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조선(朝鮮)의 맥박(脈搏) - 양주동(梁柱東)
한밤에 불 꺼진 재와 같이
나의 정열이 두 눈을 감고 잠잠할 때에,
나는 조선의 힘 없는 맥박을 짚어 보노라.
나는 임의 모세관(毛細管), 그의 맥박이로다.
이윽고 새벽이 되어 환한 동녘 하늘 밑에서
나의 희망과 용기가 두 팔을 뽐낼 때면,
나는 조선의 소생된 긴 한숨을 듣노라.
나는 임의 기관(氣管)이요, 그의 숨결이로다.
그러나 보라, 이른 아침 길가에 오가는
튼튼한 젊은이들, 어린 학생들, 그들의
공 던지는 날랜 손발, 책보 낀 여생도의 힘있는 두 팔
그들의 빛나는 얼굴, 활기 있는 걸음걸이
아아, 이야말로 참으로 조선의 산 맥박이 아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갓난 아이의 귀여운 두 볼.
젖 달라 외치는 그들의 우렁찬 울음.
작으나마 힘찬, 무엇을 잡으려는 그들의 손아귀.
해죽해죽 웃는 입술, 기쁨에 넘치는 또렷한 눈동자.
아아, 조선의 대동맥, 조선의 폐(肺)는 아가야 너에게만 있도다.
({문예공론}, 창간호, 1929.5)
'한국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金素月) (0) | 2015.11.13 |
---|---|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 김동환(金東煥) (0) | 2015.11.12 |
월광으로 짠 병실 - 박영희 (0) | 2015.11.10 |
나는 왕(王)이로소이다 - 홍사용(洪思容) (0) | 2015.11.09 |
논 개 - 변영로(卞營魯) (0) | 2015.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