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 문정희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는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하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드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무언가 확실히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살고 있는 바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여자들의 치마 속에 감춰진
대리석 기둥의
그 은밀한 신전
남자들은 황홀한
밀교의 광신도들처럼
그 주변을 맴돌며
한평생 참배의 기회를 엿본다.
여자들이 가꾸는
풍요한 갯벌의 궁전
그 남성 금지구역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붙들리면
옷이 다 벗겨진 채
무릎이 꿇려
천 번의 경배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곤욕이 무슨 소용이리
때가 되면 목숨을 걸고
모천으로 기어오르는 연어들처럼
남자들도 그들이 태어났던
모천의 성지를 찾아
때가 되면 밤마다
깃발을 세우고 순교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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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茶 강인한
나직이 밤에 끓는 물소리 맑은 올을
내가 사는 하루란 차 한잔의 깊이뿐
앙금이 내리는 길을 오늘다시 걸었다.
산이 날아와서 창호지에 그린 능선
사는 것 허망해도 가슴 죄며 바라보곤
오롯이 건네는 정을 두 손으로 받든다.
글썽인 목소리로 가라앉은 빛깔 위에
이녁의 고운 아미 사르르 물살지면
내 눈물 흙이라건만 체온보다 따습다.
별빛도 아아라히 가슴 벽을 흐르는 밤
지나온 생애의 길 기럭 울음 저 편인가
아스스 시린 손으로 새 날빛을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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