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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琉璃窓) - 정지용(鄭芝溶)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열없이 : 맥없이.
({조선지광} 89호, 1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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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모 과/정 경 화
어둠을 손질하는 휘인 가지를 내려서서
건넌방 반닫이 위에 가부좌 틀고 앉아
사초(史草)에 오르지 못한 먼길이나 닦을까 보다.
금이 간 함지박엔 이름 없는 별을 불러
이제 흙이 되어도 하늘을 잃지 않겠네
지그시 눈감고 보면 등잔 밑 환한 말씀.
젖은 살은 풀어 손 내미는 검불에 주고
꿈 비록 문드러져도 향기로운 삶이고자
거문고 목쉰 가락에 귀를 가만 세워보네.
울퉁불퉁 모진 자리 더께 앉은 종두자국이
어쩌면 닦다만 길, 그 길마저 버리라며
잊혀진 유훈(遺訓)의 끝을 등 밝혀 지키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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