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달팽이 제 딴엔 힘겹도록 밤낮을 걸었는데 뒤돌아 바라보니 아직도 꼬리 거기 그래도 후회는 안 해 꿈이 앞에 있거든. 희망을 포기하면 여기가 끝일거야 바라면 이뤄진대 언젠간 갈 수 있어 그래서 걷는 거란다 아직 꿈을 꾸기에. 현대시조 2022.06.16
봉숭아 꽃 물들이기 봉숭아 꽃 물들이기 새빨간 꽃잎 몇 개 남 몰래 훔친 죄로 손가락 끝을 묶어 한 열흘 지냈더니 주홍빛 전과(前過) 하나가 선명하게 남았다. 현대시조 2022.06.14
얼의 굴 얼의 굴 사람은 태어나서 굴(窟)하나 갖고 산다 얼빠진 굴이 있고 얼이 찬 굴도 있다 평생을 자기(自己) 스스로 만들어낸 굴(窟)하나. 처용(處容)은 속이 상해 그 굴을 가렸지만 못나도 가난해도 행복한 굴이 있다 남들은 다 보는데도 자기 혼자 못 보는. ※ 얼: 정신에서 중심이 되는 부분 현대시조 2022.06.12
업(業) 업(業) 올 때는 몰랐지만 갈 때는 어떠할까 한 백년 지낸 세상 오간 줄 모른다면 그 설움 어떻게 하나 한번 뿐인 내 삶에. 고집도 한바구니 욕심도 한 바지게 평생을 붙들고 산 그 것이 내 업(業)이니 간 후에 하루만이라도 기억되길 바랄뿐. ※ 업(業):몸(身).입(口).뜻(意)으로 짓는 말, 동작과 생각, 그리고 그 인과를 의미함. 업은 짓는다는 뜻 현대시조 2022.06.10
생노병사(生老病死) 생노병사(生老病死) 태날 때 울었으니 죽을 때 웃고 가리 모두가 바라면서 살아온 인생 역정 억지로 사는 삶에도 그 염원은 같은데. 늙어서 병이 들고 찌들은 삶의 고뇌 원하지 않은 모습 남들이 먼저 아니 스스로 미리 못본 걸 작은 위안 삼는다. 세상을 뜨고 나면 남은 자들 탑 쌓기 떠난 자 떠올리며 만드는 온갖 잡사(雜事) 생사고 어려웁더라 피할 수 없는 숙명. 현대시조 2022.06.08
비목(碑木) 비목(碑木) 산새도 울다 지친 적막한 산허리에 찾는 이 하나 없는 이름 모를 무덤하나 DMZ 구색(具色)이 되어 시간 속에 묻혔다. 사라진 봉분위에 잡초가 무성하고 스러진 비목조차 형태가 가물한데 지나는 바람만 홀로 흐느끼고 있었다. ※ 50년전 DMZ 군생활 회상하며 22. 6.6 현대시조 2022.06.06
할미꽃 할미꽃 평생을 자식걱정 허리 펼 날 없더니 지아비 술주정에 움츠리고 살더니 이제는 영감님 무덤가에 구부리고 앉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자주색 적삼입고 무덤가 모퉁이서 꾸벅꾸벅 조는데 따사한 햇살 한줄기 감싸 안아 주더라. 현대시조 2022.06.05
꿈 꿈 흙벽에 연필로 쓴 ‘자주색 골덴 쓰봉’ 장날에 사다줄께 엄마가 약속했지 어느덧 희미한 기억 세어 버린 머릿결. 마루에 걸터앉아 엄마를 기다리다 따뜻한 봄 햇살에 깜박 잠이 들었어 후닥닥 눈을 떠보니 흘러버린 반백년. 현대시조 2022.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