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대신 닭
옛날에는 떡국 끓일 때 꿩고기로 국물을 우려냈습니다. 꿩은 사냥을 해야 하니 쉽게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꿩을 못 구한 집에서는 대신 집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 국물을 우려내 떡국을 끓였답니다. 바로 이 말에 이제는 적당한 사람이나 물건이 없을 때, 그만은 못하지만 그와 비슷한 걸 가리키게 된 것이랍니다. 출처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2]
끈 떨어진 망석중
`물건이 못 쓰게 되었거나, 일이 그만 허사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망석중은 나무로 다듬어 만든 인형으로 팔다리에 줄을 매달아 그 줄을 당겨 춤을 추게 하는 놀잇감이다. 옛날에 주로 음력 4월 초파일 연등 행사에서 무언 인형극인 망석중 놀이를 하였는데, 망석중·노루·사슴·잉어·용 따위의 인형이 사용되었다. 노는 방식은 각본이 없이 중앙에 있는 망석중 인형의 가슴께에 두 개의 구멍을 뚫어 네 개의 줄을 사지 끝에 매고 뒤에서 줄을 잡아 당겨서 두 손은 가슴을 치고 두 다리는 머리를 치게 하였다. 그리고 오른쪽의 용과 잉어는 여의주를 상징하는 등(燈)을 삼켰다 뱉었다 하고, 왼쪽의 노루와 사슴은 구부렸다 폈다 하며 서로 다투는 시늉을 하였다. 이 망석중 놀이는 송도의 유명한 기생인 황진이가 당시에 30년 동안 도를 닦던 명승인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킨 일을 풍자하기 위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망석중은 끈을 매달아 움직이기 때문에 끈이 끊어지면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사람을 자기 맘대로 부추겨서 조롱하는 것을 `망석중 놀리듯`한다고도 한다.출처 : 우리말 유래사전
나락, 벼, 비야
우리 나라의 벼농사는 청동기 시대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최근까지의 연구였습니다. 이에 비해 일본 학자들은 자신들의 벼 농사 상한선을 서기전 1000년으로 잡고, 우리의 벼농사는 일본을 통해 전래된 것이란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포 일산 유적지에서 서기전 2400년대의 것으로 밝혀진 볍씨가 발견됨으로써, 우리의 벼 농사는 신석기 시대부터 활발했음을 엿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벼농사는 오히려 우리에게서 건너간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건너간 것으로 보이는 보석신(사람 이름)이 죽자 머리는 "밀"로 변하고, 눈썹에서는 "누에"가, 눈 속에서는 "피"가, 사타구니(음부)에서는 "보리"가, 뱃속에는 "벼"가 자랐다는 일본 [고사기(古事記)] 나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신화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꿩 치(雉)"의 "치희(雉姬)" 가 "벼 화(禾)" 의 "화희(禾姬)" 에게 사랑 싸움에서 패했다는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는 우리 역사에서 수렵시대가 끝나고 농경 시대가 정착된 사실을 노래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미국의 언어학자인 클리핀저는 인도 드라비다 어에서 "벼" 를 "비야" 라 한다 했는데, 어쩌면 "벼" 란 말은 "비야" 에서 왔을지도 모릅니다. 벼의 고향을 벵골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벼를 우리의 남부 방언에서는 나락 이라 합니다. 이 "나락" 을 철종때의 [동환록(1859)]에서는 "나록(羅祿)"으로 적고, 신라 시대에 녹(봉급)을 벼로 준 데서 생긴 말이라 하였으나, 이는 민간 어원설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락 이란 말은 "곡식의 알"을 뜻하는 낟 에 접미사 악이 붙은 "낟악"이 "나락"으로 변한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보기엔 "꾸지람"이 있는데 "꾸지람"은 구짇+암 -> 구지담 -> 구지람 -> 꾸지람 으로 바뀐 것입니다.출처 : 우리말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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