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꽃 두고 - 최남선

임기종 2015. 10. 2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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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두고 - 최남선

 

나는 꽃을 즐겨 맞노라.

그러나 그의 아리따운 태도를 보고 눈이 어리어,

그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코가 반하여,

정신없이 그를 즐겨 맞음 아니라

다만 칼날 같은 북풍(北風)을 더운 기운으로써

인정 없는 살기(殺氣)를 깊은 사랑으로써 대신하여 바꾸어

뼈가 저린 얼음 밑에 눌리고 피도 얼릴 눈구덩에 파묻혀 있던

억만 목숨을 건지고 집어 내어 다시 살리는

봄바람을 표장(表章)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맞노라.

나는 꽃을 즐겨 보노라.

그러나 그의 평화 기운 머금은 웃는 얼굴 흘리어

그의 부귀 기상 나타낸 성()한 모양 탐하여

주책(主着)없이 그를 즐겨 봄이 아니라

다만 겉모양의 고운 것 매양 실상이 적고

처음 서슬 장한 것 대개 뒤끝 없는 중 오직 혼자 특별히

약간 영화 구안(榮華苟安)치도 아니고,

허다마장(許多魔障) 겪으면서도 굽히지 않고,

억만 목숨을 만들고 늘어 내어 길이 전할 바

씨 열매를 보유함으로

나는 그를 즐겨 보노라.

 

("소년" 7, 19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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