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덕
로댕이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 등의 명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프랑스의 대 조각가 로서 인정받게 된 것은 쉰 살이 다 되어서였다. 그때까지는 지겹도록 밑바닥 생활이 계속되었지만 이를 악물고 그것을 참았다.
마흔 살 가까운 나이에 벨기에의 네에라고 하는 병사를 모델로 저 유명한 '청동시대'라는 작품을 조각하여 전람회에 출품했는데, 그 작품이 너무 훌륭해서 오히려 심사 위원들의 의심을 샀다.
"이것은 틀림없이 살아 있는 모델에서 바로 형을 떠서 만든 사기 조각이다."
이렇듯 어이없는 이유로 낙선시키려는 것을 한 심사 위원이 만류했다.
"비록 사기 조각이라 해도 그 사기가 실로 절묘하지 않습니까."
그는 다른 심사 위원들을 설득해서 로댕의 작품을 입선시켰다.
그런데 신문과 잡지를 비롯하여 일반인들은 로댕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하고 공격했다. 그후 몇 년이 지난 뒤에야 로댕이 결백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로댕의 작품이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말해 준다. 역시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발자크 상'을 만든 것은 쉰 여덟 살 때였다. 이 작품이 나왔을 때도 온갖 악평을 퍼붓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로댕은 그런 말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이제 다들 알게 될 것이라며 부지런히 노력했다.
"느리다는 것은 일종의 미덕이라네."
이렇게 그는 미소 짓는 얼굴로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 작품을 접하고 비판적인 평을 퍼붓는 것만큼 부당한 일은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반드시 명백한 오해로 끝날 뿐입니다."
릴케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그렇게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쉽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걸핏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싶어하지만."
릴케는 잘 알려졌듯이 젊은 날에 로댕 밑에서 그 예술적인 영향을 받으며 훌륭한 시인으로서의 자세를 닦았다. 그런 만큼 비평을 불신하는 릴케의 말은 로댕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여느 예술가가 사기 조각 사건이라는 당치도 않은 오해로 여론의 총공격을 가혹하게 받았다면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필시 순식간에 자신감을 상실하고 영락해 버렸을 것이다. 물론 로댕도 사기라는 주장과는 단호하게 끝까지 싸워서 결국 결백을 증명해 보였다. 그러나 원래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문제의 초검이 빗나가 있었던 만큼, 쉰여덟 살이 된 뒤에도 집요한 악평을 받으면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의 의연한 태도를 통해 예술가로서 보기 드문 넓은 도량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초점이 어떻게 빗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릴케가 같은 책에서 잘 대변했다.
"당신이 쓰지 않을 수 없는 근거를 찾아 주십시오. 그것이 당신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어떤지 검토해 주십시오. 만약 당신이 쓰는 것을 중단한다면 죽어야만 하는지 어떤지 스스로에게 고백해 주십시오."
이렇듯 로댕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문제는 천박한 곳에 뿌리박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검토하는 것, 단지 그것뿐이었다. 게다가 그것이 죽음을 건 검토라는 것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느리다는 것은 일종의 미덕이라네."
그가 미소지으며 말했다는 이 말에는 역설적인 의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본디 말로 다할 수 없는 비밀로 가득찬 존재이다. 예술 작품의 생명은 덧없는 우리의 생명을 뛰어넘어 영원히 계속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낸 잔재주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로댕의 예술에 대한 의연한 태도는 단순히 예술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세평의 꼭두각시가 된 양 가련하게 조종당하면서 실로 경박하게 일희일비하는 우리 생활의 모든 면을 날카로운 바늘처럼 거침없이 찌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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