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병적 계절(炳的季節)     - 이상화(李相和)

임기종 2015. 12. 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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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적 계절(炳的季節)     - 이상화(李相和)

 

기러기 제비가 서로 엇갈림이 보기에 이리도 설은가.

귀뚜리 떨어진 나뭇잎을 부여잡고 긴 밤을 새네.

가을은 애달픈 목숨이 나누어질까 울 시절인가 보다.

가없는 생각 짬 모를 꿈이 그만 하나 둘 잦아지려는가.

홀아비같이 헤매는 바람떼가 한 배 가득 구비치네.

가을은 구슬픈 마음이 앓다 못해 날뛸 시절인가 보다.

하늘을 보아라 야윈 구름이 떠돌아다니네.

땅 위를 보아라 젊은 조선이 떠돌아다니네.

 

({조선지광} 61, 19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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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한 봄  정완영

 

산골짝 외딴집에 복사꽃 혼자 핀다

사람도 집 비우고 물소리도 골 비우고

구름도 제풀에 지쳐 오도 가도 못한다.

 

봄날이 하도 고아 복사꽃 눈멀겠다

저러다 꽃 지면 산도 골도 몸져눕고

꽃보다 어여쁜 적막을 누가 지고 갈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