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6. 1. 15.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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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琉璃窓) - 정지용(鄭芝溶)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열없이 : 맥없이.

 

({조선지광} 89, 19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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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모 과/정 경 화

 

어둠을 손질하는 휘인 가지를 내려서서

건넌방 반닫이 위에 가부좌 틀고 앉아

사초史草에 오르지 못한 먼길이나 닦을까 보다

 

금이 간 함지박엔 이름 없는 별을 불러

이제 흙이 되어도 하늘을 잃지 않겠네

지그시 눈감고 보면 등잔 밑 환한 말씀

 

젖은 살은 풀어 손 내미는 검불에 주고

꿈 비록 문드러져도 향기로운 삶이고자

거문고 목쉰 가락에 귀를 가만 세워보네

 

울퉁불퉁 모진 자리 더께 앉은 종두자국이

어쩌면 닦다만 길그 길마저 버리라며

잊혀진 유훈遺訓의 끝을 등 밝혀 지키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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