되느리라. 게나 가 있도록 내 애기해주마."

  사실은 거기를 지목해서 여쭸던 것이다.

  "아까는 왜 그렇게 매정하게 끊어서 말씀하셨습니까?

  대감은 쓴웃음을 지으며,

  "늘 말고삐를 잡히고 다녀서 뒤통수를 보면 넌지 알아도 정면으로 봐서는 잘 모르겠구나."

  "?!"

 

  백곡이 하루는 조용히 앉아 자신의 한 일에 잘못은 없나 하고 독실하게 반성을 하다가,

  "아차차, 아들의 어머니를 데리고 살다니 이런 큰 죄가 있나?" 하고 몹시 뉘우쳐져서 문밖출입 마저 끊고 들어앉았다. 마침 당질이 다니러 왔다가 그 사정을 알고 건성 맞장구를 쳤다.

  "아저씨, 그건 정말 큰일을 저지르셨습니다. 갓 쓰고 출입할 수도 없는 창피한 처사입지요."

  며칠 만에 다시 가보니까 식사까지 끊어서 근력이 말이 아니였다. 그래 가장 친절한 듯이,

  "아저씨, 그만 일어나십시오. 백어(공자의 아들)의 어머니하고 공자님하고는 어떠한 관계입죠?"

  "! 참 그렇군. 그렇기로 너까지..... , 고얀지고!"

  백곡의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사랑에서 자는데, 밖에서는 봄비가 밤새도록 주룩주룩 내린다.

  백곡이 또 무슨 글귀를 생각하노라 고신 고신 잠을 못 이루고 있다가 소피가 마려운지 밖으로 나간다. 툇마루에 서서 밑에 놓인 오줌동이에 누는 모양인데 한참이 지났건만 안 들어온다.

  노인이라 잠이 적은 아버지가 깨어 있다가 불렀다.

  "야야, 뭘 하기에 그저 안 들어오니?"

  "오줌이 자꾸만 나와요."

  "?!"

  비가 와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자기의 오줌 줄기 소리로 알았다는 것이다.

 

 

  '조장'이라면 부모님을 여위고 상제가 된 사람에게 보내는 조문 편지인데, 형식도 까다롭고 도타운 정의를 표현하기 매우 힘들다고들 한다백곡이 친상을 당해 초상상제로 머리를 풀고 앉았는데 친구에게서 조장이 왔다. 뜯어서 읽어보니, 그 심금을 울리는 표현이며 꼭 짜여진 형식이랑 참으로 천하의 명문이라,

  '이렇게 훌륭한 글이 있나?'

  무릎을 꿇고 앉아 삼천 번은 읽어서 휭 하게 외었다대갓집 일이라 초종을 치르기에 월여가 걸리고 집안을 대충 치우게 됐는데, 자신의 책상을 정돈하다 보니 눈에 익은 조그만 책자가 하나 나온다. 친구들을 위해 애경(슬픈 일, 기쁜 일)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일종의 모범문장으로 자신이 지어서 돌린 책 중에 하나다.

  그 가운데 <조장>대목을 보니, 그 삼천 독했던 명문장하고 글자 하나 안 틀린다. 무식한 친구가 그 책을 보고 그냥 베껴 보낸 것(자신이 지은 글)을 처음 보는 글로 알고 삼천 독이나 한 것이다.

 

 

    거짓말 한번 되직하다

  어찌나 잘 둘러대는지 거짓말쟁이로 알려진 소년이 있는데, 손에 종다래끼를 들고 달랑달랑 지나려니까 싱거운 할아버지 하나가 그 놈을 꼭 잡았다.

  "요놈! 거짓말 한마디만 해라."

  "싫어요! 나 지금 아무데 웅덩이가 말라서 고기가 지천으로 펄떡거린다기에 그것 건지려고 가는데, 괜히 붙잡고 이러셔요."

  노인은 고기 건질 욕심에 자기도 안에 들어가 조그만 바구니 하나를 들고 동행해 나섰다조금 가더니,

  "아침에 뒷간엘 안 갔더니..., 아이 똥 마려! 할아버지 먼저 가셔요, 나 똥 누고 금시 따라 갈께요."

  할아버지는 그쯤 알고 가는데, 요 녀석 궁둥이를 까는 척하다가 집 쪽으로 줄달음을 놓았다.

  "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깊은 델 들어가 가지고, 이렇게 어푸어푸하는걸 보고 왔어요."

  금방 물에 간다고 떠났는데, 이거 큰일이다. 할머니가 손에 들었던 것을 놓고 뒤따라서 뛰는데, 요놈의 걸음 재기라니...

  "할아버지, 할아버지. 댁에 불이 났어요. 온 동네가 다 풀려 불길을 잡는데, 모두들 할아버질 찾아요."

  고기 건지는 거고 뭐고 바구니를 집어던지고 달려오는데, 산모퉁이에서 할머니와 마주쳤다. 숨은 차고 말은 안 나오고 서로 한참을 마주보며 헐떡이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거짓말 한번 되직하다!"

 

    너는 날아와 좋고, 나는 입맞춰 좋고

  양평사는 권사순이라는 양반은 언제나 옷갓을 의젓하게 차리고 가평 등지로 친구를 찾아다녔다. 언변도 좋고 말로는 못하는 것이 없어서 글을 모르는 무식쟁이인 줄은 모르고 모두 상당히 유식한 줄로들 알았었다.

  하루는 도중에 아는 집을 찾아들었더니, 어디서 얻어왔는지 문방제구를 내어놓으면서 부탁한다.

  "자식 놈 혼인을 정했는데, 생원님! 사주 좀 써주십시오."

  "그래요? 그거 경사올시다. 사돈댁은 어디 누구네지요?"

하며 먹을 갈고 나더니, 종이를 격식대로 접어 금을 내서 펴놓고 붓을 공그른다. 그러다 말고 깜짝 놀라듯이 말하는 것이다.

  "이런! 내 정신 좀 보게! 마누라가 죽어서 상청도 채 안 나갔는데, 내가 어떻게 이런 글을 쓴담?"

  붓을 내려놓으니, 주인도 섬뜩하여서 그대로 필묵을 거둔다. 대접하려고 일부러 지은 것이라 더운 점심에 계란찌개까지 곁들여 반주 석 잔에 제대로 대접해서 보냈다.

 

 

  행인이 하나 고픈 배를 쥐어 잡고 길을 가는데, 여인 하나가 혼자서 아기를 업은 채 찹쌀을 쪄서 확에 넣고 디딜방아로 찧고 있다.

  "어떻게 아기를 업고 그런 일을 하셔요. 내 보아 드릴께 이리 내려주셔요."

  "아이 미안해서...."

  "그리고 이걸 뒤적여야지, 그냥 한 곳만 자꾸 찧으면 되나요? 일 끝나면 나 떡 좀 주셔야 합니다."

  "그러면요! 이런 고마울 데가...."

  이제 아주 잘 찧어져서 꽈리가 일게 되었을 때, 떡을 뒤치는 척하더니 아기를 확에 처넣고 떡덩이를 들고 내뛰었다.

  "! 저런! 저런!"

  "일 끝나면 떡 주마고 하지 않았어요?"

  쫓아가자니 발을 놓았다간 아기가 치어죽겠고, 절절 매는 동안에 놈은 멀리 내튀었다. 간신히 수습을 해놓고 아기를 꺼내 뺨을 비비며 엄마는 울었다.

  "떡은 없어졌다만 네가 성했으니 다행이다."

 

  어떤 스님이 상좌를 데리고 탁발을 다니는데, 하도 여러 날 돌아다니니까 상좌가 발이 부르터서 걸음을 잘 못 걷는다. 어찌나 엄살을 부리던지 스님이 꾀를 냈다. 물이고 가는 부인의 두 귀를 붙잡고 입을 쭉 맞추고는 본시 잘 걷는 사람이라 등성이를 넘어서 줄행랑을 놓았다. 여자가 물동이를 내던지고 죽는다고 고함을 치자 청년들이 내달아,

  "하수인은 놓쳤지만, 조놈이라도 잡아라."

하고 따라오는 바람에 상좌는 겁이 나서 산등성이를 타고 내달았다. 산 너머에서 만나가지고,

  "너 발 아프다더니 잘만 뛰더구나! 너는 날아왔으니 좋고, 나는 입 맞췄으니 좋고...."

 

 

    까막눈의 위기모면

  대축이라면 절차를 밟아 지내는 큰 제향에서, 축문을 베껴 써서 소리 내어 읽는 중요한 직책이다. 미리 써오는 것이 아니라 신주 독(덮는 뚜껑)을 열어놓은 앞에 따로 상을 놓고, 현장에서 써가지고 읽고 나서는 제사에 올렸던 폐백과 함께 망료위에서 사르게 마련이다.  이문원 판서가 무식하면서도 정조 대왕께 사랑과 신임을 받고 있어서, 곯려주려고 그랬던지 여럿이서 종묘 제향에 대축으로 천거하였다.

  제향 당일이다. 배짱 좋기로 유명한 이 판서는 금관제복의 예복차림으로 상앞에 앉았다. 제복에 받쳐입은 중단 소매 속이며 허리띠 부분을 두루 더듬으며 무얼 한참 찾는다.

  "! 내 정신 좀 보게, 옷을 바꿔 입는다고 돋보기 넣고 오는 것을 잊어버렸네 그랴! 눈이 있어야 쓰지! 자네 좀 대신 쓰게."

  곁에서 먹을 갈고 있던 봉죽드는 사람에게 대신 쓰게 했다. 그래서 그 자리는 멋지게 모면하였다. 다음 분향이 끝나고 초헌관이 첫잔을 올리고 났으니 축문을 읽어야 할 차례다. 이문원은 마치 군대에 호령하는 것같이 쩡 울려나가는 큰소리로,

"유세차아"고함을 질렀다.

  집례라고 홀기를 읽으며 식전을 진행하는 관원이 '그렇게 크게 읽어서는 못쓴다' 하는 뜻으로 눈을 흘기며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래 큰 소리로 읽으면 못 쓰는 거야?"

  입안으로 곁의 사람도 잘 못 알아듣게 무어라 중얼중얼 한참 읽는 시늉을 하고 나더니, "상향"하고 높직하게 끝을 맺었다. 물론 그리하여 그 엄숙한 제향은 일호 차질없이 잘 치러졌다.

 

 

    옳니 그르니 따지는 놈은 구렁개 아들

  이문원이 지위도 있고 보니 격조 높은 놀이에도 나가야 한다. 한 번은 남산에서 하는 답청 놀이에 초대받았는데 한문을 숭상하던 당시의 일이라, 한잔 끝에는 운자를 내어 거기 맞춰서 시를 지어야 한다이문원은 운자고 뭐고 개의치 않고 한 수를 먼저 읊었는데, 옆의 사람이 받아 써놓고 보니 기가 차다.

 

  왈각달각 등남산 하니,

  승지 참판 영감래.

  언문 진서 섞어 작하니,

  시비자는 황견자라

  새로 지어 와삭와삭 옷자락에서 소리를 내며 남산엘 올라가니,

  승지니 참판이니 하는 영감들이 모였다.

  언문과 한문을 섞어서 지었으니,

  옳니 그르니 따지는 놈은 누렁개 아들이라.

그래 놓으니 따져서 비평할 수도 없고 지금까지 그냥 명작(?)으로 전한다.

 

    어느 서울 손님의 말년에 운틘 사건

  옛날 서울에 한 양반이 살았는데, 조상 근력으로 그런대로 밥은 굶지 않고 지낼 만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부인과 잘 적마다 어린애가 들어 결혼 첫해부터 거의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아놓는데, 정말 즐거운 비명을 지를 판이다그러니 순전히 하루 세 끼 밥만 먹어도 식량으로 워낙 들 먹어대는 때문에 어느덧 살림이 엉망이 되었다. 그래 안하던 남의 서사 노릇도 하고 추수도 보아주러 다니고 하여 보건만, 그때그때 식량만 대기에도 허덕허덕한다그런 위에 큰 것들이 벌써 장성하여 억지로 억지로 성취를 시켰더니, 이것들도 역시 억세게 낳아들 놓는데, 이젠 그만 어떤 게 제 자식이고 손주인지 정신 안 차리면 몰라볼 판국이 되었다.

  어느날, 아는 부잣집에서 보행을 좀 서달라는 부탁이 왔다. 말하자면 편지로 못할 내용이 있을 때 특사 파견하듯 하는 심부름이다. 한 행보만 잘하면 상당한 보수가 나오는 일이다그래 부산까지 왕복을 하게 됐는데, 집에서 굶주리고 기다릴 식구들 생각을 하고 돌아올 길에는 노자는 따로 나둔 채 과객질로 남의 사랑잠을 자면서 올라온다하루는 저녁때 충청도 접경에 이르렀는데, 하룻저녁 드샐 만한 집을 물색하자니 커다란 동네 안에 덩그렇게 지은 기와집이 눈에 뛴다.

  '부잣집이면 작폐도 덜 되겠지.'

하는 생각에 사랑문을 들어서며 주인을 찾아 하루저녁 신세를 부탁하였다. 55세 되었을까 말까 한 풍신 좋은 주인이 조금도 귀찮아하는 기색없이 어서올라오라고 한다. 저녁을 내왔는데 아무 차별없이 잘 차려낸다.

  상을 물린 뒤 불을 밝히고 마주앉았는데, 어쩐 일인지 말꾼 하나 없다. 덤덤히 앉았기도 무료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고 들은 얘기들을 주고받는데, 우연히 화제가 자손 두는 데로 발전하였다.

  "그래, 손님은 자녀를 몇 남매를 두셨소?"

  서울 손은 대답 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된 놈이기에 흥부 애 낳듯이 열 몇인지 확실히 10남매는 넘는데, 자세한 숫자는 손주녀석들 하고 섞여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런 수도 있소?"

  얼마 뒤 사랑 안문이 부시시 열리며 주안상이 나오는데, 생전 처음 볼 만큼 푸짐하게 차렸다. 주인이 오줌 누려고 일어섰다가 시킨 건지는 몰라도 과객대접으로는 너무나 뜻밖이다.

  ", 별건 없소이다마는 우선 한잔 드십시다."

  술잔이 서너 번이나 오갔을까, 주인은 다시 술을 들어 권하며 얼굴에 비장한 기색을 띤다. 그러더니 자리를 옮겨 손님 옆에 와 앉으며 손을 덥석 잡는다.

  ", 손님에게 꼭 부탁할 일이 있소."

  "? 부탁이?"

  주인의 얼굴에는 눈물이 줄을 지어 흐른다.

  "아니, 왜 갑자기....."

  "손님, 이 늙은 것을 위해서 수고 좀 해주십시오."

  "?!"

  "밝은 날 보시면 자연 아실 게요만은, 내 이 사랑 누마루에 올라서서 보면 눈 미치는 데까지는 다 내 소유외다. 그러니 그렁저렁 배는 곯지 않고 지내는데, 한 가지 남녀간 생산을 못해봤소 그랴. 그래 소실을 차례로 얻은 게 셋이나 되는데, 이것들이 눈치도 코치도 없어. 병신은 내가 병신이야. 그러면 어디 가서 넌저시 씨를 받아와도 좋으련만 그러지들도 못하는구랴. 내 이만큼지내는 형편이라 재산에 남 부러울 게 없는데, 남이 자식 안고 다니는 걸보면 눈이 뒤집혀. 그저 남의 씨라도 좋으니 무릎에 앉히고 '아버지' 소리 한번만 들었으면 원이 없겠소. 노형 기술(?)이 그렇게 좋으시다니 날 위해서수고 좀 해주슈."

  "원 천만의 말씀을....."

  술이 번쩍 깨며 설레설레 저으니까,

  "하아, 공연한 사양을..... 누가 큰마누라를 건드려 달라는 것도 아냐. 작은것들은 본시 천생들이라 좀 그래도 괜찮고, 또 나하고 임자만 알면 다되는 일이 아니오? 노형 연배에 집 떠난 지도 여러 날일 게니 객고도 좀 풀겸 제발 좀 부탁합시다."

  보기에 측은하여 마지못해 그러라고 하니 주인은 입이 함박만큼 벌어지며 이것저것 자꾸 권한다. 오래간만에 허리띠를 끌러놓고 잘 먹고서 이슥한 뒤에 주객이 나란히 한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깨어보니 자기가 입고 온 헌털뱅이는 간 데 없고 새옷 한 벌이 놓였는데, 버선 행전은 물론 갓, 망건, 도포까지 일신하다. 느직하게 겸상으로 아침을 잘 먹고 나니,

  "그럼 우리 가 보실까?"

  주인이 앞장서 일어선다대문을 나서서 보니 조그마한 기와집 3채가 나란히 날아갈 듯이 지어있는데, 그 첫째 집으로 인도한다여자는 마루 아래로 내려서며,

  "영감 오셔요?"

  영접해 들이는데, 손에 대하여는 서로 간 말이 없다. 대객에 초인사라고 담배피워 올리고 한참 앉아 있으려니 이내 술상을 올리는데 음식이 모두 소담해 먹을 만하다  돌려가며 몇 순배 마신 후 장국상을 올려 입매하고 나니, 영감은 담배를 피워물고 뜰에 내려서서 부잣집 업 나가듯이 소리없이 사라져버린다가슴을 두근거리며 여인의 손목을 덥석 잡았더니 낯을 붉히며 외면할 뿐 반기지도 거절도 않는다이튿날이다. 양즙을 내어 자리조반을 먹고 소세하고 나서 느직이 아침식사를 마치니 영감이 왔다.

  "그럼, 다음 집으로 가 보실까?"

  다음날 다시 다음 집으로 갔다.

  "이거 너무 여러 날 길을 지체하시게 해서 미안스럽습니다. 아니, 옷을 바꿔 입으시긴? 그냥 입으시고..... , 이건 너무 약소해서.....

  동구 밖까지 전송하는 영감이 쥐어주는 데로 염치없이 말고삐를 받았다. 한바리는 자견하여 타고, 하나는 복마 부담농을 실었는데, 무엇이 들었을지개선장군모양 거드럭거리며 집에 돌아온 그는 우선 부담농을 열어 보았다.

흥부의 박모양 없는 것이 없는데, 처분하면 가산을 능준히 다시 일으킬만하다.

  그렇건만 우선 식구들 옷가지를 해 입히고 과년한 몇 아이들 성취시키고 보니 도로 빈털터리이다.

  그런지 어언 20년 가까이 흘러 그도 반백 머리가 되었다. 제세끼, 손자세끼, 증손자 놈들의 장난으로 방바닥이고 벽이고 문짝이고 성한 데가 없다. 날마다 먹을 거 때문에 악다구니를 떨며 복작복작 정신없는 그날그날을 보낸다.   하루는 방에 앉아 무얼 좀 끄적거리노라니 아이들이 떼로 달려들며 소리친다.

  "아버지! 할아버지! 저기 바깥에 손님이 찾아왔어요."

  "?"

  "좋은 옷 입고 말 타고 셋이서 왔어요."

  "!?"

  "이댁 주인이십니까?"

  ", 그렇소. 누구들이신지?"

  "들어가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너무 누추해서."

  "원 천만의 말씀을."

  셋은 방에 들어서자 날아갈 듯이 절을 하였다.

  "아버지를 이제 찾아뵙습니다."

  "?!"

  "이 내용을 안지는 3년이나 됩니다. 아버지께서, 그러니까 길러주신 그 어른께서 돌아가시던 날 저희 셋을 불러 앉히고 상세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셋을 키우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으니, 그것만으로도 내 분복에 과한일이다. 3년 상이나 벗거든 너희 아버지를 찾아라.' 유언의 말씀이셨습니다."

  "가뜩이나 형편없이 지내는데 너희들마저 들어오면....."

  "원 아버지께서도! 길러준 아버지께서 남기신 재산이 고스란히 있고 어머니들 세 분도 기다리시는데 낙향하시면 되지, 무어 꼭 서울에 계셔야만 됩니까?"

  "하긴 그렇다만, 집칸이고 세간살이고 처분해야 할 거 아니니?"

  "아유 이까짓 걸레 같은 것, 동네 사람이며 신세진 사람들에게 나눠줘 버리시지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이튿날 종로로 동관으로 사람을 놓아 말이며 가마며 있는 대로 세를 내었다. 장장 10리에 뻗친 행렬을 지으며 유서의 고장으로 찾아가, 예전 큰사랑에 거처하며 안으로 또 첫째집, 둘째집, 셋째집으로 차례로 돌아다니며 그의 말년은 마냥 태평하기만 하였다.

 

 

    부자가 되려면 불을 질러라

  어떤 가난한 농사꾼이 가을에 형편없는 수확에서 반을 갈라 지주에게 바치고 나니 겨울을 날 길이 까마득하다. 밤새 잠을 못 자고 궁리해 낸 것이 있는 데 이러하다.

  '우선 말을 한 필 사고 물건을 해서 싣고 장돌뱅이로 나선다. 어느 장은 무엇이 싸고, 어떤 장엔 이러 이러한 물건이 지천이다. 집에 있어 봤자 땔나무장사로는 입에 풀칠하기가 고작인데, 이것을 하면 두 달 안에 밑천을 충분히 갚을 수 있지 않은가!'

  이웃의 같은 또래 친구로 형세가 넉넉한 사람이 있어서 그를 찾아갔다. 통사정을 하면 그만한 사정쯤이야 봐주려니 기대를 걸었는데, 통말상대가 되어주질 않는다. 제대로 얘기를 꺼내보지도 못하고 되돌아 왔다.

  그래도 이렇게 수지맞는 사업인데..... 단념할 길이 없어 이튿날 또 찾아갔더니, 다른 친구하고는 시시덕거리면서 "자네 어쩐 일로 왔나?" 말 한마디 없다. 얼마를 멀거니 기맥만 보고 앉았다가 술상이 나올 것 같아서 일어나 되돌아왔다.

  '제 놈이 쇠푼이나 있으면 제일인가? 이웃 간에 고추를 서로 만지며 자란사인데..... 내 오늘은 세상없어도 규정을 짓고 오리라.'

  사흘째 되던 날 또 찾아갔는데, 그날도 애당초 왔느냐는 인사 한마디도 없다. 분한 생각 같아서는 욕이라도 한바탕 퍼붓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또 뒤통수를 치고 돌아와 휑뎅 그러한 방에 게발 물어 던진 듯이 누워서 생각하니, 세상에 그렇게 분할 수가 없다잊어버리려 해도 잊혀지진 않고 분한 마음만 저점 더해져 못할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내 그 놈에 집에 불을 질러 분이나 풀고 말리라.'

  그래 밤중이 되어 불꾸러미를 해가지고 안채 뒤꼍으로 들이뜨렸는데, 이런 일이 있나? 어디서 평생 보지도 못하던 장정 세 놈이 나타나더니 어떻게 주물렀는지 어쨌는지 불은 금방 꺼지고 말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왔으니, 그만하고 단념했으면 좋으련만 분은 여전히 가라앉질 않아 이튿날도 또 찾아갔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 불꾸러미를 들이뜨렸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어젯밤 그놈들이 또 나타나 어떻게 어떻게 하더니 금방 꺼버리고 만다.

  '이상도 하다. 웬놈들일꼬? 그렇다고 단념할 나로 알았더냐?'

  사흘째 되던 날 또 가서 불꾸러미를 던졌는데, 그 자들이 또 나타나더니 삽시간에 꺼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저희끼리 하는 소리다.

  "이거 저녁마다 귀찮아서 못해 먹겠네. 우리 셋 중의 누구 하나가 그놈 집으로 가주기로 하세나."

  '이상도 하다.' 생각하면서 돌아왔는데, 어쩐지 마음이 켕겨서 아침을 먹고 나자 그 친구를 또 찾아갔다.

  "야 이거 자네 오네 그랴! 일전에도 몇 번 뭔가 내게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눈치던데 어떤 얘기야?"

  이건 싹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싹싹하게 반겨주는 것이다. 그래서 찬찬히 말을 사서 몰고 다니며 장사를 하면 이리이리하여 원금을 갚고도 겨울을 날 수 있는 숫자적 근거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아따, 이 사람아. 친구 좋다는게 뭔가? 이런 때 사폐를 봐줘야지."

  요구하는 금액을 척척 내준다. 예정했던 대로 말을 사고 짐을 마련해 오며가며 장사를 했더니, 그 겨울 안으로 한밑천을 톡톡히 잡았다. 원금을 갚고 제 자본으로 장사를 계속하는데, 그야말로 불 일어나듯 한다. 그도 그럴 밖에. 불 끄던 세 놈은 그 집을 지켜주던 업, 그 중에서도 인업인데, 그 가운데 하나가 와줬으니, 업이 들었는데 안 일어날 까닭이 있으랴!

 

 

       귀머거리 세 늙은이의 옛날이야기

    오래 살아 뭘해

  "할아버지! 장수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야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제일이지."

  "그러면 할아버진 언제부터 독신으로 지내셨어요?"

  "? 여든 다섯부터지."

  "?!"

 

  어떤 행인이 길을 가다 구기자나무에 푹 덮여서 솟는 샘을 발견하였다. 물에는 수박만한 복령이 잠겨 있는데, 상당한 값이 나갈 것 같아 마당가를 거니는 주인 영감께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저 벌들처럼 달린 게 뭐여요?"

  "그만 둬, 내 다 알아. 당신 저 복령을 어떻게 싸게 살 수 없을까 해서 하는 소리지? 이 물을 장복하면 오래 살고, 더구나 저것을 먹으면 장생불사할 것 같아하는 소리렸다. 어서 떼어 가오. 오래 사는 게 그렇게 좋소?"

하더니 곁에 있는 깨끗한 방 문짝을 열어젖히는데, 방 양쪽 벽에 늙은이 둘을 격기해 쇠사슬로 매어놓고 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요. 내 나이 올해 아흔 둘인데, 두 분께서 어찌나 자주 싸우시는지 이렇게 따로 떼어놓고 있다오."

  "?!"

  또 다른 이야기다.

  문을 열어 보여주는데, 꼭 열대여섯 되어 보이는 남녀가 옹기종기 앉아 있다가, 문 열리는 기색을 알고 일제히 손을 내밀며 제비새끼 모이 달라듯,

  "! ! 밥 좀 주어."하며 모여 들었다.

  노인은 그들을 가리키며 설명하였다.

  "여기 두 분은 내 어머니 아버지고, 다음이 할머니 할아버지, 그 다음이 증조부모, 끝으로 고조할아버지 할머니 그렇소."

  "?!"

 

  나이 구십이나 된 노인이 손녀딸을 시집보내는 후행으로 가게 되었다. "젊으셨을 때 같지 않으니 조심해서 많이 잡숫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건만, 이것저것 잡순 것이 좋질 않았던 게다. 밤중에 그만 어찌할 겨를도 없이 옷에다 설사를 했네...   그래 밖에 나아가 옷을 벗어서 뒤집어 들었더니 주인집 개가 냄새를 맡고 다가와 그것을 핥아 없애주는데, 사람이 들고 서 있는 것이 안돼 보였던지 그만 홱 뺏어 물고 도망쳐버렸다.

  하는 수 없이 웃옷만 입고 어물쩡했는데 돌아올 길이면 신부에게 가 한마디 당부를 해야 하는 법이라, 그래도 두루마기와 중치막 자락으로 앞을 여미고 들어갔다. 마루에 올라설 때 옷이 젖혀지면 탈이라고 훌쩍 뛰어오른 것까지는 좋았으나, 착륙지점이 돗자리 깔아놓은 위라 짝 미끄러지면서 나둥그러졌으니 모두가 드러나고 말았을 밖에.....  이 모습을 본 신부가 하는 소리다.

  "올해 여든 아홉이신데 몇 해 더 사시려고 우세(우스개)로 그러셨던 거야요."

 

  사람, , 개가 각각 30년씩의 수명을 받기로 되어 있었는데, 소는 남에게 부림 받는 것이 지긋지긋해서 자기 수명의 반을 반납해 바쳤다. 개 또한 살 맛이 안나서 반만 살겠다고 자원해서 도합 30세가 남아도는지라, 조물주는 그것을 사람에게 배정하였다그래서 사람의 수명은 60이 됐는데 두 짐승이 못 다한 향락을 대신 누리라고 암수 아무 때나 접해도 좋게 했다. 이 역시 특명을 받아서 사는 것이니 고마운 줄이나 알아야 한다 그런 얘기다.

 

 

    무르팍이 귀를 넘도록 까지 살아야

  어떤 동네에 늙수그레한 승려 하나가 탁발을 왔다. 흔히 말하는 동냥이다.

  또드락 또드락.

  어느 대문 앞에 와서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니,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가 깨끗하게 씻은 쌀을 많지는 않아도 그릇에 담아들고 나와 시주를 한다. 승려는 바랑에서 자주 주머니를 끌어내 그 쌀을 쏟아 붓고 그릇을 돌려주며 합장을 했다.

  "할머니? 근력 있으실 동안에 돌아가셔요."

  그 다음 집에 들렀더니 덜 굳어서 우그러져 곰팡이가 난 바가지에 마당 북더기 겉곡식을 푹 떠다가 내미는데, 역시 허옇게 센 할머니다. 다른 곡식 자루에 받아 붓고 똑같이 합장을 하며 축수했다.

  "할머니! 그저 무르팍이 귀를 넘도록 오래오래 사십시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보니 타작이 끝나 널어 말렸던 짚을 가리지어 쌓는데, 짚단 올려주는 사람은 한 칠십이 되어 보이고 위에서 받아 쌓는 이는 까만 머리를 뒤통수에서 묶은 게 꼭 여남은 살 먹은 소년 같았다.

  위에서 쌓는 걸 공글리는 사이에 늙은이가 집에 들어갔다 오더니 사다리를 들어다 걸치면서 하는 말이,

  "아버지! 그만하고 내려오셔요."

  "하는 끝에 마저 하지 뭘 그러냐?"

  "집안이 유고해서 그래요."

  "무슨 일이 있기에 그래?"

  아버지 소릴 듣는 이 소년(?)은 사다릴 딛고 내려섰다.

  "무슨 일이기에?"

  "아무개가 죽었어요."

  아버지 소리 듣던 이가 한참 물끄러미 섰더니 한마디 한다.

  "개도 죽을 나이 됐지."

  동네 사람을 붙잡고 물었더니 사정이 이러하였다. 아버지는 102세인가 그렇고, 아들은 86세인데, 70세 먹은 손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또 백 살까지야 바라겠냐만

  어떤 청년이 동네 97세 된 노인에게 세배를 가서 실수를 했다. 어른이 절을 받고 흐뭇한 기분으로,

  "나 몇이나 살겠나?"했는데, 무심코 한다는 대답이 "백은 사시겠습니다"한 것이다.

  백을 산다면 앞으로 고작 3년이다. "아차"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노인은 아주기색이 좋지 않아 눈을 감고 않았고, 청년은 무료하여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돌아오는 길에 친구를 만났는데, 모두 그 어른께 간다는 얘기다. 그래 자신이 미안했던 얘기를 하며 대답 잘해야 한다는 당부를 하였다.

  "염려 말고, 자네 아무 어른 댁에 가서 기다리게. 내 술 한잔 울거 내고 노여움도 풀어드리고 할게."

  수단 좋은 친구가 너스레를 떨면서 웃고 헤어져 일행은 노인의 사랑엘 왔다.

  "나 몇 살이나 살겠나?"

  여럿의 절을 받고 노인이 이렇게 물었을 때, 예의 청년이 큰소리로 되받았다.

  "또 백은 사시겠습니다."

  "그렇기야 바라겠냐만도..."

  자못 흐뭇해하는 기색을 놓치지 않고 말끝을 달았다.

  "방금 오는 길에 아무 어른 자제 아무겔 만났습죠. 그 사람 말이 '어른께서 몇이나 살겠느냐'고 물으시기에 '또 백은 사실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소리를 못 알아들으신 모양이라, 정초부터 어른 기분을 상하시게 해드렸다고 몸 둘 곳을 몰라 하고 있습니다."

  "그랬어? 지금 그 사람 어디 있을까?"

  "아무 어른 댁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여길 누가 가서 도로 오라고 이르게."

  그리고는 안을 향해 일렀다.

  "거 누구 좀 오너라."

  여럿은 얼굴을 서로 쳐다보며 씽긋 웃었다.

 

    입이 환출, 편안하신가?

  한 청년이 아버지를 대신해 어른의 친구 분들을 찾아뵙고 새해 인사를 드렸다. 첫번 찾아간 집에서 인사를 드리고 저녁 대접을 받았는데, 잘 때가 되어 칸막이장지를 닫고 자리를 보고 막 누웠는데, 아랫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약간 별났다노인네가 약주 기운도 있고 하여 윗간에 친구 아들이 있는 것도 잊고 자리 펴드리려고 온 할머니를 붙잡는 것이었다.

  "왜 오늘은 이렇게 주책을 떨어요?"

  "주책이라니? 예서 안 자겠으면 잠깐 여기 누워 있다가 가라니까..."

  "망측도 해라, 다 늙은이들이... 그나마 입이 환출하는 것을 가지고설랑."

  "아냐, 요새로는 임자 말대로 입이 환출 상태는 아녀, !"

  어쩌고 하는데, 할머니가 잽싸게 빠져나가서 놓쳐버렸다.

  속으로 웃으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장지를 열자 청년이 있는 것을 보고는 간밤의 일을 다 들었을 것이라 매우 난처한 표정이었다세수를 하고 아침상을 받았는데,

  "자네, 엊저녁에 잠자리가 불편치나 않았나?"

  "원 불편이라니요! 전 더운 데가 싫어서 온도도 꼭 알맞고...., 저녁에 주신약주가 모두 얼맙니까? 어른께서 자꾸 얘기는 하시지....., 아주 죽겠는 것을 참고참고 견디다....., 드러눕자마자 아주 정신 모르고 잤는걸요."

  "그래에?"

  무척 대견한 듯이 흐뭇해한 것은 자기가 주책부리는 것을 못 들었으려니 하여서다.

  아침을 마치고 한동안을 걸어서 다른 어른을 찾아뵈었는데, 이 양반이 아래윗니가 몽땅 빠져 목탁 같아서 글자 그대로 합죽이었다점심때가 되어 떡국상이 나왔는데 겸상으로 모시고 앉아 먹자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식사하시는 양을 안 보려 해도 자꾸 보여서 웃음을 참기에 젖 먹던 힘이 다든다. 아래턱은 연신 장단을 맞춰서 코를 차고....., 떡점은 입속으로 들어갔다가 도로 나오고 다시 나오고.....

  "!"

  하마터면 방귀까지 나올 정도로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가지고 노인이 역정을 냈다.

  "어 고얀지고! 늙은이 행동을 보고 버릇없이 웃다니..... 에잉."

  이런 때 답변이 또 힘드는 일이다. 젊은이는 그 자리의 미안함을 덜기 위해 다른 얘기를 꺼내 방패막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못 배웠기로서니, 어르신네 진지 잡숫는 양만 뵙고 어떻게 감히 웃겠습니까? 실은 어제 저녁 00장 어른 댁에서 잤는데, 글쎄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지 뭡니까? 그래 어르신네 잡숫는 양을 뵙자 그 일이 겹쳐 생각나니 세상에 참을 재간이 있어얍죠, 죄송합니다."

  노인은 화를 참는다기보다 아주 대견한 듯이 싱그레 웃었다.

  "그래애?"

  청년이 돌아간 뒤 영감은 휘양(남바위)을 쓰고 00장이라던 분을 찾아 나섰다. 이웃 동네요 나이도 지체도 비슷해 농을 주고받는 욕 친구인데, 평소에 입심이모자라 늘 외상 욕만 먹어오고 있는 사이다. 꼬투리를 잡았으니 보복을 해주려는 것이다.   그 집 사랑엔 말꾼 친구도 몇 있었다. 대충대충 인사를 차리고 아주 친근한 듯이 은근하게 안부삼아 하는 말이,

  "입이 환출, 편안하신가?"

  주인이 움찔하고 놀라 물끄러미 마주보더니 하는 말이,

  "아무게 아들 다녀갔네 그랴!"

 

    올핸 깨농사를 못 지어서

  예전에 방한구로서 남바위는 실용이 되는 외에 볼품으로 사치로도 썼다. 어떤 산촌에 한 영감이 사는데, 평소에 귀여워하던 젊은이가 찾아와 상의를 한다.

  "영감님, 남바위 하나 안 사실래요?"

  "사고야 싶지만 돈이 자라야지."

  "반 내고 말씀여요. 극상품으로 하나 사서 영감님이 볼일 보실 땐 영감님 쓰시고, 그러찮고 저 볼일이 있을 땐 제가 쓰고..."

  영감님이 솔깃해서 돈을 내줬더니 과연 사왔는데, 겉에 댄 비단이며 안에 받친 털이며 모두 상품이라 입이 헤 벌어졌다. 어린애모양 만져보고 쓸어보고 하다가 잤는데, 이튿날 새벽같이 청년이 찾아왔다. 볼일이 생겼다는 거다. 내줬더니 온종일 쓰고 다니다 어두워서야 갖다준다이튿날도 또 그 이튿날도 청년은 이침이면 찾아와 쓰고 나가서 저녁에나 돌아와 벗어놓는다. 영감님이 생각하니 같이 사놓고 혼자만 쓰니 억울하기도 하여 밑천을 뺄 생각으로 저녁이면 불을 켜놓고 쓰고 앉았다그 해가 가고 이듬해 겨울을 또 그러니 남바위가 헤져서 못쓰게 됐다. 그 다음해 여름을 나고 가을을 거쳐 초가을이 됐는데 청년이 또 찾아왔다.

  "남바위 하나 다시 같이 사지 않으실래요?"

  영감님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올핸 깨 농사를 못했어."

  깨나 넉넉히 했으면 등불이라도 켜놓고 앉았겠지만 '캄캄한 밤에서 무슨 맛에 쓰고 앉았겠느냐'는 뜻이 들어 있는 대답이다.

 

 

    나도 마누라가 있다

  어떤 영감님이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성취시켜 한집안에서 데리고 지냈다. 하루는 큰일을 앞두고 며느리 삼동서가 두부를 하는데, 마누라님은 손자를 업고 동네로 놀러가고 영감님 혼자 안사랑에서 기직을 맨다.

  기직을 매되 담뱃대를 무는 게 제격이요, 담뱃대는 허리를 떠서 북국에 달아 메는게 식이다. 그러면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이동하면서 매도 목을 찔리거나 할 염려가 없어 십상이다그러다가 연기가 안 나면 물부리를 뱉어버리고, 그러면 골통을 아래로 하고 건드렁거리며 서게 마련이다.

  영감님이 그렇게 하고 앉아 기직을 매고 있는데 콩을 갈고 첫국을 빼서 이제 염을 친다. 엉겨서 보자기를 여미고 널을 깔고 맷돌짝만 얹으면 두부가 될 판이다.   한참만에 큰아들이 나무를 남산만큼이나 해서 지고 대문을 들어선다. 안 부엌에 들여다 부리고 멜빵을 한쪽 어깨에 걸친 채 수건을 벗어 땀을 씻으며 나오는데, 큰며느리가 바가지에 순두부를 그득하게 뜨더니 참기름, 고춧가루 쳐서 갖다준다그렇다고 시아비된 체면에 "나도 좀 다오"할 수도 없어 그냥 기직만 매고 있으려니, 바깥 마당에서 ""소리가 나며 둘째 아들 역시 땀을 씻으며 들어온다.

토막나무를 해온 모양이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가 얼른 대접에 순두부를 떠서 제 남편에게 갖다준다.

  '조런 깜직한 게 있나? 큰 며느리는 그래도 아이를 두엇씩이나 두었으니 그렇다지만, 요건 아직 첫애 가진 게 그래도 제 남편이라고...'  영감은 쓴웃음을 지으며 여전히 기직만 맨다. 그러는데 셋째 아들이 들어선다.

상투치레, 코치레, 당나귀 무엇 치레라더니, 아직 코흘리개 나이에 주먹만한 상투를 틀고 끼고 온 책을 마루에다 내려 놓는다요것 좀 봐라. 셋째 며느리가 대접을 갖다가 순두부를 뜬다. 제가 감히 그럴 생각을 하랴마는 손위 동서들 본을 뜬 것이겠지. 양념을 쳐서 갖다주니까 좋아라고 받아먹는다.

  '조런 앙증한 것들 봐라.'

  그러더니 보자기를 여미고 나무때기를 올려놓는다.

  '순두부 맛보긴 다 틀렸구나.'

  영감님은 담배를 담아서 잿불을 쑤셨다. 뻑뻑 두어 모금이나 빨려니까 칭얼칭얼하며 어린애 보채는 소리가 들렸다.

  ", 애기 젖 물려라. 배고픈가보다."

  마누라님이 손자를 업고 와 큰며느리에게 내맡긴다. 그리곤 보자기 여미는 것을 보자,

  "너희들 시아버지께 순두부 좀 떠다 드렸니? 망할 것들 같으니! 순두불 좋아하시길 또 이만저만 좋아하신다고!"

  보를 열라고 하더니 한 대접 듬뿍 떠담아 양념을 쳐서 쟁반에 받쳐들고 들어온다.

  영감님은 그만 감개무량해서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나도 마누라가 있다."

 

    의좋은 부부도 다툴 때 있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 어디 저녁 얻어먹고 잘 만한 데는 없을까 살피는데, 멀지 않은 곳에 제법 깨끗한 집이 한 채 있어서 찾아갔다. 삽짝 밖에 이르니 안에서 주인 부부의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것도 서로 죽으라고 하는 것이다. 주인을 찾기도 거북하고 달리 갈 만한 곳도 없어 망설이는데, 방문이 열리며 여태껏 싸우던 늙은 부부가 나와 할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고 영감은 뜰로 내려선다. 그러다 손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누군데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하루저녁 신세를 지고 갈까 하고 들렀는데, 양주분이 다투시는 것 같아서 여쭙지 못하고 이렇게..."

  "하하하! 괜찮으니 들어오시오."

  방에 들어앉으니 부인을 불러 손님이 있는 것을 알리고 저녁을 겸상차려 내오도록 이르는데, 목소리가 언제 그렇게 싸웠던가 싶다.   상을 물린 뒤 늙은이들인데 어떠냐면서 노부인도 호롱불 가에 같이 앉아 얘기를 했다.

  "노형은 아까 우리 두 양주 싸우는 것을 듣고 서먹했다하니 얘기요만, 우리 둘 다 이렇게 나이 먹었지 않소? 그래 나는 나 아직 근력 있을 동안에 임자가 죽어야내 손으로 꽁꽁 묻어줄 거 아니냐면서 어서 죽으라 한 것이고, 마누라는 또 마누라대로 영감이 먼저 죽어야 평소에 잡아둔 명당이라는 그 자리에 아들들이 똑똑히 묻는 것을 제 눈으로 보고, 쌍 무덤을 지어두었다가 자신도 거기 나란히 묻히겠노라면서 날더러 어서 죽으라고 그런 것이라. 다른 어떤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은 아니니 아예 불편하게 여기질랑 마시오."

  나그네는 해로하며 서로 먼저 죽기를 바라는 의좋은(?) 이 댁에서 하루저녁을 나고, 뒤돌아보며 앞길을 떠났다.

 

 

    아버지가 둘이래요

  어떤 동네에 사는 노인에게 평소에는 별로 드나들지도 않던 젊은이들이 우르르 세배를 왔다. 그래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근자에 무슨 재미있는 일이 없더냐고 노인이 물었다.

  매일 만나는 동네 친구끼리 무슨 별난 일이 있을까마는, 서로 어쩌다 망발꼬리를 붙들어 가지고는 망발술 얻어마시는 것이 고작이라고 대답했더니, 어떤 망발을 누가 했더냐고 묻는다.

  청년들은 얘기는 못하나 서로 낄낄거리고 웃으며 옆구리를 찌르고 야단들인데,한 친구가 슬쩍 말꼬리를 돌린다.

  "망발 않는 친구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서로 돌려가며 술을 받았다는 얘기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영 요리 빼끗 조리 빼끗 매끄럽게 망발에 걸리지 않는 친구가 하나 있어서, 그 사람 술 한번 얻어먹기가 모두들 소원이랍니다."

  "거 누군데?"

  "이진사 영포(손자)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참 그 사람만 안 왔네그랴."

  "같이 오다가 저희 작은 댁에 들러온댔으니까 곧 올 겁니다."

  "그래? 내 술 한잔 얻어줄 터이니 자네들 뺏어먹게나."

  그러자 밖에서 인기척이 있기에 친구가 문을 열어보더니,

  "이제 옵니다."

  이 청년이 들어와 세배하고 나자,

  ", 모시고 과세 잘했나? 그런데 자네 모두 몇 식구지?"

  "모두 여섯 식구올시다."

  "그래? 어떻게 여섯 식구나 되노? 가만 있자, 자네 자당 하나.

  손을 꼽아 세며 응답을 기다린다.

  "!"

  "자네 어르신네 둘!"

  "!"

  "자네 두양주. 그리고 애들이 둘이니 참 그렇게 되네 그랴!"

  "!"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다가 일어섰는데 사랑 일각문을 나서자마자 친구 둘이양쪽에서 겨드랑이를 꼈다.

  "너 아까 '너 아버지 둘' 그러니까 ''그랬지? 하난 너희 집에 있구, 또 하나는 누구냐? 임마 잔말 말고 한잔 사라. 동네 안에 광고치기 전에."

  아무리 반드러워도 노인네가 꾸민 망발에는 아니 걸려들 재간이 없었던 모양이다.

 

 

  어떤 가정에 젊은 손자 내외가 홀로 된 할아버지를 모시고 지내는데, 방에 혼자계실 때 손주 며느리가 가서,

  "할아버지 진지 잡수셔요."

하면 언제나,  "."하고 짤막하게 대답할 뿐이었다젊은 손자내외는 저희들끼리 첫정의 재미가 깨가 쏟아질수록 혼자 써늘한 방에 외롭게 지내시는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상의한 끝에 마나님을 하나 얻어 드렸다그 뒤부턴,

  "할아버지 진지 잡수셔요."

하면 으레,  "오오냐."하고 길게 대답하시더란다.

 

    귀머거리 세 늙은이의 옛날이야기

  어떤 동네에 늙은 영감들이 있는데 귀들이 워낙 절벽으로 먹어서 당나귀가 영각하는 걸 보면,

  "저 당나귀가 왜 자꾸 하품을 하노."

할 정도라, 다른 친구 틈에 어울리지 못하고 노상 셋이서만 모여 앉아 논다.   한번은 이웃 마을의 젊은이가 세배를 왔는데 하는 말이,

  "제 어른께서 의당 오셔야겠지만 근력이 부쳐서 못 오시고 저더러 어른들을 두루 찾아뵙고 오라는 분부셨습니다."

  모두들 듣지는 못하나 눈치껏,

  ", 그러시겠지. 날이나 확 풀리거든 한번 다녀가시라고 여쭙게."

  어쩌고 적당히들 인사를 차린다. 한참 앉았다가 가겠다고 일어서니까,

  "거 모처럼 왔는데 떡국은 어떻게 했나? 그럼 그냥 보내기도 안됐으니 내 얘기나 한마디 듣고 가게나."

하고 앉게 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천 앞바다에 월미도라고 있느니. 바깥 바다쪽은 모두 꺼먼 너설바위일세 그랴. 거기 물까마귀들이 와 앉을꺼 아닌가? 물이 철썩철썩 밀려 들어올 때면 오징어란 놈이 그 긴 발로 까마귀 발목을 잡아 쥐어. 그래, 물이 배에 찰 지경이 돼서 날아가려면 그 놈이 물로 끌어들여서 먹어버린단 말야. 그래, 까마귀 오자 도적적자 '오적'이라고 하는 건데, 시체 사람들은 오징어라고들 하느니."

늙은이가 듣도 못하여 얘기하노라고 애쓴 생각을 해서 얼굴 가득히 감탄한 기색을 해 보이고 이제 일어나려는데,

  "이 사람, 내 얘기도 한 마디 듣고 가게."

  다음 노인이 말했다. 그러마고 주저앉으니,

  "인천 앞바다에 월미도라고 바위 섬이 하나 있으니....."

  똑같은 소리를 한마디도 안 빼고 되풀이한다. 하도 우스워 자꾸 웃으니까 자기얘기 솜씨가 월등해서 그러는 것으로 알고 신이야 넋이야 하고 계속했다재창이 끝났다. 이제 가려고 일어서니까,

  "이 사람아, 내 얘긴 안 듣고 가려나? 인천은 예전에 제물포라고 했것다. 그 인천 앞바다에 월미도라고 하는 섬이 하나 있느니..."

  또 똑같은 소리다. 하도 어이가 없어 자꾸 웃으니까, 점점 신이 나서 살을 붙여가며 얘기를 길게 한다. 그래도 줄거리는 똑같다. 웃다 웃다 배를 움켜지고 웃으니까 얘기를 다 끝낸 그 노인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어때? 내 얘기 솜씨가 최고지?"

 

    복을 톡톡 털어내는 짓

  어떤 사람이 남의 집 사랑에 하루저녁 쉬어 갑시다하고 과객을 들었는데, 주인이 겉보기에 멀쩡하니 잘생겼는데 지지리 못사는 것이다.

  '이상하다 저만치 생긴 이가 왜 이렇게 가난하게 지내노?' 하였는데, 밤에 같이 자리에 들어서보니 자면서 발을 가지고 발발 떨어 지랄을 하는 것이라,

  "옳지! 요놈의 지랄 때문에 복을 톡톡 털어버려서 그렇구나."

하고는 방 귀퉁이에 놓인 까뀌를 들어서 복숭아뼈 께를 내리찍고는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몇 해 만에 그 집을 다시 찾았더니 집 안팎으로 기름이 번지르르하게 잘 지내고 있어서 다시 하루저녁 쉬어가기를 청했다  주인이 다리를 절고 다니는 꼴을 보고 짐짓 어쩌다 그렇게 되셨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몇 해 전 과객을 한 녀석 재워주었더니 밤중에 남의 발목을 까뀌로 찍어놓고는 달아나서... 고생한 끝에 낫기는 하였소만 이렇게..."

  "그러고 나서부터 살림이 늘기 시작하셨죠?"

  "?!"

 

 

  여러 곳 사랑방에서 수도 없이 들은 얘기다. 얘기책을 보고 골패를 즐기고 하는 방 윗목에서 웅숭거리고 자는 팔자 사나운 늙은이들을 보면 영락없이 손발을 떤다. 못살아서 그러는 것인지, 그래서 궁상을 떠는 것인지?

  어떤 지관이 하 자기에게 고맙게 해준 이가 있어서 있는 재주를 다해 그 친산을 잡아주었더니, 발복은 커녕 달도 가시기 전에 생떼같은 자식이 죽는 변고를 당하지 않는가? 혹 잘못 봐서 그런 거나 아닌가 해서 다시 현지에 가 살펴보아도 단 한가지 수법에 틀린 데라곤 없다.

  "제에기! 이놈의 풍수설인지 뭔지 믿을게 못된다."

  쇠를 짓찧어 버리려고 바위 위에 놓고 돌맹이를 집어 둘러메는데, 차디찬 손이 내려와 꽉 잡으면서 말린다.

  "그대 잘못이 아니야, 땅에 묻힌 자가 전에 살인을 한 적이 있어. 자리가 좋기로니 그런 자의 뒤끝이 잘된대서야 쓰나?"

  귀신의 말이다그러기에 우리나라 거지들처럼 유식한 거지도 세상에 다시 없다

  "적선하십시오."착한 일을 거듭하라. 그리하여 여경으로 복을 받으라. 사뭇 설교조다.

 

 

  한 동네 쩡쩡 울리고 사는 가문이 있었는데, 어쩐 일로 시어머니도 또 사동서나 되는 며느리들도 가을 떡을 할 적이면 시루떡을 앉히지 못한다. 시루 안에 쌀가루나 팥, 콩을 켜켜이 펴는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웃에 가난하게 사는 친척이 있었는데, 그 집의 체수마저 훤칠하게 큰 두 며느리는 생김새처럼 일 솜씨도 시원시원하게 능률이 난다. 그래 늘 그들 동서 중에서 불러다 고사떡을 앉히고 했는데, 몇 십년 지나는 사이 그 집 재산이 그리로 간 것은 아니나 양쪽집의 형세는 뒤바뀌고 말았다.

  한번은 모처럼 고향이라고 갔는데 여러 사람을 만났건만 자기 집에 가 점심 한끼 먹자는 이가 없어서 거의 굶을 뻔한 적이 있었다. 나나 우리 집안이 과히 인심을 잃지 않았는데 전란을 치렀다지만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는가고 한탄했더니, 끝까지 고향에 남았다 떠나온 형이 핀잔을 준다.

  ", 시골 사정 모르는 소리 그만 좀 해라. 120호 동네 안에 불시에 양복쟁이 손님 데리고 가 대접할 만한 집이 몇 집이나 되는 줄 아니? 그중에도 아무개 아무개네 집은 장맛이 고려서 동네에서 품앗이를 않으려는 집들이야."

  마지막 꼽힌 몇 집은 그야말로 째지게 못사는 집안들이다. 장맛은 하늘이 안다고 하더니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남의 사람이 잘 들어와야 집안이 느는 법이라고 옛 어른들은 노상 말씀하셨다.

 

 

    토정 선생이 즐겨먹는 음식

  토정 이지함이 포천 현감이 되어 베옷과 짚신 차림으로 부임했는데, 차려내온 식사를 한참 들여다보며 수저도 들지 않는다.

  "먹을 게 없군."

  이 소리에 하인들이 뜰에 엎드렸다.

  "고을에서 나는 게 없어 그랬사오니, 다시 차려 올리겠습니다."

  얼마 후에 힘을 다해 한껏 풍성하게 드렸더니 이번에는 또,  "먹을 게 없군!"한다.

  하는 수 없이 모두 뜰에 내려 대죄했더니 그제서야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모두 음식을 존절히 하지 못해 벌을 받아 그런것이다. 나는 소반에 차리는 것도 싫어한다."

  오곡을 섞은 밥 한 그릇하고 나물국 한 그릇만을 갓집에 올려놓아 내오게 하였다한다.

 

 

    그 봉우리가 워낙 뾰족하더라니

  서울에 어느 대감이 살았다. 무슨 일이든 크게 걱정도 하지 않고, 남의 말을 반대하지도 않는 너그러운 대감이었다. 모든 일은 다 까닭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니 크게 마음 쓸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대감을 둥글대감이라고 불렀다하루는 하인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와 다급한 소리로 말하였다.

  "대감님, 저 종로에 있는 인경을 지난밤에 어떤 놈이 훔쳐가 버렸답니다."

  "그래? 워낙 큰길가에다 두었으니 도둑인들 안 맞을 수가 없겠지."

  이튿날 하인이 다시 와서 말하였다.

  "어제 인경이 없어졌다던 건 거짓말이고 여전히 잘 매달려 있다고 그럽니다."

  "그럴 테지, 워낙 무거운 것인데 도둑인들 무슨 수로 가져갈라고."

  하인은 대감의 태도가 못마땅하여 바람이 몹시 불고 난 다음 날 또 말하였다.

  "대감님, 어젯밤 바람에 관악산이 무너졌답니다."

  "그래? 그 봉우리가 워낙 뾰족하더라니."

  이번에는 한 시간쯤 있다가 다시 가서 말하였다.

  "대감님, 관악산은 여전히 그냥 서 있다고 그럽니다."

  ", 그럴 테지. 워낙 뿌리가 깊이 박혔으니까 바람에는 안 넘어갈거야."

  이런 소문을 듣고 시골 선비 하나가 달려와 마침 여러 달 동안 가물었기에 그것을 핑계삼아 말하였다.

  "대감, 이번 가뭄에 낙동강까지 말랐다지 않습니까?"

  ", 워낙 가물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아무리 둥글대감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한 선비는 그 자리에서 다시 말하였다.

  "대감, 사실 낙동강이 말랐다는 건 거짓말이고 여전히 청청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럴 테지. 워낙 근원이 기니까. 그게 700리 물줄기일세."

  이쯤 되면 사람이 좋은 것인지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것이다.

 

      울 엄마 청춘으로 과부노릇 힘들어라

    뱃속에 글이 가득해

  어떤 청년이 답청 놀이를 하는데, 살이 디룩 디룩하게 찐 승려 하나가 배를 쑥 내밀고 좌중엘 들어선다. 그 모양을 보고 괄괄한 선비가 꾸짖었다.

  "이놈, 중놈이 양반들 노시는데 어디 그따위 자세를 해가지고 들어온단 말이냐?"

  ", 뱃속에 글이 가득해 그렇습니다."

  "그럼 짓겠느냐?"

  "우선 그 술 한잔 주십쇼. , 그럼 운자만 부르십시오."

  "모래 사."

  "무지막지 중이사."

  "집 가."

  "양반상놈 알릿가."

  " 많을 다"

  "일모서산에 귀로원하니 소승 바빠 갑니다."

  칠언절구에서는 1, 2, 4구 끝에 운을 달아 짓는 것인데 딱 들어 맞았다.

 

    미인을 보면 곧 붙더라

  어느 무변이 여러 어른들이 모인 잔치 자리에 참석했다. 본시 호협한 성품에 술잔이나 들어가고 보니까 여자들을 못살게 굴고 좀 장난이 지나쳤던 모양이다대감 하나가 사뭇 호령조로 나무란다.

  "아무리 못 배운 사람이기로, 그래 손 윗분들을 모셔놓고 그럴 법이 있을꼬? !"

  마신 술이 번쩍 깨고, 그러고 보니 겸연쩍기 한량없다. 그래 앉음새를 고치며 너스래를 떤다.

  "소인이 투필한 사람이라 배운 데 없이 그랬습니다. 붓대를 던진 사람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일입니다만, 문방사우를 두고 글 한수를 짓겠으니 글이 되었거들랑 그저 용서해주십시오."

  모두들 웃으며 좋다 하니, 한편 글을 부르며 한편 새기며 한다.

  술을 좋아하매 만나면 마땅히 먹더라

  미인을 보면 곧 붙더라

  평생에 이 일을 벼르더니

  오늘 둘 다 얻으니 좋의

  "그놈 고얀 놈이로다. 뒷일은 내 감당할게, 네 소원대로 그년 차가지고 가거라."

 

    오입쟁이엔 서춘보가 제일이라지만

  옛날 서울에 일등가는 건달이 있었다. 보통 이르는 백수건달이 아니라 오입쟁이니 한량이니 하는 것을 겹친 그런 건달 말이다오입쟁이엔 서춘보가 제일 유명하다지만, 이도 그 못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물 잘 나고, 언변 좋고, 식자가 있어 글도 잘하고, 그야말로 신언서판에 빠질 것이 없어 팔도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당시 충청도 충주 감영에 수파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이게 황진이 못지않게 도도하고 가무는 물론 시서음률에 능통하여 팔도 오입쟁이들 선망의 대상이 돼 있었다그러자 수단좋은 사람이라, 어떻게 어떻게 하여서 청풍 현감 자리를 하나 얻어 마침네 도임하게 되었다본시 감사는 도내의 각 읍을 순행하게 마련이지만, 충주가 마침 도중이라 감사도 만나 인사할 겸 충주 감영엘 들르게 되었다삼문 밖에서 보행으로 선화당을 향해 천천히 걸어 들어가니 천상선관이라고도 이를 만하다동헌 누마루에 한 계집이 비스듬히 기대어 앉았는데, 훤하게 먼 광이 나는 것이 드물게 보는 미인인 수가 필연코 수파인 모양이다.

  '저년이 일어나 뜰에 내려 맞이할 생각도 않고 그냥 그 자세로 멀거니 바라만 보다니, 저런 방자한 년이 있나?'

  들어가 감사를 대면해 보니 본시 구면이라, 상하관으로서 보다는 친구간의 적조했던 인사를 교환했다. 수인사가 끝나자,

  "저 밖의 난간에 앉아 있는 계집이 누구오니까?"

  "허허, 영감은 눈이 높으시구려! 벌써 알아보셨군! 걔가 수파 아니오! 그런데 도임 첫발짝에 그런 것부터 눈여겨 보시구려, 허허허."

  "아니, 그런 게 아니오라 잠깐 좌기를 좀 빌렸으면 해서..."

  "좌기를? 걔가 뭐 잘못한 일이 있었던가요? , 잘못했으면 다스리셔야지."

  ", 이년 듣거라. 천한 계집이 오만하게시리 관장을 몰라보고..... 네 죄를 네가 알렷다?"

  계집은 고개를 반짝 들고 살래살래 흔들어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고루더니,

  "하하하하"

  간드러지게 웃는다.

  ",,조런 발칙한 년이 있나?"

  계집은 입안의 말로 중얼거린다.

  "헛소문이었고나!"

  미처 못 들은 청풍 현감은 더욱 언성을 높여 물었다.

  "너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헛소문이었고나, 그랬습니다."

  "무엇이 헛소문이었다는 말인고?"

  "제가 듣기에, 안전께서는 신언서판에 꿀릴 데가 없는 분이라고 하옵더니 이렇게 무식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차라리 안 뵙고 지내니 만 못하였나 보옵니다."

  "그래,내가 뭐가 무식하단 말이냐?"

  "<고문진보> 한 권 못 보셨으면 무식하지 더 뭘 묻겠습니까?"

  "네가 날 언제 봤다고 <고문진보> 읽고 안 읽고를 알며, <고문진보> 의 어느 글에 막히더란 말이냐?"

  "<적벽부> 하나도 읽지 못하셨으니 그게 딱해서 그럽니다."

  "그래, 내가 <적벽부>를 못 읽어? 세로로도 외우고 거꾸로도 외우는 나다!"

  "외는 게 능사가 아닙니다. 참뜻을 이해 못하시니까, 그게 안타까워 그러는 겁니다. <적벽부> 첫머리에 뭐라고 했습니까? 청풍은 서래하고 수파불흥이라. 안전께서는 청풍 고을 원이시니 청풍이시기 적실하고, 저는 수파가 아니옵니까?"

  '청풍 원님은 천천히 오시고, 수파는 일어나지 아니하더라.....'

  이런 오묘한 속을.....

  "오냐, 오냐, 내 이제사 알겠다."

  청풍은 화다닥 쫓아 내려가 수파를 끌어 일으켰다.   소문만 듣고 그리던 둘은, 나비와 꽃이 만난 듯 오랜 회포를 마음껏 풀 수 있었다.

 

 

    이가 문 덕분에 생긴 아들이라서

  이건 실화라고도 하는데,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세도 대감댁엘 드나들면서 기회를 보아 긴한 얘기를 좀 하려고 기회를 보는데, 같은 문객 중의 이문덕이라는 사람이 눈치 코치 없이 질펀히 앉아있어서 기회를 못 잡고 있었다다른 어떤 사람이 낌새를 채고 먼저 손을 뻗치든지 하면 낭패라, 날마다 애가 달았다하루 아침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대감댁 사랑을 찾았다. 역시 이문덕이가 앉아 있다시치미를 딱 떼고 한가로운 얘기로 화제의 꼬투리를 꺼냈다.

  "오늘은 시생이 옛날 이야기를 한마디 여쭙겠습니다."

  "호오! 자네가? 그거 좋지."

  노대감은 좋아라고 재촉한다.

  "옛날 어떤 이씨 성 가진 양반 댁에 시집온 부인이 유식하더랍니다. 하루는 남편이 저녁에 자러 들어갔더니 바느질거리를 밀어놓으며 그날 글 지은 이야기를 합니다그려. 가위를 두고 지은 것인데,

  두 입술은 정답게 합쳐있고일이 있을 때면 두 다리를 벌린다.

 

  영물로야 좀 잘 되었습니까? 그런데 사랑에서는 달리 해석을 해왔사와요.

  규중에 있는 부녀로서 그런 음탕한 글을 지어가지고, 더구나 가장에게 보이며 희롱하다니, 에이 망측한 일이로고!   그만 담뱃대를 들고 사랑으로 나와버렸습니다. 하기야 어떻게 보면 음탕한 시로도 해석이 됩지요만.

  그 뒤로는 사랑에서 기거하며 안에는 통 발그림자를 않습니다. 그냥 소박이어요. 몇 해를 그러고 보니 자연 아이 터울도 멀어지고, 안에서는 또 영감이 들어오려니 생각도 않습니다.

  하루는 저녁 뒤로 몸이 가려워 촛불을 돋우고 앉아 이를 잡고 있는데, 갑자기 영감이 들어왔습니다. 아마 땅문서나 안방 다락에 둔 귀중품을 꺼내러온 거겠지요질겁을 해서 벗어놓은 치마로 앞을 가렸으나, 어떻게 눈에 안 띄었겠습니까? 여러 해 공방을 지키기는 피차 일반이라, 허연 속살을 보자 영감은 물건 꺼낼 생각은 나중이고 아낙네한테 덤빕니다다시 정을 이어 사이좋게 지내게 됐는데, 이내 태기가 있어 아들을 또낳 았습니다.

  "빠르기도 하이"

  ", 헤헤헤   .3일 만에 아기 상면하러 들어갔더니 아낙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번 애기 이름은 제가 짓겠어요. 그날 이가 물지 않아 가렵지 않았으면, 제가 어떻게 옷끈을 끌렀겠어요? 이가 문 것이 인연이 되어 다시 이렇게 아들까지 낳고, 그래 이가 문 덕분에 생겼다 해서 성자는 자연 껴 부를 거니까 문덕이라고 지었으면 해요."

  "이문덕이라? 글월 문 큰 덕, 그냥 부를 만하군!"

  "에잉!"

  정작 옆에 앉았던 이문덕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아하하하."

  대감은 사랑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이문덕이라! 으하하하."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려,

  "그런대 대감께 긴하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

  "무슨 얘긴데? ! ! 알았어, 알았어. 그래서 자네 이문덕일 쫓았네 그랴!"

 

    울 엄마 청춘으로 과부노릇 힘들어라

  어떤 청년이 장가를 들러갔다가, 어쩐 일인지 첫날밤에 꼴깍 죽어버렸다. 잔치음식은 장사 음식이 되고 기꺼워야 할 신행길은 울음의 장사행렬이 되었다. 신세 가련하게 된 신부가 삿갓가마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자기도 모르게 자탄하는 시 한 수를 지었다.

  죽은 신랑에 젊은 신부니

  앞에는 명정이오 뒤에는 삿갓가마.

  저 흰 갈매기에게 묻노니

  앞의 사람은 누구고, 뒤의 사람은 긔 뉘런고?

  부질없는 생각이 들어 그 만장 쓴 종이를 강물에 던져버렸다. 살아 떠났다가 죽어 돌아온 신랑 행차를 맞아 안팎이 난가가 되고, 색시는 경황없이 신랑 시신 곁을 지키고 앉았는데, 홀연 꿈틀꿈틀 시체가 움직인다.

  질겁을 하여 덮었던 이불을 젖히니,

  "후유"

하고 한숨을 몰아쉬더니 신랑이 일어나 앉으며 말한다.

  "염라대왕이 만장 쓴 종이를 보이며 대단한 문장이다 감탄하고, 수명록의 십구라 쓴 위에다 구자를 써넣으면서 등을 벌컥 떠다밀어서 깼소."

 

 

  어떤 사람이 살인 죄목을 쓰고 옥에 갇혔는데, 그의 어린 아들이 원님에게 탄원조로 글을 지어 올렸다.

  어렵고 어려워라 살인 만나 어려워라.

  칠세 어린이는 아비 없이 어려웁고

  어렵고 어려운 중 또 더한 어려움은

  울 엄마 청춘으로 과부노릇 힘들어라.

  원이 보고 감탄해 조정에까지 올려서 사면을 받게 했다는 얘기다.

 

    잡놈끼린 서로 통해

  어떤 집에서 혼인을 정했는데, 상대방이 어찌나 유식한 가문인지 매사에 조심이 돼서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사주를 받고 연길을 보내야겠는데, 이쪽엔 그것조차 옳게 쓸 이가 없으니 층하가 나도 너무 난다.

  팔난봉으로 돌아다니다 겨울을 나러 들어온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손수 찍찍 써서 사람을 시켜 보냈다. 속으론 그랬것다.

  '학식있는 가문은 별거여? 본때를 보여줘야지.'

  상대방에서 택일을 받아놓고, 한다 하는 학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건만 택일을 풀 도리가 없다. 그 내용은 종이 한복판에 불알랑자를 하나썼을 뿐이다문중 모임에도 못 끼고 장돌뱅이로 돌아다니는 일가가 마침 사랑엘 들렀다가 그 소릴 들었다.

  "어디 봅시다. 에잉, 17일이로군! 복판에 썼으니 한낮 오시고, 납폐야 뭐 당일선행이지."

  "자네, 그건 어떻게 아나?"

  "불알이라는 건 노상 습에 따라다니며 칠만하지 않우? 그만 이치도 모르면서 뭘유식한 체하슈?"

  지정한 날 길차려 떠나야겠는데 아무도 상객으로 가려 들질 않는다. 그래 유공자(?)로 장돌뱅이가 따라갔는데 당도해보니 차일치고 둔석 깔고 준비가 다 돼있다예를 치르고 난 뒤 사돈끼리 대좌해 한잔 하는 자리에서 얘기가 오갔다.

  "택일은 누가 썼소?"

  "누가 쓰긴? 내가 썼지."

  "풀어 읽긴 누가 했소?"

  "그깐 놈들 책 버러지가 그런 걸 다 알아? 내나 하니까 풀었지."

  "아암! , 그런 의미에서 한잔 드시지요."

 

    어쩐지 밤 출입이 잦더라니

  우리나라 기후는 늦은 봄이면 으레 가문다. 그럴라치면 못자리를 말리지 않으려 밤을 새워 물을 받고, 누가 혹시 터갈까봐 물꼬를 지키고, 정말 목숨은 걸고 매달린다. 그러다가 한동네 친구끼리 곧잘 치고 받는 '물싸움'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한 젊은이가 낮에 온종일 들일을 하고, 밤 이슥토록 물을 지키다가 하도 출출해서 집엘 돌아왔다. 물을 데워 찬밥이라도 한술 말아 먹고 다시 들에 나가려는 것이다.

  불도 안 켜고 상 차려 오기만 기다리는데, 어느 놈이 담벼락을 뚫지 않는가?

구멍을 내 넓히고 하더니 '들어갈 만한가' 대가리를 디밀어 본다. 바로 거기 사람이 앉았는 것도 모르고... 젊은이는 손에 집히는 대로 목침을 움켜쥐고 있다가 두 번째 들이미는 놈의 골통을 한 대 꽝 내리쳤다. 놀라 도망치려 하였더니 끽소리도 없다. 불을 켜고 보니 제 친구인데 평소 손버릇이 좋지 않다고 온 동네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놈이다.   그렇기로 사람을 죽였대서야 곤란하다. 마침 동네 안에 수단 좋은 노인이 한 분 있는데,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척척 해결해내는 그런 분이다.

  "그래 아무개를 죽였어? 죽을 짓을 했다지만 왜 죽이기까지 했노? 그렇지만 기왕 저질러 놓은 일이니 그냥 둘 순 없지."

  자다가 말고 일어나 젊은이의 문의를 받은 노인은 말을 잇는다.

  "거 죽은 사람의 논이 삼봉이네 논 바로 밑의 논이렷다."

  삼봉이라면 성미 급하고 우악스럽기로 조명이 난 청년이다.

  "지금 삼봉이도 참 먹으러 집에 가 있을 걸세. 송장을 업고 가 쪼그리고 앉아 조는 것처럼 오그러뜨려 삿갓을 씌워놓고, 삼봉이네 논둑을 툭 터서 물이 다 내려가게 해논 뒤 자넨 집에 가 자. 그러면 돼."

  삼봉이라는 청년이 밤참을 먹는 둥 마는 둥 논엘 다시 나와 보니 물이 바짝 말랐는데, 요자식 논두렁을 터놓고선 그동안을 못 참고 잠이들었지 않나?

  "이 자식 남의 물을 다 터가고....., 이 삼봉일 무얼로 본 거야?"

  작대기를 들어 한 대 내리쳤더니, 얘걔걔, 이놈이 한 대에 즉사해버리지 않나? 그만 허둥지둥 영감님을 찾아갔것다.

 "거 누군데 밤중에 사람을 깨우고그래?"

  영감은 한동안이나 꾸물대다가 삼봉이를 만났다.

  "에이! 자넨 그 성미 때문에 탈이야. 그거 왜 죽이기까지 했노? 그렇지만 어떡하나? 해결을 지어야지. 죽은 갸가 밤이슬을 맞는 데 이골이 나서 여편네도 한통이야. 그놈 송장 등에다 한 발씩 되는 장목 2개를 마치 칠성판처럼 대고 거적으로 둘둘 말아서, 멜빵 걸머지고 그놈내외 자는 방 밖에 가 문을 똑똑똑 두드리게. 문을 열거든 아무 소리 말고 짐을 들이밀어. 그러면 계집년이 받을거야. 멜빵까지 벗어서 다들여 보내주곤 목소리를 죽여서 ''그래. 더 가져올 게 있다는 소리야. 그리고 자넨 집으로 돌아가 자. 그러면 되는 거야."

  이튿날 새벽 도둑놈의 집 방에서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밤새 남편이 누구한테 맞아죽어서 송장만 어느 놈이 갖다놓고 갔다는 것이다. ''소리를 곧이듣고 기다리고 앉았다 날이 밝으니까 뜯어본 것이다.

  "쯧쯧. 거 밤출입을 자주 한다더니 결국은 그 꼴이 됐네그랴. 그렇기로 어떻게 하나? 장사나 지내고 나선 혼잣손엔 벅차겠지만 어린것들 데리고 살아야지. ? 부비 쓸 게 없다고? 그럴테지. 그 아무 댁하고 아무개네 하고 가서 비용 좀 보태달라면, 그 댁 인심들이 후하니까 넉넉히들 보테줄 걸세. 그것 가지면 장사는 지내고 남을 거야."

  계집은 울며불며 하수인들 집을 차례로 찾아 전곡을 얻어내 장사를 성대히(?) 치르고, 동네 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게 도로 조용해졌다.

 

 

    감쪽 같은 뒤처리

  한 작자가 보니 여편네가 행실이 좋질 못하다. 등성이 너머 저의 친구를 종종 불러들이는 것을 눈치채고 하루는 한 꾀를 내었다. 외방장사(밖으로 나다니며 하는장사)를 나간다고 일러놓고는 한밤중쯤에 되돌아왔다.

  예의 그 짓을 하는 현장을 덮쳐서 놈팽이의 목을 졸라 죽여버렸다. 계집마저 요절을 내려드니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살려만 달란다.

  "이년아! 이거 이고 날 따라와."

  계집은 지은 죄가 있는지라 끽소리 못하고 간부에게 옷을 입혀서 이고 나왔다마침 등성이 너머 외따로 사는 부잣집이 하나 있는데 이놈이 구두쇠라, 제삿날저녁이면 밥 나눠먹는 게 아까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몰래 지낸다. 마침 그날 저녁이 아비의 제삿날인 것을 미리 알고 있는 남편은 시체를 내려 작대기로 버텨서 마치 산사람모양 대문 앞에다 뻣뻣이 세워놓았다그리곤 목소리를 바꾸어서 갖은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이 천하의 개돼지만도 못한 놈아! 제삿날 문을 걸어놓으면, 네 어미, 아비 영혼은 어디로 들어가 제산지 ×인지 얻어 처먹는다든? 아깝거든 제사를 지내지말든지..... 지내기는 하면서 아비는 못오게 해! 전 구두쇠, 생노랭이 같은개자식..."

  쉴 새 없이 욕을 해붙이니까 주인이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질러 하인을 부른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대문을 열고 나가서 저 떠드는 놈, 저 놈을 그저 대매에 때려 죽여버려라."

  하인이 작대기를 들고 나와 주인의 명령대로 한 대 후려쳤는데, 픽하고 쓰러지며 아무 소리도 없다.

  "나리 분부대로 때렸더니 정말 죽었나봅니다."

  "뭐야?"

  불을 밝혀 들고 나와 보니 이웃 동네 사는 놈인데, 이거 정말 죽어있지 않나그때 먼저 녀석이 여편네 하고 어디 갔다 오는 것처럼 아주 사방등을 번듯하게 켜들고 담 모퉁이를 돌아서 나타났다.

  "아니! 이거 아무게 아냐?"

  "자네들 사람 죽였네 그랴!"

  "?!"

  지금이고 옛날이고 사람을 고의로 때려 죽였다면 보통일이 아니다. 그것도 쓱싹해 버렸으면 좋으련만 현장을 본 사람이 있으니 어찌한담주인은 얼굴이 샛노래서 늘어 붙었다.

  "그저 어떻게든 못 본 척하고 눈감아 주게. 돈은 내 얼마든지 줄 테니. ,200! 아니 500! 아니 천냥....."

  놈팽이는 팔장을 낀 채 눈을 감고 계속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참만에 어안이 벙벙해진 주인놈을 들여다보며 하는 말이다.

  "이 사람아! 오늘까지 피둥피둥하게 살아 돌아다니던 놈이 자취도 없이 꺼져버린다면, 내 입 봉하는 것으로 끝날 것 같아? 폐일언하고 3천 냥 내개. 내쓱싹해 줄게."

  다음날 표를 써 받기로 약속을 하고 송장을 떠맡았다. 주인이 들어가 대문마저 닫은 뒤, 그 송장을 또 계집을 시켜 이고 이번에는 놈의 본집으로 찾아간다. 헛간에서 밧줄을 찾아서 대문 앞에다 목을 메어 디룽디룽 달아놓았다. 그리곤 또 목소리를 바꿔서 부른다.

  "여보, 여보, 문 열어줘! 나 인제 돌아왔어."

  "이 추운데 누가 나가 문을 열어? 아무게 어멈년 좋아한다든데 게나 가서 자빠져자지, 밤중에 왠 지랄야?"

  "그러지 말고 열어줘. 나 얼어죽겠어."

  "....."

  "나 그러면 옹크리고 앉았다 얼어 죽느니 여기다 목을 매고 죽어버릴테야."

  "죽거나 말거나 맘대로 하렴. 내 알게 뭐야?"

  놈은 계집을 잡아낚아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목매달아 죽은 친구집에 가 밤도 새우고, 장삿날은 달구질도 찧어주고..... 이듬해 첫봄 부자한테서 울거낸 돈을 가지고 부지거처로 고장을 떠났다.

  계집은 버리지 않았느냐고? 새끼가 있으니 어쩌지 못하고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 잘 살았다던가 하는 얘기다.

 

 

    그걸 뽑으면 힘을 못 써

  장돌뱅이 장사꾼이 봉놋방에 들어서 저녁을 사먹고 자는데, 잠결에도 머리맡이서늘하기에 보니 어느 놈이 바람벽의 흙을 뜯어 구멍을 내고 대가리를 들이민다이런 장사꾼이 짐이 많으면 돈은 없고, 짐이 거의 없으면 반드시 돈이 많은법이라, 끼고 자는 돈자루를 노린 것이다무심결에 베고 자던 목침을 빼며 누운 채로 콩 내리쳤더니 아무 소리도 없다.자세히 보니 그 집 심부름꾼인데, 한 대에 싱겁게 죽었지 않나?

  당황하여 저쪽 따로 방을 잡고 자는 점잖은 손님을 찾아가 "이리이리 하여서이리이리 되었는데 어찌하오리까?"호소를 하였다.

  "! 어떡하다가 죽이기까지 했노? 그러나저러나 뒷수습을 하고 봐야 할 것아닌가? 저 마당에 들이맨 것 중에 제일로 크고 건장한 말이 내가 타고 온 걸세.죽은 놈을 그 말 뒤에 갖다 자빠뜨려 놓고, 오른손에는 내 말의 꼬리털 긴 놈을너댓 올 식지에 감아서 쥐어주고, 왼손에는 내 말뿐 아니라 여러 말의 꼬리털을뽑아 한 30개 쥐어 놓아두게. 그리고 자네는 들어가 자."

  "그러면 됩니까?"

  "잔말 말고 어서 그렇게나 해."

  이튿날 새벽 주막 주인이 하인을 연거푸 부르는데 대답이 없다. 일찍 떠나려고일어나 나온 손님들 중에서 하나가 마당께로 왔다 보고 소리를 쳤다.

  "여기 누가 말에 채여 죽어자빠졌지 않아?"

  ", 이런! 주막쟁이놈 좀 보게. 남의 말 꼬리털을 뽑아오게 해 수입을 잡으면서무어? 불러도 대답이 없다고 손님들 자는데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 이놈 경 좀쳐봐라."

  말의 꼬리털 긴 놈은 '말총'이라 하여 채를 메우는 데도 쓰고, , 망건, 감투따위에 쓰이는 재료로서 그 용도가 많아 한 웅큼이면 좁쌀 한 말 값이 나갔다.그리고 그걸 뽑으면 말이 힘을 못 쓴다고 몹시 싫어하는 것이다.

 

 

    망할 놈의 동네, 불이 씨가 졌나?

  경상북도 봉화에 권돈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어깨너머로 공부했어도 문장이도저해서 남들 과거보러 가는 길에 청처짐하게 뒤따라 서울길을 떠났다. 도중에어느 부잣집에 과객으로 들었는데, 대접은 애써 하나 온 집안이 수심에 싸여 있어도무지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까닭을 물었더니 사정이 이렇다.

  무뢰한이 하나 있어서 온 동네의 골칫거리였는데, 그 집 외아들이 술자리에서만나 놈의 야로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해 시비가 되어 몇번 주먹질이 오고갔는데,놈이 그만 사지를 뻗고 죽어버렸다는 것이다.

  살인 만났다는 말이 있듯이, 죽은 놈의 계집은 부잣집에 와서 갖은 야로를 다부리고 세간을 부수고 지금 제 집에서 서방 시체를 뻗쳐놓고 동네가 시끄럽게 통곡통곡하고 있다는 것이요, 곧 살인하수자를 잡으러 관차가 들이닥칠 거라고 한다.

  "댁의 하인들은 다 믿고 같이 일할 만하겠지요?"

  "그러면요, 몇 대째 은혜로 다스려서 모두 심복들입니다."

  "그러면 됐습니다."

  캄캄하게 어두워진 뒤 하인을 동원해 온 동네의 등불을 일시에 다 꺼버리게 하고, 일부 별동대는 죽은 놈의 시체를 동네 안 연못에 집어 처넣어버렸다. 그리곤 권돈인이 죽은 놈 누웠던 자리에 와 누워서 여편네 넋두리하는 소리를 들으며 웃고 있었다그러는데 관청에서 형방이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들이닥쳐 제일차로 죽은 자의시체를 검안하겠다고 한다. 자연 밖은 갑작스레 장터모양 떠들썩했다. 그때 깜깜한 중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망할 년의 여편네 같으니! 잠깐 놀라게 해서 양반 작자들 어기나 질러 놓으려고 했더니, 공연스레 계집년이 지랄맞게 떠들어서 관차까지 나와 설레를 치니 이 일을 어쩌란 말이냐?"

  불평의 말을 늘어놓고는 그 길로 사람들 틈을 비집고 줄달음을 놓아 동네 안 연못에 몸을 풍덩하고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뭍으로 기어올라 숲으로 들어가 숨어버린 것을 아는 이는 물에 들어갔던 권돈인 본인밖에 없었다.

  "망할 놈의 동네, 불이 씨가 졌나?"

  관차들은 불평을 하며 화로에서 불씨를 찾고, 한쪽으로 부시를 쳐서 홰를 대리자니 시간이 적지 않이 지체가 되었다. 불을 밝혀 들고 연못가에 와보니 뛰어든 놈이 죽어서 둥둥 떠 있지 않는가?

  모든 사람들이 둘러보는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니 누구 하나 의심할 이도 없다. 살인사건은 이렇게 해서 묵주머니가 되고 주인집 외아들은 죽음을 면해 무사히 집안의 대를 이었다. 죽어야 할 놈은 죽었고, 한때의 기지로 사람의 목숨 하나를 구해준 공덕으로 권돈인은 과거에 급제하고 출세하여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버젓한 아버지를 두고 왠일이야?

  어떤 청년이 보니, 이런 변고가 있나? 저의 어미란 것이 버젓한 아버지를 두고 동네 총각놈과 자주 밀회를 하는 것이다. 하루는 둘이 만나 약조하는 것을 엿들었다.

  "아무데 골짜기 올라가는 길목에 풀을 맞동여 옥무(올무)를 지어놓을 것이니, 그것을 안표 삼아 올라오면 만날 수 있을 거요."

  아들놈이 아비와 같이 산밭에 일을 하러 가면서 총각이 해놓은 안표를 끄르고 자기 부자 일하는 골짜기 길목에다 올무를 지어놓고 기다렸다. 점심때가 채 못되어 떡이랑 밤 삶은 것 등 풍성하게 해가지고 온 것을 받아 내려놓으며 어미 귀에 대고 일렀다.

  "아버지가 어머니 행색을 눈치채고 죽여 버린다고 아까부터 벼르고 계시니 어떡하지요?"

  어미가 겁이 나 내뛴 뒤에 아비가 밭머리에서 내려오니까 이번엔 허둥지둥 아비더러 얘기한다.

  "집에 불이 났다고, 어머니가 그거 한 마디만 이르고 달려가셨어요. 내 뒷수습해가지고 따라갈께 어서....."

  아비가 손에 들었던 낫을 놓을 생각도 못하고 줄달음을 놓아 산을 내려오는데, 계집년이 돌아보니 정작으로 죽이려고 연장을 휘두르며 쫒아오지 않는가? 그만 오금이 붙어서 탈싹 주저앉으며 싹싹 빌었다.

  "내 죽을 때라 미친 마음이 들어서 그랬으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사."

  "?!"

 

    인경치는 데는 소승이 제일

  장마다 따라다니며 장사하는 장돌뱅이, 그네들은 어엿한 객주에 들 수가 없다. 첫째, 주제꼴이 흉해서 남에게 불쾌감을 주겠고, 둘째, 돈도 아깝고, 그보다도 행동이 거추장스러워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만하게 멋대로 굴 수 있는 봉놋방이 역시 그들에겐 적격이다.

  어느 봉놋방에 뒤늦게 승려 하나가 찾아들었는데, 그나마 목침도 차례가 안 와서 디딜방아의 공이를 베개삼아 베고 누웠다조금 있자니 바깥 공기가 수상쩍다. 개가 한 마리 콩 짖더니 마루 밑으로 기어들고 사람들이 술렁술렁하더니 주막주인도 자취를 감추는 눈치다화적떼가 든 것이다. 숙박객의 장짐을 털려는 생각이다.

  승려가 일어나며 옆의 사람들을 깨웠다. 자기 바랑의 멜빵을 위시해 동숙한 사람들의 허리띠를 모아 공이를 삿갓 천장에 달아매었다.

  "허리춤은 대님짝으로 동여매라고!"

  달아맨 공이를 그네를 밀듯 해보니, 흡사 헹가레치듯이 앞뒤로 순조롭게 잘 움직인다.

  아니나 다를까, 바깥 마당을 횃불이 대낮같이 밝히면서 한 놈이 발길로 문짝을 찼다. 그때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앞장 섰던 놈이 저만치 나가떨어지며 사지를 버둥버둥한다. 공이를 인경 종채처럼 꼬나 놈의 가슴패기를 내질렀으니 그럴 수밖에... 한 놈 또 한 놈..... 견디지 못하겠던지 죽은 놈과 다친 놈을 내팽개치고 줄행랑을 놓았다.

  새벽녘에 관차가 들이닥쳐 다친 도둑을 문초해 놈들의 소굴과 조직을 캐물어 알고 떠나간 뒤 모두는 지혜를 낸 승려에게 치하하였다.

  "절에서 인경치는 데는 소승이 제일로 뽑힙지요.

 

      여우대감이 아니니 불여우대감이지

    여기에 소변을 볼 수 없습니다

  선비 둘이 길을 가는데 풀섶으로 뱀이 사부랑하고 지나간다. 그중의 하나가물었다.

  "저 뱀이 어디로 갈꼬?"

  "그야 우물로 가겠지."

  "그건 왜?"

  "사필귀정(일은 반드시 옳은 데로 귀결된다는 것)이지."

  "아니야, 우물로는 안 가네."

  "!?"

  "사불범정(비뚠 것이 올바른 것을 범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야. 제가 어떻게 우물로 가나?"

 

 

  어떤 사람이 아들에게 글을 가르쳐 대충 눈떴기에 이제는 세상 구경 좀 하고 오라고 서울로 보냈더니 월여 만에 돌아왔다. 그래 그동안 보고 겪은 것을 좀 얘기하랬더니 이런 대목이 있었단다.

  "어느 술자리에서 선배 하나가 술잔을 주면서 '오비이락'이라고 그러지 않겠어요? 어찌나 기분이 상하던지 모르겠데요. 제가 간 것이 어찌 오비이락입니까?"

  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옳게 말한 거다. 그는 술을 못 먹어. 그래서 오비이락(나는 않겠으니 자네나 즐기게)이라 한 거야."

  어떤 술자리에서 물주되는 부자의 아들이 계집을 무릎 위에 앉히고 뒤로 끌어안으며 시시대다가 한마디 했다.

  "후회막급일세."

  뒤로 품으니까 닿지 않네그려.

  조방구니(오입쟁이를 따라다니며 비위나 맞추는 사람)가 맞장구를 친다.

  "전공가석이로다."

  앞의 구멍이 아까우이그때까지 잠자코 술잔만 기울이던 나잇살 자신 어른이 개탄해하는 말이다.

  "오비이락이라"

  나는 너희들 즐기는 것을 그르게 여긴다.

 

  논을 써려놓고 모를 내는데, 모가 모자라서 친구에게 인편으로 쪽지를 보냈다.

  "적불선지가에 필유여앙이라니 남는 모 좀 보내주게."

  착하지 못한 짓을 쌓는 집엔 반드시 돌아오는 앙화가 있으리라. 좋지 못한글귀의 앙을 모 앙으로 고쳐 써서 장난쳤다. 쪽지를 받은 친구가 모를 지워보내며 편지 끝에다 답을 써보냈다.

  "앙급자손이라 하니 여앙을 송지하노라."

  나쁜 짓 하면 앙화가 자손에게 미친다 하니 자손에 돌아갈 앙화를 보내노라.   이 역시 앙()을 앙()으로 썼는데, '자손에게 미친다' 하여 상대를 자손으로치고, '내 집에 올 재앙을 너에게 돌려준다' 하여 은근히 마주 욕한 것이다오가는 사람들이 하도 오줌을 누니까 주인이 이렇게 써붙였다.

  지나가는 분들은, 여기에 소변을 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주인의 해석이다.

  한번은 그 표지가 있는데도 오줌누는 이가 있어서 따져 물었더니,

  "미안합니다. 내가 읽을게 다시 한번 보셔요."

 

  지나가던 점잖은 분이, 기다리다 못해서, 여기 오줌누었다.

  이렇게 읽은 것이다.

  임기응변을 잘하는 이방이 있어 원님이 늘 당하는 형편이다. 한번은 그의 친기(아버지 제사)라는 말을 듣고 부조를 한다는 것이 큼직한 마편을 하나 구해보냈으니, 이런 해괴한 일이 있나?

  이튿날 이방이 생선을 한 마리 들고 와서 인사를 드린다.

 "어제 보내신 고기에 산적 꼬챙이 뀄던 구멍이 있는 것을 보니, 댁의 제사에 이미 쓰셨던 것이구먼요. 이걸 드리니 받아쓰십시오."

  "이게 조기 아니냐?"

  ", 소인에게는 친기이옵고 사또께는 조기올시다."

  "?!"

 

  서투른 선비가 앞산으로 곰이 뛰어가는 것을 보고 시 한 구절을 지었다. 눈 날리는 산 위로 곰이 뛰닫는다.

  그리곤 마주앉은 사람에게 대구를 하란다. 손이 문 앞에 이르니 개가 짖어댄다.

  "이 사람 개라면 견으로 써야지 대가뭐야?"

  "영감님께서 웅을 능으로 쓰셨기에 저도 사양해서 한 획을 줄여 썼습죠."

  "?!"

  유가의 도덕기준으로 오륜이 있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런데 장난꾼들이 이것을 개의 행동에 적용해 웃음꺼리로 삼고,

  "이노옴! 개에게도 오륜이 분명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이 되어가지고....."

하는 꾸지람이나 욕설거리로도 삼아오고 있다.

 

  어미 털빛을 이어받아 변치 않으니, 이는 부모, 자식 간의 도리에 합당하고제 주인을 보고는 짖지 않으니, 임금과 신하 사이에 충의가 있는 것이며때에 따라서나(새끼를 밸 때나 되어야)음행하니, 이는 부부 사이에 예절을지키는 것이 된다.

  작은 놈이 큰 개에 항거하지 않으니, 이는 어른과 아이 사이에 서열이 있는 거와같고,

  한 놈이 짖으면 모두가 따라 짖으니, 친구 사이에 신의가 있음이 아니겠는가.

 

    호랑이에게 물려간 장인을 구한답시고

  말이란 말은 모조리 문자로만 쓰기로 작정한 녀석이 있었다. 처가엘 다니러갔는데, 하필이면 그날 저녁 호랑이가 내려와서 장인을 물어갔다. 아마도 밤똥을 누러 나갔다가 변을 당했을 것이다. 처남이 횃불과 연장을 들고 뒤쫓아 가면서 매부더러 일렀다.

  "동네 사람들을 모두 깨워 데리고 따라오라."

  시체라도 옳게 찾아야 할 것 아닌가이 자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다. 급할 때 외쳐도 모조리 문자로만 외친다.

  "원산지호가 자근산래하여 오지장인을 착거야니, 유총자는 지총래하고, 유창자는 지창래하고, 무총무창자는 개지몽동속속래하라."

  먼산의 호랑이가 가까운 산으로부터 와서 나의 장인을 잡아갔으니, 총이 있는 이는 총을 가지고 오고, 창이 있는 사람은 창을 들고 오되, 총도 없고 창도 없는 사람은 모두 몽둥이를 가지고 빨리 빨리들 오라.

  목이 터지도록 외쳤으나 누구 한 사람 알아들어야 나오지. 그저 왠 놈이 저렇게 시끄럽게 외치고 다니나 하였을 밖에.....

  간신히 호랑이가 뜯어먹다 남긴 아비의 시신을 찾아가지고 돌아온 아들은 동네사람들을 걸어 원님에게 고소를 했다.

  "곧장 쫓아 나왔더라면 이렇게 참혹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원이 동네 사람들을 호되게 꾸짖고 문초하니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왠 놈이 빽빽 소리를 지르고 다닙디다마는 그런 사정인 줄이야 알았어야지요."

  사위 놈을 불러서 물으니 '문자'를 써서 외쳤다는 것이다. 원님이 화가나서 곤장을 치는데 아파서 한다는 소리가, 벌남산지송목하야 오지비둔을 난타야하니 애야둔이야."

  남산의 소나무를 베어 나의 살찐 볼기를 마구 때리니 아이구 볼기야!

  왼쪽 볼기에 딱 떨어지면 "좌둔야....."오른쪽 볼기를 딱 맞으면 "우둔야....."

얼마를 때려서 옥에 가뒀는데, 그것도 남편이라고 부인이 면회를 왔다. 손이라도 한번 만져 보려는데 옥의 창이 높아 서로의 손이 닿을 듯 닿을 듯 미치질 않는다. 안타까워서 하는 소리다.

  "여수가 단커든 오수가 장커나, 오수가 단커든 여수가 장커나....."

  네 손이 짧거든 내 손이 길거나, 내 손이 짧거든 네 손이 길거나.

  며칠 쳐박아 뒀으니, 미친 놈! 이제 다짐이나 받고는 놓아주려고 끌어내다 꿇려놓고 묻는다.

  "네 이놈! 다시 또 '문자'쓰겠는가?"

  "! 차후론 갱불용문자하오리다."

  이 뒤로 다시는 문자 쓰지 않겠습니다.

  이것을 문자로 대답했으니 무사할 수가 있나? 멀리 귀양을 보내기로 판결이 났다. 언제나 풀릴지 기약없는 먼 길이다. 이것도 조카, 그중에도 생질이라고 외삼촌이 떡을 해 짊어지고 전송을 왔다.

  "오죽 고생이 되겠니? 도중에 배고플 때 먹어라."

  그런데 이 분이 보름보기다. 애꾸눈이라 한 달에 보름치밖에 못 본다는 소리다. 둘이 쓸어안고 울다가 즉흥으로 한 마디,

  "양인이 상포읍하니 누삼행이라."

  두 사람이 서로 끌어안고 우니 눈물이 세 줄기라.

  "예끼 망할 자식, 나가 뒈져라!"

 

    까마귀의 죄일까요, 병 때문일까요?

  들에서 일하던 두 사람이 하찮은 일로 다투다가, 한 사람이 떠밀렸는지 맞았는지 그것이 빌미가 되어 여러 날 뒤에 죽었다. 살인죄로 고소를 당해 글 잘하는 사람에게 달려왔다. 어떻게 변명 좀 해달라는 것이다. 그래 서류에 썼다.

  까마귀는 2월에 날고 배는 9월에 떨어졌으니

  까마귀의 죄일까요, 아니면 병 때문일까요?

  이 서류를 보고 원님이 무죄를 선고했는데, 풀려난 쪽에서 아무런 사례도 할 생각을 않는다. 원고는 화가 나서 서류를 다시 꾸며 들여보냈다. 몽둥이로 포장을 때리니 장막은 뚫어지지 않았으나 그릇은 깨어지고, 칼로 물을 가르니 물에는 흔적이 없으되 고기는 죽는도다.

  원님이 보니 그 이치가 그럴듯한지라 하수인을 다시 잡아들여 결국 벌을 주었다.

 

 

  김삿갓이라고도 하나, 어쨌던 글 잘하는 한 선비가 남의 진정서를 대신 썼다.

사건인즉, 정자나무 밑에서 장기를 두다가 물려달라는 상대를 밀지도 않았는데 그만 죽어서 송사가 벌어졌다. 하수인은 무죄를 주장하려는 것이다그런데 대서를 요구하는 하수인 녀석의 대접이 도무지 시원치 않다. 그래서 붓가는 대로 불리하게 써 주었다.

  독한 술이 방안에 있더라도 마시지 않으면 취하지 않듯이,

  썩은 새끼로 소를 매었더라도 당기지 않으면 끊길 리 없다.

  이건 은근히 하수인에게 죄가 있다는 표현이다.

  살인 송사사건이 났으니 모여드는 사람도 자연 많았다. 그중에서 글줄이나 아는 한 사람이 보니 이 모양이라, 곧장 주인을 꾸짖고 경황없는 중에도 닭을 잡아 볶고 한상 잘 차려들고 나와 은근히 권했다.

  갑자기 대접이 달라져 기분이 좋았던지 먼저 썼던 것을 찢어버리고 다시 썼다.

  기름이 닳아 없어진 등불은 바람이 없어도 저 혼자 꺼지고,

  동산의 밤은 서리 맞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진다.

  근력이 없어서 제가 죽었지 누가 어쨌느냐는 얘기가 된다사건이 무사히 해결되자 사례를 두둑이 받아가 그곳을 떠났다어떤 사람이 과객을 재웠는데 느닷없이 밤중에 죽었다. 그래 보고서를 써야겠는데 붓대 잡는 이가 무슨 심정이었는지,

 

  살아서 그 집에 들어갔다가 죽어서 그 집을 나왔다.

  이렇게 썼으니, 죽은 데 대한 의문이 담겨 있어 꺼림직하다.

  구지레한 옷차림의 한 사람이,

  "그 한 자만 고쳤으면 하오마는....."하고 생자를 병자로 고쳐 쓰게 하였다병들어 그 집에 들어갔다가, 죽어서 그 집을 나왔다깊이 든 병이니 그럴 수도 있지. 그리하여 글자 한 자로 주인은 입장이 트였다.

 

    유식한 사람을 무식하게 때리다니

  어떤 시골, 좀 모자라는 친구가 장엘 갔는데 이웃동네 사람을 만났다. 그는 눈가가 불그레하니 한잔 한 모양이다.

 

      공술 얻어먹으러 다니는 친구

    메뚜기의 이마는 왜 벗겨졌나

  조물주가 닭과 돼지와 개를 일정기간 인간세계에 나아가 살아보고 오라고 일러서 각각 내보냈더니, 기한을 채우고 돌아와 그동안 겪은 일들을 보고하였다.

  "사람들이 하도 게을러서 제때에 일어나라고 아침마다 시간 맞춰 울어주었습니다."

  닭의 복명을 듣고 만족하여 그에게는 상으로 머리에 벼슬을 달아주었다개는 집도 지키고 사냥도 열심히 뛰어다녔노라고 해서 수고했다고 그때까지 셋밖에 없던 다리에 하나를 더 달아 넷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조물주가 주신 발에 오줌이 튈까 보아 그 다리는 쳐들고 눈다는 것이다.

  돼지는 사람들이 주는 것만 배불리 먹고 밤낮없이 자다가 왔습니다 고 솔직히 얘기했더니, 조물주가 화가 나서 후려치는데 매를 피하려고 고개를 돌리다가 코끝을 얻어맞아 그래 지금도 코끝이 고 모양이 됐다고 한다.

 

 

  메뚜기, 개미, 물총새, 셋은 무척 다정한 친구였다. 하루는 물가에서 노는데 메뚜기가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쳤다언제 그렇게 배웠는지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헤엄쳐나가는 모양을 보고 둘은 무척 부러워하면서 칭찬하였다으쓱해진 메뚜기가 육지에 올라오면서,

  "무슨 말씀을!"

하며 자기 이마를 탁 치켜 젖혔더니 그만 이마가 뒤로 비스듬히 벗겨져버렸다이를 구경하고 있던 둘은 너무나도 우스워 견딜 수가 없었다. 개미는 너무 웃어서 허리가 아파 움켜쥐고 웃다가 그만 허리가 지금처럼 가느다래지고 말았다메뚜기 꼴을 보고 웃던 물총새는 개미마저 그렇게 되는 것을 보고 소리 내고 웃다가는 저도 벌을 받을 것 같아 양손으로 입을 움켜쥐고 웃었다얼마를 웃다 보니, 메뚜기와 개미도 자기를 쳐다보고 자꾸 웃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보니 자기 입도 길쭉하게 앞으로 늘어나 있었다. 물총새의 주둥이가 그렇게 삐죽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라고 한다.

 

 

  사람 사는 방에 있는 물것 사회에서 경사가 났다. 빈대가 자기의 생일이라고 벼룩과 이를 초대한 것이다. 그래 벼룩과 이가 동행해 가는데, 이는 본래 몸이 둔해서 벼룩보고 좀 천천히 가자고 조르건만 벼룩이란 놈은 저 혼자만 톡톡 튀어서 먼저 가고 말았다. 잔칫집에 도착한 이는 잔뜩 화가 나서 벼룩에게 시비를 걸었다. 본래 싸움이란말리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더 커지게 마련이다. 빈대가 좋은 말로 말리자 정말 멱살을 쥐고 대판 싸움으로 변하였다. 이가 벼룩의 멱살을 얼마나 몹시 갈겼던지 이의 잔등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주인 되는 빈대는 이러지들 말라고 일어서서 말리는데, 잔뜩 어울려 싸우던 벼룩과 이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 바람에 말리던 빈대는 그 밑에 깔려서 몸뚱이가 그만 납작해진 것이란다.

 

    주색을 너무 밝혀 탈이야

  파리가 친상을 당해서, 모기에게 부고를 하였다. 조문 끝에 사인을 물으니, 냄새에 팔려 술독에 조촘조촘 다가가다가 맞아 돌아갔다는 얘기다얼마 뒤에 이번엔 모기네에서 통부가 왔다.

  "낮잠 자는 여자의 드러난 소문 바로 곁에까지 가셨다가 '아이 따가워' 하고 치는 것을 냄새에 취한 끝이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당하셨지 뭡니까?"

  파리가 개탄하여 말한다.

  "자네 네나 우리나 모두 주색을 너무 밝혀서 탈이야."

 

  오뉴월 염천에 정자나무 밑에서 소가 질펀하게 누워 한가롭게 새김질을 하고 있는데, 양다리 사이로 불알이 푸짐하게 삐져나왔다마침 개미 두 마리가 와서 휘이 둘러보니 임자 없는 물건이라, 이거 큰 수확이라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데 꿈쩍도 않는다. 그래 한숨 돌리면서 그런다.

  "꼭 한 놈만 와줬음 되겠는데."

 

    모기가 제일 싫어하는 것

  옛날 어느 시골에 아들 여러 형제를 거느리고 부유하게 지내는 집안이 있었는데, 욕심이 과하다 할까 딸 하나 더 두기가 소원이라 뒤꼍에다 단을 만들고 날마다 빈다태기가 있어 10삭 만에 과연 순산했는데, 바라고 바라던 바 딸이라 온 집안이 떠받들어 위해 길렀다. 어느덧 여남은 살이 되는 해부터 집안에 자주 변고가 나는데, 자고 일어나 보면 어느 한 식구가 전신에 핏기라곤 하나도 없이 새하얗게 되어 죽어있는 것이다. 혹 한 달 만에 때로는 날을 걸러 이 짓이 되풀이되니, 어느덧 주인, 자식, 하인 합해서 수십 명 들끓던 가족이 이제는 막내로 두 남매와 하인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이제는 네가 먼저냐 내가 먼저냐 하는 계제에 이르게 됐는데, 이렇게 된 판에 상전이고 하인이고가 어디 있겠느냐고 세 남녀가 한방에서 기거하며 다가올 운명만 기다리게 되었다.

  오라비가 가만히 보니 누이는 얼굴에 화색이 돌며 거의 수심이라곤 보이지 않는 폼이 약간 의심이 드는 면도 있어, 낮에는 숲에가 실컷 자고 밤이면 가장 고단한 체 여우잠을 잤다.

  하루는 그믐 가까운 새벽 달빛에 창살만 간신히 훤할 즈음인데 누이의 기색이 이상하다. 바시시 일어나 오라비 눈 앞을 손으로 두어 번 저어 보아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더니 소리도 없이 윗목에서 자고있는 하인에게로 간다.

  사면을 둘러보며 쌩끗 한번 웃더니만, 명치를 더듬어 헤치더니 이내 쪽쪽 빨아먹는 소리가 들린다. 얼마만에 아주 흡족해 쌩끗 웃으며 양손으로 입가를 문지르고는 언제 그랬던가 싶게 제자리에 가 눕는다.

  새벽에 사뭇 서로 놀라는 척하며 남매가 힘을 합쳐 장사라고 치렀다. 오라비는 여러모로 궁리하던 끝에 산에다 젖은 풀과 마른 풀로 빙둘러 풀더미를 하나 만들어두었다.

  어느날 오빠가 마을에 내려갔다 오며 고함을 치는 것이다.

  "얘야 큰일 났다. 왜놈이 쳐들어오는데 처녀는 하나도 남기질 않는댄다. 이걸 어쩌니? 우선 급하니 여기 풀섶으로라도 숨어라."

  풀 더미 속을 뚫고 들여보내 놓고는 들어간 구멍마저 탄탄히 막고, 사면에다 불을 지르니 삽시간에 돌려붙어 탄다처음에는 사람 목소리로 비명이 들리더니만 이내 캥캥 여우 소리가 난다.

  "요놈, 내가 다 안다."

  계속 더 풀을 덮어 태워 없애버렸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 재를 날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었더니 그나마 남김없이 다 날려가 버렸다애당초 산중의 여우가 욕심 사납게 기도하는 소리를 엿듣고 그 집에 점지되어 딸로 태어나서 온 가족을 다 본보기대로 피를 빨아 말려 죽였던 것이다생화장으로 죽어버린 재와 티끌은 날아가 변신해 모기가 되어 버렸다. 모기는 여우를 닮아 사람의 피를 빠는데, 풀 타는 냄새에는 아주 혼이 났기 때문에 가까이도 못 오는 것이라고 한다.

 

 

    그 뒤 남편은 죽어서 수탉이 되었단다

  옛날 어느 곳에 한 총각이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하루는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으려니까 사슴 한 마리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도련님! 절 좀 살려주세요. 사냥꾼이 쫓아옵니다."

  마음 착한 이 청년은 사슴을 나뭇단 속에 감추어 두었다. 조금 뒤에 과연 사냥꾼이 달려와 사슴을 못 보았느냐고 물었다.

  "저리로 갔습니다."

  총각이 엉뚱한 방향을 가르쳐주자 사냥꾼은 그 쪽으로 달려갔다. 한참만에 나온 사슴은 살려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서 말하였다.

  "아직 장가를 안 드신 모양인데, 이쪽 고개를 넘어서면 맑은 못이 있고, 거기는 날마다 점심때면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합니다. 그중 한 선녀의 옷을 감추시면 선녀는 날아갈 수 없어 울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말로 달래어 데려다가 부인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나 꼭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애기넷 낳도록까지는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옷을 내주어서는 안됩니다."

  다른 이야기에서는 셋인데 여기서는 넷으로 되어 있다총각은 사슴이 일러주는 대로 하여 하늘나라의 아름다운 선녀와 결혼하여 3남매를 두었다.

  어느 날 남편이 술을 마시며 매우 기분이 좋아 있는데, 선녀가 웃옷을 꼭 한번만 보여달라고 졸랐다. 흐뭇하게 행복에 취해 있던 남편은 무심코 선녀의 옷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부인은 그것을 어깨에 걸치고 아기들은 양쪽 팔에 안고 하나는 가랑이 사이에 끼고 하늘로 훨훨 날아가 버렸다.

  금시에 사랑하는 아내와 세 아이를 잃은 남편은 미칠 것만 같았다. 평소에 하던 대로 산에 가 나무를 하면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땅이 꺼지게 한숨만 쉬고 있을 때 사슴이 또 나타났다.

  "아이구, 이 양반아! 그렇게 주의를 주었는데도 지키지를 못하였다니...... 그러나 어떻게 좋은 도리를 찾아야지요. 하늘나라에서는 그때 한 선녀가 없어진 뒤로 다시 이리로 내려와 목욕하는 제도는 없어지고, 지금은 날마다 커다란 두레박으로 그 물을 길어올려다 목욕을 합니다. 그 시간을 맞추어 못가에 가 있다가 두레박이 내려오거든 물을 쏟아버리고 타고 앉으십시오. 그러면 무사히 하늘나라에 가 부인과 애기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은 그 말대로 하여 그립던 처자를 만나 즐겁게 지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집에 혼자 남겨두고 온 늙은 어머니 생각에 도무지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것을 딱하게 여긴 부인은 여러모로 주선하여 말 한필을 구해왔다.

  "이것은 하늘나라의 말이라 인간의 흙을 디디면 다시는 탈 수가 없습니다. 타고 가서 어머님를 만나시되 아예 땅에 내려서는 안됩니다."

  남편은 그 말을 타고 순식간에 자기 집 뜰로 내려왔다.

  "어머니!"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문을 열고 달려 나와서 아들의 손을 붙잡았다.

  ", 너 왔구나! 그래 모두들 만났니?"

  아들은 그 동안 지낸 이야기를 하고 나서 잠깐 뵙기만 하고 도로 가야 하는 딱한 사정을 털어놓고 용서를 빌었다.

  "너만 잘 되면 그만이지, 이 어미 생각은 조금도 하지 마라. 그렇더라도 무얼 좀먹고 가야지. 그냥 맨입으로 보내서야 이 어미 마음이 좋겠느냐?"

  한국의 어머니는 왜 이렇게 착하기만 할까?

  어머니는 부엌에 들어가 마침 펄펄 끓어서 익은 호박 풀떼기를 떠서들고 나왔다.

  "마침 이것이나마 있었으니 다행이다. 내려서지 못하면 말 위에서라도 좀먹어보렴."

  아들은 어머니의 정에 못이겨 그릇을 받아들었다. 훌훌 몇 모금을 마셨는데 금방 끓은 것이라 그릇이 뜨거워 이리 옮겨 쥐고 저리 쥐고 하다가 그만 말 잔등에 엎지르고 말았다.

  "어흐흥"!"

  말이 놀라 앞다리를 번쩍 들고 일어서는 바람에 아들은 마당에 나둥그러졌다. 말은 그 길로 혼자 하늘로 올라가버려서 다시 처자를 만나러 갈 길은 영원히 끊기고 말았다그 뒤 남편은 죽어서 수탉이 되었단다. 그래서 수탉은 하늘나라에 두고 온 처자가 그리워 지금도 하늘을 우러러 애타게 운다는 얘기다.

 

 

    빈 대라서 빈대

  고려시대 끝무렵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문익점이 처음으로 목화씨를 들여온 뒤로부터 우리나라 백성들이 따뜻하게 솜 옷을 입게 되었다한편 저쪽 중국에서는 나라의 금수품이 샜다고 야단이 나서 그 뒤부터는 사신들의짐을 샅샅이 조사하게 되었다어떤 사신이 돌아오는 길이었다. 보따리를 조사하던 관리가 붓대를 집어들며 물었다.

  "이 속에 또 무얼 감췄지?"

  "아닙니다. 빈대입니다."

  "아니야, 먼젓번에는 목화씨를 넣어 갔더라는데 어디 봅시다."

  거꾸로 들고 탁탁 터니까 벌레가 몇 마리 들어 있었다.

  "그건, 내가 넣어가지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이 벌레는 그 뒤 온 나라 안에 퍼졌는데, 이름을 몰라 당초 사신이 말한대로 '빈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어부가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파도를 만났는데, 엎친데 덮치기로 성난 고래가 한숨에 삼켜버렸다.

  이 사람이 생각하니 이대로 있다가는 꼼짝없이 죽을 것이라, 이러나 저러나 살아나려면 고래를 죽여야겠다고 가지고 있던 칼로 고래 뱃속을 마구 찌르고 째고하여 뱃속은 온통 피바다가 되었다.

  고래 입속으로 무슨 해초가 꾸역꾸역 들어오는데, 그놈이 들어오더니 뱃속의 상처가 금방금방 아물고 쏟아지던 피도 금방 멎는다이상하게 여기던 참인데, 다른 어부들이 고래를 잡아서 육지로 끌어내 배를 째는 바람에 구원을 받아 살아 나왔다그의 얘기를 듣고 그 안의 풀을 보니 그게 곧 미역이다.

  그래 그 뒤부터는 사람이 해산을 하면 반드시 미역국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저 돼지, 웃는 상인가 우는 상인가

  5월달 보리 베랴 모내랴 힘든 일을 마치고 나니 몸이 삐쳐서 기운을 차릴 수가 없다. 그래서 칼을 잘 들게 갈아 가지고 소에게로 갔다.

  "출출해 죽겠는데 너 좀 잡아먹어야겠다."

  소는 그 큰 눈알을 굴리며,

  "주인님도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일은 저하고 같이 했지 혼자만 하셨나요? 힘들고 맥없기는 저도 매일반이지요."

  그래서 이번엔 당나귀한테 가 말했다.

  "출출한데 너 좀 잡아먹어야 쓰겠다."

  "겨우내 봄내 빙판으로 진구렁으로 타고 돌아다니셨고, 요새 좀 편했다지만 또 타고 다니실 거 아녀요? 너무하십니다."

  '그래 이 놈도 공이 있다 그 말이지.'

  다음 개를 붙잡고 호소했더니 모지라지도록 휘두르던 꼬리를 쳐뜨리고,  "집 보랴 사냥하랴 저 나름대로는 충성을 다하노라 했는데, 잘못 생각하신 거 아녀요?"

  다음 닭을 보고 통사정을 했더니,

  "알은 낳아 놓기가 무섭게 몸보신한다고 다 쪄 잡숫고 아침마다 시간 맞춰 울어서 공이 크다고 늘 그러시더니 헛 말씀이었군요."

  에라, 안되겠다. 다음 돼지한테 가서 겪어온 얘기를 다하고 소망을 일렀더니 눈을 사르르 내리감으며 힘없이 말한다.

  "어서 물이나 끓이셔요."

  "?!"

 

  우리네 공사장이나 일터에서, 무사히 일 잘 되라고 흔히 돼지머리와 막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낸다. 구태여 머리를 쓰는 이유는, 어느 돼지고 머리는 하나니까 이것 하나 가지고 통으로 한 마리 바친 것같이 알아달라는 표시다.

  어떤 친구가 하는 소리다.

  "저 돼지 얼굴이 웃는 상인가, 우는 표정인가?"

  "!?"

  "그건 웃는 얼굴이야."

  아주 무디디 무딘 칼을 가지고 목을 자를라치면 '아이, 간지르지 말아!' 하며 계속 웃다가 그만 머리가 끊긴다는 것이다.

 

 

 

    산밑 동네의 불개

  쥐 뒤에 고양이가 있고, 고양이 뒤에 호랑이가 웅크리고, 호랑이 뒤에 사자가 섰는가 하면, 그 뒤엔 코끼리가 있어 빙 둘러섰으면, 다섯 짐승이 꼼짝을 못한다. 제일 큰 코끼리도 콧구멍으로 쥐가 들어가면 살아남지를 못한다니까.

  운전기사는 평사원이 무섭고, 평사원은 계장이 무섭고, 계장은 과장이, 과장은부장이, 부장은 중역이, 중역은 사장이, 사장은 회장 앞에서 맥을 못 추는데, 회장은 기사를 또 두려워한다. 하나라도 사모님 귀에 잘못 알려지면 벼락이 나니까. 그런데 회장 부인의 약점을 또 누군가 알고 있다면, 이건 몇 수 부동이 되는 건지?

 

 

  오소리와 너구리는 같은 굴에서 함께 산다. 오소리는 기름이 껴서 겨우내 배설도 않고 자고, 너구리는 굴을 팔 줄 몰라 곁방살이를 하면서 먹이 물어오는 일을 도맡아해 철저하게 종노릇한다.

  너구리를 '끌개'라고도 하는데, 오소리가 굴을 팔 적이면 자빠진 배에다 파낸 흙을 실어서 끌어내다 버리기 때문이다산밑의 동네에서는 '불개'라고 작고도 영악한 개를 기르는데 귀가 쫑긋하고 앙칼지다. 걷는 수고를 덜어주노라 아예 망태기에다 넣어서 메고 가는데, 주인은 가죽으로 넓은 목테를 해 끼워서 보호하고 꼬리 끝도 가죽끈으로 싸서 동인다굴을 찾아서 요놈을 들여보내면 너구리와 격투를 벌이는데, 지칠 만하면 다른 놈을 들여보내 교대시킨다. 그리하여 너구리를 물고 늘어지면 다른 놈이 제 동무의 꼬리를 물고 끌어낸다. 그래서 꼬리에도 가죽을 씌우는 것이다한바탕 풍화를 치러 굴도 엔간히 넓어지면 이번엔 큰 개가 들어가 오소리마저 물어서 끌어내고, 주인은 굴 옆에 섰다가 창으로 찔러서 마무리한다.

 

 

  족제비란 놈은 여름철에 물것이 몸에 꾀면 천천히 물로 들어간다. 벌레들은 물을 피해 상체로 모이고 나중 머리로 모이는데, 이때는 입에 막대기를 물고 잠수해 있다가가 모두 막대기로 기어 올라가면 내팽개치고 헤엄쳐 나온다. 여름철 진흙탕에 들어가 뒹굴어서 흙을 잔뜩 묻혀서 논두렁 같은 데가 앞발을 들고 섰으면, 누가 보아도 말뚝으로 안다. 그래서 새들이 안심하고 와 앉으면 갑자기 덮쳐서 잡아먹는다.

  유리로 된 됫병 목에 석유를 적신 실을 감고, 불을 붙였다가 젖은 걸레로 싸면 똑 끊어진다. 그놈을 땅에 묻고 깻묵을 넣으면 먹을 욕심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나오질 못해 족제비를 쉽게 잡는다.

  가죽을 벗겨낸 뼈와 살을 말려 빻아 가루를 내어서 꿀을 개어 먹으면 양기에 좋다고들 한다.

 

 

    보는 족족 죽여라

  태고 적에는 모든 것이 너그러워서 조물주가 동물들의 호소를 받아 웬만한 것이면 들어주었는데 한꺼번에 3가지 안건이 들어왔다.   첫째는 개의 요청이었다, 원래 개는 발이 3개뿐이었는데, 어느날 조물주에게 청하였다.

  "주인도 따라 다니랴 사냥도 하고 집도 지켜야겠는데, 발 셋 가지고는 불편이 많습니다. 가만히 앉아있는 솥은 발이 넷이나 되니 그중의 하나를 떼어서 저희에게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의해보니 그럴 듯한 요구여서 소원을 들어주었다. 그리해서 솥은 발이 셋이 되고 개는 넷이 되어서 산야를 자유로이 뛰어다니게 됐는데 역시 의리있는 동물이라 은혜를 안다.

  개는 뒤늦게 하느님이 주신 발을 더럽히는 것이 죄송스러워 오줌을 눌 때면 꼭 그것을 쳐든다는 것이다.

  다음은 사람이 호소하였다.

  "참새가 여름철 벌레를 제비만큼이나 많이 잡아먹어서 농사에 이로우나 겨울에 곡식을 너무 먹어 축내니 혼 좀 내주십시오."

  따져보니 그럴듯한 요구여서 참새를 잡아다 종아리를 때려서 놓아주었다. 그런 뒤로 참새는 종아리 맞을 때 아파서 강중강중 뛰던 버릇으로 두 발을 모두 굴러 뛰어서 옮겨다닌다.

  참새가 걷는 것을 보면 당대에 만석 추수하는 부자가 된다고 하는 말이 거기에서 생겨났다.

  다음도 사람이 낸 요청인데, 파리가 더러운 데 앉았던 발로 음식에 몰려들어 병을 옮기고 하나도 쓸모없는 놈이니 어떻게 손 좀 봐주십사 청하였다.

  하느님이 조사시켜 보니 사실이라,

  "보는 족족 죽여라."

  엄명을 내리셨다.

  "파리 목숨인 줄 아느냐?"

하는 속담까지 생겼는데, 파리도 그 사실을 잘 안다그래서 어디든 앉기만 하면,

  "그저 죽을 때라 잘못했으니 살려주십시오."

하고 앞발로 빌고 뒷발로 빌고 한다.

 

    3천 년 묵은 멸치가 최생원 낚시대를 무니

  동해바다에 3천 년을 산 멸치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 자고로 꿈은 사회 경험이 많은 고령자나 푸는 일이라, 서해에 800년 묵은 망둥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가자미를 시켜서 모셔오게 하였다.

  먼 길을 가서 데려온 자기더러는 한마디 수고했다는 말도 않고 저희끼리만 부어라 마셔라 흥청되는 것을 보고 가자미는 잔뜩 부아가 치밀었다.

  "어르신께서 꾸신 꿈이 어떤 것이온지.....?"

  "그게 그리 급하오? 노인께서 먼 길을 오셨으니 우선 한 잔."

  "노인이라니오? 어르신께 대면 저는 아직 어린애입지요. 어서 꿈 얘기를....."

  "글쎄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가 내려왔는데 흰구름이 뭉게뭉게 일고 눈이 펄펄 내리며 더웠다 추웠다 하니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소이다."

  "! 그렇게 웅대한 꿈을 꾸시다니..... 이제 용이 되어 하늘 땅을 마음대로 다니며 조화를 부리시게 될 것이지 다른 무엇이겠습니까?"

  "그러기야 바라겠소이까마는....."

하는데, 그때까지 참을 대로 참았던 가자미가 기어이 터뜨리고 말았다.

  "미친 놈의 늙은이들 잘도 논다. 그게 그런 꿈이야? 내가 해몽할 테니 들어보아라.3천 년이나 살아온 내 놈이 재수 없게도 원산 사는 최생원이 던진 낚시대를 물었구나! 낚시대를 채니까 하늘 높이 올라갔다 내려왔고, 영감이 석양배에 안주를 할 양으로 화로에 석쇠를 걸고 그 위에다 놓고 소금을 뿌리니 눈이 펄펄 내리는 것이며, 숯불에 냉과리가 섞여 있어 연기만 처나니까 영감이 부채질을 연신해대고..... 그러니 더웠다 추웠다 할밖에. 네 놈이 영감 목구멍으로 넘어갈 꿈이지 무슨 놈의 용이야 용은?"

  듣고 보니 구구절절이 들어맞는데 그렇기로니 저런 고약한 놈이 있나? 멸치가 일어나며 후려치니 가자미는 뺨을 맞아 눈알이 한쪽으로 몰려 붙어버렸고, 주춤하며 물러날 때 메기란 놈이 밑에 있다 밟혀서 대가리가 넓적해지고, 병어가 보고 웃음이 터지는데 자칫 매맞을 판이라 입을 틀어막고 웃다가 주둥이가 오무라 들었으며, 문어란 놈은 미리 짐작으로 눈깔을 떼어서 꽁무니에 차고 도망을 치니 동해바다는 삽시간에 병신풍년이 일고 말았다.

 

 

    배고픈 호랑이가 먹이를 만났는데

  어떤 산중에서 호랑이란 놈이 먹을 것을 구하러 나갈 궁리를 하고 있는데, 마침 어느 농부가 산 아래에 와서 담배 밭을 맨다.

  "옳지, 저 놈을 잡아먹으리라."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데, 일하던 청년은 땀이 나고 덥던지 웃통을 훌떡 벗어던진다보니 살도 엔간히 쪘고, 그런 중에 찢을 수고마저 없게 옷마저 벗었으니..... '아이 좋아라' 한번 실컷 웃고 싶은데 이놈이 듣고 도망치면 헛일이다어슬렁어슬렁 산등성이를 넘어가 실컷 웃고 도로 넘어와 보니까 농사꾼은 벌써 집에 돌아갔는지 없어진 뒤라는 것이다호랑이가 먹이를 구하러 산을 내려오면서 속으로 벼른다.

  "어디 가 살찐 암소라도 하나....."

  그러다가 얻어걸리지 않으면 예산을 줄여서 다시 짠다.

  "어디 가 개라도 한마리....."

  그러는 사이 시간이 가는 대로 개는 강아지가 되고, 토끼, , 개구리....."

  새벽녘이 되면 쓸쓸하게 입을 딱 벌리고 앉아서,

  "모기나, 각다귀나....."

 

    칠보산 밑의 하얀 호랑이

  칠보산이라면 함경도에 있는 명산이다. 경상도에서 머슴살이하던 총각이 목돈 벌어 장가들 욕심에 함경도까지 호랑이 사냥을 왔다물건을 해 지고 왔던 자루를 굴 입구에 대고 불을 땠더니, 연기에 쫓기던 호랑이가 와락 내뛰는 바람에 자루만 잃어버리고 말았다터덜터덜 맨손으로 가는데, 호랑이 가죽을 포갬 포갬하여 한짐 지고 오는 노인과 마주쳤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잡았느냐니까, 한참 쳐다보더니 동행을 하잔다. 그래 산 밑의 어느 집에서 같이 하룻밤을 나고 이튿날은 둘이서 산에 올랐다.

  "오늘은 어디 총각 혼자 해보게."

  총각은 한 놈을 만나 실력을 발휘하였다. 안아 메어치고는 몽둥이로 두들기고 돌로 짓찧어서 한 마리 잡아놓았는데, 길이가 한 발 가웃이나 좋이 된다. 노인에게 칭찬을 받으려니 했는데 엉뚱한 소리를 한다.

  "호랑이를 잡기는 잡았어. 그렇지만 그렇게 군데군데 창이 난 가죽을 뭣에 쓴다던가? 그리고 번번이 죽여야 가죽을 깐다면, 호피 장사하는 동안에 호랑이는 멸종이 되게. 내일은 나 하는 양을 보게. 가벼운 몸차림을 하고 날 따라나서는 거야."

  이튿날 둘이는 다시 산에 올랐다. 한 골짜기에 이르러 노인이 소리를 치니까, 호랑이가 떼를 지어 내닫는다. 노인은 이들과 같이 뛰면서 발로 꼬리 밑부분을 정확하게 밟는다. 그럴라 치면 호랑이는 내닫던 여세로 달리고 꼬리는 밟혔고, 몸뚱이가 얼굴의 가죽 얇은 부분을 뚫고 튕겨져 나간다이렇게 하기를 한동안! 등에 땀이 촉촉히 배도록 운동을 하고 나더니 좀 쉬잔다. 호랑이가 벗어던지고 간 가죽을 주워 모으니 10장이 넘는다.

  "날가죽이라 한 짐 잘 될 걸세. 슬슬 내려가려나?"

  저쪽 산기슭으로 호랑이 떼가 놀고 있는데 색깔이 진하질 못하고 희뿌옇기만 하다.

  "작년 가을 늦게 벗긴 놈들이야. 한 일년 더 있어야 쓸 만할 걸세. 이렇게 길러두면서 벗겨야지! 그리고 쫓을 때 꼬리 밑을 바짝 밟아야지 중간 안으로 밟으면, 꼬리가 잘라지는 바람에 저놈이 어디쯤 가 죽어서 찾기도 힘들고 찾아내야 값이 안나가."

  새로 벗긴 가죽이 마르기를 기다려 둘은 호피 짐을 지고 산을 내려왔다.

 

    공술이나 얻어먹으러 다니는 친구

  음식 끝이면 꼭 따라다니면서도 제 차례 됐을 때는 한잔 낼 줄도 몰라 '뻔뻔한자식'이라고 친구들 사이에 돌림을 당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어느날 역시 공술이나 얻어걸릴까 하고 집을 나섰는데 아무 녀석도 눈에 안 띈다모였을 만한 데를 다 더듬어도 없다. 그러자 동리에서 뚝 떨어진, 겨우내 파도 길러내고 채소 싹도 틔워내고 하는 움이 비어 있을 것이 생각난다.

  "옳지! 이놈들이 나 모르게 필시 게 가 모여들 있을 것이다."

  찾아가 보니, 과연 모두가 모여서 한판 차렸는데 푸짐하다. 개도 삶아놓고 술을 동이로 거르고.....

  그런데 이상도 하다. 호랑이 한 마리가 움뚜껑 열어놓은 데로 우두커니 들여다보면서 쭈그리고 앉아 있다.

  이 친구 어디서 그런 용맹이 났던지, 비호같이 달려들며 그놈을 차서 움 속으로 들이뜨리고 뚜껑을 닫아버렸다. 사람들은 대낮에 뛰어든 호랑이에 놀라고, 호랑이는 사람 여럿 틈에 들어 어쩔 줄을 몰라 세로 뛰고 가로 뛰고 한다때를 보아 문을 열어주니 호랑이는 살 길이 트였다고 내뛰어 달아나고, 사람들은 그놈이 가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술판이고 음식판이고 엉망진창이다. 그런데 얘기가,

  "호랑이가 들어왔을 적에는 그냥은 안 갔을 거고, 누군가 물려갔을지 모르니 우선한번 세어 볼 거라고..... 하나 둘 셋 넷....."

  누가 세어도 하나가 모자란다. 큰일이다! 그 하나는 누구일꼬?

 

    어떤 포수의 솜씨 자랑, 담력 자랑

  어떤 포수가 솜씨 자랑, 담력 자랑이 대단했는데, 한번 호랑이를 맞딱 뜨리고 보니 정신이 아찔하다.

  한 발 가웃이나 되는 놈이 양지 바른 잔디 언덕에서 실눈을 뜨고 내려다보는데, 발이 땅에 딱 붙고 오금마저 떨어지지 않는다. 그만 무릎을 털썩 꿇으며 총을 앞에다 가로놓고 두 손을 짚었다.

  "그저 꿩 마리나 잡으러 다니는 그런 포수올시다."

  호랑이는 그 창대 수염을 쫑긋하며 만족한 듯 빙싯 웃었다.

  "그놈 한번 쩨쩨하다."

  사리를 차릴 줄 안다는 얘기다.

 

  봄철 일 없을 때, 곰이 겨울잠을 자고 있는 굴에다 불을 땐다. 냄새에 코가 따가워 이놈은 어슴푸레 잠이 깨서 어정어정 나온다마침 문 앞에 섰다가 창을 들이대며 소리를 친다.

  "창 받아라, 이놈아!"

  곰은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며, 두 손(앞발)으로 창열을 거머진다. 그러고부터는 밀 필요가 없다. 반대로 잡아당기는 것이다. 이놈이 지지 않으려고 창날이 제 가슴에 꽂혀드는 것도 모르고 잡아당긴다. 계속 줄다리기로 끌어당기면 결국 곰이 이겨서(?) 창끝은 곰의 가슴 깊숙이 박히며 일은 끝난다. 그러기에 속담에도 있다.

  "곰 창열 당기듯 한다."

 

    이것이 바로 꿩먹고 알먹고라네

  봄날 곰이 새끼를 낳으면 종종종종 줄지어 데리고 산책을 나온다. 그리곤 개울의 돌을 쳐들고 서서 새끼들이 가재 뒤져 먹는 것을 대견스럽게 들여다본다그때

  "이 미련한 놈아!"

하고 소리쳐 부르면 욕먹은 게 분해(?) 휙 돌아다 보면서 돌을 놓는다. 이리하여 그가 돌아간 뒤 새끼곰들은 사람의 몫이 된다또 바가지에다 벌집을 통째로 뜯어서 담아 나무 밑에 놓고, 그 위로 큰 바위를 동앗줄로 달아놓으면 곰이 새끼들에게 먹인다. 그릇을 집어낼 줄은 모른다. 위를 덮은 돌이 귀찮아서 머리로 떠다미니 이것 보게! 밀려나네! 마악 꿀을 뜨려는데, 바위가 반동으로 되돌아오며 곰의 머리통을 친다. 이게 뭐야? 그제부터 곰은 이 바윗돌그네하고 싸운다. 받아넘기고 맞고, 맞으면 화가 나서 저만치 밀고.....

  그날 곰의 가정은 어른을 잃고 고아가 된 새끼들은 어미 죽인 사람에게 붙잡혀서 자란다. 절구질도 하고 연장방아도 끌고, 놈은 가르치는 대로 열심히 일하게 된다

 

 

  백두산 곰 사냥꾼이 쇠로 공을 만들어 사면팔방으로 밤송이처럼 10정도의날카로운 쇠꼬창이를 꽂아 붙인다. 다루기 힘드니까 끈을 달아놓으면 갖고 다니기에도편리하다.

  곰을 놀래주면 화가 나서 사람처럼 벌떡 일어선다. 이때다.

  "옛다, 받아라!"

  예의 쇠공을 곰 얼굴을 향해 힘껏 던져준다명 캐처인 곰은 두 손으로 그것을 힘껏 받아 잡는다. 쇠꼬창이 중의 몇몇 개는 곰의양 손등까지 꿰뚫고 나와서 두 손을 합장한 모양이 되며 자유를 잃는다. 원하는 장소면 어디로든지 마음대로 데리고 다닐 수가 있게 된다.

 

 

  어떤 사람이 사냥을 갔다가 총알이 꼭 하나 남았는데 멧돼지를 만났다. 그런데 겨냥을 하면서 보니, 멧돼지 눈길이 뭔가에 겁에 질린 형용이라. 그래 자세히 보니 바위 위에서 호랑이라는 놈이 노리고 있다. 금방이라도 덮쳐올 기세라, 이쪽사람한테는 정신을 못 쏟는 것이다포수는 이를 보고, 단방에는 죽지 않을 만한 급소를 겨냥해 쏘았다.

  "아흥!"

  불을 맞은 호랑이는 죽을 힘을 다해 멧돼지를 덮쳤다. 웬만한 습격이면 곧장 대항하는 게 멧돼지건만 워낙 무서운 공격에 단방으로 당했다그래서 포수는 하나로 호랑이와 멧돼지라는 커다란 수확을 얻었다. 소위 이이제이라는 것이다.

 

 

    술독에 빠진 멧돼지

  산중 적당한 곳에 독을 기울여뜨려 묻어놓는다. 그 안에 한 반쯤 자갈을 채우고,그것이 질척질척하도록 술을 부어놓는다.   멧돼지란 놈이 술냄새를 맡고 찾아온다. 자갈 속에다 코를 박고 힘들게 힘들게 그술을 마신다. 좀더 좀더..... 그러다가 취해서 잠이 들어버린다이렇게 됐을 때 찾아가면 멧돼지는 어슴푸레 잠이 깨며 뒷걸음질쳐 나오려고 무진애를 쓴다. 그러나 술이 취해 몸놀림도 굼뜬데다가 들여디뎠던 앞발은 미끄러지고미끄러지고..... 그래 술취한 기분 그대로 사람 손에 잡히는 것이다.

 

 

  여우란 놈은 단 것을 좋아한다. 참외밭에도 제일 잘 익은 것만 골라가며 파먹는다시설이 하얗게 뿜은 곶감은 여우가 특히 좋아하는 거다. 그거 여남은 개만 있으면여우를 잡을 수 있다.

  우선 곶감을 실에 꿰어 여우가 다니는 길목에 나지막하게 매달아둔다. 의심 많은여우는 처음에 여러 번 망설인다. 그러다가 결국은 따먹는다아무 위험도 없다.

  여우는 우선 경계를 않는다. 이렇게 해서 사날 동안에 서너 개를 먹인다. 결국 못견디도록 맞들이는 수작이다.

  다음번에는 조금 높이 매달아둔다. 그러면 앞발을 들고 일어서서 따먹는다. 다음날조금 더 높이 달아 매면 간신히 뒷발로 서서 따먹는다마지막 날에는 튼튼한 끈에 삼봉낚시라고 3면으로 갈고리가 달린 큼지막한 낚시를곶감 속에 꿰어 싼다. 그리하여 깡충 뛰어올라야 따먹을 만한 높이로 매달아둔다.

  그 다음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상상에 맡긴다.

 

    발 끝이 나무통에 박히면 끝장

  산중에 사는 동물은 염분이 부족하다. 그래 염분(실제로는 염분이 많이 든오줌버캐)을 핥으러 인가로 내려왔다가 곧잘 사람 손에 잡힌다사람들은 이 사정을 아는지라, 붉은 진흙을 수박만하게 몇 개 뭉쳐 오줌에담갔다가는 말리어 소금버캐가 허옇게 내뿜도록 만든다사슴이 다니는 길목에 저들 발이 들어갈 만한 짤막한 나무통에 50--60되게 끈을달고, 그 끝에 또 50-60되는 몽둥이의 중간을 묶어 달아서 여러 개 놓아둔다. 꼭얼어 부푼 것처럼 붉은 흙을 두껍게 펴서 가리고, 예의 오줌에 절은 흙덩이 몇 개를그 위에 내굴러둔다.

  사슴들이 냄새를 맡고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와 다투어 이 흙을 핥는데, 이놈이둥글둥글 구르는 통에 자연 온 마당을 굴리며 헤매게 된다그러다가 가느다란 발끝이 나무통에 박히는 날이면 끝장이다.

  의심이 벌컥 나서 내달리면 끈에 달린 몽둥이가 쫓아오며 때린다. 빨리 뒤면 뛸수록더 자주 때린다. 그래도 오도 가도 못하고 섰다가 사람 손에 잡히는 것이다아름다운 먹이 끝엔 언제나 목숨을 노리는 덫이 기다리게 마련이니, 이것은인간생활에서도 매한가지다.

 

 

      맏며느리가 먹어버린 복

    옥황상제 마나님의 부지깽이 때문에

  어떤 사람이 살림이 간구하여 이에서 신물이 날 지경인데, 하루는 길을 가다가 이상한 물건을 하나 주웠다. 비단 주머니에 넣은 수가 필연코 귀중한 물건인 모양인데 꺼내 보니 빨강부채와 파랑부채가 하나씩 들어 있을 뿐이다.   빨강부채로 얼굴을 부치며 얼마쯤 가다가 우연히 얼굴에 손이 갔는데, 얼굴을 더듬어보니 이런 변이 있나? 코가 두어 치 높아 있다질겁을 해서 나무 밑을 찾아가 앉아,

  '부채 때문에 그런가?'

하고 다시 부쳐보았더니, 정말로 부채로 부칠 적마다 코가 조금씩 자란다.

  '이거 큰일났구나!'

하고 파랑부채를 꺼내서 부쳐보았더니 조금씩 줄어든다. 얼마쯤 부치니까 정상적인 코가 된다. 부채 주머니를 품에 넣고 돌아오며 곰곰이 생각한다.

  '확실히 신기한 부채다. 이걸 가지고 살림이 좀 필 방도는 없을까?'

  그러는데 문득 의견이 떠오른다.

  "옳다! 그렇다."

  그 길로 건넛마을 김 부잣집을 찾아갔다. 주인을 만나 이런 애기 저런 애기 한참주고 받으며, 낌새를 보아가며 빨강부채질을 해주는데 주인은 알 턱이 없다. 어지간히 두어 치 높이나 된 것을 보고는 점심 먹고 가라는 것도 사양하고 집으로 돌아왔다이튿날이 되자 아니나 다를까, 소문이 전해오는데 김 부자가 병이 들어 몸져누웠다는 것이다. 아프지는 않지만 갑자기 코가 기다랗게 두어 치나 높아져 창피해 누굴 만날 수도 없고 그냥 실심해 앓는다는 것이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도 며칠을 기다리려니까 다시 소문이 들려오는데, 이 병만 고쳐주면 자기재산의 반을 갈라주겠다는 거다. 그래 의원이다, 무당이다, 판수들이 드나드는 모양이지만 제놈들이 고칠 턱이 있나?

  또 사날 있다가 파랑부채를 들고 찾아갔다. 그래 정말 반 갈라줄 것인가를 확인한 뒤, 무얼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약을 주어 먹게 하고 두어 군데 뜸을 뜨고는 눈치 안채게 부채질을 몇 번 해주고 돌아왔다.

  이튿날 아침이 되니까 나귀하고 하인을 보내 모셔간다. 당장 효험을 봤는데 안 그럴수가 있나? 김 부자 코는 날마다 두어 푼씩 줄어들어 근 보름이나 걸려서 제대로 돌아왔다.

  김 부자는 좋아 어쩔 줄을 몰라하며 잔치를 벌여 치하하고 약속대로 재산의 반을 갈라주었다. 그래 우선 날아갈 듯 집을 하나 잘 짓고 노복을 사들여 농사를 시키고 지내니 저의 할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하루는 심심한 김에 어디 어떻게 되나 보리라고 후원 정자에 번듯이 드러누워서 빨강부채로 무한정 부친다. 코가 점점 자라더니 더욱 속도를 빨리해 천장에 닿는다. 그래도 계속 부치니까 복국을 뚫고 기와를 헤치고 올라가는데, 팔이 아프거나 말거나 계속 부친다코끝이 척척하고 써늘한 수가 구름을 헤치고 올라가는 모양이다. 그러고 얼마 더올라가더니 껄쭉껄쭉한 데를 뚫는다. 이건 코가 자라다 자라다 하늘나라 옥황상제의 부엌에 쌓은 나뭇더미를 쑤시는 것이다마침 옥황상제의 마나님이 영감님 점심을 차리노라 부엌에 있는데 나뭇단에서 버석거린다. 쥐가 그러나 하고 부지깽이를 가지고 푹 찔렀더니 공교롭게 코끝을 가로질러 꿰어버렸다.

  코끝이 따끔하다고 느꼈는데, 이제는 더 올라가지를 않는지 중간에서부터 휘우뚱해진다.

  '이제 그만 올라가려나 보다.'

  이번엔 파란부채를 꺼내 부치는데, 얼마 안 부쳐 구부러졌던 코가 팽팽해진다. 그러더니 팽팽하게 켕긴다. 이어 몸이 땅에서 뜨는데 어째 무시 무시하다. 그렇거나 말거나 계속 부치니까 몸이 계속 달려서 올라가는데 정자지붕을 부수고 하늘까지 매달려 올라간다하늘나라에서는 상제 마나님이 아궁이에서 부지깽이를 찾다 생각하니,

  '이런!내 정신이 있나? 아까 여기 꽂은 것을.'

하고 쑥 잡아뽑았다. 매달렸던 부지깽이가 빠졌으니 사람이야 어찌 되었겠나?몇 번공중에서 돌며 땅을 향해 떨어진다.

  "야앗,사람 살류웃."

  외마디 소리를 치는데, 어둠 속에서도 마누라의 들여다보는 얼굴이 보인다.  "가위 눌리셨소? 웬 소릴 그렇게 지르셔?"하는데 손을 들어 만져 보니 모기가 물었는지 코끝이 그저 따끔거리고 전신이 식은땀에 푹 젖어 있었다.

 

 

    색시에 돈까지, 꿈이냐 생시냐

  어떤 시골 선비 하나가 서울 구경을 왔다가 갑자기 비를 만나 어떤집 대문간 추녀 밑에 들어서서 비를 피했다. 곧 그치려니 하였던 것이 제법 소리치고 오니 이거 탈났다날은 어둑어둑 저물고 집집에서 저녁 짓는 연기마저 난다. 대문을 닫으려고 나왔던 여인이, 사람이 섰는 것을 보고 그냥 덜커덕 닫아버리기가 미안하였던지 안엘 들어갔다가 나오더니 말을 건넨다.

  "어디서 오신 선비님이신지, 위에서 오는 비보다도 튀는 흙물에 옷 버리시겠습니다. 잠깐 중문간에라도 들어서십시오."

  마지못해 들어서 있으려니, 또 나와 말한다.

  "비가 어디 금방 그치겠습니까? 어차피 비가 그치야 가실 것이니, 옷도 말릴 겸그냥 잠깐 들어앉으시랍니다."

  몇 번 사양하다가 들어오라는 대로 따라 들어가보니 크도 작도 않은 집인데, 안대청에다 돗자리를 펴고 기어이 올라 앉으란다.

  이내 장국상이 나오는데 음식이 정갈하길 이를 데 없고 곁상마저 따로 있다. 이어안방문이 바시시 열리더니 주인 여자가 나타나는 모양이다. 선비 체면에 빤히 쳐다볼수도 없고 앉은 자세만 고치며 어리둥절한다. 그러는데 가까이 다가오며 말을 건넨다.

  "이거 이런 누추한 델 들어오시라고 해서 죄송스럽습니다. 남녀가 유별한데 인사는아니올시다마는 우선 약주라도 한잔....."

  점점 어쩔줄 몰라 하다가, 그런대로 한 잔을 받아 마시니 제법 준열한 게 향취가진동한다.

  여인이 앵두 같은 입을 열어 일변 신상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일변 권한다. 처음엔절에 간 색시같이 웅크리고만 있던 선비도 이제 제법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과 동정의말로 위로도 할 만큼 되었다.

  자기는 친정붙이도 별로 없고, 어느 부자 역관의 부실로 들어와 어린아이 하나 없이그만 영감이 덜컥 죽어 이렇게 청상과부가 되어 있는데, 사방에서 별별 사람이 다찾아와 중매도 서고 통혼도 하건만, 몇 군데 합당한 듯하여 수소문해보면 모두가그놈이 그놈이더라는 거다.

  이만한 집에 남에게 꾸러가지 않을 만큼은 산다고 하니까, 두 불알쪽밖에 없는맨건달 아니면 협잡놈들이 재산을 탐내 덤벼드는 것들이라, 그 손에 걸려들었다가는 신세를 조질 판이라 일구월심에 신세 한탄만 해왔다는 거다.

  순직하고 어수룩한 시골 사람한테라도 의지하여 소실이라도 좋으니 일생 변하지않을 자리라면..... 하고 생각하던 차, 마침 비에 막혀 계신 분이 있다기에 중문간에들어서시게 일러놓고 자신이 벌써 선까지 보았다는 얘기다.

  그러는 중에 아까 그 여자 하인이 방에 촛불을 밝히고, 마루는 비끝에 선뜩하니들어앉아 말씀들 하시라면서 달리 상을 보아 들여온다이제는 죽든 살든 당신한테 맡긴 몸이라고 대드는 거라. 무어 굳은 지조가 있는것도 아니요, 불감청이나 고소원이라고 신정을 이루어 첫날밤을 고이 지냈을 것은물론이다.

  이튿날 날도 훤히 들고 하였는데, 아침 후 새 의관을 말숙히 내입히며 대장부가갑갑하게 안에 들어박혀 계시기도 뭐하실 게니 나아가 소풍이나 하시라면서 용돈을두둑이 쥐어주며 배웅을 한다.

  꿈이냐 생시냐, 나 같은 행운아가 어디 다시 있으랴. 행복감에 젖어 신바람이 나서골목을 나섰다.

  황학정에 올라가 활쏘는 것도 보고, 인력거를 달려 원각사에 가서 구경도 하고,촌놈이 처음으로 맛난 것도 사먹고 하였어야 준 돈의 10분의 1도 못쓰고돌아오려는데,

  "아차차차, 골목을 외어두지 않았구나!"

  다른 곳 아닌 열두 다방골이라는 시중 한복판에 문패도 번지수도 없던 시절이라, 이집엘 가서 기웃거려 봐도 그 집이 그 집 같기도 하고, 이렇게 하기를 며칠을 하니사람의 꼴이 말이 아니다.

  눈이 칠십리는 들어가 가지고 고향길을 내려가는데, 그 전에 왔던데 같기도 하고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 길로 몸져 누워 이내 회생하지 못하였으니, 오호라.  <명심보감>에도 갑작스런 부귀는 상서럽지 못하다고 하였거니.....

 

  

  글 배웠다고 어디 더 잘사나

  어떤 시골 사람이 있는데 행세는 지낼 만하다아버지가 늙어서 병이 들었다. 일가 어른들이 약을 지어다 써야 하지 않겠느냐고들 하여 약국엘 가더니 빈손으로 돌아왔다.

  "왜 약은 안 지어 가지고 왔니?"

  "가 보니까 약국장이가 건을 쓰고 있는걸요 뭐."

  "!?"

  "제놈이 병 고칠 줄 알면, 제 어미 아비 죽게 내버려 뒀겠어요?"

  결국 아비가 세상을 떠났다산소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여 지관을 부르러 보냈다. 또 빈손으로돌아왔다.

  "왜 그냥 왔니?"

  "가 보니까 지관이라는 게 오막살이에 살고 있는걸요."

  "? 오막살이에 살면 안되니?"

  "제놈이 복받을 자릴 잡을 줄 알면, 저 부자될 자린 왜 못 잡아요?"

  나중에 자식을 낳아 글을 가르치니까,

  "글 배웠다고 어디 더 잘삽디까? 저 건넛마을 선생 꾀죄죄한 꼴 좀 보슈."

  그래 그냥 촌무지렁이로, 그러나 제딴엔 행복하게(?) 지내더란다.

 

    장텃길 한 행보에 황소가 한 마리

  어떤 선비가 밤낮없이 책만 읽고 있고, 부인이 길쌈을 해서 살림을 꾸려가고있는데 보기에도 딱해 남편을 집에서 내몰았다.

  "거저라도 좋으니 시장이나 한 행보 다녀오시구려."

  하는 수 없어 길을 나섰는데, 길에 웬 방울 하나가 떨어져 있기에 주워서 달랑달랑흔들고 가려니까 저쪽에서 매사냥꾼이 오다가 보고 그 방울을 팔라고 한다매에는 방울을 달아야 사냥할 때 편하다. 그래 덜거기(장끼의 사투리) 한 마리와 바꿔서 들고 가는데, 어떤 사람이 도끼를 들고 오다가 보고 어머니 병환에 약으로 쓰겠으니 바꾸자고 한다해로울 것 없어 바꿔서 들고 가는데, 이번에는 오라지널(두 치 두께나 되는 좋은 관재)을 지고 오던 사람이 널과 바꾸자고 한다그 널을 지고 가려니, 한 사람이 나서서 호소한다.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관을 짜야겠는데, 갑자기 당한 일이라 널 준비가 없으니 값은 달라는 대로 드릴 테니 그걸 주고 가십시오."

  대답할 새도 없이 소 한 마리를 끌고 와 고삐를 쥐어준다. 해질녁에 그것을 몰고 돌아오니 부인이 좋아서 달려나오며,

  "그것 보슈. 내 뭐랬소?"

 

  어떤 사람이 장에 갈 길에 풀섶에서 뒤를 보는데,좋은 칡이 줄기차게 뻗어 있어서일어나는 길로 거두어나갔다.

  이놈이 어찌나 잘 뻗었던지 잎을 따고 사래로 틀어 팔에 걸고 가는데, 한 사람이묻는다.

  "그 칡 참 좋다. 내 이 키하고 안 바꾸시려오?"

  키를 팔러가던 사람하고 바꿔서 키 한 짝을 덜레덜레 들고 가려니까 이번에는 길가방앗간에서 부른다.

  "쌀 한 말 드릴께, 그 키 우리 주고 가시오."

  쌀 자루를 메고 가는데, 한 사람이 왼손에 매를 받쳐들고 오다가 보고 그런다.

  "이 매를 드릴꼐, 그 쌀 나 안 주시겠소?"

  해로울 것 같지 않아서 선뜻 바꿔 가지고 오는데 저기서 누군가가 큰 황소를 몰고오다가 보고 묻는다.

  "내 이 소 드릴께, 그 매 나한테 넘겨주지 않으시려오? 아버지가 매 사냥으로 소일을 삼으셨는데, 그놈이 죽은 뒤로 무척 무료하게 지내시기에 그럽니다."

  '이제 장엘 가서 뭘 해.'

  그래서 소를 바꿔가지고는 집으로 몰고 돌아왔다.

   

맏며느리가 먹어버린 복

  어느 부잣집에 단골로 다니는 술객이 있었다. 관상도 보고, 궁합도 맞출 줄알고, 택일도 하고, 지관 노릇도 하는 그런 사람이다자세히 보니까 그 집에서 기르는 복슬개의 복으로 잘사는 것이라, 어느 여름 찾아가 개고기 먹기를 소망하였다사람좋은 주인은 그의 뱃속을 알 길이 없어 그 개를 잡아서 같이 먹기로 하였다복을 빼앗자는 것인데 같이 먹어서야 소용이 있나? 그래 개의 날간이 좋다더라고 그것 좀 먹자고 하였다. 비위가 역해 대개는 안 먹고, 특별히 바라는 사람이 있으면 먹게 주는 그런 물건이다그랬더니 그 집 맏며느리가 먹어버려서 없다고 한다. 술객은 속으로 쓴웃음을지었다.

  "임자 있는 복은 어쩔 수 없군!"

  난리가 나서 왜놈이 쳐들어온다니까, 삼형제가 앉아서 피난할 공론을 했다. 맏이부터 차례로 하는 말이다.

  "콩밭에 가 숨은들 내 한몸이야 못 숨길랴구?"

  "나는 둔갑장신하는 술법을 쓰니까 염려없어."

  셋째는 유들유들하게,

  "당해봐야 알지, 미리 걱정해 뭘해?"

하고들 헤어졌다정작 왜병이 들이닥쳐 각각 말한 대로 했는데, 맏이는 군마를 풀어놓고 뜯기는 바람에 들켜서 총살을 당했다둘째는 모처럼 술법을 써서 다른 것으로 변신을 했는데 적장 중에 그것을 투시하는 자가 있어서 이마저 붙잡혀 죽었다셋째는 집에 있다가 붙잡혔는데, 방위로 보아 생문 방에 있는 사람을 죽이면 패전한다는 설이 있다며 놓아주어서 살아남았다 한다.

 

    찜보를 마당에 팽개친 사연

  어떤 양반이 뒤끝에 벼슬 한자리 얻어 하려고 몇 군데 대감댁엘 드나들다 보니 그동안 벌지 못해서 손해요, 똑똑히 갖다바친 것도 없이 살림은 거덜이 났다이제 낙향해 땅이나 파야겠다 체념하고 마지막 인사차로 그분들댁을 찾았다첫번 집에서 식사나 하고 가래서 상을 받아 얌전하게 먹었더니, 남자답지 못하게먹는다고 트집이다. 핑계로 발을 끊게 하려는 수작이다다음 대감집에서는 앞서 일이 있는지라 푸짐하게 먹었더니, 이번에는 교양없는사람이라고 딱지를 놓는다마지막 대감집에서는 상을 내왔는데 조기찜이 놓였으니 제법 갖춰 차린 상이다.찜보를 들어서 마당으로 팽개쳤다.

  "곱게 먹어도 트집, 탐스럽게 먹어도 야단이니, 나 이놈의 거 안 먹으려오."

  대감이 의아하게 여겨서 물으니, 그제서야 자기 신상얘기를 자세하게 했다. 대감은잠자코 다 들은 뒤, 두 군데 대감과 상의해 한 자리 시켜 주더라는 것이다.

 

 

    유도신문

  일꾼들이 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주인집 부인네들이 점심밥을 이고 나왔다. 밥담은 함지 덮은 것을 보고 사나이 하나가 물었다.

  "아지마이, 이거 고쟁이로 덮었지 않소?"

  "새 건데 어때요?"

  그래도 좀 꺼림칙하게 여기며, 덮었던 것을 추켜들고 말을 이었다.

  "밑이 좀 된 것 같다이."

  "입었을 땐 그닥지 않습디더."

 

 

    뒷간에서 팥죽 들고 마주쳤으니

  가난이 유죄라, 어려운 가정에서 며느리더러 팥죽을 쏟아서 잘 두랬더니, 쏟는 데무슨 죄가 있으랴!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쏟고, 저 그릇에서 이 그릇으로 쏟아 됫박질을 하는 동안그릇에 묻은 것을 매번 핥아먹었더니 다 없어지고 말았다. 어른 이르신 대로 했을 뿐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팥죽을 쑤었기에, 시아버지가 먼저 한 그릇 더 먹을 양으로 뒷간에 가서 몰래 먹고있었다. 옛날 뒷간은 재를 모으고 거기에 변을 보아 모으던 것이라, 냄새가 요새처럼심하지 않다.

  며느리도 아무도 안 보는 사이에 한 그릇을 더 먹을 생각에 팥죽을 바가지에퍼가지고 뒷간에 갔다가 맞부딪혔다. 얼떨결에 그릇을 내밀면서 말하는 것이다.

  "아버님 팥죽 잡수셔요."

 

  경상도의 양반 하나가 거드름을 피면서 하는 소리다.

  "양반이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옳은 음식을 먹어야지. 국수니 풀떼기니 옳지 않은음식을 먹을 수야 있나?"

  그러고 앉았는데 점심으로 안에서 국수상이 나왔다. 배는 고픈데 아니 먹을 수도없고, 아까 말을 번복할 수도 없다.

  "! '노죽'인고? 맛있게 들겠네!"

  노끈같이 달려오는 죽이라는 뜻이다.

 

  어려워 매일 죽이나 쒀먹는 집안에서의 일이다. 조석이 맛있을 리가 있나?

  "내가 아 할께, 네가 좀 떠넣어라."

  "너희들도 서로서로 떠넣어 주며 먹으렴."

 

    곶감국은 토장에 끓여야 제맛?

  가장 가짓수 많은 밥상을 받기가 소원인 시아버지가 있었다. 큰동서에게 이 얘기를들은 새며느리가 한상 푸짐하게  차려올린다고 했는데, 상에 놓인 것은 별 게 아니다.

  "이거 뭐 몇 가지 되는고?"

  "아니옵니다, 아버님! 백 가지나물에, 열 무김치에, 쉰 두부찌개에 진지는 오조밥이니, 모두 하면 몇 가지라구요! 어떻게 그 이상을 바라십니까?"

  "?!"

 

  지금은 여러 모로 별별 음식이 다 보급이 됐지만, 전 같으면 제 동네 소산 아니면 먹어보지 못하는 수가 많았다.   어떤 사람이 초대를 받아 가서 처음 보는 음식을 이것 저것 먹어보던 중, 가운데 놓인 것이 시원하고 단맛이 나는데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옛말마따나 집에 가서해 달래 먹으려는 거다. 곁의 사람을 보고 물으니, 이 친구 짓궂게 수정과를'곶감국'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러고 보니 참 곶감이 들어 있다.'

  집에 돌아와 정말로 끓여달래 보니 제맛이 안 난다. 음식 솜씨가 모자라 그런가?

그래 동네 안에서 제일 유식하다는 집강 샌님을 찾아가 여쭈어 보았다나이를 먹어 놓으니까 속에 능구렁이는 들어서,

  "무슨 장에다 끓였던가?"

  "맑은 장국으로 끓였습죠."

  집강 샌님은 담뱃대를 뽑으며 수염을 한번 쓰다듬어 내리더니 점잖게 말한다.

  "내가 죽으면 누가 집강을 볼꼬? 이 사람아, 그건 토장에 끓여야 하느니."

 

  젊은 양반이 어찌 된 일인지 양기가 말이 아니어서 부인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가정이 있었다.

  하루는 탁발승이 찾아와 동냥을 청하기에, 부인은 하얗게 씻은 쌀로 시주를 하고 저녁을 대접하여 자신의 불만을 넌지시 말하였다눈치 빠른 승려가 알아차리고, 저녁 반찬에 머귀가 놓인 것을 보자 그것이 많으냐고 묻는다. 집 둘레에 모두 심어서 무진 많다고 했더니 이튿날 떠날 때에 일러준다.

  "머귀는 모두 손 안 닿게 강 건너로 옮겨 심고, 대신 부추를 그 자리에 심어서 끼마다 잡숫게 하십시오. 두고두고 소승 말씀하게 되실 겁니다."

  그 뒤 과연 그 승려의 고마움을 부부가 같이 일컫게 됐다. 그래서 부추는 '정구지'라 쓰고, 머귀는 '월강초'라 쓰게 됐다는 것이다.

 

 

    사랑채 헐어야 해

  어떤 청년 둘이 세상도 구경할 겸 무전여행을 나섰다. 식자도 제법 있고 힘도 넉넉하며 살림도 남부럽지 않건만, 너무 편하게 지내면 사람 버린다고 일부러 고생을사서 하려고 나온 것이다.

  어느 집에 하룻저녁 과객으로 들렀더니 자고 가라고는 하나 과히 반갑지 않은눈치다. 사랑에서는 선객으로 그 집 사돈이라는 작자가 있어 저녁을 겸상으로내오는데 한번 푸짐하다. 이어서 개다리소반에 국밥하고 김치 하나 놔서 내오니,이것은 과객들 먹으라는 것이다. 그런것쯤 애당초 각오하고 나선 길이라, 둘이는 배포유하게 그 밥을 맛있게 먹어치웠다이튿날 아침 세수를 일찍 마치고 앉았다가 먼저 내오는 상을 받아놓고 마구퍼먹었다.

  "저희는 갈 길이 바빠섭쇼."

  과객 상을 내올 순 없고 얼마를 기다려서 차려내오는데, 자기네들 것에 대면 말도안된다. 주인은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뇌까렸다.

  "사랑채 헐어야 해."

  워낙 건장한 사람들이라 푸짐한 그 상을 거뜬이 먹어치우고 뜰에 내려섰다. 갓하고웃옷을 사랑 담장에 벗어놓고 행전에 짚신 들매까지 가뜬하게 한 둘이는 주인의 상이나자 인사를 하였다.

  "지나가는 사람이 하룻저녁 잘 자고, 아침 잘 먹었습니다. 그냥 가기 미안해 좀도와 드리고 갑죠."

  힘 자랑 겸해 하나는 서까래를 잡더니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기와를 벗겨 댓개씩포개 내리던지면, 하나가 아래에서 받아쌓는데 서로 손발이 척척 맞는다. 새우 받은흙을 부욱 긁어 차니 부연 흙먼지가 쏟아져내린다.

  "사랑채 허시겠다고요? 좀 도와드리고 가야 인사 아니겠습니까?"

  주인은 다급하게 이들을 붙잡고 빌었다. 동네에서도 인심께나 잃었던 거겠지.모두들 입을 비쭉하며 웃는다.

  "사람 차별 너무 하더니, 꼴 조오타."

 

    그러기에 인심 박하게 쓰지 말아야

  어느 집 사랑에 다 늦게 과객이 들었다. 옛날 인심이 순후하던 시절에는 아무까닭없이도 지나가던 손이 찾아들어와 "하룻저녁 쉬어 갑시다" 하면 선뜻 그러라고들여앉혀 주는 것을 도리로 여겼었다. 핑계를 대어 거절하든지 하면 그 사람만을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고장의 인심을 욕하는 것이 통례였다.

  늦게야 과객이 들었으니 저녁 먹었느냐고 묻고, 안 먹었으면 더운 저녁은 몰라도찬밥이나마 끓여서 대접했어야 하는 건데 내버려 두었더니 이것 좀 보게무언가 "부르릉" 소리를 내며 날아와 문짝에 탁 부딪치니까, 이 과객이 문을 열고집어보며,

  "왠 풍뎅이야"

하고는 집어서 날개를 몰아 쥐어 뜯어버리고는 우지직우지직 깨물어먹는다.

  '별난 사람도 다 있다' 하는데 또 부르릉 탁, 그러면 또 문을 열고 집어서 쭉훑어서는 우지직 우물우물..... 그렇게 하기를 수십 번 하였으니 왠만큼 요기는되었을 것이다그렁저렁 밤이 깊어 마을 왔던 사람들은 자러들 가고 사랑 윗간에서 그냥 띠만 끄른채 목침을 베고 잤는데, 아침이 되어 모두 일어나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니까 이과객이 웃옷을 걸치고 일어서며 인사를 한다

  "하룻저녁 잘 재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녁도 안 주는 집에서 아침 식사인들 주랴 싶어 일찍 떠나는 것으로 보인다.그러는데 아랫목 벽장문 틈으로 구렁이가 대가리를 내밀더니 주르르 미끄러져 나온다.

  "이거 웬 때아닌 구렁이여?"

  모가지를 쥐고 다른 손으로 쭈욱 훑어서 허리에 두르고는 방문을 나가 옷을매만지고 다시 한번 웃는 낯으로 인사를 하고 휘적휘적 걸어나가는 것이다모두들 이 신기한 과객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는데,

  "이거 웬 뱀 껍질이여?"

  쓰레질 하던 머슴 아이가 문턱 밖에 무언가 수북이 쌓인 것을 보고 소리친다자세히들 들여다 보니 잘 여문 밤 껍질이 반질반질..... 이건 틀림없이 제사나 명절에 쓰려고 부엌 나뭇단 쌓아놓는 밑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두었던 그것이다. 버쩍 의심이 들어서 나뭇단을 치우고 보니 허룩하다. 이놈이 훔쳐다 먹은 거다.

  "그러면 구렁이는"

  벽장을 열고 보니 소 팔아다 둔 한발이나 되는 엽전꾸러미가 간 곳이 없다.

  "아차! 이놈마저 잃어버렸구나!"

했을 때는 이미 늦다. 그러기에 인심 박하게 쓰지 말라는 거여.

 

    정말 감옥은 담도 창살도 없지

  어떤 사람이 조령을 넘는데, 길가 밭에 참외가 누렇게 익어있고 지키는 사람도없다. 목 마르던 참이라, '이거 웬 떡이냐?' 가 아니라 웬 공거냐 싶어서 들어가 한개를 따서 까먹은 것까지는 좋은데, 돌아나올 길이 없다. 이리로 오면 돌담이 가로막고 저쪽으로 가면 그 쪽이 막혀 있고..... 그러는데 꼴짐을 지고 송아지를 몰고오던 총각이 그런다.

  "거긴 뭣하러 들어가셨어유?"

  들어와서 따라오라고 인도하는데, 그냥 훤하게 트인 길이다.

  "우리 할아버지가 쌓아놓은 돌담붙인데, 옛날 제갈량이 만들었다는 팔문금쇄진이라는 거라나유? 마음을 딱 가라앉히고 보면 나올 길이 훤하게 보여유."

  요새 시국 돼가는 꼴을 바라보면서 한번 되새겨 보고 싶은 얘기다. 어느 서부활극에서 들은 대사가 생각난다. 방랑자끼리 다니다가 부모를 찾아 헤어지게 되자 소년이 묻는다.

  "할아버진 이젠 어디로 가셔요?"

  "갈 데 있니? 형무소에나 가야지."

  "형무소는 어디나 높은 담과 쇠창살이 있나요?"

  "아니다. 정말 감옥은 창살도 없느니라. 제가 들어가 헤어나질 못하는 거지."

 

    몽촌대감 배 위에 뱀이 똬리 틀었네

  청풍을 관향으로 한 김종수라는 분이 있었다. 영조때 우의정에까지 오른 분인데, 이사이 올림픽공원이 들어앉은 송파구 몽촌에 근거를 두고 일문이 하도 번창하여서몽촌대신 가문으로 널리 알려져 스스로 별호까지도 몽촌이라고 했던 분이다그가 무슨 일로 죄를 져 남도로 귀양을 갔을 때 일이다. 귀양이라면 유배, 정배라하여 중앙에서 떨어진 어느 지역으로 지정해 내려보내면, 마치 일제하 요시찰인물모양 일정 간격으로 관청에 나와 얼굴만 내밀면 되던 것이라 그 지역 안에서의 생활은비교적 자유로웠다. 조정에서 고관을 다니던 분이라 귀양을 갔어도 그 고을 이방의집에서 숙식을 하였다. 하루는 무료한 끝에 시원한 마루방에서 낮잠을 즐기는데사고가 났다.

  건방진 놈도 있지, 커다란 구렁이가 하필이면 대감 주무시는 배 위에 올라가 사리고있는 것이다. 그냥 았다간 자칫 어른이 물릴 것이고 잽싸게 집어 팽개칠 재간도없고 모두 쩔쩔매기만 한다.

  그 집 13살 난 아들이 마침 통인(원님 가까이에서 심부름하는 총각. 흔히 사극에서사또 뒤에 쌍으로 서서 거행하는 어린이) 구실을 살고 있었는데, 이 아이가 대감점심상을 받들고 나왔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였다.

  요놈이 휭 하니 밖엘 나가더니 크고 먹음직스러운 개구리 몇 마리를 잡아다들이뜨리는 것이 아닌가?

  구렁이는 무슨 특별한 용무가 있어서 거기 그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스르르 똬리를 풀고 개구리를 아나서서 대감은 위기(?)를 모면하였다. 물론 그를 대견하게여겨 귀양이 풀려 돌아올 제 데리고 상경했는데, 신분이 낮아 벼슬은 못했을 거고제게 맞는 직분을 맡아 하며 잘살았을 것이다.

 

    춘향이 옥중에서 잠이 들 제

  춘향이가 옥중에서 잠이 어렴풋이 들었는데, 허수아비가 매달려 보이며 거울이깨지고 까마귀가 우는 야릇한 꿈을 꾸었다. 이 모두는 흉한 조짐들이어서 거울이깨지면 부부간 이별하고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고 하며 허수아비가 매달린 것은흡사 목매달린 것 같은 인상이다.

  지나가던 봉사를 불러 해몽을 시켰더니, 허수아비가 매달린 것은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볼 것으로 풀이하고 거울이 깨어지니 어찌 소리가 없겠는가? 옛날엔 구리거울이라 요새 유리거울보다도 깨어질 때 소리가 요란하다. 그처럼 세상을 한번 놀라게 할 것이오, 까마귀 우는 소리는 '가옥 가옥'으로 좋은 집 위에 좋다 하는 뜻으로 풀이하였다. 며칠 안 있어 이 도령이 암행어사로 내려와서 이 모두가 들어 맞은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유의 얘기는 상당히 많은데, 신라 때 임금 자리를 놓고도 이런 전설이 있다.

  신라의 제38대 원성왕이 즉위할 때의 이야기다. 그때의 선덕왕이 아파 위독한데그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당시의 법대로 왕실에 가장 가까운 귀족 중에서 다음 왕을뽑게 되었는데, 김주원이라는 이가 제1후보자고 그는 다음 차례라. 하필이면 이런 때이상한 꿈을 꾸었다.

  높은 사람이 쓰는 복두라는 관을 벗어놓고 대신 햐얀갓을 쓰고서 열두 줄 가야금을가지고 천관사라는 절의 우물로 들어가는 내용이었다으레 하는 대로 해몽한다는 사람을 시켜서 풀어보랬더니, 이런 해석이 나왔다.

  "복두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나 쓰는 것인데 그것을 벗어놓았으니 벼슬이 떨어질것이고, 가야금은 꼭 죄수목에 씌우는 칼같이 생기지 않았소이까. 그것을 쓰고 죄인의몸이 되어 옥에 갇힐 징조입니다."

  그러지 않아도 왕위 계승 때면 상대방이 그 자리를 노린다는 등 쓸데없이 헐뜯는사람이 생겨서 자칫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운 일이 많은데, 이것은 너무나 흉한해석이라 그는 일체 사람 만나는 것을 끊고 가만히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상대방에게 오해받을 만한 꼬투리를 주지 말자는 것이다그런데 아손 벼슬에 있는 여삼이라는 분이 찾아왔다. 으레 하던 대로 몸이 아파 못만나겠다는데도 굳이 만나자고 버티어서 할 수 없이 맞아들였다.

  그 분이 무슨 기색을 알아차리고 왔는지,

  "도대체 어째서 출입도 않고 사람을 만나려고도 하지 않으십니까?"한다

  숨길 수 없어 꿈이랑 해몽 얘기를 했더니, 일어나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세상에 없이 좋은 꿈인데 누가 그따위로 해몽을 합니까? 복두를 벗었으니내 위에 아무도 없다는 뜻이오, 하얀 갓을 쓴 것은 면류관을 뜻하는 것이고, 열두 줄가야금은 자손이 12대에 걸쳐 임금을 연달아 할 징조요, 우물로 들어간 것은구중궁궐, 즉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왕궁 안에 들어앉는다는 뜻이옵니다. 그 자리에오르시면 저를 저버리지 마셔야 합니다."

  들어보니 그럴싸하기는 하나 한 가지 염려가 없지 않다.

  "주원이가 내 윗자리에 있는데 그게 되겠는가?"

  여삼이 빙긋이 웃으며,

  "몰래 북천신(경주 북녁을 흐르는 내의 용왕)에게 빌면 무슨 수가 생길 것입니다."

  그의 말을 따라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데, 옛날 일이라 굿을 했을 것이고, 왕위를놓고 한판 겨루는 데 소홀할 까닭이 없다. 물론 다른 일에다 핑계를 댓겠지만 며칠동안 거룩하게 기도의식을 치루고 하회를 기다렸다얼마 안 있어 그 동안 오래 앓던 왕이 숨을 거둔 것은 별거 아니나, 그때부터 비가억수같이 퍼붓는데 그것도 연일 계속해서 내린다순서대로 김주원을 모셔다 왕위에 앉혀야겠는데, 북천 내가 벌창을 해서 건널방법이 없다. 내의 신이 잘 얻어먹은 값을 톡톡히 하는 모양이다그래 곧장 왕궁으로 들어가 용상에 앉아버리자, 주원에게 추종하던 세력도 모두몰려와 그의 발아래 엎디어 충성을 맹세하니, 원성왕은 이렇게 해서 왕위에 올랐다.

  날이 들고 냇물이 빠진 뒤에 주원이 건너와 보니 이미 새 임금이 들어앉아 자리가잡혀 있지 않은가? 공연히 어릿거려 봤자 이로울 것이 없어서 명주(지금의 강릉)로물러나 살았다 했으니 아마도 그 방면의 통치를 맡겨 보낸 모양이다. 그 곳에 눌러살아 갈릉 김씨의 조상이 되어 자손이 번창해 지금도 많이 사는데, 단종 때 생육신의한 분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동봉 김시습도 그중의 한분이다다른 얘기로, 어떤 선비가 서울로 과거를 보러갔다. 부인이 병을 들고 가다가 병목이 똑 부러지는 꿈을 꾸고 마음이 꺼림직하여 단골로 다니는 무당집을 찾아갔더니,원 무당은 없고 무당의 딸년이 그런다.

  "그거 생시의 일이 꿈에 나타난다고, 서방님이 목을 다치신 게 틀림없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질 않아서 맥없이 돌아오다가 어미 무당과 마주쳐 그 얘기를 했더니,

  "고런 발칙한 년이 어디 있습니까? 다시 가서 저의 집에 들어서는 길로 딸년의왼뺨을 때리면서 '요년 내 꿈 도로 내놔라' 그러십시오. 그러시고 나면 제가 다시풀어드립지요."

  그대로 하고 났는데 뒤따라 들어온 어미가 그런다.

  "병은 목을 들고 다니는 것인데 목이 부러졌으면 어떻게 들고 다니지요? 요렇게 두손으로 받쳐들고 다닐 거 아니겠어요? 서방님께서 과거에 급제하셔서 타신 가마를여럿이서 떠받들고 내려오는 중입니다. 빨리 돌아가 서방님 맞이할 잔치 준비나서둘러 하십시오."

  과연 그날 저녁 급한 기별이 오고, 이튿날로 거룩한 행차는 마당 앞에 당도하였다.

 

 

      뒤늦게 음양을 깨달은 사위

    술독에 빠진 새 신랑

  윗대부터 하도 술을 먹어서 골치를 썩이는 가문이 있었다. 그래서 술 못 먹는총각을 데릴사위로 맞아들일 생각으로 사읫감을 찾아 길을 나섰다어느 대동 앞 개울가에서 건장한 총각들이 모여 앉아 놀고 있기에 말을 걸었다.

  "이중에서 술 제일 못 먹는 사람이 누구인가?"

  "아이, 술 못 먹는 게 사람 축에 가요?"

  '이건 상대도 안되고...'

  "저는 딱 한 잔밖에 못해요."

  '잔도 잔 나름이지, 이것도 딱지다.'

  "나는 입에도 못 댑니다."

  "저는 밀밭 곁에도 못 간답니다."

  이때 한 총각이 머리를 싸쥐고 뒹굴면서 엄살이라,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술 얘기만 듣고도 취해서 정신을 못차리겠다는 얘기다. 매우 마음에 흡족해서 거주성명을 물어가지고 돌아와 중매를 놓아서 혼인을 성사시킨 것까지는 좋았다정작 혼인날 새신랑도 한잔 해야 한다고 이 놈이 주어서 한 잔, 저 놈이 주어서한 잔, 한 잔이 포개어 열 잔이 되고, 나중에 술이 술을 찾아 들이켜댔다밤이 이슥해 첫날밤을 차려줘야겠는데 사방 찾아도 신랑이 없다. 모두가 찾아 돌아다니는데, 광 술독에 누가 엎어져 있다고 해서 불을 밝히고 보니 신랑이다. 잔으로 주는 게 신통치 않아서 더 먹을 욕심으로 독을 찾아가 대가릴 쳐박고 죽어있더라고 한다.

 

 

    혼인한 지 하루 만에 아들을 낳으라니

  어느 집에서 식구들이 모두 하도 게을러 주인 영감이 끌탕을 했다.

  '어디서 성미 급한 녀석을 사위로 받아들여야지, 이거 그냥 속이 상해서...'  사랑 툇마루에 앉았으려니, 한 총각이 뒷간에 들어가려 짐짝을 내려놓고 허리띠를 끄르는데 뭉쳐서 잘 풀리지 않으니까 옆에 있던 낫으로 툭 끊고들어간다.

  '됐어! 저 정도는 돼야지.'

  "여보게 도령!"

  뒷간에서 나오는 총각을 붙잡고 말을 걸었다. 어디 살며 성명은 무어고 가정형편은 어떠냐며 꼬치꼬치 물으니, 볼멘소리로 되묻는다.

  "그건 왜 물으시오?"

  "내게 딸이 하나 있는데..."

  "그래요? 나를 사위로 맞아들이고 싶다, 이거죠?"

  "그러이."

  "지금 당장 예를 치릅시다."

  "이 사람아, 오늘이 섣달 그믐인데..."

  "아따, 늘어지기는..., 혼인 하나 정하는 데 이태씩 끌잔 말씀요?"

  '하긴 그래, 그놈 성미 한번 마음에 들었다.'

  즉일로 냉수 떠놓고 약식으로나마 예를 치르고 신방을 차려 주었다. 그랬더니 이튿날 새벽같이 욕설이 오가고, 딸년의 매 맞고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이 게으른 년아! 혼인한 지 이태 째나 되는데 아들 하나 못 낳는 년이 어딨어?"

  "!?"

 

    너도 처가에서 겨났니?

    머저리 사위가 있는데, 장인이 소를 사러 장에 갈 때 데리고 갔다. 소를 골라보래서 시원치 않으면 내을 작정이다. 색시가 그걸 알고 이것 저것 미리 일러줘 보냈다가서 적당한 소를 하나 입을 벌려 보고는,

  "아구창은 안 먹었군!"

  손바닥으로 볼기짝을 탁 치면서,

  "엉덩판도 널찍하고..."

  꼬리를 쳐들어보더니,

  "밑구멍도 도두 붙어서 새끼 잘 낳겠군! 장인, 이 소 사셔유."

  장인을 보니 소 고르는 수단이 제법이라, 그 소를 사서 몰고 온 뒤 내쫒는 것은 보류가 되었다.

  어느날 처숙모가 병이 나서 여러 날 되니 가서 위문하고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미리 색시나 만나고 갔으면 좋을 것을 잘난 체하고 그냥 갔다. 간신히 일어나 벽에 기대앉은 환자의 입을 비집어 보며,

  "아구창은 안 먹었군!"

  냅다 엎어놓으면서,

  "엉덩판도 널찍하고 밑구멍도 도두 붙어 새끼 잘 낳겠군!"

  그 소리가 득달같이 장인 귀에 들어갔으니 온전할 수가 있나?

  위문 마치고 삽짝께를 들어서는데,

  "임자식! 무어 어째? 새끼도 잘 낳겠다고? 썩 나가라, 임자식!"

  작대기를 둘러메는 서슬에 겁이 나서 도망을 쳐오다가 숨은 턱에 닿고 좀 쉬어갈 양으로 논두렁에 가 펄썩 주저앉았다. 마침 개구리란 놈이 물에서 나와 사람이 앞을 막는 바람에 눈깔을 멀거니 뜨고 가슴을 벌렁벌렁하며 헐떡이고 있는 것을 보고, 제 처지같이 여겨져 동정하듯이 말한다.

  "너도 소 흥정 잘못 붙이고 장인한테 쫒겨 오는 길이냐?"

 

    머저리 신랑이 처가엘 다니러 갔는데

  어떤 신랑이 처가엘 다니러 가는데, 선물로 북어 한 쾌, 약주 한 병, 인절미 한 동고리를 지워서 떠나보냈다. 젊은이가 머저리라 혹 이름을 묻더라도 옳게 대라고 일러줬더니,

  "북어, 약주, 인절미, 북어, 약주, 인절미..."

  무슨 진언이라도 외듯이 걸어가다가 중간에 돌창이 하나 있어 건너뛰다 그만 까맣게 잊어버렸다.

  이름을 찾아야겠다고 풀밭에 앉아 점고를 하는데, 마침 등이 가려워 북어 꼬리로 긁었더니 십상이라, 요놈은 '어깨너머 등 긁기' 술병을 들고 흔들어보니 소리가 난다. 그래 이것을 따서 '올랑쫄랑' 때마침 배가 고파 인절미로 요기를 하는데, 이놈이 너무 커서 둘로 나누렸더니 쪼옥 늘어났다가 끊어지면서 옴츠러든다. 그래서 인절미는 '늘어옴츠리기'로 결정을 했다저녁때 처가에 당도하니 장모 혼자 있다가 반기면서 한편 짐을 받으며 인사조로 묻는다.

  "무얼 이렇게 힘드는데 많이 지고 왔나?"

  제가 새로 작명한 대로 주워섬기니 장모는 그만 기가 찼다. 그러자 담배나 한 대 피우려고 건넌방 모퉁이를 서성거리는데 장인이 밖에서 돌아온 눈치다. 둘이주고 받는 얘기가 빤히 들린다.

  "사위 말하는 것 좀 보려우? 글쎄 북어를 '어깨너머 등긁기'라는 구랴. 어이가 없어서, 또 약주는 뭐..."

  사위는 다 들어 깨우쳤것다. "에헴" 하고 방에 들어서며 장인에게 넙죽 절을 하고 나니까, 예측했던 대로 무얼 그렇게 많이 가져왔느냐고 묻는다.

  "무어 농촌이라 별거 있어야지요. 북어랑 약주, 인절미 뭐 그런 겁죠."

  장인이 얼굴빛이 변해 마누라를 흘겨보며,

  "이런 망할 년의 할망구 봤나? 그래 멀쩡한 사위를 앉혀놓고 잡아?"

  벌떡 일어서는 서슬에 매 안 맞으려 장모가 내뛰고 장인이 나오고, 사위도 덩달아 어정대는데, 집히는 대로 빗자루를 집어든 장인이 두리번거리다 묻는다.

  "그년 어디루 가데?"

  "그년 저리루 갔어유."

 

    그러기에 식칼은 거기 두는 게 아니지

  어떤 녀석이 처가살이를 하는데, 만날 처먹고는 자는 게 일이라 여자가 보다 못해 이르는 말이다.

  "여보! 어떻게 그렇게 멀뚱멀뚱 놀기만 하우? 남 보기에도 부끄럽구려! 뭐라도 좀 해야지."

  "뭐 배운게 있어야지!"

  "나무도 못해 오겠소?"

  "나무를 하기로니 짐질을 해봤어야지."

  "소를 갖고 실어 오구랴."

  이 자는 도끼를 들고 소를 몰고 산으로 갔다. 나무를 베어서 토막을 내 소에다 실어야겠는데, 그 귀찮은 짓을 누가 한담?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놈은 나무 밑 둥에다 소를 동여매고 나무를 벤다. 나무를 베고 나선 그대로 몰고 올 작정이다. 미상불 꾀는 됐다!

  "꽝꽝 우지지직..." 나무가 부러져 쓰러지는 서슬에 그 육중한 놈이 소의 허리를 내리눌러서 소는 혀를 빼물고 죽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도끼만 들고 돌아오는데 늪에서 오리들이 놀고 있다. 한 마리 잡아가지고 돌아가 칭찬을 받을 생각에 겨냥을 잘해서 도끼를 힘껏 던졌으나, 미련한 놈 하는 짓이라 도끼는 빗나가고 오리떼는 훌쩍 날아 가버리고 말았다과히 깊지만 않으면 도끼나 찾아올 생각으로 옷을 벗어놓고 들어갔는데, 아이고 목에 차고 길이 넘고... 도저히 도끼 떨어진 근방까지 갈 재간이 없다. 간신히 제자리에 돌아와 보니, 이런 벗어 논 옷이 간 곳이 없네. 어느 놈이 집어간 것이다그 꼴을 하고 돌아올 수도 없어, 진종일 숲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주 어두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장독대에 삿갓 쓴 놈이 웅크리고 앉았기에 도둑놈인 줄 알고 작대기를 찾아서 한대 내리쳤더니, 쨍그랑하면서 독이 깨지고 장이 모두 흘러나가 버렸다. 그러기에 장독은 그런 것으로 덮는 법이 아니란다. 방엘 들어서려는데, 문지방 밑에 재워놓은 아기 배를 밟아서 소리도 없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기에 아기는 그런 데 뉘어서는 안된다진종일 굶어서 몹시 출출한 터라 무엇 좀 먹을 것 없나 하고 부엌에 들어가 살강을 더듬는데, 거기 얹혔던 식칼이 떨어져 남자로서의 상징이 싹 잘려 떨어져나갔다. 그러기에 식칼은 그런 데 얹어놓는 법이 아니란다이젠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와 색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는데,

  "왜 이렇게 늦었소?"

  "늦은 건 고사하고 나무를 베다가 소를 죽였지 뭐야!"

  "소야 다시 사면 되지 뭐."

  ", 오리를 잡으려고 도끼를 던졌다가 도끼만 잃어버렸지 뭐야!"

  "도끼야 또 사면 되지 뭐."

  "도끼를 찾는다고 물에 들어간 사이에 옷을 누가 집어갔지 뭐야!"

  "옷이야 집에 있는 거 꺼내 입으면 되지 뭐."

  "장독에 삿갓 씌어놓은 걸 도둑인 줄 알고 때려서 깨뜨렸지 뭐야!"

  "장이야 독 새로 사서 담그면 되지 뭐."

  ", 글쎄 방을 들어서다가 아기 자는 것을 밟아서 죽였지 뭐야!"

  "애야 또 낳아서 기르면 되지 뭐."

  "살강에서 먹을 걸 찾는데 식칼이 떨어지면서 하필이면 고놈이 싹 잘라져 나갔지 뭐야."

  "무어? 예끼! 이젠 소용없다! 썩 꺼져라!"

 

    뒤늦게 음양을 깨달은 사위

  그럴 나이는 아닌데 음양을 모르는 신랑이 있어 부모님은 손주 늦어진다고 성화다. 생각다 못해 읍내 사는 기생 퇴물에게 재물을 두둑이 주고 부탁했다.

  "그저 우리댁 서방님 그 길만 열어주게."

  비로소 인생을 알게 된 이 청년은 밖에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노골적으로 그 짓을 요구하였다. 나이 찬 신부는 흡족하면서도 남 보기에 창피해 신랑을 데리고 타일렀다.

  "닭이나 개는 아무데서나 그러지만 사람은 그러는 거 본 적 있어요? 이건 남이 알아선 안되는 것이니 앞으로는 '술 한 잔 하세' 이렇게 말하기로 해요. 그러면 내가 따라 들어갈께요."

  다음날 친정아버지가 모처럼만에 다니러 와 앉았는데, 이분이 완전히 술고래다. 사위놈이 밖에서 돌아와 넙죽 절을 하더니, 제 아낙보고 "우리 술 한잔 해" 하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한참 만에 연놈이 얼굴이 불그레해 가지고 나온다. 영감은 그만 화가 상투까지 치올랐다. 딸년이 붙드는 것도 뿌리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서는 애매하게 마누라에게 화풀이다.

  "다시 고년의 집엘 갔담 봐라. 다리 목쟁일 퉁겨놓지."

  하루는 영감이 출입했다 돌아와 숨을 돌리는데 눈치를 살피면서 말을 꺼냈다.

  "나 오늘 딸네 집에 갔다왔소."

  "그년의 집엔 가지 말랬는데 거긴 왜 갔어?"

  "끝까지 얘기 좀 들어 보셔요. 사실은..."

  마나님은 웃음을 삼키면서 딸에게서 들은 얘기를 애써 옮겼다.

  "그랬었구먼! 우리도 한잔 할까?"

  그런데 성적이 과히 좋지 않았던지,

  "한 잔 더 하시려우?"

  "아냐! 어이, 취해 취해."

 

    오 전짜리 술이 십 전으로 둔갑하니

  목욕하기 싫어하는 총각이 있었다. 결혼식 전날 억지로 밀어서 대중탕엘 보냈다.

  "안 씻고 가면 냄새난다고 색시한테 내소박맞는다. 깨끗하게 씻고 가야 환영을 받지."

  "내일 장가가는 사람 많데요. 외삼촌은 색시가 있는데도 목욕탕에 왔으니, 첩얻으려는 거 아닐까요?"

  "!?"

 

  어떤 건달이 장에 가 보니 나막신장수가 하나 있는데, 어찌나 뻑뻑한지 몇 푼 깍자 해도 막무가내로 손님과 아귀다툼을 하는 게 보기에도 밉살머리 스러워 슬그머니 장난을 한 번 쳐본다먼저 아이들 나막신 한 켤레를 달라는 대로 닷 냥을 주고 사서 이만큼 가지고 왔다가 다시 가서 발에 맞을 만한 어른 나막신 한 켤레를 골라 들고 흥정을 하는데 열 냥을 달란다. 그래서 먼저 산 나막신을 내주고 그냥 일어나오려니까 주인이 소리를 친다.

  "여보시오, 나막신 값을 안 내고 그냥 가심 어떻게 해요?"

  "무어? 나 이런 뻑뻑한 친구 봤나? 나막신 값 다 줬는데 무슨 딴 소리야? 아까 내 닷 냥 주지 않았소?"

  "."

  "지금 금방 나막신 주었지?"

  ""

  "그럼 열 냥이니까 됐지 왠 잔소리야?"

  "?"

  빙글빙글 웃으며 이만큼 오려니까,

  "그렇긴 그런 거 같은데, 아무래도 조금 이상하다..."

 

  어떤 건달이 주막엘 들렀다.

  ", 술 한 잔 주구려. 얼마씩이오?"

  "막걸리 한 잔에 오 전, 약주술은 십 전 그렇습니다."

  "그럼 막걸리 한 잔 주우."

  돈을 치르고 술을 받아 들더니 한 참 들여보다가,

  "이왕이면 그 약주술로 주구려."

  약주를 받아 마시고 김치 쪽을 집어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술청을 나간다술집 할멈이 따라가,

  "손님, 술값 주셔얍죠."

하니까, 썩 돌아서며,

  "무어? 아까 오 전 줬지. 그리고 오 전짜리 막걸리 한 잔 줬지. 그럼 됐지 뭘 더 달래?"

 

 

  참외 같은 과일은 장사할 때 상, , 하로 구분해, 하치는 늘 다니는 꼬마손님들에게 인심 쓰고, 중은 팔아서 밑천을 건지고, 상치 판 것은 이문으로 수입 잡는 법이다어떤 구멍가겟 집에서 장사 끝낸 셈치고(만날 구경만 하다 마나?) 상치로 몇 개를 가족끼리 먹어치웠다그날 저녁 도둑이 들어 참외를 담아가는 소리를 듣고, 두 내외는 이불 속에서 끌어안은 채 웃었다.

  "미친 놈! 이 남은 건 우리가 다 먹었는데..."

  헛수고 한다는 얘기다.

 

    밑지고 싶으면 가져가라지

  이득을 좀 보려고 쌀을 사 쟁인 사람이 있었다. 시세가 떨어져 본전도 못 건지게 됐고, 달리 놀러갈 만한 데도 없어 일찌감치 자리에 들었는데, 밤중은 하여 부인이 깨운다.

  "! 누가 쌀을 퍼가요, 소리치고 나가셔요."

  "밑지고 싶어 가져가려면 가져가라지 뭐."

 

  "사기 장사는 사배 남고, 옹기 장사는 오 배가 남고, 유기 장사는 육 배가 남는데, 칠기 장사는 칠 배나 남는다더라."

하니까, 이죽거리기 잘하는 친구가 있다 대꾸를 한다.

  "사기장사는 사그라지고, 옹기장사는 오그라져 망하고, 칠기장사는 칠그러진다더라."

  "임마, 그럼 유기장사는 어떻게 망한다데?"

  할 말이 없으면 날 잡아 잡수란다고,

  "그러니까 유기장사밖에 할 만한 것이 없어."

 

  어떤 승려가 동냥을 다니다 보니, 한 선비가 담뱃대를 손에 들고 휘적휘적 길을 가는데 담뱃대 쥔 손이 뒤로 가 눈에 안 띄면,

  "이거 내 대 어디 갔나?"

  손을 젓다 앞에 나타나면,

  "옳지 여깃군!"

  "이크, 내 대 어디 갔나?"

  "옳지 여깃군!"

  되풀이하면서 걷는다따라가며 보려니까, 어느 산골에 접어들더니 때마침 늦은 봄이라 춘곤을 못이겼음인지 양지쪽 잔디밭을 찾아 쓰러져 잠이 들어버린다.

  "이놈, 되게 정신 없는 놈이다."

하고 길을 지나가던 어느 승려가 바랑에서 칼을 내어 머리를 박박 깍고 둘의 옷을 완전히 바꿔 입어 버렸다.

  장난으로 하는 짓인데, 그냥 가기도 싱그워 힘껏 궁둥이를 걷어차 놓고 슬슬 걸어가려니 잠에서 깬 사나이,

  "이크, 따라오던 중놈은 여기 있는데, 나는 어디 갔나? 옳지, 저기 가는군! 여보! 여보! 댁이 혹 나 아잉교?"

 

    그럼 족제비 꼬리나 잘라가게

  동네에서 바보로 이름난 한 사람이 어쩌다 족제비를 한 마리 잡았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한 장난꾸러기가 곯려주려고 다가왔다.

  ", 자네 재주 좋아이 그려. 그걸 어떻게 잡았나? 어디 좀 보세. , 참큰데..."

  바보는 좋아서 연방 싱글벙글하였다. 장난꾸러기는 또 족제비의 귀를 만지작거리며 말하였다.

  ", 그 귀 한번 소담하게 잘생겼다. 그것 좀 베어줄래?"

  "안돼, 그것 보고 잡은 건데."

  "이 사람아! 자네하고 나 사이에 그까짓 거 하나 가지고 이러긴가?"

  "그렇지만 그건 안돼."

  "그래? 그놈 가지고 골무를 만들면 삼 년은 무난히 쓰련만... 그럼 그만두게."

  장난꾸러기는 저만큼 갔다가 미련이 있는 듯이 도로 왔다. 그러자 바보는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아, 귀는 절대로 안돼? 안된다면 할 수 없지. 그럼 이 꼬리라도 잘라주게나!"

  "그럼 그거나 잘라 가."

  족제비는 붓 매는 데만 썼기 때문에 털이 긴 꼬리만 소용이 되고 값도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총각

  한 곳에 젊은이 하나가 있는데, 게을러 꿈적거리기가 싫어서 만날 뒹굴뒹굴 누워서 세월을 보내자니 지내는 형편이 말이 아니다어느 날 또 멀뚱멀뚱 천장만 쳐다보고 누웠는데, 어디서 노랫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귀를 기울여 소리나는 곳을 찾아가니 요강 속에서 총각 하나가 밤 껍질을 타고 선유하고 있다.

  건져 내놓았더니 조금씩 조금씩 커져서 얼마만에 여느 사람만 해지고 계속커지면서 방안을 차지해 도저히 둘이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방을 내주고 봉당으로 밀려나 앉게 되었다.

  동네사람들이 보고 딱하게 여겨 일거리를 주어서 돈을 벌어가지고 돌아와 보니 조그만 해져 있다. 한두 끼 끓여 먹고 누웠으려니 이놈이 또 커져 방안에 그득하다. 하는 수 없이 나아가 벌이를 해 엽전으로 받아가지고 돌아와 방바닥에 펴놓고 세었더니, 쇳소리가 날 때마다 줄어들어 마지막엔 도로 처음 만날 때만해진다.

  그 돈이 바닥이 날 만하면 이놈이 또 자꾸 커지는데, 뭣보다도 한방에서 거처할 수가 없어 방을 나오게 되고, 또 일을 해 돈을 가지고 들어가야 발 뻗고 누울 수가 있어 젊은이는 할 수 없이 자꾸 일을 했다.

  그렇게 해서 젊은이는 부지런해지고 돈을 벌어 살림을 차리게 되었는데 여축이생기면 별일 없지만, 돈에 쪼들릴 만하면 이것이 커져서 방을 차지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부지런히 일하면서 잘살고 있다.

 

 

    배꼽 아래가 치아

  가난한 중에도 딸을 정성껏 길러서 시집을 보냈는데, 본시 있던 천량도 있지만 제가 들어간 뒤로 살림이 늘어 제법 잘산다친정어머니가 모처럼 찾아갔더니 점심을 잘 차려서 대접하는데, 어머니 마음 한구석에는 자기가 그저 못사니까 딸이 어찌 보지나 않나 자격지심이 떠나질 않는다. 그런데 딸년이 상머리에 앉아서 제딴에는 비위를 맞추느라고 한 마디 했다.

  "어머니 치아가 좋아서 잘 잡수시니 제 마음이 다 홍락해요."

  "!?"

  어머니는 몇 술 더 안뜨고 수저를 놓고는 붙드는 것도 뿌리치고 휭하니 돌아왔다.

  "치아가 좋아? 치아가 좋아서 잘 먹는다? 고얀년 같으니, 날더러 치아가 좋다고 그랬것다."

  저녁 뒤에 아들들을 불러 앉히고 낮에 겪은 얘기를 했다.

  "그래 고년이..., 저 좀 잘산다고, 무어? 날더러 치아가 좋아서 잘 먹는다고?"

  그래 치아가 무엇이냐고 공론이 났는데, 큰아들은 '발뒤꿈치'라 하고, 둘째아들은 '어깻죽지'를 가지고 하는 소리라고 우겨서 결론이 안나온다. 그러는데 아버지가 밭에서 돌아왔다. 삼모자가 한 얘기를 다듣고 나더니 화를 벌컥 낸다.

  "이것들아, 치아도 몰라? 이눔아 배꼽 아래가 치아야, 치아."

 

    갓끈 매기도 귀찮은데 떡보를 끌러?

  어떤 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아랫목에서 밥 먹고 윗목에 가 똥 누고 이러기를 십여 년. 이제는 장정이 다 돼 가는데 여태까지 길러온 어머니는 사뭇 속이 탄다. 뭐 하나 할 줄 아는 것은 없고 장차 저것이 자라 뭐가 된담.

  에라, 이 기회에 경난이나 시켜 사람의 자식을 좀 만들어야 되리라. 그래 웃옷까지 말끔하게 해 입히고, 우선 먹을 떡가지 랑 싸서 등에 메어주어 집에서 내쫓았다.

  , 그래 놓으니 딱한 건 당하는 본인이다. 어디로 가야 하며 어디서 쉬어야한담? 그래서 내쫓은 것이건만 조촘조촘 가다보니 가다가 멈추기도 귀찮아 그냥 가는 데까지 간다.

  고개를 넘고 벌을 건너 얼마를 가노라니 이젠 배가 고파온다. 등에 진 떡 보따리를 끌러야 먹겠는데 걷다가 멈추는 것이 귀찮아 그냥 자꾸 걸어가는 위인이니, 제손을 움직여 보따리를 내리기는 정말이지 귀찮고 싫다. 그래 그냥 배고픈 것을 참으며 얼마를 더 가려니까 저기서 한 사람이 온다.

  '옳지, 저 사람더러 내려 달래서 둘이 같이 먹어야겠다.'

  가까이 오는데 보니까 입을 딱 벌리고 오는 게 아닌가?

  '옳지, 무어 먹고 싶다는 게로구나!'

  그냥 걸어가며 말을 건넸다.

  "여보시우, 내 이 어깨에 맨 것이 떡인데, 내 내리기가 귀찮스러워서 그러는거니 당신이 이것 좀 내려주시구려. 같이 나눠서 먹읍시다."

  반색을 할 줄 알았더니 뜻밖에 볼멘소리로 대답하는 말이,

  "여보, 그런 일을 누가 한단 말이오? 갓끈이 늦춰진 것을 다시 매기가 귀찮아 입을 벌리고 가는 사람을 보고."

 

 

    나도 외갓집은 한다 하는 양반

  인동의 장감사 댁 하인에 정모라는 자가 저의 주인댁 돈을 5천 냥이나 꾸어 쓰고 갚지 못해 노상 독촉을 받아오다가 어느 해 새 밑에 그만 죽어버려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됐다.

  며칠 후 죽었다던 사람이 도로 살아 났습니다고 문안 인사를 드리러 왔다감사는 별 생각없이 으레 하는 얘기로,

  "그러면 너 저승 구경도 했겠구나."

  "그러문입쇼. 무어 별의별 거 다 봤습죠."

  말문이 열리더니 실제로 본 것처럼 주워섬기는데, 놈 입심 한번 대단하다.

  "댁의 선대감 내외분도 뵈었더냐?"

  "그러문입쇼. 뵙고 말고가 있습니까?"

  "!?"

  "대부인께서는 소인의 아비가 장사하노라 짚신 삼는 곁에서 총을 비벼대고 계시굽쇼(이건 제 아비가 데리고 산다는 얘기다), 선대감께서는 이승에서 무엇을 하셨기에 똥 퍼나르는 직책을 맡으셨는데, 소인을 보시더니 그냥 어찌나 서럽게 우시는지... 글쎄, 지게로 만 짐을 져날라야 한다니 그 고생이 얼맙니까? 얼마나 지셨냐니까 이제 간신히 300지게 졌다는 얘기시어서 소인이 지녔던 중에서 만 냥을 받쳐 속해드리고 왔습죠. 이젠 좀 편하실 겝니다."

  "얘야."

  "!"

  "너 그 소리 어디 다른 데 가 하지 마라."

  "그야 꼭 언약드리고 싶습니다만, 본시 입이 헤픈 놈인데다 술만 들어가면 그냥 사복개천 같아지지 않습니까? 자신 없사와요."

  "이놈아, 너 먼젓번 진 것 탕감하고..."

  "예예."

  "저승에서 갚았다는 돈도 물려주려는데 그래도 주둥이를 놀리겠느냐?"

  "? 에헤헤, 그러시다면야 다시 누가 뭐라겠습니까? 목벨 내기하고 입을 꼭 함봉하오리다."

  5천 냥 탕감한 위에 다시 만 냥 받기로 한 중에서 반을 받아들고 물러나왔다. 그뒤 다시 나머지를 채근했더니 아무리 부자라도 워낙 많은 돈이라 잘 마련이 안돼 며칠 참아 달라기를 두어 번이나 하였더니 불량스럽게 눈망울을 굴리며 볼멘소리를 한다.

  "제에기, 양반도 거짓말 하나?"

  다시 한 번 팔을 뽑내고는,

  "나도 외갓집은 한다 하는 양반이다."

 

    상놈과 양반의 차이

  저의 본 고장에서는 존재도 없던 막노동 출신이 어쩌다 돈이 좀 모였던지 낯선데로 이사를 했다. 물론 본색을 숨기고 양반 행세 좀 해보자는 것이다날이 가고 달이 지나며, "저 놈이 틀림없이 상놈인데..." 여기면서도 분명한 증거는 잡을 길이 없었다하루는 그 고장 유지댁엘 놀러갔더니 앙가발이 상에 간단하게 차려 내왔는데, 은주전자의 것은 미삼 넣어 고아 용안육과 대추를 넣어 맛과 빛을 낸 약소주고, 안주로는 은행과 잣을 기름에 볶아서 꿀을 곁들여 놓여 있을 뿐이다몇 번 사양한 끝에 한 잔을 먼저 마시고 젓가락으로 안주를 잡는데, 북두갈고리 같은 손가락에 해보지 않던 젓가락질로 고 매끄러운 것을 집자니 등에 진땀이 날 지경이다.

  주인이 한 잔을 들고 나서는 젓가락으로 꿀을 푹 찍어서 갖다 대는데, 실백자는 예닐곱 개씩이나 묻어 오르고 은행도 한번에 서너 개씩 거뜬하게 찍어올려서 자시지 않는가?

  그런 뒤로 거만한 태도를 없애고 아주 풀이 죽어서 지내더라고...

 

  어떤 양반이 말을 타고 가는데, 얼굴 아는 상놈이 소를 타고 마주 오면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다.

  "이놈! 내려서 인사할 일이지 어찌 감히 타고 앉아서..."

  "평지에서 걸어가다 만나면 땅을 파고 들어가 절하리까?"

  "저런 못된 놈 봤나? 이놈 볼기를 칠라."

  "때리지 않아도 쪼개졌습니다."

  이따위 놈하고는 말 않는게 수다.

 

    자린고비보다 더한 놈

  충주의 고비는 조선 중엽의 실제 인물이더란다. 제삿날마다 지방 다시 쓰기가 아까워서, 한번 써서는 기름에 결어 두고두고 썼대서 '결인고비'가 변해'자린고비'가 됐다는 인물이다하도 반찬을 안해 먹는다기에 이웃 사람이 새우젓 한 단지를 울 안으로 몰래 들여놓아 보았다주인이 발견하고 열어보더니,

  "어이! 밥도둑놈 들어왔어. 이놈이 있으면 밥이 해퍼 못써."

  울 밖으로 굴러 내보내더라는 것이다.

  고 생원이 한번은 국을 떠먹어 보니 구뜨럼한 게 맛이 제법 좋다.

  "이거, 국맛이 어쩐 일이냐?"

  "오늘 낮에 고기장수가 왔길래 살 것처럼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그냥 보내고,

손을 국솥에다 씻었더니 그래요."

  며느리가 칭찬받을 생각에 자랑삼아 얘기했더니 시아비 하는 소리 좀 보라.

  "살림을 그렇게 헤프게 해 어떻허니? 우물(또는 간장)에다 씻어 넣었으면 두고두고 먹지."

  "?!"

  고 생원이 소금버캐가 하얗게 앉은 굴비 한 마리를 샀다. 천장에 매달아 놓고끼니 때면 밥 한 숱가락 떠넣고 한번씩 쳐다보며 그 짠 것을 생각하고 삼키는 것이다한번은 아들하고 겸상했는데 먹다 말고 녀석의 뺨을 찰싹 때린다.

  "욘석 물 켜려고."

  한 숟갈에 두 번씩이나 쳐다봐서 짜게 먹는다고 나무란 것이다고 생원이 손님하고 받는 상에는 배추김치를 자르지 않고 그냥 통째 놓는 법이었다. 밥반찬으로 뜯어먹자니 숟갈로도 젓갈로도 잘 안된다. 그래 뒤적뒤적하다 말아서 배추 한 포기로 한겨울 나는 것이다한번은 손님과 겸상으로 밥상을 받았는데, 이 손님이 차고 있던 장도칼을 뽑아 그놈을 숭숭 썰어놓고 막 먹어치웠다. 손님이 돌아가자 아깝고 분해 병이 나 그길로 몸져 누워서 이듬해 봄이 돼서야 머릴 들고 일어나더라고 한다충주에 자린고비가 인색하기로 유명하다더니, 이천에 천지 곱재기라고 그보다 못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하루는 파리가 간장에 앉았다 날아가는 것을 보고 바가지에 물을 떠들고, 그놈의발을 씻으려고 쫓아 나섰다가 용인땅 어느 개울가에서 놓쳤다. 이리 갔다 저리 갔나 얼마를 어정거렸다고 해서 '어정개'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거짓말 꼭 한 마디만

    끝없는 이야기

  철원에 살던 고씨 부자는 이야기를 몹시 즐겨서, 누구든 자기에게 "그만" 소리가 나오도록 실컷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게는 후한 사례를 하겠다고 선전하였다내노라는 이야기꾼들이 무수히 몰려들었으나, 모두들 오래지 않아 바닥이 나서물러나고 말았다.

  어느날 한 총각이 들어섰다. 물론 몇 마디 인사 끝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철원에 궁예왕 대궐터가 있고, 그 뒤에 높다랗게 금학산이 솟아 있습죠. 한사람이 도끼를 갈아 둘러메고 절구감을 베러 올라갑니다그려. 한 곳에 가지는퍼져서 하늘을 덮고 굵기는 두 아름이나 되는 굉장히 큰 소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잠깐 언저리를 살피고 나서 두 다리를 딱 버티고 서더니 나무를 베기시작합니다. 땅 땅 땅 땅 땅 땅 땅..."

  "아니,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린가?"

  "그야 나무 베는 소리죠. 그 큰 나무가 그렇게 쉽게 베어집니까. 땅 땅 땅..."

  한참을 "땅 땅 땅..." 하고 계속하니 부자가 소리쳤다.

  "아이구, 여보게! 제발 그 땅 소리는 그만 좀 하게, 그리고...?"

  "우지지직 우지지직 우지지직..."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다 베었으니까 이제 넘어지는 소립죠 철썩! 이제 쓰러졌습니다. 딱 딱 딱 딱딱..."

  "또 웬 딱이야?"

  "이제 우죽을 쳐야 하지 않습니까? 딱 딱 딱 딱..."

  "제발 그 딱 소리 좀 그만하고..."

  "! 뚤 뚤 뚤 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렇게 큰 나무인데 짊어질 수가 있습니까? 굴러 내리얍죠. 뚤 뚤 뚤 뚤...",

버석. 칡덩굴에 걸렸습니다. 다시 뚤 뚤..."

  "웬 뚤 뚤 소리가 그리 긴가?"

  "아니 금학산이 얼마나 높다고요? 그 산을 다 내려와야 다시 잘라서 절구를 팔게아니겠습니까?"

  "아이구, 이젠 그만, 그만 좀 두게."

  "이제 이야기 실컷 들으셨습니까?"

  "이야기고 뭐고 이제 진저리가 났으니 제발 그만 좀 두게."

  "그렇습니까? 그럼 약속하셨던 상금을..."

  이리하여 청년은 논 몇 섬지기 문서를 타가지고 나와 장가를 들어서 잘살았단다.

 

  옛날에 옛날에 한 고장에 농사를 잘 짓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해 큰 장마가져서 강물이 불어 한물이 져서 그 고장은 온통 물 속에 들게 되었다사람들은 뗏목이나 배를 타고 피하였지만, 그기 살던 쥐들은 그럴수가 없어서단체로 물을 건너 피난을 가게 되었다맨 앞에 제일 큰 쥐가 서고, 그 다음 그 다음 쥐들이 차례로 늘어서서 앞 놈의꼬리를 물고 간다, 쥐가 쥐꼬리를 물고 간다, 쥐가 쥐꼬리를 물고 간다...

  이런 때 듣는 사람은 빨리 다음 이야기를 하라고 독촉이 빗발 같다.

  퐁당 한 놈이 물에 뛰어 들었다. 퐁당...

  듣는 사람은 또 한 번 "왠 퐁당 소리가 그리 많으냐"고 짜증 겸 독촉을 한다.그러면 그 넓은 벌판의 쥐란 쥐가 모두 모여서 한 줄로 늘어서 건너가는데 그렇게쉽게 끝날 수 있느냐고 하면서 퐁당퐁당을 계속한다.

  자꾸 이야기를 계속하라는 어린이들을 더 못 조르게 하는 데에 안성맞춤인이야기다.

 

 

  한 사람이 놀이삼아 산에 올라갔는데 칡이 어찌나 탐스럽게 무성했던지 별로 힘안 들이고 한 짐을 잔뜩 거둬놓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럴려고 올라간 것이아니어서 지게도 없고 꼴망태도 없다점심 싸가지고 갔던 노망태기로 걸어서 짐을 꾸렸다멜빵을 걸고 막 일어서려 하면 ""하고 한 가닥이 끊어지고, 다시 일어나서끈을 이어 고쳐가지고 이제 막 일어서려 하면 또 한 가닥이 ""하고 끊어지고다시 일어나서 끈을 이어 고쳐가지고 이제 막 일어서려 하면 또 한 가닥이""하고 끊어지고, 다시 일어나서 끈을 이어 고쳐가지고 이제 막 일어서려 하면또 한 가닥이 "" 하고 끊어지고, 다시 돌쳐 일어나 끈을 이어 고쳐가지고 이제막 일어서려 하면...

 

 

  옛날에 옛날에 어느 깊은 산중에 늙은 중과 젊은 중이 살았는데, 어느날 늙은중이 은 중에게 옛날 얘기를 하나 들려주는데 그의 말이,

  "옛날에 옛날에 어느 깊은 산중에 늙은 중과 젊은 중이 살았는데, 하루는 늙은중이 젊은 중에게 옛날 얘기를 하나 들려주는데 그의 말이, '옛날에 옛날에 어느깊은 산중에 늙은 중과 젊은 중이 살았는데, 하루는 늙은 중이 젊은 중에게 옛날얘기를 하나 들려주는데 그의 말이, '옛날에 옛날에...'"

 

 

    천 냥짜리 얘기

  어떤 사람이 부인 부탁으로 돈 천냥을 받아들고 예깃거리를 얻으러 나섰는데,주변없는 친구라 도무지 찾을래야 없다온 하루를 돌아다니다 저녁때가 되서야 어느 길가에서 일하고 있는 노인을 만나실정을 얘기했다. 그러니 이 천 냥을 받고 얘길 한 마디 일러달라고이 영감이 돈에 욕심이 나나 그역시 말주변이 없어 해줄 얘기라곤 없다. 그때 앞논에 두루미가 내려앉자 눈에 보이는 대로 일러주었다.

  "훨쩍 날랐습니다요."

  "성큼성큼 걸었습니다요."

  마침 두루미가 우렁을 쫀다.

  "콱 찍었습니다요."

  "둘레둘레 봅니다요."

  "훨쩍 날아갔습니다요."

  이렇게 한 줄거리를 사가지고 돌아왔다그날 저녁 사온 얘기를 하라고 해서,

  "훨쩍 날았습니다요."

  마침 도둑놈이 담 위로부터 안마당으로 두 활개를 벌리고 내리뛰다가 그 소릴들었다.

  '이거 아무래도 주인이 본 모양이야.'

  "성큼성큼 걸었습니다요."

  ', 이거 하나 없이 맞춘다.'

  부엌에 밥이 있기에 굳지나 않았나 손가락으로 꼭 찔러보는데,

  "콱 찍었습니다요."

  '이거 샅샅이 보는 눈치다. 어디로 보나?'

  여기저기 여겨보는데,

  "둘레둘레 봅니다요."

  '이거 안되겠다.'

  부지런히 나와서 담을 훨쩍 넘어서는데 뒤에서 소리가 난다.

  "훨쩍 날아갔습니다요."

  '어이, 그놈의 집에는 못들어갈 데다.'

  다시는 도둑이 그 집에는 얼씬도 안했다고 한다.

 

  한 사람이 논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왠 청년이 찾아왔다. 용건은 얘기를사러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농사꾼이 팔 만한 얘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망설이고 있는데, 퍼뜩 생각이 떠올랐다.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그대로 글 외듯한 것이다. 해오라기의 하는 양 그대로,

  "빙빙 돌아라, 푸드득, 저 눈깔."

  청년은 얘기값을 치르고 기뻐서 돌아갔다. 밤에 복습하듯이 되내어 보는데, 마침도둑놈이 들어왔다가 들었다.

  "빙빙 돌아라."

  '아니, 주인이 나 들어온 것을 어떻게 아노?'

  "푸드득."

  '이것 보게. 문종이 뚫은 걱까지 아네.'

  "저 눈깔?"

  '아차 들켰구나! 더 있다간 큰일이다.'

  도둑은 줄행랑을 쳤다.

 

    소를 이고 뛴 처녀

  흔히 소를 몰때 "이랴, 이랴" 하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게 된 데는 그를 듯한내력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한 곳에 굉장히 힘센 여장부가 살았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남녀간 출중한인물이 나면 나라에 좋지 않게 여기는 터라, 그 여장부를 잡아들이라고 하였다이 소식을 들은 여자의 아버지는 눈물을 머금고 얼마 동안 먹을 양식을 소에실려 딸에게 피신해 있으라고 하였다.

  어디든 멀리멀리 도망가서 피신해 있다가 조용해지거든 그때 돌아오라는 것이다이 처녀 장사는 짐을 실은 소를 몰고 뜻하지 않은 피난길을 떠났다그러나 포졸들이 당장 잡으러 올 것만 같아 마음은 조급할 대로 조급한데, 소가걸음을 빨리 걸어주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포졸들이 뒤아오는 것 같은데 소의 걸음은 이렇게 더디니 애가타서 죽을 지경이다.

  마음이 다급해진 이 처녀는 참다 못하여 소의 배 밑으로 들어가 짐을 실은 소를번쩍 이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냅다 줄달음질을 쳤던 것이다. 처녀의 힘도어지간하지만 죽을 지경인 것은 오히려 소였다.

  몇 개의 험한 고개를 넘어 이만하면 어느 정도 안심이다 하는 곳까지 와서처녀는 소를 내려놓고 다시 걷게 하였다소는 그 고생스러운 자세에서 풀려난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으나, 타고난 느린걸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처녀는 한참 소를 몰다가 또다시 그 느린 걸음에 속이 상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랴!"

  소는 조금 전에 처녀의 머리 위에 얹혀 달릴 때 하도 고생을 하고 난 뒤라 제힘껏 뛰었다.

  지금도 소를 몰 때는 "이랴!" 하면 빨리 걷는다고 한다.

    애당초 욕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구변 좋게 입심부리는 것도 머릿속에 식자가 좀 들어있어야 되는 법이라, 글방이나 약국 사랑은 곧잘 일화의 온상이었다어떤 시골 사람이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약국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데, 한축 쏟아지던 빗발이 점점 약해지며 볕이 나고 이제 아주 개려고 한다그때 약국에 있던 자가 내다보고,

  "개건 가지."

  그런다. 비가 개거던 가란 말도 되지만, '개이거든 가라', 가기만 하면 천생 개 노릇을 해야 되도록 말을 건넨 것이다.

  이 텁수룩한 시골 친구, 약국 안을 휘 둘러보고 나더니,

  "다 개니 가야겠군!"

하고 발짝을 뗀다.

  '무어, 다 개니까 간다?'

  약국 안에 있는 것이 다 개들이라, 그 틈에 끼어 있을 수 없어서 나는 간다는 뜻이 된다.

  ', 그놈 엔간하다. 마침 비에 막혀 손님도 뜨막할 때고 하니 불러들여 얘기나 시켜보리라.'

  "여보시우, 과히 바쁜 걸음 아니거든 들어와 담배나 한대 피우고 가시구려."

  그래서 시골 선비가 들어와 간단히 통성명하고 앉았다.

  "보아하니 댁은 입심이 엔간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얘기나 한 자루 들려주시구려."

  "뭐 내가 얘기 할 줄 알어유? 그런데, 내가 한 열흘 전 앓던 끝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 않아유?"

  "그러면 염라국 구경도 하셨겠구랴?"

  제갈량이 조조를 곯려먹을 때 번번이 조조의 꾀를 역으로 이용했듯이, 약국 집식구들의 상상의 세계를 번번이 활용하여 얘기를 꾸며서 엮어나간다처음 사자에게 끌려서 어딘가 당도하니 으리으리한 전각이 하나 있는데, 현관을 보니까 명부전이란 금 글자가 새겨져 있다그 안으로 들어섰다.

  '그래, 옳지! 내가 죽은 거로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가까이 오라고 하더니 거주 성명과 생년월일 사주를 묻는다어차피 죽은 몸이라 겁날 거 없어 사실대로 얘기했다. 분부를 이것 저것 대조해보더니, 그 중 중앙에 앉은 분(그러니까 염라대왕일 게다)이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이놈들이 요새 좀 바빠 고되기로서니 또 바꿔서 잡아왔단 말이냐? 정신 나간놈들!"

  호통을 치니까 곁의 사람들이 모두 벌벌 떤다. 전각 아래에서 일보던 이 하나가 나를 데리고 나오며,

  "당신은 인간으로 곧 돌아가게 될 거요. 앞으로 수명이 30년이나 있는 분을 공연히 놀라게 하였구려!"

  이따 사자가 나갈 길에 데려다 줄 것이니 기다리라고 하며 마당 한 옆에 있는 긴 의자에다 앉혀둔다.

  이렇게 헷갈릴 만도 한 것이 어떻게나 망령들을 많이 잡아들이는지 망자들이 줄로 늘어서서 기다리고, 또 극락, 지옥으로 갈 곳이 정해진 영혼들도 인도해주기를 기다리며 줄서 있다어떤 사람이 맨발에 나막신을 끌고 삿갓을 들었는데, 몸에서 비린내가 푹푹 풍긴다염라대왕의 문초가 시작된다.

  "너의 생전 한 일은 무엇이냐?"

  "! 소나 양, 돼지 같은 짐승을 잡는 것으로 업을 삼았습니다."

  "이런 고약한 놈이 있나? 네가 그렇게 모진 일을 되풀이해 살생하고도 좋은 데로 가기를 바랄꼬?"

  "아니올시다. 그것은 대왕께서 잘못 생각하신 것으로 아옵니다. 나라에서는 해마다 춘추로 소잡고 돼지 잡아 하늘께 제사를 지내 대왕께서도 같이 흠향하셨을 줄로 아옵니다. 그러하오나 제사지내는 임금이나 지위 높은 양반님들이 손수짐승을 잡아서 올렸겠습니까? 천만의 말씀! 다 저희 같은 무리들이 있어 그 구질구질하고 남 다 꺼리는 일을 맡아하였기 때문에 하늘 제사도 잡숫게 되는거라, 여태까지 여러 십 년 받아 잡수신 것이 모두 저희들의 힘이지 어디 나랏님이나 삼곡 육경 대감들의 공인 줄 아시옵니까?"

  "오냐, 알았다. 네 말이 맞다. , 여봐라! 저 망인을 극락세계 연화대로 받들어 모셔라!"

  "예예예."

하더니, 덩그렇게 연에 태워서 앞뒤로 풍악을 잡히며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그 다음으로 여인네 하나가 나오는데, 걸음 걷는 탯거리랑 여염 여자는 아니다.

  "네 생전에 한 일이 무언고?"

  ", 풍류와 춤을 배워 잔치에 나아가 흥도 돕고, 또 술과 웃음으로 뭇 남자의 노리개 노릇을 하였사옵니다."

  "저런 나쁜 년이 있나? 그럼 너 하나 때문에 얼마나 많은 남자가 홀려 얼마나 여러 가정을 파괴하고, 얼마나 숱한 여자들이 울었겠느냐? 네 죄를 네가 알렷다!"

  "! 그러하오나 대왕께서는 생각을 돌려 잡수시기 바랍니다. 저흰들 그 짓이 좋아서 하였겠습니까마는, 인간사회는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어 보통 마음가짐으로는 헤어나기 이만저만 힘 드는 것이 아니옵니다. 생각다 못해 자살이라도 하게 되면 우주의 질서는 얼마나 어지러워지며, 얼마나 많은 원귀들이 공중을 헤매겠습니까? 그래 웃어도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니옵고 마음에 없는 애교를 떨 때도 있었사오나, 모두가 사회의 기름이 되어 순조롭게 돌아가도록 한자기 희생의 일생이었습니다. 이제 대왕께서마저 짓밟혔던 저의 일생을 꾸짖으시니, 많은 사람을 위해 희생된 보답이 이것뿐이옵니까?"

하고 훌쩍훌쩍 운다. 염라대왕도 눈을 슴벅슴벅하더니 이내 판결을 내린다.

  ", 그 여인의 얘기를 들으니 가엾기 그지없고나! 대갓집에 외딸로 태어나 대관집에 시집가 일부종사하며 해로할 자리로 하나 잘 점지해줘라."

  그 다음으로, 배가 불룩하고 얼굴이 불그스레하며 수염이 허옇게 센 점잖은 영감이 들어섰는데 한 일을 물으니까,

  "! 그저 신농씨 만든 법을 따라 초근목피로 약을 만들어 앓는 사람 고생 않게 하여 주고, 죽는 사람 살려주었사오며..."

하는데, 염라대왕이 호통을 친다.

  ", , 저 건방진 놈 주둥이 좀 쥐어질러라. 그래, 이놈아! 사람의 수명장단이 네 손에 달렸어? 그래 네 놈의 손으로 못 죽게 해? 혹세무민하는 놈이다. 요즈음 사자가 잡으러 보낸 놈을 못 잡고 빈 손으로 돌아오는 일이 종종 있기에 어쩐 일인가 했더니, 저런 놈들이 있어 장난한 걸 누가 알았나? , 저놈을 지옥의맨 아래층에 거꾸로 쳐박아 버려라!"

  늙은이가 그만 풀이 푹 죽어 지옥에 갈 차례를 기다린다. 잠깐 시간이 있어 내가 앉은 곁에다 세웠는데 날 보고 하는 말이,

  "노형은 인간으로 돌아간대니 부탁이오. 보시다시피 인간에서 생각하는 것하고는 영 틀려! 내 자식놈이 구리개 모퉁이에서 대를 이어 약방을 차리고 있는데 나야어쩔 수 없소마는 말 좀 전해주시오. '아들은 모두 백정을 시키고, 딸년일랑 모조리 기생을 시키라'..."

  댁이 몇 째집이냐고 묻는 참인데,

  "임마 얘긴 누가 하랬어?"

하고, 무섭게 생긴 사자가 덜미를 잡아끌고 갈 제 엎으러지며 곱드러지며 내 쪽을 자꾸 돌아다보며 가는데, 그만 눈물이 나서...

  "보아하니 주인이 건을 쓰고 계신데, 혹 노형의 선고장 아니신지?"

  주인이 어이가 없어,

  ", 이 놈이 욕하지 않아?"

  "애당초 욕은 누가 먼저 꺼냈는데?"

 

  오뉴월 오이 대가리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출출한 생각이 들어 어디 술집이나 없나 하고 찾는데, 마침 동네에서 양반 하나가 갓을 쓰고 소를 타고 나온다.

  "여보시오! 이 동네 주가가 있소?"

  순순히 술집이랬으면 좋으련만.

  "이가하고 김가는 많아도 주가는 없소."

  "아니, 술집이 있는가 말이오."

  "술집은 당신 코 밑에 있지 않소?"

  입을 숱갈 집이라고 비꼰 것이다.

  ", 그 양반, 몹쓸 양반이로고."

  "쓰기는 곰의 열이 쓰지."

  이놈의 친구 화가 났다.

  "이놈아, 그 대가리에 쓴 게 무언데 그 따위 대답이냐?"

  "대가린 오뉴월 오이 대가리가 쓰지!"

  그만 어이가 없어,

  ", 그 양반, 말 못할 양반이로군!"

  "말을 못 탔으니까 소를 탔지."

 

  어떤 나루터에서의 일이다. 남자가 다른 볼일이 있었어. 부인이 배를 부리고 있는데, 중국 사람이 하나 탔다.

  그러더니 이 검측한 게,

  "아주머니는 우리 마누라야! 내가 아주머니 배 탔으니 나 아주머니 영감이지, 안그래?"

  이 따위 소리를 한다속이 상해 죽겠으나 대꾸도 않고 노만 젓는다. 강을 건너 물에 가 내려서 가는 것을 여사공이 그제사 불렀다.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중국 사람이 돌아다본다.

  "너 내 뱃속에서 나왔으니까 내 아들 아니냐?"

  "?!"

 

    새까만 소와 새까만 새

  어느 대감댁에 하인이 하나 있었는데 제법 식자도 하고 영리하기가 이를 데없다. 친구대감하고 사이에 편지 심부름을 시키면, 으레 도중에서 뜯어 보고는 미리 손을 써서 일을 처리하곤 한다.

  그러니 대감이 편지를 받고 분부를 할 때면 벌써 다 마련이 돼 있어 칭찬도 많이 받았으나,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차차 양쪽 대감이 낌새를 채게 되었다하루는 또 편지 심부름을 하고 돌아왔는데 기색이 아주 좋지 않아 저녁도 뜨지않은 채 질펀히 드러누워 버린다. 계집 삼월이가 곁에 누워 온갖 것으로 위로하고 물어도 잘 대답을 않는다.

  "내가 대감 앞에서 거행하기 십여 년에 매번 편지를 먼저 뜯어 보곤 미리 손을 써서 칭찬도 많이 듣고 상금도 많이 받았는데..., 오늘 편지는 둘 다 통 모르겠어!"

  "진서로 썼던 게지?"

  "내가 왜 한문을 몰라 보나? 대감들 편지는 모두 한문인걸!"

  "흘려 썼던 게지?"

  "내가 흘린 것 못 읽어? 아무리 초서로 휘갈겨 써도 다 보는데."

  "그럼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여요?"

  "그림이야."

  "!?"

  "우리 대감 편지에는 먹으로 새까맣게 소를 그렸는데, 저쪽 대감 답장에도 또 먹으로 새까맣게, 그런데 새를 그렸거든? 그러니 알 수가 있어야지."

  "그까짓 걸 모르구. 그래 사내대장부가 끙끙 앓아? 어서 일어나 밥이나 먹어요."

  "그럼, 임자는 알아?"

  "그럼, 그까짓 거 누가 몰라요. 까만 소니까 까마귀 오자 '오소' 아니겠어요? 그리고 답장엔 까만 새니까 '감새'지 뭐여요. '놀러오소' 그러니까 '내 꼭 감세',그런 거지 뭐가 어려울 게 있담!"

 

 

  누룩 기울에 푸른 점 붉은 점 찍으니

  병자호란이 나기 직전의 얘기다. 서울에 있던 도감 포수 하나가 신변에 위험을 느껴 북녘 오랑캐 땅으로 피신해 가면서 동대문 문짝에다 퍼런 색으로 말 다섯마리를 그려놓았다.

  "이게 무슨 뜻일까?"

  조정에서는 있는 재간 없는 재간 다해 궁리해 봤건만 풀질 못했다그러나 청병이 침입해 들어와 두 달에 걸친 남한산성 농성 끝에 성하의 맹을 맺고 나니, 도망갔던 포수는 승자의 편에 서서 콧대가 높았다.

  "조정에 그렇게 인재가 없다니 그런 수모 당해서 싸요. 푸른색이면 청(:12)이고, 말이 다섯이면 오마, '12월에 오마'고 분명히 일러줬건만 그것도 모르고 준비도 없이 이 꼴을 당하다니, 쯧쯧."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그림에 뜻을 실은 편지가 오갔다먼저 어머니가 아들에게 '초승달과 말'을 그린 엽서를 부쳤다. 새겨 읽으면 이런 뜻이다.

  "초승에 오마고 말하더니 왜 안 오냐?"

  아들이야 고등교육까지 받았으니 무슨 글인들 못 쓰랴만 어머니 뜻에 보조를 맞춰 그림으로 답하였으니, 내용은 '굴뚝과 새' 그림이다.

  '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지만, 새가 없어 못가니 그리 아십쇼.'

 

  어떤 사람이 술을 빚어 먹고 싶어서 사돈에게 그림으로 편지를 띄웠다. 동그라미 안에 꼭꼭 점은 밀을 갈아밟은 누룩의 기울이요, 그밑에 손을 그렸으니, '하나 달라'는 뜻이다.

  사돈이 그 그림에 ×표를 해서 돌려보냈으니, 이것은 '줄 수 없다,는 얘기다어디서 물감이 났는지 이번에는 거기다 붉은 점, 푸른 점을 여러개 찍어서 되돌려 보냈다사돈이 보고,

  "이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 대단히 화가 나셨군."

  하인을 시켜 누룩 여러 장을 지워 보냈다.

 

    대답 한번 깜직하다

  조그만 아이 녀석이 어른들 노시는데 발랑 드러누워서 얘기를 듣고 있었다. 못마땅하게 여긴 노인 한 분이 꾸지람이다.

  "요녀석! 어른이 얘기하는데 자빠져서 그게 뭐야?"

  "아이! 할아버지도. 어른을 쳐다보아야지 내려다볼 수는 없지 않아요!"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데 포동포동 귀여운 아기를 놓고 엄마 아빠가 물었다.

  "너 아빠 아들이냐? 엄마 아들이냐?"

  아기는 대답을 않고 두 손을 짝짝꿍해 소리를 내고 와서,

  "이번 소리가 왼손에서 났어요? 오른손에서 났겠어요?"

  "?!"

 

  텁석부리로 수염 많은 사람이 주막에 들렀더니 그 집 어린것이 웃음을 참지 못해 소리내어 웃었다. 할미가 보고 꾸짖었더니 한 술 더 뜬다.

  "말갈기 같아서 그래요. 입은 어딨죠?"

  "요녀석아, 개를 보렴. 꼬리가 길고 그 밑에 구멍이 있지 않데? 그와 같은 이치지 뭐야?"

  "?!"

 

  아랫도리는 또 마누랄 닮았군

  어떤 사람이 딸만 여럿 낳아서 늘 부끄럽게 여기는데, 10여 년 만에 만난 옛 친구가 묻는다.

  "그래, 자녀는 몇이나 두었나?"

  "딸만 셋이구, 여식이 둘, 계집애가 셋이야."

  "?!"

 

  또 한 사람은 딸만 일곱을 낳고 여덟 번째 해산을 하는데, 아기 우는 소리가나서 남편이 물었다.

  "이번엔 뭘 났수?"

  "웃도리는 당신을 닮았소."

  "아랫도리는 또 마누랄 닮은 게로군."

 

  어떤 사람이 일곱 번째로 딸을 낳고 동네엘 나오니, 모두들 이번엔 무얼낳았느냐고 묻는다.

  "뭘 낳긴 뭘 낳아? 늘 낳던 것 낳았지 뭐."

 

     내 계집이라야 네 계집이라니?

  어떤 양반 댁의 비부 녀석이 만날 나가 오입질을 하여 그의 계집년이 상전을 뵙고 통사정 겸 애원을 한다.

  "그저, 영감마님, 그놈을 톡톡히 혼내줘서 다시는 그런 짓 못하게 해주십시오."

  하인 놈을 마당에 불러 세우고 꾸짖는 것이,

  "이 놈아! 내 계집을 두고 왜 남의 계집을 봐? 내 계집이라야 네 계집이지...아니다, 너 이 소리 밖에 나가 하지 마라."

  머슴을 하나 뒀더니, 힘센 것을 내세워 건방진 행동을 하므로 주인이 불러다놓고 나무랐다.

  "너 기운이 세다며?"

  "주인님 몇 갑절 됩니다요."

  "저 소하고는 누가 세냐?"

  "그야 소가 셉지요."

  "그래? 소만도 못한 놈이 나하고 비겨? 고얀놈 같으니."

 

    중과 고자가 맞붙어 싸우니

  유명한 오성 부원군 이항복이 임관 후 원로대신으로 조정에 있을 때 일이다. 광해군을 둘러싼 주변인물의 작간으로 국정은 날로 어려워지고, 툭하면 역적모의했다고 억울한 사람을 잡아들여 족치는데 참 큰일이다.

  하루는 수상인 백사(이항복의 별호) 대감이 일부러 조종 회의에 지각을 했더니 좌석의 모두가 그런다.

  "대감! 조정의 중요한 안건을 놓아두고 무슨 일로 이제야 들어오십니까?"

  "오늘 도중에 하 재미있는 일이 있어서 그것을 구경하고 오느라 늦었소이다. 아글쎄 고자하고 중놈이 복판에서 맞붙어 싸우는데, 고자는 중의 상투를 붙들고 중은 고자의 불알을 움켜잡고 엎치락뒤치락, 그 참 구경거리입디다."

  모두는 어이가 없어 한참을 웃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얘기가 어디 있습니까?

  오성은 그제사 정색을 했다.

  "대감들, 오늘 논의에 오른 일도 근거가 있어서 하는 얘기요?"

  이래서 그냥 안건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지만, 이것은 성격이 싹다르다우스개를 동원해 멋지게 사건을 해결지었으니, 씨름으로 치면 뒤집기로 한판을 멋지게 이긴 형국이다.

 

 

    보리알은 갈 테니

  모여 앉아 싱거운 소리로 시간을 보내기는 서울과 시골, 조정과 민간의 차이가 없다. 어느 농촌에서 늙은이들이 정자나무 밑에 모여 노는데, 처음에는 날씨도 걱정하고 농삿일 되가는 것도 얘기하다가 이제 화제에 바닥이 나서 슬슬 싱거운 우스게, 그중에는 약간 섹시한 얘기도 나오게 됐는데, 어린아이 하나가 끼어앉아 어른들의 얘기를 눈이 초롱초롱해 듣고 있는 것이 걸린다좌중의 영감 하나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요 녀석은 왜 개 좆에 보리알 끼듯이 끼어 앉았어?"

  어린것이 툭툭 털고 일어나 자리를 뜨면서 한마디 했다.

  "보리알은 갈 테니 개 좆끼리 앉아 얘기들 하셔요."

 

    어린 신랑에게 꼭 쥐어 살게 된 색시

  옛날에 손자를 일찍 보려고 또는 일손이 필요해서 어린 신랑에 나이먹은 며느리를 맞는 일이 곧잘 있었다.

  이렇게 장성한 며느리를 맞아들인 농가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부보님이 들에 나가신 사이 콧물을 질질 흘리는 어린 신랑이 그래도 남편이랍시고 무언가 못마땅한 게 있어서 제법 잔소리를 한다.

  '별 아니꼬운 일을 다 보겠네.'

  색시는 남편을 번쩍 쳐들어 지붕 위로 던져버렸다. 그런데 돌아서며 보니 시부모님이 들에서 들어오고 계시지 않은가?

  '아아, 이걸 어쩐담?'

  새시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고얀년 같으니, 네 집으로 가라" 하면 끝나는 세상인데, 부모님이 그 광경을 보셨으니 말이다그런데 지붕에 올려진 신랑은 딴전을 부렸다. 지붕 위에서 잘 자라 익은 박통들을 어루만지며,

  "이 박을 딸까? 이건 좀 덜 굳은 것 같은데, 옳지 이게 됐군! 거 헛간에 지게있지? 발채 얹은 채로 밀짚을 조금 가져다 깔아서 바치우. 내가 따서 굴릴 테니 아래에서 받으라구요."

  고 조그만 게 그런 의견이 들었는지 색시는 그만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시부모님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아들이 저러는데 무어라고 새삼스레 탓할 수도 없었다그리하여 온 가정이 구순하게, 특히 색시는 신랑에게 꺽 쥐어서 아무 소리 못하고 잘 살더란다.

 

 

    거짓말 꼭 한 마디만

  조선 전기 성현은 그의 저서인 <용재총화>에서, 세상에 몹쓸 것 네 가지를 열거한 중에 어린이의 입이 싼 것, 나불거리고 말 잘하는 것을 들었는데, 아이들 지혜치고는 좀 지나친 것도 있다어느 곳에 어찌나 깜직하고 말 잘하는 어린이가 있던지, 곧잘 둘러대서 어른을 곯려주고 그 때문에 거짓말쟁이로 소문난 아이가 있었다.

  같은 동네 사는 노인 한 분이 아침을 잡숫고 문 앞에서 거니는데, 그 아이가 머리를 나풀거리며 오는 것을 보자 꼭 붙잡고 싱겁게 장난을 걸었다.

  "요녀석 거짓말 꼭 한 마디만 하고 가거라."

  "아이 싫어요, 내가 뭐 거짓말쟁인가요? 남 바빠 죽겠는데, 할아버지는 괜히 붙잡고 그러셔."

  "욘석, 아이들이 뭐가 바쁘다는 거냐? 거짓말이지?"

  "아네요. 아버지가 환자 타러 간다고 작은댁에 가서 소를 빌려오래서 가는데 왜 괜히 붙잡고 실랑이를 하셔요?"

  뿌리치는 바람에 놓쳤는데, 그러고 보니 자기 집에서도 양식이 달랑달랑한다. 그래 소에다 길마를 얹어 읍내까지 20리나 넘는 길을 찾아갔다. 환자라면 어려운 백성에게 관청에서 신용으로 꾸어주는 양곡을 말한다읍내에 도착해서 물으니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한다.

  "아차차! 요놈에게 속았구나."

  점심 요기도 못하고 눈이 퀭해서 되돌아와 사랑 툇마루에서 숨을 돌리는데 고 녀석이 지나간다. 놓칠세라 달려가 꼭 붙잡고 나무랐다.

  "요녀석 어른을 그렇게 속이는 데가 어디 있니?"

  "아이 할아버지도! 그렇게 싫다고 해도 꼭 한 마디만 하고 가라고 그러시기에 딱한 마디 했을 뿐인데 괜히 붙잡고 그러셔."

  "?!"

 

    엉큼한 원님의 수수께끼

    술 거르는 게 아니라 풀 거르데요

  어느 해 겨울 날씨가 몹시 추워 서울의 한강이 꽁꽁 얼었는데, 그 위를 건너는 일행이 있었다. 매끄럽기가 거울 같은 데를 모두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이런 변이 있나. 일행 중의 어른 하나가 잉어 잡느라고 파놓은 구멍에 빠져서 쓰고 있던 갓만이 얼음 턱에 걸려 마치 벗어서 바닥에 놓아둔 것처럼 되고 말았다.

  갓전만이 얼음 턱에 걸려 육중한 몸뚱이가 가날픈 갓끈 하나로 매어달려 있으니 큰일이다. 섣불리 잡아 올렸다가 끈이라도 끊어지면 시체도 못 찾을 것이요, 허둥지둥 시간을 지체하면 얼어서 죽을 판이다.

  모두들 어쩔 줄을 몰라 하는데, 그중의 어린이 하나가 쏙 나서면서 하는 말이다.

  "모두들 나 하자는 대로만 하셔요."

  주머니칼로 갓의 윗 꼭지를 똑 떼냈다. 그리고는 조심조심 상투에 꽂힌 동곳을 뽑아내고 돌돌 뭉친 머리카락을 끌어내렸다.

  ", 이것을 갈라 쥐고 끌어올리셔요."

  여럿이 머리카락을 나눠지고 영차영차 끌어올려서 빠졌던 이는 무사히 살아나올 수가 있었다.

 

 

  어느 집에 귀한 손님이 와서 대접할 양으로 쌀밥 짓는 것을 어린 두 아이들이보고 먹고 싶어들 하니까 엄마가 일렀다.

  "이따 손님이 남기시거든 먹어라."

  손님의 숟가락 놀리는 푼수가 그 밥을 다 먹을 모양이라, 그 중의 하나가 뒤꼍에 갔다 나오더니 신기한 듯이 외쳤다.

  "! 엄마 술 거른다."

  손님이라는 작자는 술 먹을 욕심에 밥숟가락을 놓았다. 그래서 남겨놓은 밥을 두 아이가 맛있게 먹었다. 그러고 나더니 손님 듣는 데서 그런다.

  "술 거르는 걸로 알았더니, 풀 거르는 거데요."

 

  옛날 어느 고을에 꾀가 많기로 소문난 소년이 있었다. 이 고을 원님은 그 소문에 은근히 자기 체면이 깍이는 것 같았다하루는 그 소년을 시험해보려고 불러들여 문제를 냈다.

  "옷을 입지도 벗지도 말고, 종이에 불과 바람을 싸서 가지고 오면, 상금으로 100냥을 주겠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네가 매 100대를 맞는다."

  잠자코 듣고 있던 소년은 빙긋이 웃으며 원님 앞을 물러섰다모두들 무엇을 어떻게 해가지고 오려나 하고 기다리는데 얼마 만에 소년이 다시 왔다. 몸에는 모기장을 두르고,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또 한손에는 종이로 바른

등불을 들고 온 것이다.

  "원님께서는 제가 옷을 입었다고 보십니까?, 벗었다고 보십니까? 이것 보십시오. 제가 흔드니까 바람이 나옵니다. 이 속에 바람이 들었으니까 나오는 거겠지요? 요 종이에 싸인 것은 확실히 불이지요?"

  원님은 감탄하여 소년으로 사위를 삼아 잘 가르쳐서 자기 뒤를 잇게 했다. 얘기란 대개 이렇게 풀려나가게 마련이다.

 

 

    어린 신랑의 밤서리

  어떤 집에 색시가 있어 어린 신랑을 맞았는데 제법 씩씩하고 준수하다. 일단 신행하였다가 얼마 만에 재행을 왔는데 같이들 놀라고 그 또래의 초립동이 동무를 한방에 모았다저녁상을 물리고 나서 설겆이를 끝내고 여자들은 모두 안방에 모여 재잘거리고 있는데 뒤꼍이 떠들썩하다. 웬일이냐니까 지붕의 참새를 잡겠다고 한다. 어린신랑이고 하니 그런 장난도 함직하다고 '불조심'만 일러놓고 그냥 앉아 마냥얘기들이다.

  얼마만에 모두 사랑에 나갔는데 어제쯤 누가 뒤졌는지 새는 한 마리도 없더라는 얘기다. 그리곤 방이 식어서 추우니 나무를 갖다 때야겠다고 한다. 그 역시 그러라고 했는데, 이슥해서야 뿔뿔히 헤어져가고 어린 처남 매부는 사랑에서 같이들 잤다이튿날 아침 쇠죽을 쑤러 사랑 부엌에 나갔던 장모가 보니, 아궁이 앞에 밤 삶아먹은 껍질이 수북해 어쩐 일인가 하였으나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섣달 그믐, 정월 차례를 지내려고 안부엌 나무 쌓아놓은 밑의 밤 구덩이(경기도지방에서는 으레 거기다 제사에 쓸 방을 저장한다)를 열어봤더니 아차차 한 톨도 없다.

  이런 변이 있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놈들 감쪽같이 꺼내다 삶아먹은 것이다새 잡는다고 안방 뒷문 밖에서 법석을 떨어 주의를 모두 거기다 집중시켜 놓고, 별동대는 부엌에 들어가 밤을 파냈다. 방에 불을 더 때겠다고 했을 때 나무를 내어다가 그것으로 삶은 것이다.

  꾀는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평화롭던 시절에나 볼 수 있던 장난이다.

 

    용은 길고 범은 짧은 것은 무슨 이치

  어떤 재상이 중간 상처를 하고 시골 아전의 딸을 재취로 맞아들여 여생을 보냈다. 그러다 대감이 돌아가니, 부인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낙향했다. 논밭을 일궈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는데, 하루는 다 저녁때 후줄그레한 사람이 하룻저녁 쉬어가자고 찾아들었다어머니는 여자 홀로 사는 집에 불길하다고 받지 않으려 하는데, 어린 아들이 나서서 말한다.

  "별소릴 다 하시우. 사람 사는 집인데 왜 못 자요? 그래, 지금 어두웠는데 찾아든 사람을 어디로 쫒는단 말이오?"

  윗간을 치우더니 우선 들어 앉으란다. 어렵게 사는 집이라 별로 차린 것은 없으나 그래도 규모가 제법인 중에도 어린이의 기상이 하 좋아, 기특한 생각이 든 끝에 손님은 슬그머니 장난할 생각이 들었다.

  한밤중에 같이 자는 어린것 풍차바지 가랑이를 벌리고 똥을 한자루 누어 놓았다아침에 똥 쌌다고 나무라니까, 변명도 않고 하는 말을 좀 보라.

  "똥자루 대가리가 어디로 놓였나 봤수? 바깥쪽으로 놓였는데, 이게 내가 눈 거여? 엄마두!"

  뉘 알았으리! 손님은 암행어사 박문수였다. 박 어사는 속으로 감탄 감탄하면서도 그 집 위치랑 치부해두었것다.

  한번은 나라에서 어려운 문제에 걸려 골치를 앓았다. 여태까지 좋게 지내던 이웃나라에서 수수께끼를 내고, 못 풀면 저희 나라의 밑에 서라는 것이다.

  "용은 길고, 범은 짧은 것이 무슨 이치냐?"

  몸 생긴 것이 본디 범은 짧고 용은 긴 것인데 도무지 모를 소리다. 조정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있던 박문수는 이 소년을 천거하였다이 소년은 이미 글방에 다니던 때라 대답은 명료하였다.

  "용은 진인데 진시에는 해가 길고, 범은 인이라 인시에는 해가 짧다는 뜻인 줄 아옵니다."

  그 아이는 자라서 과연 훌륭한 재상이 되었다고 한다.

 

    궁예의 총각시절

  태봉의 왕 궁예의 총각 적 얘기다.

  산중에 들어가 승려가 됐는데, 승려노릇은 안 하고 산으로 다니며 사냥이나 하고 제때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하루도 식사 때 돌아오지 않아 동무 승려들이 속이 상한 끝에 지혜를 모았다.

  "이놈 밥을 안 남겨두었다간 또 두들겨 패고 지랄을 할 테고..."

  밥을 둘둘 뭉쳐 방바닥에 굴러 내던져두었다이슥해서야 돌아온 궁예가,

  "내 밥 어쨌니?"

하니까 모두들 윗목을 쳐다본다.

  "저기 굴러 있는 것이 그거다."

  그랬더니 아무 소리 않고 밖으로 나간다.

  '저 놈이 어쩌려나'

  큰 동이에 물을 가득 길어 가지고 돌아와 방바닥에 들이붓는다.

  "이놈아, 이게 무슨 해괴한 짓이냐?"

하고 떠드니까 반죽 좋게,

  ", 밥 물 말아 먹으련다."

  그날도 역시 한축 두들겨대고...

 

    엉큼한 원님의 수수께끼

  어느 원님이 모처럼 이 고을에 도임해왔으니, 군내 제일가는 미인을 손에 넣기로 작정을 하고 물색하였다. 하필이면 아침저녁 데리고 부리는 이방의 처가절색이다그래, 난제를 걸었다. 수지꺽음(수수께끼의 경상도 사투리)을 해서 풀면 천 냥을 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이방이 돌아와 아내에게 이 얘기를 하고 고개를 외로 꼬는데, 부인이 단장을 하고 나선다.

  "미리 기가 죽을 게 아니라 한번 부딪쳐나 봐야 할 거 아니오?"

  부인은 원님 앞에 수줍은 듯 섰다. 그러나 그 모습은 장부와도 같은 기상이었다마침내 원님이 수지꺽음을 냈다.

  "해가 떳다가 지기 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되지?"

  "일백 십 리올시다. 아침 먹고 떠나 백 리를 가니까 집니다. 해뜰 녁에 떠났으면 십 리는 더 갔겠지요."

  "저 배나무의 열매는 모두 몇 개나 될꼬?"

  "몇 만 몇 천 몇 백 몇 십 개올시다. 의심나거든 맞나 안 맞나 몽땅 따서 맞춰보시지요 그려."

  "내가 방을 나간다면 이 문으로 나가겠나? 저 문으로 나가겠나?"

  이방의 부인이 한 무릎을 세우고 서면서,

  "제가 지금 앉겠습니까? 일어서겠습니까? 상금 천 냥은 탕감해 드리겠으니, 일후론 그런 생각 아예 마십시요."

  "?!"

 

    근거 있는 판단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늙은이에게 지나가던 행객이 물었다.

  "군청까지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그냥 가시오"

  행객은 속으로 불평이다.

  '별 퉁명스런 사람도 다 보네. 묻는 말에 그게 무슨 대답이람.'

  이만치 오려니까 뒤에서 부른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왜 그러시오?"

  "그 정도 걸음이라면 13분이면 될 거요."

  '그래야지. 어느 정도 속도로 걷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대답할 수야 없지 않나?'

 

  목계라면 충주 조금 하류에 있는 유명한 나루터다. 선비차림의 행객 셋이 배에 오르니까 사공이 하는 소리다.

  "한 분만 남고 내리셔요."

  "달리 사람도 없는데 왜?"

  "배가 적어서 천 석씩밖에 못 싣습니다.

  세 사람이 똑같이 천석꾼 부자들인 걸 알아 맞춘 것이다. 물론 선비들은 웃고 행하 삼아 선가를 두둑이 치러야 했다.

 

 

    생사람 잡는 금덩이

  귀엽게 생긴 어린이가 길을 나서 헤매니까, 사람이 잘생기고도 볼일이지, 불러들이는 이가 있어 밥 먹이고 재워주어 한겨울 동안 두 군데 부잣집에서 편하게 났다.

  "다른 데 가면 별수 있니? 네 집 삼아 여기서 같이 살자."

  타이르고 꾀어도 굳이 뿌리치고 떠나겠다는 수가 필연코 무슨 보물을 지니고 있는 것이리라 짐작하고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한다.

  "마음잡아 눌러 같이 살자고 준 금덩이니 그것이나 내놓고 가라."

  그런 사실이 있다커니 없다커니 실랑이 끝에 사건은 관청 마당에까지 번졌다. 소년은 원님과 단둘이 만나기를 청해 아무도 없는 조용한 데서 털어놓고 얘기하였다.

  "제가 금덩이를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집안이 폭삭 망해서 다 죽고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날 때 다음에 크거던 밑천 삼으라고 주신 건데, 그저 밋밋한 게 이렇게 주먹 크기만 한 것입니다. 두 부자더러 자신이 준 것처럼 흙으로 빚어보래서 제가 지닌 게 그와 같다면 도리 없지만 다르다면 얘기가 좀 다릅지요."

  원님은 동헌에 좌기(정식으로 격식을 차리고 나와 앉는 것)하고 두 부자를 불렀다.

  "그대들은 이 고을의 일등 유지들이라, 조따위 어린 것을 데리고 사기를 치리라곤 생각 않는다. 여기 진흙이 있으니 자기가 준 금덩이의 모형을 만들되 크기와 모양이 똑같도록 하라."

  두 부자는 뒤로 손을 써서 알아낸 정보가 있는지라, 두루 뭉실하게 그 아이주먹 만큼씩 뭉쳐 자신만만하게 내어놓았다소년은 그제야 자기의 짐을 끄르고 헌 버선 짝을 뒤져 금으로 만든 두꺼비를 꺼내놓는데,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금시라도 기어 다닐 것 같은 게 크기는 다 해야 굵은 계란 만밖에 안한다.

  "이게 어디 그대들이 줬다는 것과 당키나 한가? 흙덩이는 증거물로 여기 두고 집에 돌아가 그와 똑같은 금덩이를 만들어서 가져오라. 생사람 잡은 보상으로 제가 줬다는 만큼은 줘야 하느니 기한은 모레로 잡는다."

  얘기는 진행하는 공식에 따라, 소년은 원님이 거두어 기르며 글을 가르치고, 또 사위를 삼아 부자들에게서 받은 금붙이를 바탕으로 살림을 차려줘 근자까지도 그 자손이 잘살았다.

 

 

    식구 같기도 하고 남 같기도 하고

  어떤 원님께 소를 잃어버리고 찾아달라는 송사가 들어왔다.

  "언제 잃어버렸느냐?"

  "어제 같기도 하고 오늘 같기도 합니다."

  "몇 마리를 잃었느냐?"

  "한 마리 같기도 하고 두 마리 같기도 합니다."

  "누구 지목 가는 데가 있느냐?"

  "식구 같기도 하고 남 같기도 한 사람이 하나 있습니다."

  포교를 풀어서 잡아들여 보니, 주인 여자의 형부되는 놈이 밤중에 새끼 밴 암소를 끌어간 것이더라고 한다.

 

 

  어떤 사냥꾼이 여우를 발견하여 호되게 쫓았더니, 다급한 김에 동네로 쫓겨서 달아난 것을 사나운 개가 있다가 덤벼들어 물어 죽였다.

  "우리 개가 잡았으니 이 여우는 우리 거요."

  개 임자의 주장이다. 그렇다고 생업인데 그대로 물러날 사냥꾼은 아니다. 실랑이를 하다하다 원님한테까지 들고 들어갔다. 쌍방의 주장을 다 듣고 나자 원님은 판결을 내렸다.

  "개가 바랐던 것은 여우의 고기요, 사냥꾼이 원하는 것은 여우 가죽이렷다. 각각 원하는 대로 주라. 개 임자는 여기에 개입할 이유가 없느니라."

 

 

    아무 때나 갚고 싶을 때 갚기로 한다.

  돈은 많은데 글을 모르는 영감이 있었다. 동네 젊은 놈이 이자 쳐 주마기에 증서를 받고 주었더니, 기한이 돼도 갚을 생각을 않는다. 여러번 다그쳐도 안갚아서 원님에게 호소했다고소당한 청년이 빈들빈들 대답했다.

  "증서대로 했는뎁쇼."

  증서를 보니 '아무 때고 갚고 싶을 때 갚기로 한다'고 씌어 있다. 원님은 놈을 옥에 가두게 했다.

  "증서대로 했는데, 이거 무슨 처사입니까?"

  "이건 너의 식이야. 아무 때고 내놓고 싶을 때 내놓아 주리라."

  "?!"

  얘기의 하회는 물으나마나다.

 

  어떤 고을에서 포도군관들이 무던히도 애쓴 끝에 천하에 낯 간지러운 파렴치한 하나를 잡아들여서 원님 앞에 꿇렸다사기, 횡령, 좀도둑에 관명사칭, 사기도박, 강간, 탈옥, 가정파괴 등 도무지 사람으로선 못할 짓만 골라 하고 다닌 놈이오, 그러니만치 잡는 데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놈 이리로 가까이 오게 하라!"

  뜰 위로 불러올려 아주 가까이 마주보고는 두 눈을 똑바로 보며 한마디하였다.

  "네 이놈! 사람은 아니로다."

  이제 묶은 것을 끄르고 내쫓으란다이럴 수가?

  천신만고해서 잡아들인 놈인데... 그러기로 어른의 명을 어길 수도 없어 삼문 밖으로 몰아냈을 밖에...

  원님은 영창 안에서 하루 종일 고서를 뒤적이며 글을 읊조리는 모양이더니 어스레할 무렵에 포도군관들을 불러모았다.

  "그놈은 멀린 못 갔을 게고..., 이 근처 숲이나 늪에 시체가 있을테니 찾아보도록 하라."

  '무어? 시체? 이 양반이 도술을 하나? 멀리서 손도 안 대고 죽이는 무슨 묘방이라도 가졌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면서 꼬빡 어둡도록 찾아 헤매다가 돌아와 복명하였다.

  "영 못 찾겠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자탄하듯 말하기에 내력을 여쭈어 보았더니 이르는 말이다.

  "내 똑똑이 쏘아보면서 '사람은 아니로다!'라고 말했는데, 그런 모욕을 당하고도 살아서 어디로 갔더란 말이지... 세상에 그런 양심도 자존심도 없는 놈이 있더란 말이냐?"

 

 

    안방으로 소를 몰고 간 사나이

  어떤 집에 밤 도둑놈이 소를 끌어갔다. 무어 단서가 될 만한 꼬투리도 없어 답답한 대로 점쟁이에게 물으러 갔다그랬더니 이렇게 말한다.

  "오늘 10시에 장터 네 거리에 가 똥을 누면 소 값을 찾으리라."

  별 미친 소리도 다 많다고 하니까, 점괘가 그렇게 나오는 걸 어쩌느냐는 얘기다어쩐지 허황한 것 같으면서도 소값 찾으려는 욕심에 사람 다니는 네 거리복판에서 시간 맞추어 엉덩이를 깠다. 마악 안 나오는 똥을 억지로 누려고 하는데, 지껄지껄하며 오던 장삿군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나 원! 오늘은 별꼴을 두 번씩이나 보네! 어떤 놈은 소를 안방으로 몰고 들어가더니, 저 작자는 길 한복판에서 똥을 누네!"

  그 소릴 듣고 귀가 번쩍 뜨여 바지를 끌어올리며 따라가 캐물어서 소도둑놈 집을 찾고, 잘라놓은 대가릴 보니까 틀림없는 자기네 소라 소 값을 쳐서 찾았다는 얘기다.

 

 

    남산골 영감의 환갑상 때문에

  남산골에 소싯적엔 괜찮게 지내다가 하던 사업도 들어먹고 아들 하나 있던 거 앞세우고 홀며느리와 손자 하나에 희망을 걸고 쓸쓸하게 지내는 영감이 있었다그가 환갑을 맞게 됐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거푸 흉년이 들었다. 양식도 귀한데 술해 먹게 됐느냐고 금주령이 내려 왕실에서도 종묘 대제 때 현주(냉수)를쓰며 금령이 대단하였다. 몇 해씩 거듭하다 보니 술해 먹은 놈은 사형에 처하고, 이를 고발하는 자는 후한 상금을 내릴 거라는 방까지 나붙었다남산골 오막살이 초가에서 환갑을 맞이한 이 영감님은 효성스런 며느리가 차린 조촐한 아침상을 받아놓고 보니, 노오란 약주술이 딱 한그릇 놓여 있어 깜짝 놀랐다.

  "이게 왠 거냐?"

  "오늘이 일생에 한번 있는 좋은 날이기에 몰래 한 그릇 했어요. 그것뿐이니 아무말씀 마시고..."

  "얘야! 앞 집의 김 첨지 좀 불러라. 혼자서야 무슨 맛이냐?"

  "아유, 아버님도...,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얘야! 그 사람은 내 죽마고우야. 설마하니..."

  그 설마가 오고야 말았다방에 들어서다 이 광경을 본 김 천지는 발꿈치를 돌렸다. 물론 그 길로 고발하러간 것이다시각을 지체않고 뒤꼭지가 세 뼘씩이나 되는 포졸들이 들이닥치며 술 그릇을 압령해 며느리를 묶어서 풍우같이 몰아갔다. 영감도 후들후들 떨면서 그들 뒤를 따르고...

  딱하게 된 것은 포도대장이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한담? 천하에 죽일 놈은 상을 줘야 하고, 출천의 효부는 죽여야 하다니?'

  생각 끝에 그는 단을 내렸다.

  "며느리는 법대로 처리하되, 늙은이는 살아갈 길이 망연하니 한 달에 쌀 한말씩을 보조한다. 고발한 늙은이는 포도청에 별군관으로 채용되고, 한 달에 쌀 서른 섬(하루 한 섬씩)의 요를 태운다."

  사형이 그리 쉬운 게 아니어서 임금의 재가를 받자면 최소한 넉 달은 걸리는데 정상을 참작해 서류를 늦추면 그만이고, 도망할 염려가 없어 집에 가 있으라 하면 되니 늙은이 먹어라 주는 곡식은 사실상 상급이다.

  고발한 늙은이가 이튿날 정해준 시간에 군복을 차려 입고, 첫 출근을 하였더니 대장의 분부가 떨어진다.

  "그대는 어제까지 민간인이었으나 오늘부터는 내 부하 관직이다. 군관마다 특기를 따라 일을 맡기는데, 늙은 놈이 도둑을 쫓겠느냐? 문서를 꾸밀 줄 알겠느냐? 너는 술해 먹는 놈 적발하는 게 특장이야. 오늘부터 하루 한 건씩 책임지고 들춰내되, 그것을 못한 날짜의 봉급은 몰수하고 볼기 다섯 대씩을 맞는다. 지금 곧 착수하라."

  어떤 세상인데 술해 먹을 놈이 또 있으랴? 집에 와 드러누웠다가 저녁때 들어가 볼기를 맞아보니, 이거 어디 살겠는가? 이튿날도 또 다음날도 아침에 들어가 헌신하고 저녁에 들어가 볼기를 맞는데, 대장이 물었다.

  "너 구실을 더 살래? 힘드는데 그만 둘래?"

  "! ! 제발 좀 그만두게 해둡쇼."

  "그래? 그럼 오늘 날짜로 파면이다. 그리 알고 물러가거라."

  "!?"

 

    모르겠다, 살림에 보태 써라

  한문을 숭상하던 그 옛날에는 거기 얽힌 얘기도 많았다어떤 시골 선비가 서울 왔다가 모든 게 뜻대로 안돼서 회포를 글로 읊었다.

  같지 않은 서울왔다가

  먹어도 살로 아니가더라

  한문식으로 제대로 새겨서는 안된다. 글자대로 따라가며 훈으로 새겨야 쓴 사람 뜻이 살아나는 법이다.

  놀이를 차렸으니 같이 가자고 친구되는 선비가 아이를 시켜 편지를 들려 보내와서 답장을 써 보냈다.

  친구들은 편지를 받아보고 생각하기를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자가 둘씩든 수가 아마 못 오는 게라고 기다리지 않고 막 떠나려는데 헐레벌떡 그가 들어선다.

  "누가 안 온댔어? 답장에 뭐라던가? 오지()()래도 가()겠는데,

()라는데 아니()()겠는가? 이게 안 온다고 하는 소리야?

 

  글이나 읽다가 과거도 못하고 주저 물러앉은 사람을 책상물림이라 하는데, 특별히 생계를 이을 만한 재간이나 부모 유산도 없고 보면 그 살림의 간고하기가 말이 아니다이런 부류의 사람 하나가 부인의 바느질품으로 연명을 하는데, 이 부인이 과로 끝에 한 십여 일 몸살로 누워놓으니, 그야말로 두 손 묶어 놓은 것이나 진배없었다.

  생각다 못해 처갓집으로 편지를 했는데, 장인이 받아 보니 이거 큰일났다집의 사람이 우연히 병을 얻어서 보름날 화거(신선이 되어갔다. 곧죽었다)했으니 슬프고 원통해라.

  평소에 좀 도와주기라도 했더라면 좋았을걸, 잘해주지 못한 것이 모두 후회스러워 눈물을 질금거리며 초종 치를 경비를 마련해가지고 허둥지둥 딸의 집을 찾아갔는데, 죽었다던 딸이 뜰을 왔다갔다하다 깜작 놀라며 인사한다.

  "아버지, 갑자기 어쩐 일이셔요?"

  "!?"

  제 방에 처박혀서 책을 읽다가 바깥 소리를 듣고 나온 사위의 인사를 받으며말며 편지 사연을 가지고 따져 물었더니 오히려 되묻는다.

  "뭘 어떻게 했다고 그러셔요? '실인이 우연히 병이 나서 보름이나 되어 가는데, 아프면 울고 아프면 울고 합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가져왔던 재물을 도로 가져갈 수도 없고 하여 그냥 놓아두고 오며 일렀다.

  "모르겠다, 살림에나 보태 쓰렴!"

 

    똑딴 미인 하나 손에 넣고

  어떤 시골에 고리삭은 샌님이 아니라 제법 배짱 있는 선비가 있었다. 과거를 보러 서울엘 갔는데 뒷줄이 없으니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그런데 이 친구는 모처럼 노자를 들여 서울에 온 몸이라, 서울 구경이나 하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한 곳에 다다르니 송림이 제법 우거져 운치가 있는데, 어떤 대갓집 후원인 양싶다. 깨끗하게 지은 정자에는 정갈하게 차린 술상이 있고, 그 옆에는 누구를 기다리다 지쳐 누웠는지 똑딴 미인 하나가 춘곤을 못이겨 잠이 들어 있었다.  '사내자식이 세상에 한번 났다가 저런 미인 하나 끌어안아 보지 못하고 만단 말이냐?'

  사나이는 저도 모르게 이런 충동을 느껴 담을 넘었다. 놀라 깬 여인을 달래 술을 붓게 하고 배불리 먹은 뒤에 내력을 물으니, 주인은 당로 대신이요, 이 술은 임금이 내리신 것이라 한다.

  '그러면 더욱 재미있다.'

  신기하게 느낀 그는 용기를 내어 미인을 손에 넣고 글 한 구를 써서 주었다. 기다리던 대감이 돌아오거든 술을 권하면서 읊으라는 것이다사나이가 담을 넘어 나간 뒤 과연 대감이 나타났다. 달리 상을 마련하여 술을 권하고 거나했을 때에 놈이 남기고 간 글을 읊었다.

  임이 내리신 술을 닥닥 먹고

  아름다운 여인을 거북거북 붙었더라.

  그 다음 글을 읽으니 이런 죽일 놈이 있나?

  "만물지영은 사람이요, 인간지최는 왕이니 전자가 되고, 삼사장수는 내 천자요, 각포일란은 각각 한 알을 품었으니 고을 주자라. 이놈 전주사는 놈이로구나!

아궁이 부단이라, 내 활이 짧지 않다고 했으니. 그럼 길다는 얘기라, 성은 장가가 적실하고, 천금이역은 금으로 바꾼다 했으니 주석 석자요, 비조가 장재궤중이라? 나는 새가 오래 궤 속에 있으면 이건 새 봉자라, 이놈 '장석봉' 이라는 놈이로구나. 그따위 일을 저질렀으면 웬만하면 행적을 감추겠는데, 거주와 성명을 밝히다니 이놈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래 전주감영에 통기하여 불려 올려보니, 사람이 기걸 차고 속이 트여 제법 쓸 만하다. 그리하여 그것이 인연이 돼 벼슬길이 트여 잘살게 되더라고 한다.

 

 

    과년한 딸 셋과 노총각 하나

  옛날에는 불 얻어 쓰기가 힘들었던 만큼 특히 사냥꾼들은 불시에 불을 쓰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좋은 부시라면 값을 불문하고 샀다어떤 엉터리 친구가 집에서 나와 보니 포수 한 떼가 주막에서 술들을 먹고 있다.

얼른 부시쌈지가 든 귀주머니에다 불을 당겨서 연기가 꾸역꾸역 나게 해서 그 앞을 지나간다.

  "여보, 여보, 그 주머니에 불 붙었소."

  ", 그래요? 참 내가 쇠하고 돌을 따로 넣어가지고 다닌다면서 또 이랬군!"

  '무어? 쇠하고 돌을 따로따로 넣을 걸 그랬다? 그럼 한데 넣었더니 저희끼리 부딪쳐서 불이 났단 얘기라.'

  "여보시우, 그 부시 좀 구경합시다. 그리고 웬만하면 좋은 값에 좀 넘겨줄 수 없겠소?"

  "이 양반들이 남의 소중한 부시를 팔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요?"

  억지흥정을 하다 보니 호되게 비싼 값으로 부시를 팔아먹더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딸 셋을 두었는데, 모두 과년해 가니까 애가 달았다. 마침 알맞은 노총각이 있어서 앞에 앉히고 교섭을 벌였다.

  "스무 살짜리는 그냥 보내겠네만, 스물 네 살짜리라면 그저 먹고 살만큼 끼워서줌세. 스무 일곱 살 되는 애를 데려가겠다면 내 반재산 내놓겠네."

  이 신랑이 우물우물하더니,

  "그 위론 없습니까? 있다면 그를 맞겠는데..."

 

    요는 덮으시려구요?

  어떤 길손이 경기도 과천을 지나다 객주 집을 찾아 방을 잡았는데 몹시 어둡다. 옷을 벗으려다 멈칫하고 섰는데, 그 집 아이가 뜰앞을 지난다.

  "얘야, 이 방이 어둡구나!"

  그랬더니 이놈이 곁말을 쓴다.

  "이방이 어둡거던 좌수를 부리십시오 그랴?"

  '무어, 요런 맹랑한 일 봤나?'

  "요놈 자지를 벨라."

  "목침이 있는데 왜 자지를 베요?"

  "그래도 요놈이? 요놈 불알을 깔라!"

  "불알을 깔면 요는 덮으시렵니까?"

  그만 어이가 없어 더 대꾸를 않고 그냥 눌러 그 집에서 잤다. 이튿날 아침인데 또 망신을 하려니 자진하여 실수를 할밖에마당에 내려섰는데, 고놈의 아이가 벌써 일어나 동네 나갔다 돌아온다. 아이들에겐 통하지도 않을 농담을 던졌다.

  "나 너 어머니가 불러서 안에 들어가 있다 나온다."

  ", 우리 애기 똥 샀던가봐."

  농촌에서는 아이가 똥을 싸면 강아지를 불러들여서 핥아 치우게 하는 것이 예사다.

 

 

    알몸으로 남의 집 안방에 뛰어드니

  이완 대장이 한창 젊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길을 지나는 데 갑자기 돌을 속에 넣고 뭉친 편지가 날아와 발 앞에 떨어진다. 괴이하게 여기며 집어 풀어보니,

"오늘이 마침 번 드는 날이니 밤에 남편 없을 때 놀러오라"는 사연이다.

  호협한 마음에 별 생각 않고 밤에 그 집을 찾아가 술 대접 잘 받고 계집을 끼고 누웠는데, 놈팽이가 어찌 알았던지 아니면 미리 짜놨던지 시퍼런 식칼을 번득이며 뛰어든다.

  질겁을 해서 문을 박차고 나와서는 다급한 김에 담을 몇 개 뛰어 넘었더니 어느 집 내정이요, 안방에 불이 켜져 있어서 잡담 제하고 열고 들어갔다마침 젊은 부인이 불을 돋우고 바느질을 하고 앉았는 데, 아무말 없이 아랫목에 깔아놓은 이불로 덮어주고는 의장을 열고 새옷 한벌을 내어 주어서 입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할 염치도 없어 그냥 방을 나와 뜰에 내려서는데, 대문간에서 인기척이 있어 얼른 뒤꼍으로 몸을 숨기고 동정을 엿들었다방문도 채 안 닫았는데 남편이 들어서며,

  "지금 그게 웬 사람이여?"

하는 물음에 여자가 침착하게 대답한다.

  "웬 건장한 남자가 이 추운데 알몸으로 뛰어들었기에 이불을 덮어 몸을 녹이게 하고, 옷 한벌을 입혀서 돌려보냈어요."

  "그랬어? 술이 있으니 데워서 어한이라도 시켜 보내지 않구..."

  이 대장이 창밖에서 두 내외 얘기하는 소리를 듣고, 이제는 당당하게 앞문으로 돌아가 주인을 찾았다. 들어앉아 서로 수인사를 하고 나자 주인은 부인에게 술상을 차려오게 하여 대접한다. 그런 뒤로 두 사람은 무척 친하게 지냈더란다그뒤 둘이 다 출세하고 늘그막에 어느 쪽에선가 그때 얘기를 꺼냈더니, "그런일도 있었던가?" 하고 서로 크게 웃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웃나라에서 보낸 문제

  한 청년이 어머니를 버리려고 지게에 얹어 지고 가는데 머리 위에서 뚝뚝 나뭇가지 꺾는 소리가 들려 이상해 물었더니, 네가 돌아갈 때 길을 잃지 말라고 표시를 해놓는다는 것이다. 그만 코허리가 시큰해지며 눈물이 앞을 가려 더 갈수가 없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밤이 깊기를 기다려 도로 업고 돌아와 아무도 모르게 봉양하였다.

  하루는 이웃나라에서 사신이 왔는데, 이 돌에 실을 꿰고, 이 호리병 안쪽에 종이를 빈틈없이 바르고, 재로 새끼를 꼬와 올리되, 시일을 지체하면 군사를 내어 너희 나라를 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였다. 조정에서는 누구고 이 해답을 대는 사람에게는 후한 상을 내리겠노라고 공고하였다.

밤에 청년이 밥상을 들고 땅 굴속으로 찾아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그 얘기를 듣고 일러주었다.  "돌 양쪽으로 구멍이 뚫려 있을 것이니, 구멍 이쪽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기고, 저쪽에서 개미허리에다 실을 매 대주면, 그 놈이 냄새를 더듬어 이쪽구멍으로 기어 나올 것이요, 종이를 뜨기 위해 버무려 놓은 원료 물을 병 속에 넣고흔들어 쏟아내기를 몇 번 되풀이하면, 안쪽으로 종이 켜가 앉을 것이니 그것이 종이를 바르는 것이며, 또 짚으로 꼰 새끼줄을 소금물에 담갔다가 꺼내어 말려서 불에 사르면 새끼 모양이 재로 남을 것이니, 그리하면 세 가지 문제가 다해결된다."

  청년은 곧장 조정에 들어가 지혜 말씀 올렸고, 그것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임금이 그에게 중한 상을 내리려 하자, 청년은 뜰아래 내려가 엎드려 벌을 내려주십사고 머리를 조아렸다.

  청년에게서 모든 사정을 들어 알게 된 나라에서는 "늙은이는 지혜로우니 이제부터는 갖다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집집마다 저희 부모님을 끝까지 모시는 좋은 풍속으로 굳어졌다.

 

 

    서당 선생 마음은 오랑캐와 같고

  옛날의 글방은 공부방이요 지혜를 닦는 곳이며, 수수께끼의 온상 구실을 했다.

  돌담 무너지는 자가 무슨 자냐?

  발 모양 낸 자는?

  바깥에서 부르는 자는?

  집안이 떠들썩한 자는?

  집안이 고요한 자는?

  거듭 폭행하는 자는?

  돌담은 오루루하고 무너진다. 그래서 첫 문제 정답은 우(오를 우), 다음 새 신 신었으면 발 모양이 나니까 신(). 다음은 오(), 나오라고 불렀으니까. 다음은 처(아내 ), 홧김에 아내를 때리는 놈이 점잖고 조용히 때릴 리는 없으니까. 또 재롱부리던 아들아이가 잠이 들면 "쉬잇 떠들지 마라." 그래서 집안이 고요해 지니까 아들 자이고, 한 번 찼는데 또 차면 그건 거듭 폭행하는 것이 된다.   어떤 고명한 선생님께 고약한 제자들이 이런 찬사을 보냈다.

 

 

  마음이 백이와 숙제처럼 고결하시고, 겉모습은 성인이라 이르던 주공 그대로시다.

  그것을 달리 새기면 마음은 오랑캐와 똑같으시고(가지런 할 제), 주공은 주공으로 두루 구멍이 났다. 즉 불행히도 그 어른은 곰보셨던 모양이다한가지 동에 한 획을 더하면? 그것은 엿볼 사자가 되고, 같은 맥락으로 여섯륙하고 동한 자는 사랑 사자가 된다내가 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에 익힌 것으로 천자를 써놓고, 여기에 붓을 한 번 대대자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 있었다. 정답은 맨 위 획을 이어 동그라미를 치면 된다.

 

      중은 요 고개로, 기생은 조 고개로

    이놈의 소, (맹자)를 가리칠라

  숨이 턱턱 막히는 삼복 염천이다. 논에 들어서서 일하던 머슴이 상욕을 섞어가며 신세 한탄을 한다.

  "제기랄, 무슨 놈의 팔자가 이게 해먹을 노릇이야? 그래, 어떤 놈의 팔자는 호의호식하며 시원한 데서 책이나 읽고, 이놈의 팔자는 그래 만날 비지땀을 흘리고 이짓을 해야만 된담매?"

  "얘야, 너 우리 아들들하고 같이 공부하고 지내겠니?"

  "시켜주면야 하지요. 그렇지만 내내 그래 주어야 말이죠. 며칠 하다 만다면 그런건 싫어요."

  그날로 머슴은 목욕을 말끔히 하고 잠자리 날개 같은 모시적삼에 고운 베로 지은 중의를 입고, 삼복이건만 솜을 통통이 둔 버선을 신고 대님을 매었다. 머리를 빗어 올려 편월상투를 멋들어지게 틀고, 망건을 팽팽하게 눌러쓰니 눈이 다 올라가고 골이 지끈지끈 아픈데, 그래도 그래야 팔자가 트인다고 참고 배긴다.

  높은 노마루에 돗자리를 펴고 앉으니 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통한다. 그렇지만 두무릎을 꿇고 앉아 무슨 소리인 줄도 모르고 (맹자)를 몇 줄 배우고서, 백 번이고천 번이고 내리 외우자니 발이 저려 오고 배에서는 연신 꾸룩꾸룩 소리가 나며 점심 먹은 것이 생목이 오른다.

  낮글을 마치고 저녁상을 받았는데, 반 사발도 못 먹었다. 좀 놓아주나 했더니 밤글을 읽으란다. 이슥해서야 간신히 끝나 망건을 끄르니 살 것만 같다이튿날 일어나니 세수하자마자 그놈의 망건을 또 써야 한 댄다. 그래야 팔자가 트인다니까 시키는 대로 할밖에. 새벽 글을 읽고 밥상을 대하니 밥알이 온통 모래 씹는 것 같다.

  아침 먹은 것이 채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맹자)를 또 배우란다. 얼마를 앉아외우려니 이젠 다리뿐만 아니라 허리까지 아파오는데 정말 죽을 지경이다.

  '이래야 팔자가 트인다니...' 하고 억지로 배기는데, 점심을 먹고 나선 꼭 한잠자고 싶은데 공부를 시작하란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며 근질근질 가려워 긁으려고 하니 망건이 가려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다.

  다시 꿇어앉아 몇 줄 외우다 말고 결국 뛰쳐 일어났다.

  "아유, 이놈의 노릇은 정말 못해 먹겠네!"

  그는 망건이며 옷가지를 벗어던지고 논밭으로 나갔다. 김장밭을 되노라 소를 부리는데, 칠월 소고 보니 영 말을 잘 안 듣는다. 머슴은 목소리를 높여 소를 꾸짖었다.

  "이랴, 이놈의 소. 이놈을 망건을 씌워서 (맹자)를 가르칠라."

 

    이놈은 왜 저승 출입이 잦아?

  "사람이 나면서 이내 모든 것을 알면 얼마나 좋으랴" 하는 것은 사람마다 생각해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 그런 얘기가 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고 짐승이고 모두 전생이 있고 이승이 있어, 생전에 착한 일을 한 사람의 영혼은 극락으로 또는 인간으로 환생을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죄의 정도를 따라 축생으로 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생 일이 가끔 생각이 나고 그래야겠는데, 그런 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거기는 또 그럴싸한 설명이 있다. 저승에 가노라면 그 중간에 높은 고개가 있고, 고갯마루에는 술집이 하나 있는데, 거기 아주 능글맞은 할멈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그래 그 여자가 망인에게 술을 권해서 마시게 하는데 어찌나 수단이 좋은지, 누구든 그 손에 걸리면 술을 한잔 아니 받아 마실 수 없고, 그 술을 마시기만 하면 그 전의 일은 모두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어떤 사나이가 공부도 많이 했고, 세상 경험도 제법 쌓아 이런 내막을 잘 알고 있었다. 나이 많아 죽게 되니 그의 혼도 고개를 넘게 되고 할멈이 권하는 술을 어떻게 용하게 땅에 엎질러 없애버렸다. 그 술을 먹지 않고 그 고비를 넘는데 성공한 것이다그 뒤로 얼마를 깜깜한 가운데 있었더니, 주위가 차차로 밝아온다.

  '옳지, 이제 뭘론가 태어나 주려나 보다.'

하였더니 왠걸! 태어나 보니 구렁이다.

  '이런 놈의 일이 있나? 뱃속에 구렁이가 들어 앉았다더니, 나는 뱃속에 영감이 도사리고 있는데, 그래 이 꼴을 하고 개구리나 찾아서 돌아다니란 말야?'

  불평이 가득하여 마침 달구지가 큰 길로 지나가기에 그 바퀴 밑으로 기어들어가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래 다시 저승엘 갔더니, 절차는 역시 매한가지다. 그리하여 다음 다시 태어났는데 이젠 강아지다.

  '똥강아지 노릇을 하란 말이야? 안될 말이지!'

  얼마 만에 개백정이 왔다고 포대기에 싸다가 방에 감추는 것을 마침 백정이 문앞에 왔을 때쯤 하여,

  "깨깽, 깨깽."

하고 뛰어나가니 영낙없이 또 한번 저승길이다다음 번 다시 태어나는데, 이번엔 사람이다. 어찌나 좋던지 무릎을 탁 치며

  "아이구 좋아라!"

하고 소리를 쳤더니, 애낳던 여자의 그 넓적한 궁둥이가 내려앉아 그만 숨이 막혀 또 죽고 말았다아기 어머니 편에서도 그랬을 거다. 애 낳아 떨어지자마자 무릎을 탁치며 발음도 똑똑하게,

  "아이구, 좋아라!"

해놨으니, 원 요사스러워서 그 자식을 키울  맛이 나겠는가 말이다. 그래 그냥 진자리에 깔아 뭉게어 죽여버린 것이다.

  '이런 제기! 공연히 이놈의 주둥이를 그만 가볍게 놀려서..., 모처럼 인생으로 태어났다가 요놈의 입초사로 허사가 되었으니, 이 다음엘랑 세상없는 일이 있어도 내 입을 무겁게 가지리라.'

  잔뜩 결심하고 있는데, 염라대왕이 보더니,

  "이놈이 왜 이렇게 저승 출입이 잦아? , 그놈 나가다 말고 들어왔으니 다시 인간으로 태워줘라."

  '옳지, 이번에도 사람이다. 그렇지만 내 절대로 입은 안 놀릴 테다.'

  단단히 결심을 하고 태어났는데, 물론 눈도 안 뜬다.

  "아들이다! 그런데 무슨 애가 울질 않아?"

  거꾸로 쳐들고 볼기를 때리고 하여도 울지를 않는다.

  '그런다고 누가 입을 열 줄 아느냐?'

  기어코 울지 않는 이 신기한 아이는 그렁그렁 커갔다. 배가 고프니 울기를 할까?

좋아라고 웃길 할까?

  ', 제기 어머니라고, 그 전 우리 집 식모만큼도 못생겼구나! 저게 아버지지? 점잖은 체는 무던히 한다마는 무식한 것이.'

  이러며 유들유들하게 딴 베포를 꾸민 이 아이는 울지도 웃지도, 물론 말도 못 배우고, 그러자니 '병신자식' 이라는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그렁저렁 나이 여남은살이나 좋이 되었다.

  '이젠 첫째 갑갑해 못 견디겠고, 또 적당한 시기에 말문을 열어야만하겠는데...'

  이렇게 마음먹고 있는데, 하루는 사랑 윗목에서 장기짝을 쌓았다 흩었다 혼자서 놀고 있자니, 아버지 작자 꼴이 재미있다.  (전운옥편)을 내놓고 패문운부를 펼치며 흥얼흥얼하는데, 아까 환갑잔치 청첩이오는 걸 봤으니 필연코 수연시를 짓는 모양이다. 연상을 당기어 먹을 갈아놓고 붓방아를 찧더니, 이젠 일어나 쭈그리고 앉아서 안절부절 못한다.

  '왜 저럴까?'

  하고 보고 있으려니, 허리띠를 움켜지고 뛰어나간다. 뒤가 몹시 급하였던 모양이다.

  '어디 뭐라고 지었나 볼까? 이런! 이건 염이 안 맞았고. ! 이건 바깥 짝을 못채워서 그렇게 안달을 했구나! 어차피 오늘쯤 말문을 열려던 참이다.'

  바보아이는 붓을 들어 전생의 그 능숙한 필치로 글짝을 채워 써넣고, 염틀린데의 문구를 수정해 주고는 제자리로 돌아왔다아버지 작자가 변소에서 돌아왔다. 서판에 걸친 시고를 보더니 깜짝 놀란다. 두어 번 흥얼거려 읽더니 벌떡 일어난다. 사랑 마루까지 나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버선발로 내려서서 사람이 숨었을 만한 곳을 기웃겨려 본다아무 단서도 못 잡자 안문을 열고 마누라를 부른다.

  "여보! 사랑에 누구 다녀간 이 없소?"

  병신자식은 아예 계산에도 넣지 않는 행동이다. 그때다. 바본지 머저린지 통 말 않는 그 아이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왜 그러셔요? , 글 지어놓으신 게 조금 서투르시기에 제가 약간 고쳐놨죠."

  "? 여보! 여보! 얘가 말문이 열렸소."

  "무어라?"

  버선발로 쫓아나온 어머닐 붙들고는,

  "어머니 너무 오랫동안 숨기고 속여서 죄송합니다."

  "?!"

  그날 저녁, 이 진기한 사건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볼려고 모여든 일가 친척, 동네여러 어른, 아이들 앞에서, 이 병신자식은 일장 연설을 하였다.

  "친애하는 시민 여러분! , 이거 만민공동회에서 연설하던 버릇이 아직도 있어서..."

 

 

    기유년 이월 보름에 죽으리라

  옛날에 어떤 양반이 있었는데, 유명하게 사주를 잘 푼다는 사람을 천거하는 이가 있어 불러보았다. 그랬더니 한달 기한만 달라는 거다. 그러라고 별당에 조용히 혼자 거처하게 했더니, 기한을 채우고 나와 쪽지 한장을 전한다.

  배년붕반에 원무심이요,

  계양산하에 계월향이라.

  한달을 걸려 풀었다는 것이 이 한 구절이다배년을 파자해 보면 기유요, 벗 붕자는 달자 둘이니 이 월이요, 반은 한달의 반이니 보름이라, 원무심은 원망할 원자의 마음 심자가 없다 하였으니 죽을사자라.

  이것을 종합해 보면 '기유년 이월 보름에 죽으리라'는 것이다.

  첫줄은 이렇게 풀었는데 뒷줄은 알 재간이 있나?

  '계양산 아래 계월향'이라니 무슨 뜻인지 풀 도리가 없다.

  그런 뒤 이렁저렁 살다 나이 한 오십하여 기유년을 당하고 보니,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배겨낼 도리가 없다. 정월도 보름을 넘어서자 죽장망혜로 집을 뛰쳐나왔다. 기왕 금년에는 죽는다는데 팔도강산 유람이나 하리라고, 그리하여 친구들이 수령으로 있는 이 고을 저 고을로 찾아다니자니 가는 데마다 예쁜 기생과 풍악을 곁들여 질탕히 놀이판을 벌이는데, 사나이의 마지막 생활로서는 제법 흥겨은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기를 한 달, 집에 돌아와 와석종신 하겠다던 것이 도중에 친구들의 만류도 있고 하여 우연히도 경기도 부평 원님에게서 이월 보름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일찍 도착하였으니 서울까지 70, 충분히 집에 닿을 여유도 있건만 낮놀이에 눈여겨 두었던 기생도 있고 한 터이라, 어차피 일생의 마지막이니 미색이나 하루가까이 하리라. 또 한편으로는 마지막이라는데 될대로 되라는 기분도 있어 눌러앉아 그 밤을 맞이한 것이다.

  삼현육각의 자지러진 풍류 가운데 벌, 나비 뛰듯 남녀가 어우러져 거의 퇴폐적인 춤 끝에 주저앉아 다시 한숨배 도는데, 마침 구름이 갈라지며 환하니 보름달이 얼굴을 내민다.

  '배년붕반 원무심'이랬것다. 오늘이 기유년 이월 보름이다.

  '오늘 내가 죽어!? 계양산 아래 계월향이라. 이 고을 뒷산, 저 산은 옳지!계양산!'

  마신 술이 번쩍 깬다. 품에 안은 미모의 기생 어께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네 이름이 뭐랬지?"

  "아이 잊으셨나봐? 계월향이어요."

  "!?"

  "왜 이렇게 놀라실까?"

  취안을 들어보니 손님인 자기와 기생과의 정담을 모두들 대견한 듯이, 측은한 듯인들 보고 있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아니, 왜 갑자기?"

  "이년! 잡아내려라. 어 고얀지고!"

  얼떨떨한 건 본관이다과연 여자의 품에서는 새파랗게 긴 비수가 나왔다.

  "네 이년! 네 어인 까닭으로 내 목숨을 노렸지?"

  "이렇게 된 바엔 숨길 것 없다. 네가 아무 고을 원으로 있을 때 화적의 괴수라 하여 잡아 죽인 아무개가 있지 않느냐? 그가 내 아버지다. 비록 죄에 죽었더라도 아비 죽인 원수는 원수! 너의 뒤를 따른 지 어언 몇 해냐? 오늘 저녁 수청들어 요절을 내려던 것이... , 분하다!"

  운명의 그 날을 무사히 보낸 그는 집에 돌아와 처저 거느리고 잘살다가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났다.

 

 

    저 타고난 분복이 넘쳐서

  뭣 좀 안다는 어느 사람이 친구 몇몇과 길을 가는데 도중에 알맞은 주막도 마침 없어서 배를 주리고 간다. 그런데 한 모퉁이를 지나다 보니 사람들이 백결치듯 모여 온 동네 복작복작하는데, 무슨 잔치라도 벌어진 모양이다.

  그래 민심도 살필 겸 염치불구하고 동네 안으로 들어섰다. 잔치집은 그중에도제일 큰 기와집인데, 손들을 보자 모르는 사람이언만 어서 들어오시라고 반가이 맞아들인다.

  못이기는 체 들어가 앉아 우선 무슨 잔치냐고 물으니, 이댁 도련님 돌잔치라는 것이다.

  '돌잔치를 이렇게 성대히 해?'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음식상이 나온다. 모두 고배로 고이고 푸짐하게 차렸다아이들과 여인네들이 돌쟁이 어린것을 밀수레에 태워 밀고 데리고 나와 논다. 먼발치에서 보아도 부얼부얼하게 잘생겼다. 그런데 이 친구, 그 아이 얼굴을 한참보더니,

  "자네들이나 먹으려면 먹게. 나는 도무지 요새 식욕이 없어서..."

  어쩌고 어물어물한다친구들도 그 사람 태도를 보고 별반 당기질 않아서 술 몇 잔씩 드는체하고 자리를 떴다.

  동구를 이만큼 벗어나자 일행 중의 하나가 물었다.

  "무얼 봤기에 자네 그리 기색이 좋질 않아?"

  "! 잔치란 흥겹게 먹어야 맛인데, 흥이 나게 됐어야지."

  ", 돌 임자가 어디 잘못 생겼던가?"

  "자네들도 보지 않았어?"

  "우리야 육안으로 뭘 알아야지."

  "낸들 뭘 알겠나만, 오늘 해를 못 넘길 테니 그놈의 술이 먹어져?"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보아하니, 아이가 식근을 과히 잘 타고 나지를 못했어. 조반석죽이나 끓이면 한삼십 살까 그 정도야. 오늘 차린 잔치만으로도 저 타고난 분복이 넘거든! 저 타고난 거 다 먹으면 죽어야지 별 수 있어?"

  뎅걸뎅걸 얘기하며 이만치 오니 주막이 있다.

  "! 여기만 오면 주막이 있는 걸 괜히 지체들 했네."

  술과 음식을 시키고 한참 앉았으려니 잔치꾼 두엇이 들어온다주모가 내달아 맞으며,

  "그래, 잔치 잘 잡수셨어요?"

  "잔치며 뭐며 나 원."

  "왜요?"

  "어린애가 죽었어! 밀수레에다 태워가지고 돌아다니다 대뜰에서 떨어뜨려 즉사했으니..., 나 원."

 

 

    수레바퀴 동자의 타고난 복을 나눠받아

  나무장사를 해서 근근히 연명하는 사람이 있었다. 부지런히 일하건만 하루 두 끼 피죽밖엔 못 얻어먹어서 이 사람이 결심을 했다.  '하루 두 짐씩 하던 것을 석 짐씩 하자. 더 벌면 그만큼 잘 먹을 것 아닌가?'

  그런데 분명히 석 짐을 해놓고 이튿날 팔러가려고 보면 두 짐밖엔 없다.

  '이상도 하다. 누가 져 갔나?'

  그래도 그저 일편단심 잘 살아보려는 일념에 꼭 석 짐씩 하는데 팔러가려고 보면 번번이 두 짐밖에는 없다.

  '어느 놈이 져 가는지 잡아야겠고, 내 꼭 원인을 캐내고야 말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뭇짐 속에 몸을 숨겨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더니, 이상도하지! 나뭇짐이 훌쩍 떠오르면서 소리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얼마를 날아갔는지 내려앉기에 나뭇단을 비집고 내다보니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대궐 뜰안이다. 그곳 사람 하나가 나뭇짐을 들어 옮기려다가 보고 소리를 친다.

  "여기 왠 놈이 들어앉아 있사옵니다."

  이리하여 온 세상의 임금이라는 옥황상제 앞에 나서게 된 이 나뭇꾼은 자기의 신상을 소상하게 털어놓았다.

  다 듣고 난 옥황상제는 곁에 모시고 있던 종자를 돌아보았다. 분부를 받은 사람이 전각을 내려서더니 앞장을 서서 인도하는데, 어떻게 보면 창고 같고 어찌보면 학교 강당 같은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이다.

  안에 들어서 보니 꼭 포도밭 모양으로 주머니가 송이송이 매달려 있는데, 주먹만한 것, 밤톨만한 것, 어떤 건 사발덩이만한 것이 천장 가득히 걸려 있어 참으로 장관이다그중에도 밤톨만한 것이 쭈그러져 말라붙어 있는데, 그것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이것이 당신의 복주머니야. 어디 속 좀 보려나?"

하고 열어 보이는데, 피씨가 그것도 꼭 한 알이 들어 있을 뿐이다.

  "에이! 이러니까 배가 고프지. 일생 동안 이거나 먹으라는 분복이니... 착한 일을 해! 선업을 쌓게. 당신 대에는 틀렸고..., 자식 대에라도 잘살게 하려거든 말이야!"

  바로 옆에 수박덩이만한 복주머니가 탐스럽게 달려 있기에 만져보니 속도 꽉 차있다.

  "그거 '스레바퀴'라는 이름의 사람 것인데, 아직 태어나진 않았어. 저의 아버지 어머니는 현재 거지로 떠돌아다니고 있고..."

  주욱 돌아다녀 구경하고 났는데, 마당가로 데리고 오더니 갑자기 벌컥 떠다 밀어서 얼마를 떨어져 왔는지 땅에 쾅 나자빠지며 깨어났는데, 나뭇단을 놓아두었던 그 자리다.

  그 날도 전에 해놨던 나무를 지고 장터까지 두 고팽이나 한 끝에 간신히 양식거리를 마련해 가지고 돌아오는데, 여자거지 하나가 배는 남산 만하게 만삭인데 길가에 널부러져 있다. 간신히 전신을 차리게 하여 물었더니, 남편은 따로 다녀야 낫게 얻어 먹는다고 혼자 떨어져 갔다는 것이다나무꾼은 이 거지를 지게에 옳려 앉혀 가지고 돌아와 방에 눕히고 간호했더니 진통을 하며 아이를 낳는다. 서투른 솜씨나마 극진히 돌봐줬더니 낳았는데 고추를 달고 있다마음에 짚히는 바가 있어 '수레바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그 아이가 커감에 따라 심평도 피고 아비도 돌아오고, 그래 이 사나이는 수레바퀴 동자의 타고난 복을 나눠받아 평생을 잘살았다 한다.

 

 

    3천 냥짜리 사주 보기

  어느 장삿꾼이 친구들과 같이 멀리 장사를 나섰는데, 어떻게 된 것이 재수가 없어 그랬던지 십만 냥 밑천에서 다 들어먹고 삼천 냥밖에 안 남았다. 일승일패는 병가상사라 이런 일 저런 일 겪어보았지만 이렇게 쫄딱 망해보기는 생전 처음이다동관들 틈에 끼어 힘없이 돌아오는데 '일상천금'(관상 한 번 보는데 천 냥)이라고 써 붙인 집이 있다. 어쩐지 마음에 켕기고 발길이 그리 끌려 문지방을 넘었다돈 천 냥을 내놓고 봐주기를 청하니 한참이나 보더니 한 마디 일러준다.

  "남이 질러가거든 그대는 돌아가라."

  단 한 마디다. 너무 싱겨운 것 같아서 더 좀 일러주었으면 하니까, 천 냥 더내야 한다고 한다.

  '그래? 어차피 쓰는 마당에 에이, 모르겠다.'

  또 천냥을 내놓으니,

  "남이 밉다고 하거든 그대는 곱다고 하라."

  또 꼭 한마디를 한다너무 비싼 것 같아 한참 망설이다가, 또 천 냥을 내놓고 마저 일러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이번 대답은 더 짧다.

  "곱거든 기어라."

  이젠 더 물어 볼래도 돈이 없다. 아주 빈털털이가 되어 가지고 일행을 뒤따라가는데, 어느 큰 영앞에 당도하여 돌아가면 삼십 리나 넘으니 질러서 가자고들 한다그러나 이 사람만은,

  "남이 질러가거든 그대는 돌아가라."

  천 냥이나 밑천들인 것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혼자 일행에서 떨어져 산 아래큰길로 걸었다다음 숙소에 다다르니 일행이 먼저 왔어야 겠는데, 와 있지도 않고 지나서 간자취도 없다. 나중에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장사꾼 일행이 영을 넘다가 강도떼를 만나 재물을 몽땅 빼앗기고 몰살 당했다는 것이다.

  '아뿔사, 큰일 날 뻔했구나! 천 냥이면 싸다.'

  다음에는 며칠만에 바닷가를 거쳐 가게 되었다길 옆 바위에 세상에도 흉한 물짐승이 하나 나와 앉았는데. 정말 형용할 수 없이 흉하게 생겨 바로 쳐다보기조차 구역이 난다모두 지나는 사람마다,

  "에잉, 무슨 놈의 짐승이 흉칙하게도 생겼다. 에이 퉤."

하는데, 관상쟁이 말이 생각난다.

  '남이 밉다거든 곱다고 해라? 옳지.'

  "어유, 참 영물이다. 외모를 저쯤 지니고 어찌 조화가 없으랴? 필연코 조물주의 신공이라. 어 그 짐승 잘생겼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다. 그랬더니, 그 짐승이 스르르 뭍에서 내려 물속으로 들어가 버린다그런가 했더니 다음 바위 모퉁이를 지나는데, 처음 보는 소년이 몸에 푸른 옷을 입고 읍하여 뵙는다.

  "누구시더라?"

  "! 아까 어르신네께서 칭찬해 주시던 그 물가의 흉하게 생겼던 동물이올시다. 저는 본시 서해 용왕의 아들이온데, 아비 몰래 연애한 벌로 그 흉한 탈을 쓰고 바닷가에 나와 누구고 그 꼴을 보고도 곱다고 칭찬을 해주는 분이 있어야 허물을 벗기로 돼 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꼴을 보고서야 누가 곱다고 칭찬해주겠습니까. 3년이 갈 지 10년이 걸릴 지 몰라 실말하고 있던 중에 어르신네께서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이렇게 쉽사리 방면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약소합니다마는 제가 가지고 있는 구슬 중에 하나이온데, 여섯 모난 한 모마다 한 번씩 소원을 들어줄 것입니다. 더럽다 말고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간곡하게 권하는 바람에 받아서 풍에 간직하였다.

  '한 모마다 한 가지씩 소원이 이루어진다? 나도 다시 장사를 할 수 있다.'

  희망에 벅찬 가슴으로 고향엘 돌아와 집엘 들어서 보니 부인이 반갑게 맞이해주는데, 가정부인답지 않게 짙은 화장을 하여서 기생 뺨치게 곱게 차렸다.  '여러 달이나 내가 집을 비웠는데 저렇게 곱게 차리고 있다?'

  의심이 버쩍 나며 관상쟁이 말이 생각난다.

  "곱거든 기어라."

  얼른 엎드려 기어 들어가며 보자니, 웬 놈이 마루 밑에 숨어 있다.

  "웬 놈이냐?"

  소리를 지르자 뛰쳐나온 흉한하고 어우려져 한참이나 싸우다가 결국 놈이 가졌던 칼을 뺏고 결박하였다.

  놈의 자백으로 그간 부인이 이놈을 간부로 삼아 갖은 불미한 짓을 한 것이 드러났다. 관청에 고하여 법으로 다스리고 깨끗하게 청산한 마음으로 재출발할 것을 기약하였다.

  '이렇게만 맞으면 천 냥이라도 싸다.'

  구슬을 문지르며 소원을 말해 다시 아름다운 가정을 꾸미고 장사도 번창하여 잘살더라고 한다.

 

 

    소원을 들어주는 연적

  한 소년이 용왕의 아들을 구해준 대가로 네모 반듯한 연적을 선물 받았다.

  "이렇게 한쪽 면을 문지르면서 소원을 빌면, 한 면에서 한 가지씩 들어주게 되어있습니다. 잘 생각해서 가장 소중한 소망부터 차례로 청해 보셔요."

  네모 반듯하다지만 기하에서 말하는 정육면체다. 여섯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소년은 연적을 가지고 돌아와 차례차례 요구할 것을 꼽아보았다.

  "좋은 집, 가구들, 사철 입을 옷, 어여쁜 아가씨, 좋은 말..."

  이제 한 가지밖에 안 남았다. 무엇을 요구했음 좋을까요? 이렇게 수수께끼로 풀린다. 지능을 재어보는 것인데, 마지막 대답은 간단하다.

  "이와 똑같은 연적 하나 더 주시오."

  무한히 뭐든지 요구할 수 있다. 지금 세상엔 지혜로운 사람이 많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이런 것을 주지 않는다.

 

 

    형수와 시동생은 의심스러운 사이?

  고아로 자란 형제가 있었다. 처음에 둘이 다 남의 집 머슴을 살다가 착실히 해서사경을 깔축없이 받아 늘려 목돈이 되고, 형은 등짐장수로 나서 수입이 괜찮았다어느 날 동생이 형에게 권한다.

  "! 그만 장가 들우."

  "누가 총각으로 늙겠다데? 세상 천지에 우리 둘밖에 없는데, 너하고 떨어져 있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동네 빈 터를 얻어 이 역시 동네분들 운력으로 방 하나 부엌 하나짜리 집을 지었고, 형은 착실한 색시가 나서서 장가를 들었다. 동생은 철머슴도 살고 나무장사도 하면서 잠은 아무 데서나 껴자지만, 밥은 형네 집에서 언제나 형과 겸상으로 먹었다형은 장사꾼으로 집을 비우는 때가 많아서 시동생은 상차려 주어 먹고, 형수는 방바닥에 놓고(옛날의 여자들은 모두 이렇게 먹었다) 먹지만, 맛난 거라도 있으면 서로 권하고 사양하고... 어떻게 보면 겸상해 먹는 것도 같아 보인다. 그러다 보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놈의 동네 여편네들의 주둥아리가 문제다. 둘이 얼러서 장가를 들었느니, 형이 나간 사이에는 동생의 차지라느니, 못하는 소리가 없었다.

형도 귓결에 몇 번 듣게 되었고, 어떤 때는 술집 같은 데 들어서도 서로 웃고 얘기하다 뚝 끊고 자리가 버성겨지며, 그냥 지나쳐 지나간 뒤에 웃는 소리라도 들리면 모두 자기를 비웃는 것으로만 여겨졌다그러는 동안에 의심은 의심을 낳아 형의 의심은 부쩍 더해져 드디어 한 꾀를 내었다. 이번 행보는 좀 길어지겠다면서 뒷일을 단단히 부탁하고 떠나 몇 십 리 밖에다 짐을 맡기고 소리없이 돌아와 망을 보려는 것이다.

  그날 저녁도 동생은 윗목에서 짚일(새끼 꼬고 짚신 삼고)을 하고, 형수는 아랫목에서 물레질을 하다가 밤 깊기 전에 시동생이 말했다.

  "난 마을 가 잘테니 아주머닌 집도 볼 겸 예서 주무셔요."

  "온 되련님도..., 어떤 땐 철없는 소리를 하시네. 성님 장사하노라 값나가는 짐도 있고, 여자는 익은 음식(아무나 금방 먹을 수 있다는 소리) 같다는데 연약한 여자가 집을 봐야겠수? 되련님이 여기 계셔유. 난 연식이 누나 방에 가 명주모랭이나 감아 가지고 올라올 게니..."

  형수를 내려보내 놓고 새끼를 꼬느라 밤이 아주 깊었는데, 문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아이구! 사람 살려주셔유."

  불을 들고 내다보니 훤칠하게 잘생긴 총각이 꽤 큰 보따리를 내려놓고 힘이 빠져 꼼짝을 못한다.

  "온 이럴 수가?"

  끌어 안아서 방안에 앉히고, 밥 남은 것을 물을 부어 포옥 끓여서 복복 으깨어갖다 주었더니 정신없이 퍼먹고는 정신이 나자 고맙단 인사를 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총각이 아니라 여자이며 더 걸어 갈 수 없으니 여기서 하룻밤 재워달라는 것이다. 자세한 사정은 밝은 날 하겠다고 얘기하고는 금방이라도 쓰러져 자야겠다는 몸짓이다.

  총각은 이부자리를 펴주고 찬찬히 일렀다.

  "외딴 곳이긴 하나 아무도 모르는 한밤중 일이니, 내 마을 가 자고 일찍 올라올게 부디 편히 쉬시오."

  문을 안으로 걸라는 것까지 일러주고 총각은 집을 나섰다그 길로 친구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집으로 내려가 문을 두드렸다.

  "나 좀 재워 주슈."

  밤중에 찾아오게 된 내력을 대충 얘기하고 목침을 집어 베기가 무섭게 정신없이 잠이 들어버린다. 사심이 없으면 잠도 잘 오는 모양이다그러나 그 집 어미와 자식은 사정이 달랐다. 어미는 빈 집이나 같으니 물건 훔칠 욕심, 아들놈은 젊은 여인이라니 사람 도둑질(?)할 욕심에 잠이 안 온다. 먼저어미가 소리없이 어둠 속으로 나갔다. 형제의 집으로 가 문을 열자니, 도둑질할 심보인데 안으로 건 것쯤이 문제랴!

  잠이 들려던 방안의 여인은 젊은 여성 특유의 예민한 감각으로 아랫목으로 난쪽 문을 통해 부엌 나뭇단에 가 숨었다. 방문을 뜯고 들어온 어미는 방안을 더듬어 어둠 속에서나마 야금야금 물건 중에도 값나갈 만한 것을 짐작으로 추려서 챙겼다금방 자기가 들어온 문으로 장정 하나가 불쑥 들어선다. 어둠 속에서 더듬어 잡더니 무조건 덮쳐드는 것이 아닌가? 어미는 저 잘못한 죄가 있는지라 소리 하나 못 지르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그때 일이 공교롭게 되느라고 외방장사 나간다고 낮에 떠났던 형이 이 시간에 돌아왔으니 일은 간단치 않다. 방안의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야룻한 흥얼거림에 그만 온몸의 피가 머리로 치켜 올라갔다.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고나!"

  뒤꼍에서 도끼를 찾아든 형은 문짝을 나꿔채며 뛰어들었다. 소경매질로 이리치고 저리 치니, 어둠 속에서 "아이쿠, 컥컥" 몇 번 들리던 비명도 그나마 아주 잠잠해 버린다형은 문앞 봉당에 털썩 주저앉으며 자신의 신세를 생각해 보았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 사랑하는 아내..., 이 둘을 내 손으로 죽였고...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하염없는 시름에 잠겼는데, 밝아오는 새벽 안개를 뚫고 이쪽 언덕으로 금방 제 손으로 죽인 아내가 가달박에 명주 모랭이를 담아 들고 올라오지 않는가? 그리고 아! ! 이쪽 비탈로는 동생이, 필시 죽었을 동생이 올라오고 있다.

  "아아 앗."

  외치며 까무러치는 것을 둘이는 쫓아와 붙들었다.

  "왜 그러오? 왜 그러오? 아니 성! 이 옷의 피는?"

  그럴 때에 부엌에서 남장한 여인이 나타났다.

  "다들 고정하셔요. 자초지종은 제가 똑똑히 듣고 보아서 압니다. 당신이 죽인 것은 당신 부인도 당신 동생도 아닙니다. 여기 이렇게 서 계시지 않아요?"

  한참만에야 진상을 안 모두는 방안을 다시 살폈다. 몹쓸 놈의 어미와 그 자식, 창피한 차림으로 참옥하게 죽어 자빠졌다.   관에서 나온 검시원들도 죽은 연놈 잘 죽었다고 큰 문제로 삼지 않았다. 그런데 밤중에 찾아든 남장의 여인은? 그 고을 제일가는 부자의 무남독녀로, 명화적 떼에게 납치를 당해 몸값을 내라고 협박과 교섭을 받아오던 중이었다. 그들이 어디로 한탕하러 나간 사이에 파수 보는 녀석에게 술을 퍼 먹여 곤드레가 되자 꽁꽁 묶어 놓고 값진 물건만 챙겨가지고 도망해 나오는 길에 밤은 깊고 기운은 빠져 찾아 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 남장여인은 부모님에게 넘겨졌으나 자기를 살려준 총각 아니면 안된다고 졸라서, 자기 재산과 부모님 천량으로 그 터를 다시 닦아 집 두 채를 나란히 짓고 형제 이웃하여 사이좋게 잘살았다 한다.

 

 

    개성 3형제의 재산싸움

  개성에 왕씨 3형제가 살았는데, 아버지 대에 넓은 터를 잡아 나란히 집을 지어줘서 같은 영내에서 단란하게 지냈다. 그러자 아버지가 돌아가고 이내 막내아우가 죽으니, 형 둘이 재산을 갈라 갖고 어린것 데리고 있는 계수를 산밑 외딴터로 추방해 버렸다.

  마침 충성스런 남자 종이 있어 소 한 마리는 있어야 농사짓고 살겠노라고 졸라서 여러 마리 중의 하나를 나눠받았는데, 이게 병이 깊이 들어서 센 일은커녕 아무리보아도 소꼴 되기는 틀린 일이라, 동네 사람들과 계를 모아 잡아서 분육을 하였다그랬더니 우황이 보로 나오는 바람에 큰 수가 나서 이것을 팔아 가지고 서울로 가는데, 마침 경상도 큰 장사꾼이 베 스무 바리를 싣고 평양으로 무역하러 가다가 고향에서 아버지가 돌아갔다는 통지를 받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를 만났다. 가졌던 돈표(어음)를 몽땅 주고 그 베와 말까지 모두 인수해서 도로 서울로 몰고갔다가던 날이 장날이라고 서울서는 마침 괴질이 퍼져 사람이 무더기로 죽는 바람에 상제옷 지어 입을 것은 둘째요 송장 싸서 묶을 베가 동이 났다.

  그 통에 베 바리 싣고 들이닥쳤으니 달라는 것이 금이라, 몇 갑절 장사를 잘하였다.

  그러면서도 조마조마한 것은 심보 사나운 상전의 두 형이 재물을 탐내서 쫓아올 일이라, 그 돈을 몽땅 들여서 흉가로 소문난 아흔 아홉 칸 집을 하나 샀다아니나 다를까 놀부 심보 같은 두 형이 아우네집 부자됐다고 떨러왔는데, 이번에는 그 어마어마한 집에 불이 나서 잿더미만 남고 말았다. 형들이 뒷통수를 치고 돌쳐서 간 뒤에 빈 터에 채마밭이라도 일구려고 팠더니, 집 천장 위에 감춰두었던 은덩이들이 녹아내려서 켜를 이루고 있다. 재산이란 세상을 돌아다녀야하는 것인데, 이것이 갑갑해 사를 부려서 흉가가 된 것을 뉘 알았으리오.

  이것을 거둬들여서 전보다 더 화려하게 좋은 집을 짓고, 과부 상전을 모셔다 거쳐케하고, 독선생 앉혀서 아기 공부시키고, 그 도령이 자라서 과거까지해 잘살았다고 한다.

 

 

    중은 요 고개로, 기생은 조 고개로

  어느 곳에 기특하게 높은 봉우리가 있는데, 항시 그 주위에는 오색 구름이 감돌고 있어서 인근에서 이르기를 거기에는 신선이 살아 영생불사한다고들 하였다홀아비로 지내면서 동냥을 해서는 전곡을 거둬 절을 중수하기로 하고, 쇠붙이로 보시를 받아 모은 것을 종을 부어 인경을 해달아 평생을 화주거사로 보낸 사람이있었다.

  나이 먹어 행동도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혼자 생각하였다.

  '자신의 지난 날 공덕이야말로 신선되기에 충분하다.'

  신변의 것을 정리하고 신선봉을 찾아 길을 나섰다도중에 훤칠하고 호탕하게 잘생긴 한 영감과, 나이는 먹었어도 었을 때의 버릇으로 하느적 거리며 테를 지어 걷는 한 여인과 동행이 되었는데, 다같이 신선봉을 찾아가 노라는 것이다영감님 말이, 자신은 솜씨 좋은 목수인데, 일거리가 많아 부지런히 벌어서 무에 좋은 거라고 주색에다 다 쓸어넣고 이렇게 외로운 신세노라는 얘기다.

  여인의 말은 이렇다.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자태가 고와 뭇남자가 따라붙어서 이놈 저놈 원하는 대로 즐겁게 해주다 보니 가정도 못 갖고 호적한 몸이라 신선세계에나 의지해 보려 노라는 것이다.

  셋이서 겪은 얘기를 하며 다래덩굴을 부여잡고 바위를 더듬으며 구름을 헤치고 허위허위 올라가니, 그 위로는 훤하게 볕이 났는데, 하얀 노인들이 그늘에 앉아바둑을 두며 즐기고 있다.   셋의 얘기를 다 듣고 나더니 그중의 한 분이 이른다.

  "뭐를 남 위해 봉사했다는 거야? 넌 동냥하며 다니는 동안 옷밥을 거기다 붙여 지냈지? 넌 남 좋은 일로 일생을 보냈노라지만, 평생의 사치는 다 뭘로 했든? 사내놈들의 뼛골을 빼먹어 탕패를 시키고는 남 위해 살았노라고 뻔뻔스럽게... 저 대목은 힘들여 벌어서 저도 먹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흩어주어 좋은 일도 쑬쑬히 했으며 제 식구도 없으니 욕심부린 데도 없고... 너나 여기 있으면서 물심부름이라도 해라. 그리고 중은 요 고개로, 기생은 조 고개로 넘어들 가거라."

  둘이 눈물을 지으며 넘어간 뒤 한동안 있으려니까 다시 이른다.

  ", 고 연놈 넘어간 데 좀 보고 오련?"

  그 노인이 지시한 대로 두 고개를 넘어다 보고 와서 아뢴다.

  "이쪽 고개를 넘으니까 구렁이가 바위 밑에 사려 있고, 조쪽에서는 알룩 달룩한 독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니까. 구렁이는 중이 벌 받아 환생한 것이고, 독사는 갈보년이 탈을 쓰고 나온 것이니라."

  오늘도 신선봉은 오색 구름에 싸여 의젓하게 솟아 있다.

 

    200냥짜리가 수탉이냐 봉이냐

  주인공 김선달은 평양에 실재하던 인물이라고 전한다그가 서울 수표교를 지나가는데, 다리 아래 평지(요새로 치면 고수부지)에 바자를 치고 닭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중의 장닭 한 마리는 정말로 풍채가 놀랍게 좋았다.

  선달은 못난 체하고 물었다.

  "저 거시기, 저 가운데 더 잘 생긴 새는 뭐라고 하는 새지요?"

  닭장수가 보니 이건 사뭇 숙맥이라, 수탉을 몰라보다니? 그래 속임수로 대답했다.

  "이거 봉이라는 거요."

  "봉이요? 훌륭한 임금님이 나시면 나타난다는 그 봉이오?"

  "잘 아시는구랴? 바로 그 봉이외다."

  선달은 그 수탉을 닷 냥이라는 큰 돈을 주고 샀다. 그런지 며칠 뒤 거둥령이 내려 임금님이 능행을 납셨는데, 웬 놈이 거둥 행렬을 뚫고 어가(임금님의 가마)앞으로 뛰어들었다도포자락으로 수탉을 감싸 안고 엎드려 소리치는데,

  "태평성대를 당하와 봉이 나타났기로 이렇게 바치나이다."

하는 것이다군관이 붙잡고, 어영대장이 말을 달려 쫓아와 소란은 커지지 않았으나, 듣고보니 맹랑한 소리다.

  "어떤 놈이 어수룩한 시골 사람을 속인 게다. 조사 선처하렷다."

  선달은 지명된 군관과 함께 수표고개로 찾아갔다.

  "네가 이 닭을 봉이라고 속여서 이 사람에게 팔았다지?"

  "그렇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 이 닭을 얼마 주고 샀소?"

  "100냥 주고 샀습죠."

  닭장수가 펄쩍 뛰자 군관이 버럭 소리친다.

  "고얀 놈! 봉이라고 속여 팔면서 그 값에 팔았을 리 없어. 냉큼 원값에 갑절쳐서 200냥 물려 주렷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는 그는 이름보다 봉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다.

 

    김선달의 무전여행

  하루는 김선달이 길 떠날 차비를 하기에 마누라가 물었다.

  "어딜 가시려오? 서울요? 노자 마련도 없이 그 먼데를 어이 가시려오? 또 누구 못할 노릇 시키는 거 아니오?"

  "아니야 이것만 있으면 돼."

  어디서 났는지 작두 고두쇠를 하나 끝에 꿰어서 허리에 차고 큰 소리를 치며 길을 나선다그날 저녁 어느 여각집에 드는 길로 그 집 마당에서 여물 써는 작두의 고두쇠를 빼서 짐 속에 감췄다. 방을 정하고 저녁을 먹고 마구간이랑 방방이 손님이 꽉찼는데, 마굿간 쪽에서 두런거린다시치미 뚝 떼고 어슬렁 어슬렁 찾아가 보았다.

  "이걸 어떡하지? 작두 고두쇠가 없어졌으니... 여물을 썰어야 말죽을 쓸 거아니여?"

  "고두쇠라면 내가 부적으로 차고 다니는 게 하나 있는데 이거라도 우선 쓰구레."

  집에서 차고 온 것을 떼어주니 무수히 고마워하면서 그것을 꿰고 짚을 썬다고두쇠라면 꼬부라진 쇠꼬치인데, 사나운 짐승의 이빨이나 발톱을 몸에 지니면 침범 못한다고 하여 쇠로 만들어 장식해 몸에 지니는 풍습이 옛날에는 있었다이튿날 아침 밥 한상 잘 먹고, 짚신도 갈아신고 일어서며 주인을 불렀다.

  "밥값이랑 모두 얼마요? 그리고 그 고두쇠 돌려주어야겠소."

  "아유 손님, 저희는 작두 없이는 하루도 영업을 못하는데... 그러지 마시고 진지값이랑 안 받을 것이니 고두쇠는 가다가 다시 장만해서 차시와요."

  "그래? 그럼 하는 수 없지."

  선달은 다음 쉴 참에 그 집에서 고두쇠를 뽑고 노끈으로 꿰어 찼다. 이리하여 역전 경주하듯이 고두쇠를 바꿔차며 서울 550리를 돈없이 득달하였다는 그런 얘기다.

 

 

    어떤 놈이 수절과부의 방을 넘봐?

  김선달이 한번은 이른 새벽에 어느 고갯마루에 이르렀는데, 어떤 청년이 동저고릿 바람에 얼굴에는 유혈이 낭자한 채 버선발로 길가에 맥없이 앉아 있었다.  "이거 웬 사람이 그런 몰골을 하고 앉아 있소?"

  "하도 억울한 일을 당하여서... 피양(평양을 흔히 그렇게 불렀다)으로 봉이 김선달을 뵈오러 가는 길입니다."

  "김선달은 왜? 내가 긴데."

  "아 그렇습니까? 이렇게 고마울 데가..."

  청년은 개성 사람으로 인삼짐을 해가지고 사신을 따라 중국엘 가서 비단을 무역해 갖고 돌아오는데, 일행에서 떨어져 자기 몫의 짐을 말 두 필에 갈라 싣고 가다가 재너머 여각에서 쉬는 중이었다. 저녁에 먹을 물을 한 그릇 청하였더니 그 집 며느리가 떠다주는데 손을 꼭 쥐면서 귓속말을 하더라는 거였다.

  "있다가 제 방으로 오시겠어요?"

  엉큼한 생각이 들어 밤중에 그 방엘 찾아들었더니, 갑자기 손톱으로 청년의 얼굴을 할퀴어 그 모양을 만들어 놓고 소리치더라는 것이다.

  "어느 놈이 내 방엘 뛰어들었어요!"

  "뭐야? 어떤 놈이 그래 수절과부의 방을!"

  어쩌고 하면서 시아비랑 방방에서 장정들이 방망이를 들고 내닫는 수가 그게 함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죽는 둥 살 둥 모르고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이걸 글쎄 어떡하면 좋습니까?"

  "그까짓거 염려 말게."

  선달은 청년을 데리고 평양길을 되짚어 주막에서 요기를 시키고 신을 사 신겨서 데리고 와 들여앉혔다. 그리곤 며칠을 어딘지 나돌아 다니다가 돌아와 그러는 것이다.

  "어서 채비 차리게, 길 떠날 게니."

  보니까 말 네 마리에 하나는 안장 얹어 자기가 타고 짐은 말 하나를 끌었으며, 나머지 복마(짐실은 말)두 필은 자기더러 인동하라는 것이다다 저녁때 원수의 먼젓번 주막에 도착했는데, 놈들은 말 잔등이 휘도록 실은 짐을 보고 좋아서 입이 헤 벌어졌다저녁을 먹고 한참 있다 먹을 물을 청했더니, 예의 젊은 년이 떠와서 선달은 대담하게 년을 붙잡고 수작을 걸었다.

  "아지마이 방이 어딘지, 나 있다 찾아가도 됴캇소?"

  여자는 수줍은 듯이 얼굴을 붉히며 쌩끗 웃었다. 한밤중에 선달이 년의 방에 찾아들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소리를 지르면서 할퀴는데 선달은 그 길로 내달아 시아비 놈 방문 옆에 섰다가 영감태기가 나서자 억센 손톱을 곡두 세워 늙은이 상판대기를 내리훑었다.

  "어느 놈이야? 어떤 놈이 감히?"

  선달은 같이 소리치면서 나타나 영감태기 멱살을 움켜지었다.

  "세상에 이런 변이 있나? 그래 명색이 시아비란 녀석이 며느리를 겁탈하려고 들어? !"

  시아비는 박치기 한 대에 몸의 중심을 잃었고 그제부턴 선달의 맘대로라, 포청에 넘기느니 사매로 때려죽이고 말겠다는 것이다. 온 집안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광에 있는 짐에서 뭐든지 마음대로 가져가시라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이튿날 아침 뒤 청년은 먼젓번의 짐이랑 말을 도로 찾고, 값나갈 만한 물건이 든 장물을 골라서 바꿔 싣고서 말 다섯 마리의 행차는 유유히 여각 집을 나서서떠났다. 떠난 뒤에 두고 간 짐 묶음을 끌려보니 대동강 모래 자갈이 그득 담겨있었다. 그러니 무거워 보일밖에...

  일행이 다음 고갯마루에 이르자 선달은 쭝얼거린다.

  "망할 년 같으니! 얼마나 몹시 할퀴었는지 땀이 나니까 안장에 쓸려서 따가워 살 수 있어야지."

  선달은 젊은 년 방에 궁둥이를 까고 뒷걸음쳐서 들어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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