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
어느 날 한 농부가 외출을 하려고 막 나서는데, 그를 찾아온 어린 시절의 소꼽친구와 맞닥뜨렸다.
농부는 오래간만에 만남 그 친구를 반기며 말했다.
<여보게, 잘왔네. 그동안 어디서 무얼하며 지냈나? 어서 들어 오게나. 그런데 때마침 선약이 있어 외출을 해야 하는데 미룰 수도 없는 형편이니 돌아올 때까지 내 집에서 쉬고 있게. 한시간 내로 돌아오겠네. 그때 우리 그동안의 회포를 풀기로 하세>
친구가 말했다.
<아, 그럴게 아니라 나도 가도 되는 곳이라면 우리 함께 가는게 어떻겠나. 비록 내 옷이 남루하여 좀 꺼림직하긴 하지만 자네가 내게 옷을 빌려줄 수 있다면 곧 갈아 입고 자네와 동행하겠네!>
그런데 농부는 언젠가 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값비싼 비단 옷을 특별한 날에 입기 위해 장농 깊숙히 보관하고 있었다. 농부는 기꺼이 그 옷을 친구에게 빌려주었다. 농부의 친구는 그 화려하고 멋진 옷을 차려입고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허리에 천을 매고 아름다운 신을 신었다. 그렇게 차려입으니 마치 귀족이나 왕같아 보였다. 친구를 바라본 농부는 약간의 질투를 느꼈다. 그의 모습과 비교해보니 자신은 마치 하인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농부는 괜히 친구에게 비단옷을 내주었다고 생각했다. 모두들 자기 친구에게만 시선을 주고 자신은 그의 하인 정도로 여길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매우 언짢아졌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책망하며, 오직 신과 숭고한 것만을 생각하려 애쓰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값비싼 옷과 터번이 무슨 소용 있는가.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시켰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 옷과 터번은 그의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가 예상했던 대로 지나가는 행인들은 그의 친구에게만 눈길을 줄 뿐, 농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는 점점 풀이 죽기 시작했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면서도 그의 머릿 속에는 옷과 터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마침내 방문하기로 되어 있던 집에 도착하였다.
<이 사람은 어릴적 나의 소꿉친구입니다. 매우 훌륭한 사람이죠>
그리고 그는 어처구니없게도 갑자기 이렇게 내뱉았다.
<그리고 이 친구가 입은 옷은 바로 내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그의 친구는 물론 그들을 맞이하던 사람들도 깜짝 놀랐다. 농부는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곧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실수를 후회하고 자신을 나무랐다. 그 집을 나오면서 그는 친구에게 사과를 했다. 친구는 말했다.
<정말 놀랐네. 어떻게 자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미안하네. 내가 혀를 잘못 놀려 그만... 내가 잘못했네>
그러나 혀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생각은 언젠가는 입을 통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혀는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그는 다시 한번 사과했다.
<날 용서해 주게나. 내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네>
농부는 그런 생각이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농부는 친구가 입고 있는 옷이 자기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고 또 마음먹었다.
그 가엾은 농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면 할수록, 그 옷이 자기 것이라는 의식은 내부 속으로 더욱 굳게 뿌리를 내린다는 사실을 몰랐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금욕할 것을 맹세한다면, 그의 성욕이 내부에서 필사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뜻한다. 또 한일 오늘부터 식사량을 줄이거나 단식을 하겠다고 결심한다면, 그것은 그가 먹고 싶다는 깊은 욕망을 갖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노력은 반드시 내적 갈등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욕망을 자제하려고 애쓰고, 또, 그것과 싸워 이겨내기 위해 결심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잠재의식 속에서의 갈등의 원인이 될 뿐이다. 내적 갈등에 얽매여 그 농부는 두번째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매우 조심스럽게 친구를 소개했다.
<이 사람은 나의 친구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에 주의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그도 얼른 알아챘다. 모두들 그의 친구와 친구가 입고 있는 옷을 외경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저것은 나의 옷이고 나의 터번이다 라는 생각이 자꾸만 그의 머리를 때렸다. 하지만 옷에 관한 말은 절대 하지 않기로 했던 사실을 다시 한번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그러나 옷은 시계추처럼 좌우를 왔다 갔다하며 그의 눈앞에서 흔들리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친구를 소개했다.
<이 사람은 나의 소꿉친구입니다. 그는 매우 훌륭한 신사입니다. 그리고 친구가입고 있는 그 옷은 그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그런 식의 소개말은 이제껏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곳을 떠나면서 농부는 친구에게 전보다 더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하였다. 자신이 또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음을 인정했다. 그는 이제 무엇이 해야 할 말이고, 무엇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인지를 혼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지금껏 옷에 대해 이렇게 집착한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오, 신이시여!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의 친구는 크게 노하여 이제 더 이상 함께 가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농부는 친구의 팔을 붙들며 말했다.
<이보게, 제발 그러지 말게. 옷에 대해서는 이제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네. 진심이네. 신에게 맹세코 옷에 대해 다시는 언급하지 않기로 약속함세>
그러나 당신은 맹세하는 사람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무언가를 결심하는 경우에, 거기에는 뿌리깊은 무엇인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 부분으로 나눈다면, 결심한 것은 그 중의 한부분일 뿐이고, 그것은 단지상층부분에 불과하다. 나머지 아홉 부분은 그것에 반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음의한 부분이 금욕의 맹세를 세운다. 그러나 나머지 부분은 성을 구하려고 열광하고 있고, 신에 의해 인간에 심어진 바로 그것을 찾으려고 절규하고 있다. 그들은 세번째 집으로 갔다. 농부는 엄격하게 자신을 통제했다.
뭔가를 억제하는 사람은 매우 위험스럽다. 그의 내부에 활화산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는 벗어나려고 하는 충동이 몸부림치고 있다. 강제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대단한 긴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될 수도 완성될 수도 없다. 당신은 가끔 긴장을 풀고 휴식해야만 한다.
당신은 주먹을 꽉 쥔 채 얼마동안 있을 수 있는가? 12시간? 24시간? 주먹을 꽉 쥐면 쥘수록 피곤해지고 그만큼 빨리 손이 펴질 것이다. 심하게 일하면 일할수록 에너지를 많이 쓰면 쓸수록 당신은 더 빨리 피곤해진다. 작용에는 항상 반작용이 있다. 당신은 손을 쭉 편 채로 있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손을 꽉 쥔 채로 있을 수는 없다. 당신을 피로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삶의 자연적인 부분일 수 없다. 무엇인가를 억지로 할 때는 휴식이 필연적으로 따른다. 농부는 옷에 대하여 절대 말하지 않도록 자신을 엄격하게 억제했다. 농부의 상태를 한번 상상해 보라. 만일 당신이 맹세를 해 본적이 있다면, 혹은 어떤 종교적인 이유로 자신을 억제했던 적이 있다면 그 가엾은 농부의 마음 상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다음 집으로 들어갔다. 농부는 긴장으로 많은 땀을 흘렸고, 극도로 지쳐있었다. 그의 친구도 걱정하고 있었다. 농부는 불안한 나머지 온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는 소개의 말을 시작했다.
<제 친구를 소개합니다. 제 오랜 친구입니다. 매우 좋은 사람입니다>
그는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치듯이 내뱉았다.
<이 친구의 옷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옷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이 농부에게 일어났던 일은 그대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을 엄격하게 억제하면 할수록 마음은 활화산이 되어 언젠가 폭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