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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늉

임기종 2014. 4. 2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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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 늉  

  지은이:정약용, 이율곡, 이황

  엮은이:김상렬

  펴낸이:권경미

  펴낸곳:도서출판 큰산

 

 

 

 

 

 

 

 

 

 

 

        차례

     1. 다산 정약용

  자신을 돌아 보라목표를 설정하라용서하는 사람이 큰 인물마음속에 우주가 있다입 속의 비밀을 삼키는 뜻은가슴은 세상 밖으로말은 곧 화살이다당파를 짓지 말라게으름뱅이의 하늘주어라, 또 주어라웃음 가득한 둥지효도와 우애로써 근본을 삼아야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라절개는 목숨보다 강하다얼굴은 운명의 거울버려도 좋을 인간시련 속에서 피는 꽃몸가짐과 말, 그리고  간절한 뜻을 지닌 문학을멀리 보고 꿰뚫어 생각하라황금보다 무거운 편지의 무게나라를 걱정하라책 속에 진리의 길이세상을 구하려면무엇을 읽을 것인가어떻게 쓸 것인가귀신을 감동시키는 글음악이 있는 곳에 행복이구멍이 뚫렸구나거꾸로 걷는 자식세상에서 가장 나쁜 죄돌이 날아들면 옥으로기쁘게 해 드리는 게 효도자살은 죄악이다내일을 준비하는 삶보석보다 귀한 두 글자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심는 대로 거두리라닭을 쳐도 선비답게갈증 뒤의 물 한 방울몸에 맞는 직업을부질없고 가치 없는 것술병 속에 숨은 악마욕심 주머니하늘은 너의 편이다힘이 세어지는 법

 

     2. 율곡 이이

  기둥을 바로 세우라졸장부란 누구인가옳게 사는 길공부하는 즐거움사람의 아들이 해야 할 일꽃피는 사람들나눔의 공식먼저 '인간'이 되라큰 뜻을 품어라말은 곧 생각이다유혹의 구렁텅이항상 바쁘게 살아라생활 속의 학문마음 다스리기무슨 일이든 화끈하게반성하는 인생엉덩이에 뿔난 송아지잠을 내쫓으라죽은 뒤에나 끝날 일/  '교육'이 엉망이다무엇부터 시작할까대쪽같은 몸가짐책 속에서 찾은 환희한마디 말의 천마디 의미세상은 마음먹기 나름부모 섬기기 미룰 일이 아니다스승과 제자의 관계가장 좋은 친구집안의 웃음소리넉넉한 마음으로실력 앞에서는 못 당한다불의를 용서하지 말라성실, 정직한 삶학교생활에 철저하라독서는 바느질하듯실천하지 않으면 도루묵마음은 몸의 주인도덕심과 그리움마음이 움직이면이것이냐, 저것이냐어떤 욕망인들 못 막으랴선악의 모든 것힘이란 뜻을 담는 그릇뿌리를 박아라내가 곧 하늘이다

 

     3. 퇴계 이황

  마음의 병을 먼저 고쳐라명예에 집착하지 말라인간이 곧 우주이다먼저 실천하고 뒤에 말하라불쌍히 여기는 마음을외모가 흐트러지면 마음도 변한다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 공부옳고 그름을 분별하라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생각하면 얻는다지나친 욕심을 버려라온 정신을 한데 모아서남을 통해 스스로의 선악을 찾으라게으름이 가장 큰 죄악길을 어디에나 열려 있다내 살을 주신 분세상을 위한 학문을선과 악의 갈림길참되게 익혀 실천하는 배움존경의 태도를 가지면나는 세상의 아들덕을 높이고 학업을 넓혀라천하를 얻으려면자신부터 잘 다스리라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라무엇보다 생명을 사랑하라개미까지도 밟지 말고밤은 곧 아침으로 돌아오느니물 속의 달은 달이 아니다

 

 

 

 

        책머리에

     아버지 무릎 아래서 줍는 사랑

  세상이 날로 황폐화되어 가고 있다. 도덕적 불감증의 시대가 아닌가 한다. 이제우리는 정신을 새롭게 가다듬고 진정한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참다운 민족혼을 일깨우는 건 물론 철학과 사랑이 넘치는 인간적 가치관의 삶, 개성과 창의력이 존중되는 의식 혁명을 통해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전환의 진통을 겪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보석 같은 경구와 신토불이의 말씀으로 가득한 이 책을 새삼 선보이게 된 것도, 이같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한 국민적 수신 독본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3대 성현을 들라면 누구든 퇴계이황과 율곡 이이, 그리고 다산 정약용 선생을 꼽는데 주저치 않을 터이다. 불세출의 사상가이며 경세가인 동시에 어리석은 민초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바를 분명하게 제시한민족의 큰 스승들이기 때문이다. 세 분은 또한 척박한 이 땅위에 굳게 발을 내딛고서 오로지 진리 탐구와 참된 인간성의 계발에 평생을 바쳐 온 선각자들이었다. 세분들의 빛나는 말씀을 오늘에 되살려 음미할 수 있다는 건 실로 자랑스러운 긍지이며 축복이다. 독자들은 여기에 실린 신토불이 정신의 에스프리를 통해 두엄 냄새 물씬한 우리의 얼과 토양을 직접 어루만지게 될 뿐만 아니라, 과연 어떻게 살며 자식을 가르쳐야 할 것인 가도 속속들이 깨닫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만큼 값진 국민필독서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는 양서이기 때문이다. 선생들이 의도한 본뜻은 최대한으로 살리되 오늘의 정서에 걸맞게 가능한 한 쉽고 평이한 문장으로서의 운문을 거치면서, 엮은이가 연신 찬탄하며 느낀  것은 '이것이 바로 참교육의 실천 이론서이며 우리 고유의 올곧은  정신'이라는 가슴 뿌듯한 자존심의  발견이었다. 실로 구구절절이 '옳으신 말씀'으로만 채워져  있는 책이며 아버지의 무릎 아래서 주울  수 있는 사랑과 구수한 숭늉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정감 있는 글이다.  1995, 여름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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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산 정약용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인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 동안의 길고도 먼 유배 생활중에서도 실로 엄청난 저술 활동으로 자신의 실학 사상을 확립하고 이 나라민초들에게 올바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 분이다.

  선생은 또한 두 아들을 한시도 잊지 않은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하였는데, 여기에실린 글들에서도 몇 편을 골라 함께 실었다따라서 훌륭한 잠언집이기도 한 이 글들은, 다산 정신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반드시 금과옥조로 삼아야 할 경구이며 명언들이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돌아 보라

  세상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 그것이다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는 또 네 단계의 등급이 나온다그것은 요컨대 옳음을 지키면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지키면서도 피해를 당하는 경우이다.

  셋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것을 추종하고 손해를 보는 경우이다

 

     목표를 설정하라

  용기는 삼덕(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의 덕목곧 지, , 용을 말함)중의 하나이다.

  인간이 사물을 마음대로 활동하게 만들고 천지를 다스리는 일은 모두 용기의 작용때문이다.

  "어진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냐? 나도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라고 공자의 제자안연이 말했는데, 무슨 일을 하려는 사람은 이처럼 용기가 먼저 발동하는 것이다한 나라를 움직이는 학문을 하고 싶을 때 거기에 특출한 어떤 이를 설정해 놓고그분처럼 되려고 실천하기만 한다면 결국엔 그렇게 되고 만다.

  문장가가 되고 싶으면

  "도연명이나 한유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서 열심히 실천에 옮기면 그렇게 될 수가 있다글씨 잘 써서 이름을 날리고 싶으면 "왕희지는 어떤 사람이냐?"에서 시작하여노력하면 된다.

  하나의 목적이 있다면 그 목표되는 한 사람을 정해 놓고 그와 같은 사람의 수준에오르도록 노력하면 그 수준에 이를 수  있으니, 이런 것은 모두 용기라는 덕목으로부터 가능한 일이다.

 

     용서하는 사람이 큰 인물이다

  나의 둘째 형님은 나의 선생이셨다일찍이 말씀하시길,

  "내 동생은 병통이 없으나 오직 국량(사람을 포용하는 도량과 일을 처리하는능력)이 좁은 게 흠이 된다"라고 하셨다나는 너의 어머니의 벗인데 내가 일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아내는 부족함이 없으나 오직 아량이 좁은 게 흠이다"

  너의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으로 어찌 산이나 숲처럼 크고 활달한도량을 지니기를 바라겠느냐만 너는 너무나 국량이 좁아 보인다이 애비보다 훨씬 더하니 이치상 당연한 노릇이겠다. 나도 일찍이 남의 잘못을용서해 주지 않았는데 어찌 네가 출렁거리는 넓은 강물처럼 남의 잘못을 포용할 수야있겠느냐?

  국량의 근본은 용서해 주는 데 있으니 용서할 수만 있다면 결국 큰그릇이 될 수있느니라.

 

     마음 속에 우주가 있다

  한번 배부르면 살찐 듯하고 배고프면 곧 죽겠다는 듯 참을성이 없다면 천한 짐승과우리 인간의 차이가 어디 있을까?

  생각이 좁은 사람은 오늘 당장 마음같이 되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의욕을 잃고 눈물을 짜다가도 다음날 뜻대로 일이 된다면 금방 빙글거리며 낯색을 펴곤 한다근심하고 유쾌해 하며 슬퍼하고 즐거워하며 느끼고 성내며 사랑하고 미워하는 모든감정이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것이다. 달관한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녕 비웃지 않을수 없으리라그러나 소동파가,

  '속된 눈으로 보면 너무 낮고 하늘을 통하는 눈으로 보면 너무 높기만 하다하였으되, 일찍 죽는 것과 오래 사는 것을 똑같이 보고, 죽고 사는 것을 한가지로 보는 것은 너무 높은 생각이다. 요컨대 아침에 햇볕을 빤하게 받는 위치는저녁때 그늘이 빨리 오고, 일찍 피는 꽃은 그 시들음도 빨리 오는 것이어서, 바람이

거세게 불면 한 시각도 멈추어 있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한대의 재해를 당했다 하여 청운의 뜻을 꺾어서는 안된다.사나이의 가슴속에는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를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자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녀야 한다.

 

     입 속의 비밀을 삼키는 뜻은

  남이 알지 못하게 하려거든 그 일을 하지 말일이다.

  남이 듣지 못하게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제일이다.

  이 두 마디 말을 외우고서 실천한다면크게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작게는 한 가정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온 세상의 재난이나 모진 슬픔, 하늘을 흔들고 땅을 움직이는 일이나 한 집안을뒤엎는 죄악은 모두가 비밀스러운 것에서 생겨나게 마련이다  사물을 대하고 말을 함에 있어서 그 결과를 깊이 살피도록 하여라.

 

     가슴은 세상 밖으로

  육자정이 말하기를,

  "우주의  일이란 자기 내부의 일과 같고 자기  내부의 일은 바로 우주의일이다" 하였다.

  하루라도 이런 생각이 없을 수 없나니, 우리의 본분이 애초에 가볍지 않도다사나이의 마음가짐이란 마땅히 광풍제월(비온 뒤에 맑게 뜨는 바람과 달)과 같아털끝만큼도 가린 곳이 없어야 한다.

  무릇 하늘이나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아예 저지르지 않는다면 자연히 마음이넓어지고 몸이 안정되어 호연지기가 저절로 우러나온다만약 포목 몇 자 동전 몇 닢 정도의 사소한 것들에 잠깐만이라도 양심을 저버린 일이 있게 된다면 이건 기상을 꺾고 정신적으로 위축 받게 되나니정말로 주의토록 하여라.

 

     말을 곧 화살이다

  거듭 당부하는 건 말조심하는 일이다.

  전체가 완전해도 구멍만 새면 깨진 항아리와 같듯이, 모든 말을 다 미덥게 하다가도한마디만 사리에 맞지 않거나 거짓말하면 곧 도깨비처럼 되어 버리니 너희는 정말로 입조심토록 하라.

  말을 실속 없이 과장되게 하는 사람은 남이 믿어 주질 않는다더구나 마음이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더욱 말을 적게 해야 한다.

 

     당파를 짓지 말라

  우리 집안은 예로부터 붕당(뜻에 따라 끼리끼리 모이는 집단)에 관계한 적이 없다그런데 곤궁하게 괴로움을 당하는 요즘에는 옛부터 친하던 친구들조차 연못으로 밀어 넣고 돌이라도 던지려는 판이니 너희들은 가슴속에서 당파를 짓는 사심을 일체씻어 버리도록 하여라.

 

     게으름뱅이의 하늘

  큰 흉년이 들어 백성 중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 중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가 게으른 사람이 많더구나.

  하늘은 게으른 사람을 가장 싫어하는 법이다.

 

     주어라, 또 주어라

  너희들은 항상 버릇처럼 말하기를 '일가친척 중에 한 사람도 불쌍히 여겨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개탄하였다더러는 험난한 물길 같다느니, 꼬불꼬불 길고 긴 험악한 길을 살아간다느니 하며한탄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말투로 큰 병이다.

  너희들은 아픈 데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돌봐 주게 마련이었다.

  날마다 어떠냐는 안부를 전해 오고, 안아서 부지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약을 먹여주고 양식까지 대주는 사람도 있어서 이런 일에 익숙해진 너희들이라 항상 은혜를베풀어주기만 바라고 있으니 이는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경우이다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만을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에 없었다.

  마음속으로 남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절로 마음이 평안하고 기분이화평스러워져 하늘을 저주한다거나 사람을 원망하는 그런 병폐는 없어져 버릴 것이다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고 있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이라도 퍼다가 추운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누어 따뜻하게 해주고, 병들어 약 먹어야 할 사람들에겐 한푼의 돈이라고 쪼개서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난하고 외로운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 꿇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공경하여야 하고, 근심 걱정에 싸여 있는 집에  가서는 연민의 눈빛으로 그 고통을 함께 나누며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되는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일도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집에서 너희들이 위급할 때 깜짝 놀라허겁지겁 쫓아올 것이며, 너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달려올 것을 바라겠느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주기만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오기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이후로는 평상시 일이 없을 때라도 항상 공손하고 화목하며 조심하고 자기 정성을다하여 다른 사람의 환심을 얻는 일에 조심하고 자기 정성을 다하여 다른 사람의환심을 얻는 일에 힘쓸 것이지 마음속에 보답 받을 생각은 갖지 않도록 하여라.

  뒷날 너희가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 주지 않더라도 부디원한을 품지 말일이다.

  비록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렇게 저렇게 해주었는데 저들은 그렇지않구나!' 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된다만약 그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밖에 나오게 되면 지난날 쌓아 놓은 공덕은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웃음 가득한 둥지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세상의 많은 사람을 보아 왔는데 비록 고관대작들이라도그가 한 말을 공평하게 검토해 보면 열 마디 중 일곱 마디가 거짓말이 있더구나너희들은 서울 거리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어렸을 때 말씨에 잘못 물든 게 없나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거짓말을 안하도록 온힘을 기울여라.

  서간문 글 중에서 한 자라도, 평소 주고받는 말 중에 한 마디라도 사실 아닌 것이없도록 단단히 반성해야만 우리 조상들의 모범을 본받는 길이 될 것이다그분들을 본받으면 입에 비루하고 어긋나는 말이나, 천박한 시장 바닥의 말투를 닮지않게 될 것이다.

  특히 도시물 먹은 사람들만 간혹 나쁜 거짓말 습성이 들어 있으니, 너희들은 힘써그런 말버릇을 고치도록 노력하여라사람이 집안에서 가장 힘써야 될 일은  그곳에 화기가 돌도록 하는 일이다. 일가끼리 자리를 같이한다거나 가끔 친한 손님이 찾아오면 기쁜 마음으로 맞아 대접하고하룻밤이라도 더 주무시고 가게 하여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어야 한다만약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으되 마지못해 안부만 묻고 나서는 말도 않고 웃지도않고 무뚝뚝하게 대하여 손님을 어색하게 만들어서 그 손님이 일어나 가겠다고 만들면안된다그리고 그냥 가도록 만류도 하지 않거나 보내면서도 문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면다음번엔 여러 사람이 상대해 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평생의 복을 망쳐버리는 일이 될 것이니 부디 조심하도록 해라.

무릇 사대부(벼슬이나 학식이 높은 사람)집안의 법도는 벼슬길에 높이 오르거나 권세를날릴 때에는 오히려 산기슭에 셋집을 내어 살면서 선비로서의 본색을 잃지 않아야한다그러나 만약 벼슬길이 끊어지면 속히 서울에 붙어살면서 문화(문명의 호화로운 빛)의안목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집안의 힘이 쇠락하여 서울 한복판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잠시 서울근교에 살면서 과일과 채소를 심어 생활을 유지하다가 재산이 조금 불어나면 바로 도시복판으로 들어가도 늦지는 않다.

  재앙과 복의 이치에 대해서 옛날 사람들도 오래도록 의심해 왔다.

  충과 효를 한다 해서 꼭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방종하여 음란한 짓 하는 놈이라고꼭 박복하지만도 않다그러나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길이므로 군자(학덕이 높고행실이 어진 사람)는 애써 착하게 살아갈 뿐이다. 옛날부터 화를 피해 살면서도 더멀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못했음을 걱정하곤 하는 사람이 많았다그리하면 마침내 노루산 산토끼처럼 문명에서 멀어진 무지렁이가 돼 버릴 뿐이다요컨대 부유하고 귀하고 권세 있는 집안은 눈썹을 태울 정도의 급박한 재난을당하여도 느긋하게 걱정 없이 지내지만, 재난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먼 시골 깊은 산속으로 몰락하여 버림받은 집안이야 겉으로는 태평이 넘쳐흐르는 듯하지만마음속에는 항상 근심을 못 떨치고 살아간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대개 그늘진 벼랑 깊숙한 골짜기에는 햇볕을  볼 수가 없고 함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은 모두 버림받은 쓸모 없는 사람으로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 차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식견이란 실속 없고 비루한 이야기뿐이다그래서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떠나 영영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된다. 진정으로바라노니, 너희들은 항상 마음을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생활해서는 안된다너희 자손 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나라를 경륜하며 세상을 구제하는일에 뜻을 둘 수 있도록 하여라.

  천리(자연의 이치, 곧 하늘의 뜻)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진 사람이 반드시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하루 아침의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서둘러 먼시골로 이사가 버린다면 무식하고 천한 백성으로 일생을 끝마치고 말 따름이다.

 

     효도와 우애로써 근본을 삼아야

  몸을 닦는 일은 효도와 우애로써 근본을 삼아야 한다효도와 우애에다 자기의 본분을 다하지 않으면 비록 학식이 높이 빛나고 문체가찬란하며 아름답다 하더라도 토담에다 아름답게 색칠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자기 몸을 엄정하게 닦아 놓았다면 그가 사귀는 벗도 자연히 단정한 사람이어서 같은 기질로 인생의 목표가 비슷하게 되어 친구 고르는 일에 특별히 힘쓰지 않아도 된다이 늙은 아버지가 세상살이를 오래 경험하였고 또 어렵고 험난한 일을 고루겪어 보아서 사람들의 심리를 두루 알게 되었는데, 무릇 천륜에 야박한 사람은가까이해서는 안된다결코 믿을 수가 없다그가 비록 충성스럽고 인정 많고 부지런하고 민첩하여 온 정성을 다해 나를 섬겨주더라도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된다그들은 끝내 은혜를 배반하고 의리를 잊어 먹는다아침에는 따뜻이 대해 주다가도 저녁에는 차갑게 변하고 만다.

  모름지기 온 세상에서의 깊은 은혜와 의리는 부모 형제보다 더 두터운 것이 없는데그들이 부모 형제를 그처럼 가볍게 버릴 때 벗들에겐 어떠하리 하는 것쯤 쉽게 알 수있으리라.

  너희는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해 두도록 해라.

  무릇 불효자는 가까이하지 말고 형제끼리 우애가 깊지 못한 사람도 가까이해서는안된다.

  사람을 알아보려면 먼저 가정 생활을 어떻게 하는가를 살펴보면 된다만약 옳지 못한 점을 발견할 때는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 비춰 보고, 나도 이러한잘못이 있지 않나 조심하면서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단단히 노력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라

  옛 성현들이 말씀하였다.

  "그 자리에 있지 않고서는 그 일에 대해서 의논하지 않는다"

  "논어""주역"에서도 "군자는 생각하는 범위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회고해  보면 그때는 나이가 어리고 식견이 얕아  이런 성현의 뜻을 알지 못했었다.

  아아, 후회한들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임금을 섬길 때는 임금의 존경을 받아야지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건 중요하지 않다. 또 임금의 신뢰를 받는 게중요하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지 않다아침저녁으로 가까이 접근하여 임금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임금이 존경하는 사람이아니며, 시나 글을 잘하고 재주를 가진 사람도 임금이 존경한다고 할 수 없다. 글씨를민첩하게 잘 쓰는 사람도 그렇고, 얼굴빛을 살펴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벼슬 버리기를 어려워하는 사람, 차림새가 엄하지 못한 사람, 권력자에게 이리저리붙는 사람을 임금은 존경하지 않는다.

  경연에서 온화하게 말을 주고받고, 일을 처리할 때 비밀히 부탁하고, 임금이마음속으로 믿고 의지하여 서신이 자주 오가고, 하사품이 자주 내려질지라도 그런 것을총애나 영광으로 믿어서는 절대 안된다.

  뭇사람들이 노여워하고 시기하게 되니 결국은 재앙이 따르게 마련이다그런 때 오히려 승진도 못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임금 또한 늘 혐의 받는 것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그런 신하는 임금이 애첩같이 다루고 노예처럼 부려먹으므로 혼자서만 매우 고달프고힘들기만 하지 등용되기는 쉽지 않다그래서 순수한 자기 실력으로 진출한 선비가 가장 좋은 것이다.

 

     절개는 목숨보다 강하다

  미관말직에 있을 때에도 신중하고 부지런하게 온 정성을 다해서 맡은 일을 완수해야한다. 공무 책임자의 지위에 있을 때는 아무쪼록 날마다 적절하고 바른 의견을 올려서위로는 나라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상이 알려지게 하여야 한다더러는 잘못된 관리들을 물러나게 하는 일도 주저 말아야 한다.

  모름지기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공무 책임자의 직책을 행사하여 탐욕스럽고비루하고 음탕하며 사치하는 일에는 당연히 손을 써서 조치하여야 한다자기에게 유리하게만 의리를 인용해서는 안 되고, 자기편만 편들거나 자기와 다른편을 공격하는 일을 해서 엉뚱하게 남을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어서는 안된다.

  벼슬에서 해직된 때에는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아무리 절친한 벗들이나 동지들이 머물러 있으라 간청해도 들어서는 안된다.

  집에 있을 때는 오로지 독서하고 예의범절을 익히며, 꽃을 심고 채소를 가꾸며,냇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고 돌을 모아 동산을 쌓아 선비 생활을 즐기는 것이다가끔 시골의 외직으로 나갈 때는 자애롭고 어질게 하는 것은 물론, 청렴결백하도록힘써서 아전들이나 백성 모두가 편하도록 해야 한다.

  나라가 큰 난리를 당했을 때는 쉽건 어렵건 꺼리지 말며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를지키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나랏님이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미 존경한다면 어찌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얼굴은 운명의 거울

  얼굴은 버릇으로 인해서 변하고, 세력은 얼굴로 인해서 이루어진다그런데도 흔히 그 관상이니 사주니 말하는 자가 있는데 이는 망령스럽기도 하다.어린아이가 엉금엉금 길 때의 얼굴을 보면 모두 아름다울 뿐이로되 자람에 따라 무리로길러지면서 버릇이 길러지고, 버릇이 갈라지면서 얼굴도 따라 변한다.

  서당에서 글을 배우는 무리는 얼굴이 아담하고, 시장 바닥의 무리는 얼굴이 검다.짐승 치는 무리는 얼굴이 텁수룩하고, 도박 좋아하는 무리는 얼굴이 성낸 듯하면서영리하다.

  대개 버릇이 오래 되면 성질도 그쪽으로 나날이 옮겨지는데, 그 마음속에 있는 것이성실하면 겉으로도 나타나게 된다사람이 그 얼굴이 변한 것을 보고는 '얼굴이 그러므로 그 버릇이 그렇다'하지만,천만에, 그것은 틀린 말이다대체로 학문을 익힌 자는 사물의 이치와 도리를 판단하는 데에 재주가 있다장사 솜씨를 익힌 자는 재화를 모으는 데에 재주가 나고, 노동을 익힌 자는 끝내비천하다.

  나쁜 짓을 익힌 자는 마침내 패망하게 되는데 익힘은 재주와 함께 진전함으로써재주는 얼굴과 더불어 변화하게 된다사람들은 얼굴이 변한 것을 보고 또한 말하기를, '얼굴이 그런 까닭으로 그 재주가저와 같다'하니, 아아, 어찌 그리 어리석은가.

  아이의 눈동자가 빛나면 부모가 말하기를,  '이 아니는 학문을 시킬 만하다'하여, 그 아이를 위해서 책을 사들이고 스승을 정해 준다. 선생은, '이 아이는 가르칠만하다'하여, 그 아이에게 붓과 먹, 책상을 더 주게 된다. 그러면 아이는 더욱부지런해져서 나날이 힘껏 정진한다.

  선비가 '이 사람은 일을 시킬 만합니다'하며 천거하고 또 임금이 그 사람을 보고'이 사람은 총애할 만하다'하면 권장한다. 허락하고 칭찬하고 발탁하여 잠깐 동안에재상이 된다

  아이의 뺨이 두툼하면 부모가 '이 아이는 부자가 될 만하다'하여 살림살이를 더욱얹어 주고, 부자가 이를 보고 '이 사람은 부릴 만하다'하여 자본을 더욱더 주게 된다아이는 더욱 부지런해져서, 나날이 힘써 장사를 잘하게 된다사장 가게에 물건을 두둑하게 정리해 쌓아 두었는가를 살펴보고 객주로 삼는다.

자신은 계속 발전하는데 거기에 또 남들이 도와주니 잠깐 동안에 큰 부자가 된다아이가 눈썹이 덥수룩하고 콧구멍이 밖으로 드러났으면, 그 부모와 스승들이 아무리키우고 생각하여 도와주더라도 모든 것이 이것과 반대니 그 몸이 어찌 부귀해질 수있겠는가이와 같은 것은 얼굴로 인해서 그 힘을 이루었고, 힘으로 인해서 그 얼굴을 이루게된 것이다그런데 사람들은 그 얼굴이 생긴 것을 보고 또 말하기를 '얼굴이 저렇게 생겨서 이룬 것이 저와 같다' 하니, 아아, 어찌 그리 어리석은가세상에선 뛰어난 재주와 덕을 가지고도 운수가 막히고 궁해서 그 덕과 재주를 펴지못하는 자가 있으면 얼굴을 탓한다.

  그러나 일반인이 관상법을 믿으면 그 직업을 잃게 되고, 지도자가 관상법을 믿으면그 벗을 잃게 되고, 임금이 관상법을 믿으면 그 신하를 잃게 된다.

 

     버려도 좋을 인간

  아랫사람이 반드시 간사한 것은 아니다.

  간사하도록 시키는 것은 법이다간사한 짓이 일어나는 것을 모두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무릇 맡은 일은 작은데 재주가 넘치면 간사해지고, 지위는 낮은데 지식이 높으면간사해지고, 수고한 것은 적은데 소득이 빠르면 간사해지고, 누군가가 홀로 그 자리에오래 있는데 그를 감독하는 사람이 자주 갈려지면 간사해지고, 자기를 감독하는사람이 반드시 정직한 자가 아니면 간사해지고, 제 패거리가 아래에 많은데 윗사람이외롭고 지혜롭지 못하면 간사해지고,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보다 약해서 두려운 마음때문에 고발하지 않으면 간사해지고, 내가 꺼리는 자도 다같이 법을 어겼는데 서로숨기어 고발하지 않으면 간사해지고, 형벌이 가벼워서 염치를 세우지 못하면간사해지고, 혹은 간사한 게 지나쳐서 실패하기도 하고 혹은 간사하여도 실패하지않기도 하며, 혹은 반드시 간사하지도 않았는데 간사하다는 것으로써 실패하면간사하여진다.

  간사한 짓이 일어나기 쉬운 것이 이와 같다그런데 아랫사람을 부리면서 하나라도 간사한 짓이 일어나도록 돕지 않는 것이 없고,그렇게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 없으니 아랫사람이 어찌 간사해지지 않겠는가그런 까닭에 아랫사람에게 간사함이 없도록 하려면 나라에서 사람을 뽑는 데에오로지 글을 잘 짓고 시험 잘치는 사람만 임용하지 말고 맡은 직책에 능숙한 자를 높은벼슬길에 오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늘상 가난하고 사람들이 교활하여 다스리기 어려운 고을이 있으면 이들에게가서 다스리게 하되 진실로 좋은 성적이 있으면 상을 주고 의심하지 말 것이다그렇게 하면 아랫사람의 간사한 짓이 없어진다.

 

     시련 속에서 피는 꽃

  새해가 밝았구나.

  군자는 새해를 맞으면서 반드시 그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새롭게 하려고 한다. 나는어렸을 적 새해를 맞을 때마다 일년 동안 공부할 과정을 미리 계획해 보곤 했다. 예를들면 '무슨 책을 읽고 어떤 글을 뽑아 적어야겠다'는 식으로 미리 작정을 해 놓고 꼭그렇게 실천하곤 했다.

  때론 몇 개월 못 가서 사고가 발생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아무튼좋은 일을 행하고자 했던 생각이나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지지 않아 많은 도움이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너희들 공부에 대해서 수없이 글과 편지로 권했음에도 불구하고너희는 아직 경전이나 도덕, 혹은 예술에 관해 질문해 오지 않고 역사책에 관한 논의도않으니 어찌된 셈이나?

  도회지에서 자라난 너희들이 어린 시절에 보고 배운 것이 문전의 잡객이나 시중드는하인, 아전들뿐이어서 말씨와 마음씨가 약삭 빠르고 비천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런못된 말씨와 마음씨가 골수에 박혀 착한 행실을 즐기고 공부하려는 뜻이 전혀 없는것이다마음속에 약간의 성의만 있다면 아무리 난리 속이라도 반드시 진보할 수 있는법이다. 집에 책이 없느냐, 재주가 없느냐?

  또한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다 하더라도 성인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않느냐. 꺼릴 것이 없을 뿐 아니라  과거에만 집착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빠지는 잘못을 벗어날 수도 있고, 가난하고곤궁하여 고생하다 보면 그 마음을 단련하고 지혜와 생각을 넓히게 되어 세상살이나사물의 진실과 거짓을 옳게 알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율곡과 같은 분은 어버이를 일찍 여의었으나 그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얼마 안 있어 마침내 지극한 도를 깨쳤고, 우리 집안의 선조 우담선생께서도세상 사람들의 배척을 받고서 더욱 덕이 높아졌고, 성호선생께서도 난리를 당한집안에서 이름난 학자가 되었으니, 이분들 모두가 다 당대의 고관대작 집안의 자제들이미칠 수 없는 훌륭한 업적을 남겼던 것이다.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집안에서 재주 있는 걸출한 선비가 많이 나오는 것은, 하늘이재주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집안에 보탬이 되게 하려는 뜻이 아니다. 부귀영화를얻으려는 마음이 근본 정신을 가리지 않아 깨끗한 마음으로 독서하고 궁리하여 진면목과바른 뼈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민으로 배우지 않으면 못난 사람이 되고 말지만 선비 집안의 폐족으로 배우지않는다면 마침내는 도리에 어긋 지고 비천하고 더러운 신분으로 타락하게 된다아무도 가까이하지 않아 결국 세상의 버림을 받게 되고 혼인길마저 막혀 천한 집안과결혼할 것이며, 물고기의 입이나 강아지의 이마 꼴을 한 자식이 태어나면 그 집안은영영 끝장나는 것이다.

  내가 유배 생활에서 풀려 몇 년간이라도 너희들과 생활할 수만 있다면 너희들의 몸과행실을 바르게 잡아 효제(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를 숭상하고 화목하는일에 습관들게 하련만.

  철학과 역사를 연구하고 시와 도덕을 담론하면서 3, 4천 권의 책을 서가에 진열하고1년 정도 먹을 양식 걱정 안해도 되고, 과일이나 뽕나무, 채소와 과일, 화훼, 약초들을심어 잘 어울리게 하여 그것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것을 구경하면 얼마나 마음이 즐거울것이냐.

  마루에 올라 방에 들면 거문고 하나 놓여 있고, 주안상이 차려져 있으며,투호(화살을 던져 넣을 수 있는 병)하나, 붓과 벼루, 책상, 도서들이 품위 있고깨끗하여 흡족할 만할 때에 마침 반가운 손님이 찾아와 닭 한 마리에 생선회 안주 삼아탁주 한 잔에 맛있는 풋나물로 즐겁게 먹으면서 어울려 옛과 오늘의 일을 논의하며흥겹게 산다면 비록 폐족이라 하더라고 안목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이다이렇게 한두 해의 세월이 흐르다 보면 반드시 중흥의 여망이 비치게 될 것이아니겠느냐.

  이점 깊이 명심하도록 하여라이런 일조차 않을 테냐?

 

     몸가짐과 말, 그리고

  세상에서 비스듬히 드러눕거나 삐딱하게 서고, 아무렇게나 지껄이거나 눈알을이리저리 굴리면서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 말을 하는 것,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 이 세 가지가학문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마음을 기울여야 할 덕목이다이 세 가지도 못하면서 다른 일에 힘을 쓴다면, 비록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고 재주가있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식견을 가졌다 할지라도 결국은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고바로 설 수 없게 되어 어긋난 말씨, 잘못된 행동, 도적질, 매우 못된 짓,이단이나 잡술 등으로 흘러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세 가지에 힘쓰겠다는 뜻으로 '삼사재'라는 것을 당호로 삼고 싶다.

다시 말하면 이 세 가지는 난폭, 거만한 것을 멀리하는 대신 미더움을 가까이한다는의미이니라.

 

     간절한 뜻을 지닌 문학을

  시에 반드시 힘써야 할 필요는 없으나 성정을 닦고 빛내려면 시를 읊는 것도 상당한도움이 된다.

  이즈음 들어 옛스러우면서 힘있고, 기이하면서 우뚝하고, 웅장하고, 한가하면서 뜻이깊고, 맑으면서 환하고, 거리낌없이 자유로운 그런 기상에는 전혀 마음을 기울이지않는 대신, 가늘거나 미세하고, 자질구레 경박하고, 황당한 문예에만 힘쓰고 있으니개탄할 일이로다.

  단지 율시(여덟 구로 되어 있으며 리듬을 중요시한 시)만 짓는 것은 우리 사람들의비루한 습관이다.

  그 뜻 그 취향의 낮고 얕음과 기질의 짧고 껄끄러움은 반드시 바로잡지 않으면 안 될것이다.

  내가 요즈음 다시 생각해 보아도 자기의 뜻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나 회포를읊어 내는 데는 4자로 된 시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본다요컨대 시의 근본은 사람살이의 인륜을 밝히는 데 있으며, 때로는 그 즐거운 뜻을펴기도 하고, 때로는 원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펴는 데 있다.

  그 다음으로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어 방황하고 안타까워서 그냥두지 못하는 그런 간절한 뜻을 항상 지녀야 바야흐로 참됨 시가 되는 것이다자기 자신의 이해득실에만 연연하면 그 시는 시라고 할 수가 없다.

 

     멀리 보고 꿰뚫어 생각하라

  학자란 궁한 후에야 비로소 저술 활동을 할 수 있다매우 총명한 학자가 지극히 곤궁한 지경에 놓여 종일 홀로 지내며 사람들 떠드는소리라든가 수레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 고요한 시각에야 경전이나예에 관한 비밀스런 의미를 비로소 연구해 낼 수 있는 것이다세상이란 게 이렇듯 교묘하다.

  남의 저서에서 도움이 될 만한 요점을 추려 내어 책을 만들 때에는 우선 자기 자신의학문에 대한 주관이 뚜렷해야 그 판단 기준이 마음에 세워져 취사 선택하는 일이용이할 것이다.

  요컨대 책 한 권을 볼 때 오직 나의 학문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추려 쓰고,그렇지 않다면 눈여겨볼 필요가 없는 것이니 백권 분량의 책일지라도 열흘 정도의공을 들이면 되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멀리 보는 생각과 꿰뚫어 보는 눈이 없으니 탄식할 일이로구나.

 

     황금보다 무거운 편지의 무게

  열흘 정도마다 집안에 쌓인 편지를 점검하여 눈에 거슬리는 번잡한 것은 하나하나뽑아 적어 두고, 잡스런 것은 불살라 버리고, 그보다 조금 덜한 것은 노끈으로 만들어쓰고, 그보다 조금 덜한 것은 벽을 바르거나 종이상자를 만들어 쓰면 정신이 맑아지게될 것이다.

  편지한 장 쓸 때마다 두 번 세 번 읽어보면서 이 편지를 사방으로 뚫린 번화가에떨어뜨렸을 때 나의 원수가 펴 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 가고 생각하면서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많은 사람들의눈에 보여지더라도 조롱을 받지 않을 편지인가를 생각해 본 뒤에 비로소 봉해야 한다이런 일이 바로 군자가 삼가는 것이다. 내가 젊어서 글자를 너무 빨리 썼기 때문에여러 번 이 계율을 어긴 적이 있었는데 중년에 화 입을 것을 두려워하여 이런 원칙을지켰더니 아주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너희도 이 점을 명심토록 하여라.

 

     나라를 걱정하라

  우리의 시는 마땅히 두보의 것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든 시인들의 시중에서 두보의 시가 왕좌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시경"에 있는 3백 편의 의미를 그대로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경"에 있는 모든 시는 충신, 효자, 열녀, 진실한 벗들의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의발로로서,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며,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착함을 권장하고 악함을 징계하는 그러한 뜻이담겨 있지 않은 내용의 시는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뜻이 세워져 있지 아니하고, 학문은 설익고, 삶의 큰 길을 아직 배우지못하고, 위정자를 도와 민중에게 혜택을 주려는 마음가짐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시를지을 수가 없는 것이니, 너도 그 점에 힘쓰기 바란다.

  두보의 시는 역사적 사건을 시에 인용하는 데 있어서 흔적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지어낸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다 출처가 있으니 두보야말로 시성이 아니겠느냐?

  한유의 시는 글자 배열법을 모두 출처가 있게 하였으나 어구는 스스로 많이지어냈으니 그분은 바로 시의 대현(뛰어나게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소동파의 시는 구절마다 역사적 사실을 인용했는데 인용한 태가 나고 흔적이 있어얼핏 보아서는 의미를 알아볼 수도 없으나 겨우 알아낼 수 있으니 그의 시는시인으로서는 박사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소동파의 시로 말하면 우리 세부자의 재주로써 죽을 때까지 시에만 전념한다면 그 근처쯤 갈 수는 있겠지만 세상에서할 일도 많은데 무엇 때문에 그따위 작시나 일삼고 있겠느냐?

  그러나 시에 역사적 사실을 전혀 인용하지 않은 채 음풍농월이나 일삼고 장기나 두며술먹는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시를 짓는다면 이거야말로 벽지의 시골, 서너 집 모여사는 촌선비의 시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시를 지을 때는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는일에 주안점을 두도록 하여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한답시고 걸핏하면 중국의 일이나 베껴 내고있으니 이 또한 볼품없는 짓이다아무쪼록 "삼국사기" "고려사" "국조보감" "여지승람" "장비록" "연려실기술" 및우리나라의 다른 글 속에서 그 사실을 뽑아 내고 그 지방을 고찰하여 시에 인용한뒤에 라야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좋은 시가 나올 것이며 세상에 명성을 떨칠 수 있을것이다.

 

 

 

     책 속에 진리의 길이

  이 세상의 사물 중에는 자연 상태로 존재하여 좋은 것이 있는데 이런 것을기이하다고 떠들 썩 말할 필요는 없다파손된 것이나 찢어진 것을 어루만지고 다듬어 완전하게 만들어야만 그 공덕을찬탄할 수 있듯이, 죽을병에 걸린 환자를 치료해서 살려내야 훌륭한 의원이라 부르고,위태로운 성을 구해 내야 이름난 장수라 일컫는다여러 대에 걸친 명문 집안의 고관 자제들처럼 좋은 옷과 멋진 모자를 쓰고 다니며집안 이름을 떨치는 것은 못난 집 아이라도 다할 수 있다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행세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좋은 일이지 않겠느냐?

  가난한 학생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한 가지 길밖에 없다.왜냐하면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뿐만 아니라호사스런 집안 아이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마을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 볼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벼슬 집안의 아이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가 있는 데다가 도중에 재난을만난 너희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 독서하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다. 그네들이 책을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의미도 모르면서 그냥 읽는다면 책을 읽는다고 치는 것이아니기 때문이다.

  한의사가 3대를 계속해 오지 않았으면 그가 주는 약을 먹지 않는 것같이, 반드시여러 대를 내려가면서 글공부를 한 집안이라야 문장을 할 수 있다돌이켜보건대 내 재주가 너희보다 조금은 더 나을지 모르지만, 어려서는 방향을 알지못하였다. 나이 열 다섯에야 비로소 서울 유학을 해보았으나 이것저것 건드려 보기만

했지 얻은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후 스무 살 무렵 처음으로 과거 공부에 전력을기울였더니 합격하여 태학(조선시대에 성균관을 달리 일컫던 말)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또다시 대과에 골몰하다가 규장각으로 옮겨가서는 그 직무에 충실하느라 한갓글귀만을 다듬는 공부에 거의 10년이나 몰두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지은 시나 문장은 아무리 많은 맑은 물로 씻어 낸들 결코 과거 시험답안 같은 틀을 벗어날 수 없고 조금 괜찮은 것일지라도 관각체(중국의 고문을 따르는일종의 정통문학 문체임)의 기운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머리털과수염이 희끗희끗하고 정기도 이미 시들고 말았다. 이것도 다 운명이구나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에는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할 것인즉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그것이다. 먼저 반드시 효제에 힘써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그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배어들어 넉넉해진다. 학문이 이미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지면 특별한 순서에 따른독서의 단계를 강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 있는 자가 마음 붙여 살아갈 곳은 글과 붓이 있을뿐이다. 문득 한 구절 정도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났을 때 다만 혼자서 읊조리거나감상하다가 문득 생각하길 이 세상에서는 오직 너희들에게나 보여 줄 수 있겠다여긴다.

  몇 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지나가면 그 동안 너희들은 나이가 들어 밉상스럽게변할텐데 어찌 나의 책을 읽으려고 하겠느냐. 내가 보기에 천하에 불효자였던 한나라의조괄은 그가 아버지의 글을 잘 읽었기 때문에 나중에 어진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너희들이 진정 독서를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내 저서가 쓸모 없다면 나는 정녕 할 일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앞으로 마음의 눈을 닫고 흙으로 빚은 토우처럼 될 뿐 아니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것이다.

  이 병을 고칠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은 곧 내 목숨을 살려주는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이치를 깊이 생각해 보거라.

 

     세상을 구하려면

  내가 앞서 여러 차례 말했듯이 청족(깨끗한 절의를 높이 받들어 온 가문)은 비록독서를 하지 않는다 해도 저절로 존중받을 수가 있으나 폐족(큰 죄를 지어 그 자손이벼슬을 할 수 없는 집안)으로서 세련된 교양이 없으면 더욱 가증스러운 일이 되고만다. 사람들이 천히 여기고 세상에서 얕잡아 보는 것도 서글픈 일인데 너희들은 지금스스로를 천하게 여기며 얕잡아 보고 있으니 비참한 일이다.

  너희들이 끝내 배우지 아니하고 스스로를 포기해 버린다면 내 저술과 간추려 놓은자료들을 앞으로 누가 모아서 책을 엮고 교정하며 정리하겠느냐?

  이 일을 못한다면 내 책들은 더 이상 남겨질 수 없을 것이며, 내 책이 후세에전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단지 사헌부의 공소장과 옥안(재판의 진행 기록)만 믿고서나를 평가할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면 내가 어떤 취급을 받겠느냐?

  아무쪼록 너희들은 이런 점들까지 생각해서 다시 분발하여 공부하여라. 내가 이어온실낱같은 우리 집안의 공부하는 전통을 너희들이 더욱 키우고 번성시켜 보아라. 그러면세상에서 다시 빛 보게 될 것은 물론 아무리 대대로 벼슬 높은 집안이라도 우리 집안의자존심과는 감히 견줄 수 없을 것이다. 무엇이 괴롭다고 이런 일을 버린 채 노력하지않느냐.

  요즈음 한두 젊은이들이 중국의 경조부박(언행이 경솔하여 신중하지 못함)한 가난의괴로움을 극한적으로 표현한 말들을 모방하다가 절구나 짧은 싯귀를 만들어 당대의문장인 것처럼 자부하며 거만하게 남의 글이나 욕하고 가치 있는 글들을 깎아 내리는것은 내가 보기에 불쌍하기 짝이 없다.

  처음에는 반드시 경학(공자의 사상을 중심으로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학문)을공부하여 바탕을 다진 후 옛 역사책을 섭렵하여 옛 정치의 득실을 따지고 그것이 잘다스려진 이유와 어지러웠던 이유 등의 근원을 캐 볼 일이다또 모름지기 실용의 학문, 즉 실학에 마음을 두고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도록 해야 한다.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생각과 만물을 제대로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라야만 바야흐로 참다운 독서를한 군자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사람이 된 뒤 더러 안개 낀 아침, 달뜨는 저녁, 짙은 녹음, 가랑비 내리는날을 보고 문득 마음에 자극이 와서 한가롭게 상념이 떠올라 절로 운율이 나오고 시가되어질 때, 천지 자연의 음향이 제 소리를 내는 것이다이것이 바로 시인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경지일 것이다.

  이 근래 괴이한 논의가 있는 바 많은 지식인들이 우리 문학을 멀리 배척하고 있다는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옛 문헌이나 문집에는 눈도 주지 않으려 하니 이거야말로 큰 병이 아니고무엇이겠느냐?

  사대부 자식들이 우리의 옛일들을 알지 못하고 선배들이 논했던 것을 읽지 않는다면그 학문이 비록 고금을 꿰뚫고 있다 해도 시시한 엉터리가 될 뿐이다.

 

     무엇을 읽을 것인가

  네가 열 살 전에는 파리하여 자주 잔병치레를 하더니만 요즈음엔 힘줄과 뼈마디가굳세어지고, 정신력에 있어서도 거친 일과 고달픈 일 등을 견딜 만하다니 제일 기쁜일이다.

  남자가 독서하고 행실을 닦으며 집안 일을 보살필 때는 결단코 거기에 전념해야 하는바 정신력이 없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투철한 정신력이 바탕에 깔려야만 근면하며 민첩하게 움직일 수가 있다. 지혜도 생길수 있고, 업적도 세울 수가 있다진정으로 마음을 견고하게 세워 똑바로 앞을 향해 나아간다면 태산이라도 옮길 수있는 것이다.

  내가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대하여 깨달은 바가 무척 많은데 마구잡이로 그냥 읽어내리기만 하는 것은 하루에 천백 번을 읽어도 오히려 읽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무릇 독서 도중 의미 모르는 글자를 만날 때마다 널리 고찰하고 세밀하게 연구하여그 근본 뿌리를 파헤쳐 글 천체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는다면 수백 가지의 책을 함께 보는 것이 된다. 이렇게읽어야 책의 뜻과 이치를 훤히 꿰뚫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점 깊이 명심해야한다.

 

     어떻게 쓸 것인가

  지식인이 책을 펴내 세상에 전하려는 것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 책의 진가를알아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서이다나머지 욕하는 사람들이야 관계할 바 없다.

  만약 내 책을 정말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나이 많은 사람일 땐 아버지처럼섬기고, 적대시해 왔던 사람이라도 너희는 그와 결의 형제라도 맺도록 하는 것이좋으리라.

  일찍이 선배들의 저술을 볼라치면 거칠고 빠진 게 많아 볼품없는 책들도 세상의추앙을 받는 게 다반사인가 하면, 자세하고 요령 있으며 광범위한 내용을 담은 책들이오히려 배척받아 끝내는 사라져 버린 채 전해지지 않는 책도 있었다거듭거듭 생각해 보아도 그 까닭을 알 수 없더니 요즈음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요컨대 '글은 곧 그 사람'이다. 군자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굳게 다물고 단정히 앉아 진흙으로 만들어 낸 사람처럼 엄숙하게 지내는 생활 습관을지녀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그가 저술하는 글이나 이론이 엄숙하고 똑바르게 된다그러한 뒤에 라야 위엄으로 뭇사람을 승복시킬 수 있고 명성의 퍼져 나감이 영원하다만약 나태하고 경박하며 약삭빠르고 시시한 농담이나 곁들인다면 비록 그가 말한내용이 이치에 깊이 들어맞는다 해도 독자들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동안 뿌리를 박지 못한 책이라면 자기가 죽어 버린 후 절로 사라지게 되는것쯤 당연한 이치이다. 세상에는 시시한 사람은 많아도 정통한 사람은 적은 법, 누가쉽게 알아볼 수 있는 위엄이나 행동을 버려 두고 특별히 힘든 의인을 알아보려고하겠느냐?

  높고 오묘한 학문의 참뜻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날로 수가 줄어드는 세상이다. 비록공자의 도를 다시 잇고 문장이 뛰어나며 학술이 깊다 해도 그것을 알아볼 사람은 자꾸없어져 간다. 너희들은 이 점을 알아차리고 우선 천천히 연구하며 먼저 긍지를 지니는마음가짐에 힘써라.

  큰산이 우뚝 솟은 듯 고요히 앉는 법을 습관들이고, 남과 사귀며 일을 처리함에 있어먼저 자신의 마음 자세를 점검하여 자기가 해야 할 본령이 확고하게 섰다는 것을 안 뒤점차 저술에 임하라. 그렇게 하면 한마디의 말이나 단 한 자의 글자라도 모든 사람들이진귀하게 여겨 아끼게 될 것이다.

  만약 자기 스스로를 지나치게 경시하여 땅에 버려진 흙처럼 여긴다면 이 또한 정말로끝장이다.

 

     귀신을 감동시키는 글

  옛날 학문하는 방법은 다섯 가지로서 넓게 배우고, 따져서 묻고, 조심해서 생각하고,명백하게 분별하고, 독실하게 실행하는 것이었다오늘날 학문하는 자들은 첫째로 넓게 배울 뿐, 따져서 묻는 것 이하에는 마음을 쓰지않는다. 무릇 어떠한 학설에 대해서도 그 요령은 묻지도 않고, 그 주제를 살피지도않은 채 오직 마음을 한 곳으로만 써서 믿는다가깝게는 마음을 다듬어 성정 다스릴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멀게는 세상을 도와서백성 다스리는 것을 구하지도 않는다. 오직 그 넓은 견문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화려한 문장과 호쾌한 변론을 스스로 자랑해서 한 세상의 더러움을 깔볼 뿐이다.

  그리고 그릇된 뜻과 간사한 학설이 만대에 해를 끼치는 것이 있어도 쉽게 용납하면서천하의 의리는 무궁하다고 한다.

  문장이란 어떤 것인가. 문장이 어찌 공중에 걸려 있고 땅에 펼쳐져 있어서,바람소리를 듣고 달려가서 잡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옛날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 오로지 공경하여 덕을 수양하고, 형제간의우애와 충신으로써 행실을 튼실히 하였다. 시서와 예악으로써 그 기본을 배양하고,역사와 철학으로써 세상의 바른 이치에 통하고 만물의 모든 실정을 두루 알게 되었다.

  그 지식이 중심에 쌓여서 땅이 만물을 지고 있는 것처럼, 바다가 모든 것을 포용하는것처럼, 구름처럼 성하고 우뢰처럼 꿈틀거리면 그의 문장은 마침내 숨길 수 없게 된다.

  그런 다음에 사물과 서로 만나는 것이다.

  혹은 들어가기도 하고 혹은 의견이 서로 부딪치는 경우도 있지만, 흔들리고 격동하여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닷물처럼 일렁일렁 치솟으며 금처럼 번쩍번쩍 빛나서,가깝게는 사람을 감동시킬 만하고 멀게는 천지를 움직이며 귀신을 감동시킬 만할 때이것을 곧 훌륭한 문장이라 이른다.

 

     음악이 있는 곳에 행복이

  아아, 사람은 원래 제대로 착하지 못하고 반드시 가르친 다음에 착하게 된다. 그이유는 칠정(기쁨, 분노, 슬픔, 놀람, 사랑, 증오, 욕심)이 마음속에 얽혀서 원만하게화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 으쓱하는 마음에 만족스러운 일이 있으면 거기에 음탕한 것이 섞여 들기도 하며,혹 발끈 충격 받은 일이 있으면 성내는 때도 있으며, 혹 슬퍼하기도 하고, 혹두려워하기도 하며, 혹 노려보기도 하며, 혹 원망하기도 하여 그 마음이 화락을 얻을때가 없다. 마음이 화락하지 못하면 온몸이 따라서 어그러지게 되고, 동작하는 데에도모두 법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성인은 거문고, 비파, , , 꽹과리, 피리따위의 음을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그 화평과 화락의 뜻을 유발시키도록 하였다그러므로 사람을 가르치는 데엔 반드시 음악을 이용하는 것이 알맞지 않겠는가성인의 도도 음악이 아니면 시행되지 못하고, 제왕의 정치도 음악이 아니면 성공하지못하며, 천하 만물의 감정도 음악이 아니면 조화되지 못한다.

  음악이 없어지면서 형벌이 심하여졌고, 음악이 없어지면서 병란이 잦아졌다음악이 없어지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음악이 없어지면서 속음과 거짓이성하여졌다.

  무엇으로 이렇게 된 연유를 아는가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서 그것이 나오기는 쉬워도 억제하기 어려운 것은 노여워하는마음이다버럭 성내어 답답한 사람은 마음이 화평치 못하고, 분하여 성낸 사람은 마음이풀리지 않는 법이다그런 때에 오직 남을 형벌 함으로써 한때의 심기가 통쾌해지면 비록 풀리는 듯순해질 수 있으나, 거문고, 피리, , 꽹과리 소리를 듣고 그 마음이 화평하게풀어지는 것만 같지 못하다.

  윗사람이 형벌로 다스리고, 무기로써 위압하면 아랫사람은 이에 응하게 되는데,그것은 오직 근심과 고통과 탄식하는 소리와, 간사하고 아첨하며 숨으려는 꾀만 있게될 뿐이다.

  이것이 곧 음악이 없어진 후에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음악이 없어지자 속임과거짓이 성하여진 이유이다요즘 세속의 음악은 모두 음탕하고 상스러우며, 가락이 슬프고 부정한 소리뿐이다.그러나 그런 음악이라도 앞에서 한창 연주하면 높은 사람은 아전붙이를 용서해 주고집안 어른은 종들을 용서하게 된다. 세속의 음악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옛제상이나 성인의 음악이랴.

  그러므로 예의와 음악은 잠깐 동안이라도 내 몸에서 떠나서는 안된다. 음악을진작시키지 않으면 사회의 교화는 시행할 없으며, 풍속도 마침내 변화시킬 수 없다.음악이 없으면 하늘과 땅 사이의 화기도 결국 이루어 내게 할 수 없으리라.

 

     구멍이 뚫렸구나

  사람들은 늘상 '오륜 오륜' 하지만 붕당의 화가 그치지 않고 정치인을 반역죄로 몰아넣는 옥사도 자주 일어나고 있으니 군신유의의 도리는 이미 무너져 버렸다또 아버지의 대를 잇는 의가 밝혀져 있지 않아 자손이나 서자들이 제멋대로 굴게되면 부자유친은 없어져 버리며, 기생을 금지하지 않은 고을 수령들이 모두 거기에빠져 있으니 부부유별도 이미 문란해져 버렸다.

  노인들을 보살펴 봉양하지 않고 새파란 부자 자식들이 교만을 피우고 있으니장유유서는 파괴되고 말았으며, 과거만을 위주로 하고 도의를 가르치지 않으니붕우유신도 어긋나 버렸다.

  성인은 이 다섯 가지의 잘못을 반드시 바꿔야 하느니라.

 

     거꾸로 걷는 자식

  어버이를 섬기는 일에 있어선 그 뜻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여인들은 의복이나 음식, 거처하는 것에 관심이 많으므로 어머니를 섬기는 사람은사소한 일에 유의해야만 효성스럽게 섬길 수 있을 것이다. "예기"'내칙' 편에는,음식에 관한 것 등 자그만 예절이 많이 적혀 있는데, 이것은 성인의 가르침이란'경우'를 알게 하는 데서 비롯된다결코 동떨어지거나 사소한 음식 따위에서 시작되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요즘 세상의 사대부 집안에선 부녀자들이 오래 전부터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예사로 되어 있다.

  하지만 부엌에 들어간들 무엇이 그리 손해가 되겠는가?

  거기에선 다만 잠깐 연기를 쏘일 뿐이다그리하여 연기 좀 쏘이고 시어머니의 환심을 얻으면 효부가 되고 법도 있는 집안도만드니, 이 또한 효도로서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느냐?

  그러므로 너희 형제는 새벽이나 늦은 밤에 어른들의 방이 찬가 따뜻한가 늘점검하거라. 이불 밑에 손을 넣어 보고 차면 항상 따스하게 몸소 불을 때 드리되 이런일은 종들을 시키지 않도록 해라.

  이 수고로움도 잠깐 연기를 쏘이는 일에 지나지 않을 터인즉, 네 어머니가 무엇보다더 기분이 좋으면 너희들도 이런 일이 왜 즐겁지 않으랴?

  어머니와 아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아들과 며느리가 불효해 어른들이한탄하고 있을 때, 남녀 종들은 그 틈을 노려 주인마님의 상에 장 한 숟갈이나 맛있는과일 하나라도 더 올려 환심을 사고 골육간의 사이를 더욱 이간시키려고 할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아들이나 며느리가 잘못하기 때문이지 남녀 종들이 나빠서 그런 것은절대로 아니다.

  마땅히 그런 것을 거울삼아 온갖 방법을 다 짜내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도록하여라.

 

     세상에서 가장 나쁜 죄

  내가 너희들더러 불성실하다고 한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변명할 수는 없으리라.내가 시킨 일에 대해 불성실하게 행동한 일이 손가락을 꼽을 수 없을 정도인데, 하물며그 나머지 일들은 어떻겠느냐.

  이후로는 모름지기 착한 마음을 불러일으켜 "대학"의 성의장과 "중용"의 성신장을벽에다 써 붙이고 크게 용기를 내어 그것을 굳건히 딛고 서서 빠른 여울에 배를 타고올라가는 이치로 공부에 힘써 나아감이 더욱더 좋겠노라공부는 모름지기 먼저 거짓말하지 않는 일부터 신경 써야 한다.

  거짓말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악하고 큰 죄가 되는 것으로 알아야 하노니 이것이성의 있는 공부로 들어가는 최초의 길목임을 명심하여라.

 

     돌이 날아들면 옥으로

  효도와 우애는 인을 행하는 근본이 된다.

  그러나 부모를 사랑하고 그 형제끼리 우애하는 것쯤이야 세상에 많이 있어 그렇게치켜세울 만한 행실이 될 수는 없다.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가 형제의 아들을 자기아들처럼 여기고, 형제의 아들들이 큰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를 자기 아버지처럼 여기고,사촌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기를 친형제처럼 여겨서 집에 손님으로 온 사람이 열흘이넘도록 묵으면서도 끝내 누가 누구의 아버지가 되고 누가 누구의 아들이 되는지를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여야만 바야흐로 그 집안의 기상을 떨칠 수가 있다.

  사람의 집에서 부귀가 한창 피어날 때는 골육간에 서로 의지하고 믿게 되어 원망할일이 있어도 마음으로 삭여 드러내지 않으므로 화기를 잃지 않을 수 있으나, 만약 매우빈곤하면 곡식 몇 되 포목 몇 자 가지고도 다툼이 일어난다나쁜 말이 서로 오가며 서로 모욕하고 무시하다가 마침내는 더욱 격렬하게 다투어원수지간이 되어 버린다이런 때 만약 감동시킬 만한 도량 넓은 남자가 없다면, 점잖고 지혜로운 부인처럼산이나 늪 같은 넓은 도량을 활짝 열어 구름을 헤치고 나온 햇빛이듯 순순히받아들여라.

  어린아이처럼, 속없는 바보처럼, 뼈 없는 벌레처럼, 갈천씨(중국 상고시대의제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천하를 잘 다스리는 분)처럼, 참선하는 중처럼하여 상대방이 칼이나 창으로 덤벼들면 맛있는 술로 대접해 주어라.

  너희들은 이러한 뜻을 잘 알아 날마다 "소학" 외편에 있는 가언(본받을 만한 말)이나선행을 착실히 따르고 부지런히 잘 지켜 잠시라도 잊지 말아야 한다끈기 있게 그리 행동하게 되면 기뻐하는 마음이 저절로 이루어져 화목하게 될것이다.

  불행히도 화목하게 되지는 않더라도 친척이나 고을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히 공정한논평이 있게 마련이다.

  잘잘못을 함께 싸잡아 되놈이나 오랑캐 같은 야만 족속이라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은채 가문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기쁘게 해드리는 게 효도

  너희들은 사고무친(의지할 만한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의 처지에서 커 왔지만 어린시절은 유복하게 살았었기 때문에 아들이나 동생이 되어 아버지나 형님을 섬기는 법,집안 어른들을 섬기는 법에 대해 아직 견문이 없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궁핍한 경우를살아가는 방법도 아직 익숙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내 몸과 마음을 다해 남을 대할 줄도 모르고, 남이 먼저 자기에게 도움주기만을 바란다.

  가정에서의 처신도 잘 익히지 못했으면서 이웃들의 칭찬이나 바라고 있으니 될법이나 한 소리겠느냐.

  전에 동지(조선시대의 종2품 관리)벼슬을 지낸 고조할아버지 뻘의 어른이 계셨다.칠십이 넘은 데다 중풍을 앓으셔서 거동이 몹시 불편하였지만 아침을 잡수신 후에는매일 지팡이 짚고 우리 집에 오셔서 "우리 종손을 하루라도 안 볼 수가 있겠는가"말씀하시곤 했었다.

  하물며 너희가 일흔 되신 노인께서 종증손에게 하신 만큼도 큰아버님을 섬기지않는대서야 말이 되겠느냐!

  이제부터는 매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 먼저 안방에 들러 어머니의 안부를 살피고,다음에는 동쪽 집에 사시는 큰아버님께 문안을 드리고 돌아와서 독서를 시작하도록하여라.

  여러 숙모님들은 점심때나 저녁 무렵 틈나는 대로 둘러보아도 무방하다큰아버지가 팔이 아플 때 바로 찾아가 뵙고 뽕나무 벌레똥을 주워 다가 식초에 담근쑥과 섞어 약을 달이며, 약달일 화로에 불을 피우고 약단지를 씻는 등 시중으로아침저녁 떠나지 않고 모시고 자면서 연연해하며 차마 물러나지 못하는 그런 극진한마음으로 그분을 봉양해 본 적이 있느냐?

  모름지기 스스로 할 일을 다하며 살아도 부형들의 가슴에 원망이나 불평이 쌓일 수있다.

  평상시에는 이런 감정들을 내색 않다가도 어느 날 간섭해야 될 일이 있을 때 가끔자기도 모르게 그것들이 폭발할 수가 있는 것이다그럴 때 너희들은 이 일만 가지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일이 왜 내가 잘못한 일인가,왜 저같이 처리하시는가' 서운해하겠지만 실은 오래 전의 잘못 때문이지 단순히 어떤잘못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거라.

  착실하게 행실을 닦아 어른들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최선이다큰아버님 섬기는 데에는 특별하게 따로 정해진 예절이 없고 오직 자기 아버지 섬기는것과 한 가지로 하면 된다.

  너희들이 느낀 바 있어 진실한 마음으로 행한다면 큰아버님의 마음은 눈 녹듯 풀릴

것이다.

 

     자살은 죄악이다

  아비가 병들어 죽었는데 자식이 따라 죽으면 효도인가그것은 효도가 아니다.

  오직 그 아비가 불행하게 호랑이나 짐승에게 몰렸을 때에 그 자식이 호위하다가죽으면 효자이다.

  임금이 죽었는데 신하가 따라 죽으면 충성인가그것은 충성이 아니다.

  오직 그 임금이 불행하게 난리에서 역적에게 시해 당하게 되었는데 신하가 호위하다가죽거나, 혹은 자기가 불행하게 포로로 되어 오랑캐의 막사 뜰에 끌려가서 강제로절하도록 할 때 그에 굽히지 않고 죽으면 충성이다그런즉 남편이 죽었는데 아내가 따라서 죽으면 열부라 하여 그 문설주를 빛나게하거나 팻말을 붉게 하고, 세금을 면제하여 그 자손의 부역을 경감하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미안하지만 그것은 열부가 아니다성깔이 좁을 것뿐인데 관리가 살피지 못했을 따름이다.

  여기에 명망을 구하는 마음이 있었는가아니다, 그런 마음은 없었다.

  그것은 그 성정이 편협하여 통하지 못했던 탓이다. 천하에 죽음보다 어려운 것이없고 천하 만사 중에 흉한 것으로는 제 몸을 죽이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는데, 제 몸을죽여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오직 제 몸을 죽이는 것은 의리에 합당할 때에 한한다.

  남편이 호랑이나 도둑에게 몰렸을 적에 아내가 따라서 호위하다가 죽었으면 열부일것이며, 혹은 제 몸을 도둑이나 음탕한 자에게 몰려서 몸을 더럽히게 되었으나 굴하지않고 죽으면 열부일 것이며, 일찍 과부로 되었다가 그의 부모와 형제가 제 마음과는다르게 남에게 개가시키려고 할 때 그것을 거절하다가 죽었다면 열부일 것이며, 그남편이 원통한 일로 죽었을 때 그 아내가 실상을 알리고자 울부짖다가 형벌을 당해죽으면 열부이다.

 

  남편의 죽음은 집안의 불행이다.

  시부모가 늙었는데 봉양할 사람이 없고, 여러 자녀들이 어린데도 젖먹여 기를 사람이없으니 죽은 자의 아내 된 사람은 마땅히 슬픔을 참고 억지로라도 살아서 봉양할사람이 없는 시부모를 힘써 봉양하다가 그가 죽거든 장사하고 제사지내며, 아래로양육할 사람이 없는 자녀들을 양육하여 자라나거든 혼례를 시켜 시집보내고 장가들이는것이 옳은 일이다. 하루아침에 모질게도 스스로 제 마음 속에 작정하기를, '남편 한사람이 죽었으니 나한테 시부모 될 사람도 없고, 남편 한 사람이 죽었으니 나한테자식도 없다'하여 횃대에 스스로 목을 매어 돌아보지도 않는다면, 이와 같은 사람이어찌 모질고 잔인하지 않으며 크게 불효하고 크게 무자비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천하의 도는 한길뿐이다.

  크게 불효하고 무자비하면서도 홀로 그 남편에게만 도리를 다했다는 것은 있을 수없는 일이다.

  백성의 윗사람이 된 자가 또 그 집 문설주를 빛나게 하고 팻말을 붉게 하고 세금을 면제하며 그 자손에게 부역을 경감하여 준다면, 이것은 그 백성에게 서로 본받아서 크게 불효하고 무자비하도록 권하는 것이니 어찌 옳겠는가그런 까닭에 이것은 열부가 아니라 소견머리가 좁다는 것이다.

  아아, 신체발부(몸과 머리털과 피부)는 부모한테 받은 것이므로 감히 헐거나 상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내일을 준비하는 삶

  병법에 이르기를, '무기가 예리하지 못하면 병졸을 저거에게 넘겨주는 것이고,병졸을 쓸 수 없으면 장수를 적에게 넘겨주는 것이다'하였다대개 병졸은 손에 병기를 쥐고 방어하는 사람들인즉 병졸이 비록 몇천 몇만명이더라도 맨손으로 싸우게 하면 병졸이 없는 것과 같고, 둔하고 부서진 병기를 잡게한다면 병졸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라가 가난하고 또 법도가 없으면 병졸을 양성할 수 없다.

  병졸을 양성하지 못하면 연습시킬 수 없고, 연습하지 않으면 기계를 창고에 넣어 두게되거니와 기계를 창고에 넣어 두면 둔해지고 부서질 뿐이다지금 각 고을에 갈무리한 무기들 중 활을 들면 좀똥이 우수수 떨어지고, 화살을 들면깃이 사르르 쏟아지며, 칼을 빼면 칼날이 칼집에 붙어서 칼자루만 빠지게 되고, 총을보면 녹이 구멍을 메우고 있으니, 어느 날 문득 환란이라도 생기면 온 나라 군사는 모두맨손일 뿐이다.

비록 남북에 일이 없고, 국경에도 근심이 없더라도 군사제도는 있어야 하는데, 그냥맨손으로는 양성할 수 없으니, 군사를 양성하지 않을 때에는 모든 무기도 소용이 없게된다. 그러므로 내 집안과 나라를 지키는 준비마저 소홀해서야 어찌되겠는가.

 

     보석보다 귀한 두 글자

  너희들에게 물려 줄 밭뙈기도 장만하지 못했으나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글자를마음에 지녀 잘 살고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거라이제 너희들에게 그것을 물려주겠으니 너무 야박하다고 하지는 말라.

  한 글자는 ''이고 또 한 글자는 ''이다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닳지 않을것이다.

 

  '부지런함'이란 무얼 뜻하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일을 저녁 때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늙은이는 앉아서 감독을실천에 옮기고 젊은이는 힘드는 일을 도맡으며, 병이 든 사람은 집을 지키고 부인들은길쌈하기 위해 한밤중이 넘도록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

  요컨대 집안의 상하 남녀간에 단 한 사람도 놀고먹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또 일 도중 노는 시간이 잦아서도 안된다. 이런 걸 부지런함이라 한다.

 

  ''이란 무엇인가?

  의복은 몸을 가리기만 하면 그것으로 일단 족하다. 고운 비단으로 지은 옷은 조금해지기만 하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걸레로 변해 버리지만 질기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약간 해진다 해도 볼품이 없어지진 않는다.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앞으로 계속오래 입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생각해서 만들어야지, 곱고 아름답게 만들어 빨리해지게 해서는 안된다. 생각이 이 정도에 미치면 옷을 만들 때 꼭 곱고 아름다운 옷을만들지 않고, 질박하고 질긴 것을 고르지 않을 사람이 없으리라.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안으로만 들어가면 이미 더러운 오물로 변해버린다.

  삼키기 전에 이미 사람들이 싫어한다인간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는 것은 정성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혀속임이 있어서는 안된다. 하늘을 속이는 게 제일 나쁜 일이고, 임금이나 어버이를속이거나 농부가 같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동업자를 속이면 모두 죄를 짓게 되는것이다.

  단 한 가지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신의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음식도 맛있게 생각하고 입과 입술을 속여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이 가셔굶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인즉 이렇게 해야만 현명하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지난여름 내가 다산에서 지내며 상추로 밥을 싸서 먹고 있을 때 옆사람이 구경하고는"상추로 싸 먹는 것과 김치 담아 먹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 겁니까?"라고 묻더라.

  "그건 사람이 자기 입을 속여먹는 법입니다"말하며 적은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방법에 대하여 알려준 적이 있다.

  어쩐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 애써서는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정력을소비할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장의 어려운 생활 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유한사람과 복이 많은 사람, 선비들의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 가는 데 있어서도지혜로운 방법이 된다.

  '''' 이 두 글자는 손을 댈 속이 없는 것이니 너희들은 절대로 명심하도록하여라.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옛날의 어진 임금들은 사람을 쓰는 데 있어 제 때, 제 곳에 쓰는 지혜가 있었다눈이 먼 소경은 음악을 연구하게 하였고, 절름발이는 대궐문을 지키게 하였고,고자는 후궁의 처소를 출입케 하였고, 곱사나 불구자, 허약하여 쓸모 없는 사람이라도적당한 곳에 적절하게 용무를 맡길 수 있었으니, 이 점에 대하여 항상 연구하도록하여라.

  집에 머슴이 있을 때 너희는 곧잘 말하길 '힘이 약해서 힘드는 일을 시키지 못한다'하였는데 이는 너희들이 '난장이에게 산을 뽑아 내라'는 식의 가당치 않은 일을 맡기고있었기 때문에 그 힘 약한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집안 일을 처리해 나가는 방법으로는 위로는 주인 어른 내외로부터 남자, 여자,어른, 아이, 형제, 동서의 차례에서 아래로는 남녀의 종,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무릇5세 이상은 각자 할 일을 나누어 한 시각이라도 놀지 않게 되면 가난함을 걱정하지않아도 될 것이다.

  집에 늙은 할아버지가 계시면 칡으로라도 노끈을 꼬고, 늙은 할머니는 실꾸리의실 뽑는 일을 놓지 않은 채 이웃에 마실 가더라도 그 일을 계속하는 그런 집안은 반드시먹을 충분하게 마련하고 가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심는 대로 거두리라

  시골에 살면서 과수원이나 채소밭을 가꾸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버림받는 일이 될것이다.

  나는 바쁜 가운데서도 만송 열 그루와 전나무 두어 그루를 심어 둔 적이 있다. 내가지금껏 집에 있었다면 뽕나무는 수백 그루, 접붙인 배가 몇 그루, 옮겨 심은능금나무도 몇 그루 됐을 것이고 닥나무는 지금쯤 이미 밭을 이루었을 터이다.옻나무도 다른 밭 둔덕으로 뻗어 나갔을 터이고, 감자류도 여러 그루, 포도도 군데군데줄을 타고 덩굴로 뻗어 있을 것이다. 파초도 네댓 그루는 족히 가꾸었을 텐데불모지에는 버드나무 대여섯 그루 심었을 거고,유산(다산의 고향 마을 뒷산의 이름)의 소나무도 이미 여러 자쯤 자랐을 것이다. 너희는이런 일을 하나라도 실행했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들이 국화를 심었다고 들었는데 국화 한 이랑은 가난한 선비의 몇 달 동안의식량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한낱 꽃구경에만 그치는 일이 아니다. 생지황, 끼무릇,도라지, 천궁 같은 것이라든지 쪽나무나 꼭두서니 등에도 모두 마음을 기울여 잘가꾸도록 하여라.

  채소밭을 가꿀 때에는 땅을 반반하게 고르는 일과 이랑을 바르게 파는 일이중요하거니와 흙은 가늘게 부수고 깊게 갈아 분가루처럼 부드러워야 한다씨는 항상 고르게 뿌려야 하며 모종은 아주 성기게 심어야 한다아욱 한 이랑, 배추 한이랑, 무우 한 이랑씩 심어 구고 가지나 고추 등속도 마땅히따로따로 구별하여 심어 놓고 마늘이나 파심은 일에도 힘쓸 것이며, 미나리도 심을 만한채소다.

  또한 한여름 농사로서는 참외 만한 것도 없느니라.

  매사에 절약하고 본농사에 힘쓰면서 부업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채소밭 가꾸는 일이다.

 

     닭을 쳐도 선비답게

  네 형이 멀리서 왔으니 기쁘기는 하다만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아보니 옛날에 가르쳐 준 경정의 이론을 하나도 제대로 답을 못한 채 우물거리더라슬픈 일이로구나.

  왜 이렇게 되었느냐?

  어린 날에 화를 만나 혈기를 빼앗기고, 정신을 지키지 않은 채 놓아 버렸기 때문인가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자주 점검하며 지난날 배운 것을 복습했더라면 어찌 오늘의 이지경에 이르렀겠느냐?

  한스럽고 한스럽다.

  네 형이 이러니 넌들 오죽할까?

  문학이나 사학에 상당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네 형이 이렇게 되었을 때, 완전히손도 못 댄 너야말로 알 만한 일이로다내가 집에 함께 있으면서 너희들을 가르쳤다는 데도 듣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다른집안에서도 홀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겠지만, 나는 지금 멀리 귀양살이 와서풍토병이 심한 남쪽 변방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외롭고 불쌍하게 지내며 밤낮너희들에게 희망을 걸고 마음속에 담긴 뜨거운 마음을 쏟아 편지를 보내고 있는데,너희들은 이것을 얼핏 읽어보고는 고리짝 속에 처넣어 버린 후 다시 마음을 두지않아서야 어찌 되겠느냐?

  네가 양계를 한다고 들었는데 양계란 참으로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에도 품위 있는것과 비천하고 깨끗하고 더러운 것의 차이가 있다농서를 잘 읽어서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 보아라.

  색깔을 나누어 길러도 보고, 닭이 앉는 홰를 다르게도 만들어 보면서 다른 집 닭보다살지고 알도 잘 낳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 또 때로는 닭의 정경을 시로 지어 보면서짐승들의 실태를 파악해 보아야 하느니, 이것이야말로 책 읽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양계법이다.

  만약 이만 취하고 의를 못 보며, 가축 기를 줄만 알았지 그 취미를 모르면서 이웃채소 가꾸는 사람들과 아침저녁으로 다투기나 한다면 이것은 산골에 사는 못난사람들의 양계이다.

  너는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느냐.

  이미 닭을 기르고 있으니 아무쪼록 앞으로 많은 책 중에서 닭기르는 법에 관한이론을 뽑아 차례로 정리하여 "계경" 같은 책을 하나 만든다면 육우라는 사람의 "다경",유득공의 "연경" 같은 서적처럼 좋은 책이 될 것이다세상일에 종사하면서도 선비의 깨끗한 취미를 갖고 지내려면 언제나 이런 식으로해야 된다.

 

     갈증 뒤의 물 한 방울

  권세 좋은 자리의 사람들을 찾아가 재판의 일을 청탁하여 더러운 오물이나빨아먹거나, 무뢰배들과 결탁하여 촌구석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속여먹으며 그들의재물이나 도둑질하는 일은 모두 첫째 가는 간악한 도둑놈들 짓이다. 작게는 욕을 먹고꾸중듣는 것으로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게 되지만 크게는 법에 걸려들어 큰 형벌을 받게되고 말 것이다.

  옳지 못한 재물은 오래 지킬 수 없다. 너는 포졸들의 못된 재산이 일생 동안보존되는 것을 보았더냐?

  버는 대로 써 버리고는 또 마치 굶주린 귀신처럼 악착같이 이익을 추구하는 데몰두하여 벌어들이지만 혀끝의 한 방울 물로 불을 끄려는 것처럼 아무리 해도 타는갈증은 풀 길이 없다.

  그럼에도 어찌 그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는 것이냐?

  검소한 직분에 온 힘을 다하고 분수에 맞추어 도리를 지키며 일거리를 줄여 경비를절약한다면 너는 아마도 집안을 보전하는 훌륭한 큰아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손님이 우리집에 와 며칠 머무르면서도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없게 열심히일한다면 이거야말로 형제가 화목하여 행실이 남의 모범이 되는 집안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몸에 맞는 직업을

  제가 갑자기 의원이 되었다니 무슨 의도며 무슨 이익을 도모하고자 그리 되었느냐제가 의술을 빙자하여 벼슬아치들과 사귀면서 아버지의 석방을 도모하고 싶어서그러느냐?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그리고 세상에서 말하는 바 덕을 베푸는 것처럼 거짓 행세하고 다니는 사람을 너는알지 못하느냐?

  돈안드는 입술을 지껄여 기쁘게 해주고는 돌아가 비웃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걸아직도 깨닫지 못했단 말이냐?

  넌지시 권세 있음을 보이며 너로 하여금 몸을 구부리고 땅에 엎드리게 할 때 너는절로 그 술수에 빠져들게 되니 너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이다무릇 사람들 중에 높은 벼슬이다 깨끗한 직책에 있는 사람, 덕이 높고 학문이 깊은사람도 의술에 대하여 터득하고 있지만 그들 스스로 천하게 의원 노릇을 하지는않는다.

  병자가 있는 집안에서도 바로 찾아가 묻지 못하였다. 서너 차례의 간곡한 부탁을받고 위급하여 어쩔 수 없는 경우에야 겨우 한가지 처방을 내려 귀히 여기게 하는정도라야 옳다.

  너는 요즘 크게 소리내어 문을 활짝 열어 놓고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을 방에 가득모이게 하고 별의별 사람들을 내력도 모르면서 사귀거나 재워 주고 먹여 준다니, 그게대체 무슨 변고냐?

  이후로도 내가 네 하는 일을 모두 들을 것이니 당장 그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살아서는 연락도 않을 것이고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네 마음대로 하거라.

 

     부질없고 가치 없는 것

  세상의 옷이나 음식, 재물 등은 부질없고 가치 없는 것이다옷이란 입으면 닳게 마련이고 음식은 먹으면 썩고 만다자손에게 전해 준다고 해도 종내는 탕진되고 만다. 다만 몰락한 친척이나 가난한벗에게 나누어준다면 그 은혜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형태가 있는 것은 없어지기 쉽지만 형태가 없는 것은 없어지기어렵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 재물을 써 버리는 것은 형태를 사용하는 것이고 재물을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용한 것이 된다. 형태 없는 것으로 정신적인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질 이유 또한 없다.

  재화를 비밀리에 숨겨 두는 방법으로 남에게 베푸는 방법보다 더 좋은 게 없다.베풀어주면 도적에게 빼앗길 걱정이 없고 불이 나서 타버릴 걱정이 없고 소나 말로운반해야 되는 수고도 없다. 그리하여 자기가 죽은 후 꽃다운 이름을 천년 뒤까지 남길수도 있다.

  자기 몸에 늘 재화를 지니고 다닐 수 있는 방법이 곧 이것이니 세상에 이처럼 유리할수가 또 있겠느냐?

  꽉 쥐면 쥘수록 더욱 미끄러운 게 재물이니 재물이야말로 메기 따위의 물고기 같은것.

 

     술병 속에 숨은 악마

  너의 형이 왔을 때 시험삼아 술 한잔 마시게 했더니 취하지 않더구나. 그래서 동생인너의 주량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너의 형보다 배도 넘는 다더구나어찌 글공부에는 그 아비의 버릇을 이을 줄 모르고 주량만 훨씬 아비를 넘어서는것이냐? 이거야말로 좋지 못한 소식이구나. 너의 외할아버지는 술 일곱 잔을 거뜬히마셔도 취하지 않으셨으되 평생 동안 술을 입에 가까이 하지 않으셨다. 벼슬을그만두신 후 늘그막에 세월을 보내실 때 비로소 몇십 방울 정도 들어찰 자그만 술잔을하나 만들어 놓고 입술만 적시곤 하셨단다나는 아직까지 술을 많이 마신 적이 없고 내 스스로의 주량을 알지 못한다. 벼슬하기전 중희당에서 세 번 일등 했던 덕택으로 소주를 옥필통에 가득 따라서 하사하시기에사양하지 못하고 다 마시면서 혼잣말로 '나는 오늘 죽었구나' 했는데 그렇게 심하게취하진 않았었다.

  또 춘당대에서 임금을 모시고 공부하던 중 맛난 술을 큰 사발로 하나씩하사 받았는데 그때 여러 학사들이 만취되어 정신을 잃고 남쪽을 향해 절을 하거나 더러자리에 누워 뒹굴고 하였지만 나는 내가 읽을 책을 다 읽어내 차례를 마칠 때까지조금도 착오 없게 하였단다. 다만 퇴근하였을 때 조금 취기가 있었을 뿐이었다. 어쨌든너희들은 지난날 이 애비가 반 잔 이상을 마시는 걸 본 적이 있느냐?

  진정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 다 탁 털어 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저들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고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져 버린다면 무슨 술의 정취가 있단 말이냐?

  술 마시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만 하면 폭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술독이오장육부에 배어 들어가 하루아침에 썩어 물크러지면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이거야말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

  무릇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시키거나 흉폭한 행동은 모두 술 때문이었기에옛날에는 뿔이 달린 술잔을 만들어 조금씩 마시게 하였고 더러 그러한 술잔을 쓰면서도절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공자께서는 '뿔 달린 술잔이 뿔 달린 술잔 구실을 못하면 뿔달린 술잔이라 하겠는가!'고 탄식하였단다.

  너처럼 배우지 못하고 식견이 없는 폐족 집안의 사람으로서 못된 술주정뱅이라는이름을 더 가진다면 앞으로 어떤 등급의 사람이 되겠는가?

  조심하여 절대로 입에 가까이하지 말거라제발 이 천애의 애처로운 아비의 말을 따르도록 하라.

  술로 인한 병은 등에서도 나고 뇌에서도 나며 치루가 되기도 하고 황달도 되어별별스런 기괴한 병이 발생하나니 한번 병이 나면 백 가지 약도 효험이 없게 된다너에게 바라고 바라노니 입에서 딱 끊고 마시지 말도록 하라.

 

     욕심 주머니

  저녁 무렵에 숲을 거닐다가 우연히 어떤 어린애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숨이 넘어갈듯 울어대며 참새처럼 팔닥팔닥 뛰고 있더구나. 마치 많은 송곳으로 뼛속을 찌르는 듯,방망이로 심장을 마구 두들겨 맞는 듯 비참하고 절박한 것이 잠깐 사이에 목숨이 꼭끊어질 듯한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울고 있는지 알아보았더니 나무 아래서 밤 한 톨을주웠는데 다른 사람이 빼앗아 갔기 때문이란다.

  아아, 세상에 이 아이처럼 울지 않고 권세를 잃은 사람들, 재화를 손해본 사람들과자손을 잃고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사람들도 달관한 경지에서 내려다본다면, 모두 밤한 톨에 울고 웃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가문을 세워 행세해 오는 집안은 상류의 좋은 곳에 자리잡는다.

  우리 집안의 마현 또한 그러한 터다. 그곳이 비록 논밭이 귀하고 물이나 땔감을구하기가 불편하다지만 차마 갑자기 떠날 수는 없는 법이다. 정말로 재간이 있다면어떠한 곳에서도 집안을 다시 일으키게 될 터이지만 만약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버릇을고치지 않는다면 아무리 기름진 땅에 집을 짓고 살아도 춥고 배고픔을 면하지 못할것이니 튼튼하게 옛터를 지키는 게 옳을 것이다.

 

     하늘은 너의 편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항상 가난하고 천하면서 인의를 좋아한다면 역시 부끄러운일이다' 하였다. 공자의 문하에서는 재리(재물과 이익)에 대한 이야기는 부끄럽게여겼으나 그의 제자인 자공은 재산을 늘리었다.

  절개도 없으면서 누추한 오막살이에 몸을 감추고명아주나 비름으로 배를 채우며 부모와 처자식을 얼고 헐벗고 굶주리게 한 채 벗이찾아와도 술 한잔 권할 수 없으며, 명절 무렵에도 처마 끝에 걸려 있는 고기는 보이지않고 유독 빚독촉하는 사람들만 대문을 두드리니 이는 천하에 가장 졸렬한 일이다.

  지혜로운 선비는 못할 일인 것이다.

  그러나 종아리를 드러내고 흙탕물 속에 들어가 써레를 잡고 소를 몰아 갈되거머리가 온몸을 빨아 성하지 않은 곳이 없게 되는 것 또한 남자로서 곤란한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돈 궤짝을 들고 포구에 나가 앉아 먼 섬에서 오는 배를 기다렸다가무지한 어민들과 입이 닳도록 싸우며 몇 푼의 이익을 남기려 하고 남의 것을 깎아자기 이익을 더하려고 근거 없는 소리로 속이고 눈을 부라리며 억울하고 또 억울하여성을 내는 모습 또한 세상에서 지극히 졸렬한 짓이다. 아니면 이잣돈을 놓아 사방이웃들의 고혈을 빨면서 어쩌다가 약속 날짜를 어기면 약하고 불쌍한 백성들을잡아다가 나무에 매달아 놓고 수염 뽑고 종아리를 두들기게 되는 것도 온 마을에서범과 이리라 칭하며 가까운 일가들까지 원수처럼 미워하게 된다이런 사람들은 돈을 산처럼 얻는다 해도, 한 세대 보존할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그 자손들에게 미치광이의 광증이 생기거나, 술을 좋아하고 여색을좋아하는 사람이 나와 그 재산을 뒤엎기 때문이다하늘의 법망은 넓고 넓어서 성긴 듯하여도 결코 빠뜨리지 않으니 진정 두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생활의 수단으로는 농사와 목축 만한 것이 없다.

  문전의 가장 비옥한 밭을 구획하여 사방을 고르게 만들고 네 계절마다 채소를 심어집에서 먹을 분량을 공급해야 한다그리고 집 뒤꼍의 채마밭에는 진귀하고 맛좋은 과일 나무를 많이 심고, 그 가운데에는자그마한 정자를 세워 맑은 운치가 풍기게 하고 겸하여 도둑 지키는 데 이용도 한다그리고 먹고 남은 여분은 비온 뒤마다 바랜 잎은 따내고 먼저 익은 것을 가려서저자에 내다 팔고 혹 뛰어나게 크거나 탐스러운 것이 있으면 각별히 편지를 써서가까운 벗이나 이웃 노인에게 보내어 진귀하고 색다른 것을 맛보게 한다면 이것도후덕한 뜻이리라. 아내가 게으른 것은 가산을 탕진시킬 조건의 근본이다. 사경(곧 새벽2시에서 4시 사이를 말함)도 못 되어 촛불을 끄고 아침해가 차에 비치도록 이불을 개지않으면 이는 게으른 여자이다.

  경계해 주어도 뉘우치거나 고쳐질 조짐이 없다면 버려도 괜찮을 것이다뽕나무 4, 5백 주를 심어 2년마다 곁가지를 쳐주고 얽힌 가지를 풀어 주며, 잘자라지 못한 가지를 깎아 주면 몇 해 안가서 담장의 키를 넘게 된다.

 

     힘이 세어지는 법

  하늘은 날짐승과 길짐승에게 발톱을 주고 뿔을 주고 단단한 발굽과 예리한 이빨을주었다. 여러 가지 독도 주어서 각기 하고 싶어하는 것을 얻게 하고 사람으로 인해염려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하였는데 , 사람에게는 벌거숭이로 유약하여 제 생명도구하지 못할 듯이 하였으니, 어찌 하늘은 천한 짐승한테는 후하게 대접하고 귀해야 할인간에게는 박하게 하였는가그것은 인간에겐 지혜로운 생각과 교묘한 궁리가

있으므로 기예를 익혀서 제 힘으로 살아가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혜로움도한계가 있고 교묘한 궁리로 깊이 파는 것도 차례가 있다. 그런 까닭에 비록 성인이라도천 사람과 만 사람들이 함께  논의한 것에는 결코 당해 내지 못하며, 비록 성인이라도하루아침에 결코 모두를 아름답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기예는 더욱 정묘하고, 세대를 더 내려오면 그 기예는 더욱 교묘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골 사람이 읍에 있는 기술자의 솜씨와 같지 못하고, 읍 사람이 유명한성터나 큰 도시의 기교와 같지 못하며, 유명한 성터나 큰 도시의 사람이 서울에 있는새 방식이나 묘한 기술과는 같지 못하다.

  저 궁벽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자가 서울에 왔다가 완전하지 못한 방법을 우연히듣고 기쁘게 돌아가 아는 체하며 스스로 만족하여 말하기를 '천하에 이 방법보다 나은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 자손에게 경계하기를 '서울기예라는 것은 내가 모두배웠으니, 이로부터는 서울에서도 다시 더 배울 것이 없다' 하였다.

  이와 같은 사람의 행동거지는 거칠고 나쁘지 않은 자가 없다. 농사짓는 기술이좋으면 차지한 땅은 적어도 곡식 소출이 많으며, 그 힘들인 것은 가벼워도 곡식은 좋고충실할 것이다. 무릇 황무지를 일구어서 갈고 씨뿌리고 가꾸며 낫질하고 벗기는 것은물론 키질하고 방아찧고, 반죽하고, 밥짓는 일까지 모두 편리하도록 하여 그 노력을덜어야 한다.

  베짜는 기술이 정교하면 드는 물자는 적어도 실은 많이 남고, 힘은 적게 들여도 베는올이 배고 결이 고울 것이다무릇 물에 담가서 씻고 실을 뽑고 베를 짜고, 표백하여 채색으로 물들이고 풀 먹이고바느질하는 일까지 모두 편리하도록 하여 그 노력을 덜게 되는 것이다군사 기술이 정교하면 공격하고 방어하는 것과, 군량을 운반하고 성벽 따위를수축하는 일에 그 속도를 더하여 위태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의원이 의술이 정교하면 무릇 맥을 짚어서 증세를 살피고 약의 성질을 분별하며,옛날 사람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고 그릇됨을 공박할 수 있다기능공의 기술이 정교하면 무릇 궁실과 기구를 제조하고 성곽과 배, 수레, 가마 따위제도까지도 모두 편리하고 견고하게 될 것이니, 진실로 그 방법을 다 알아서 힘껏시행한다면 나라는 부유해지고 군사는 강성해지고 백성도 부유하면서 오래 살터인데당장 눈여겨보면서도 도모하지 않는구나.

  수레를 사용하는 데 대해 말할라치면,  "우리나라는 산천이 험악하여 이용할 수가 없다" 하며,

  양치기에 대해서 말할라치면,  "조선에는 양이 없다" 하며,

  말은 죽을 쑤어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 말할라치면,  "풍토가 각각 다르다" 하는 바,

  이같은 자를 난들 또한 어찌하랴.

  모름지기 효도와 우애는 타고난 성품에 근거하고, 성현의 글에도 밝혀져 있듯이진실로 넓혀서 충실하게 닦아 밝히면 이 예의가 풍속을 이루게 될 터인즉, 이는 진실로외부의 것을 기다릴 것이 없으며, 또한 후세에 오는 사람에게 의뢰할 것도 없다그러나 백성이 사용하는 기구를 쓰임에 편리하게 하고 삶을 넉넉하게 하는 데에필요한 온갖 기능은 뒤에 나오는 제도를 배우지 않으면 결코 어리석고 고루한 것을깨뜨리거나 이익을 일으킬 수가 없다이것은 나랏일을 도모하는 자가 마땅히 강구할 일이다.

 

        2. 율곡 이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을 거치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다소위 학문이란 것은 이상스럽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그것은 곧 어버이는 마땅히 자애로워야 하고, 자식은 마땅히 효도해야 하며, 신하는마땅히 충성스러워야 하며, 부부는 마땅히 유별하고, 형제된 자는 마땅히 우애로워야한다.

  젊은이는 마땅히 어른을 공경해야 하고, 친구 사이에는 마땅히 신의가 있어 일상의모든 일에 따라 그 합당함을 얻을 뿐, 잔꾀에 마음을 두어 필요 이상의 효과를바라서는 안 된다.

  학문을 멀리하는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식견이 어두운 까닭에 모름지기 글을 읽고이치를 연구하여 마땅히 행할 길을 밝힌 다음에야 어떤 경지에 들어설 수 있다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 속에 있는 줄 모른 채 망령되게 높고 멀어 실천하기어려운 줄로만 생각한다그래서 특별한 사람에게 미루고 스스로는 안일하게 자포자기하니 어찌 불쌍하지않으랴.

  내가 황해도 해주에 거처하고 있을 때 한두 학생이 찾아와 학문을 물은 일이 있었다내가 스승이 될 수 없음을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그들의 첫 배움 길이 향방을 알지못하고, 또 굳은 뜻 없이 대충대충 배움을 청한다면 서로가 도움되지 않은 채 오히려남의 조롱만 살 것을 염려하여, 간략하게 한 책을 지었다. 그 내용인즉 '어떻게 마음을세우고 몸가짐을 경계하여 부모를 봉양하며, 남을 상대하는가' 등이다. 그것이 곧"격몽요결"이다율곡 이이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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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둥을 바로 세우라

  학문을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뜻을 세워 반드시 위대한 인물이 될 것을 스스로기약하라. 털끝만큼이라도 스스로를 작게 여겨 물러서려는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본디 보통 사람과 성인의 그 본성은 마찬가지이다비록 기질은 맑고 탁하고 순수하고 사나운 면이 없지 않겠으나, 진실로 참답게 알고실천하여 나쁜 관습을 버리고 그 본성을 회복한다면, 온갖 착함이 고루 갖춰지는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이라도 어찌 성인이 될 수 없을 것인가맹자가 성선설(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지만 나쁜 환경이나 욕심으로 악한일을 저지르게 된다고 함)을 주장하여 말끝마다 요순(덕으로 태평성대를 다스림 중국고대의 요임금과 순임금)을 들어 '사람은 다 요순이 될 수 있다' 하였으니, 어찌 우리도그렇게 되지 못하겠는가.

  항상 스스로 분발하라.

  인간은 본래 착하여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의 구별이 없는 법, 성인은 어찌하여성인으로 태어나고 보통 사람은 어찌하여 보통 사람이 되는 것인가진실로 뜻이 서지 못하고 밝게 알지 못하며 행동이 성실치 못한 까닭이다. 뜻을세우고 밝게 알며, 행동이 착실할 것은 모두가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이 말하기를 '순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이냐. 마음만먹으며 다 그렇게 된다' 하였으니, 나도 안연이 순임금을 바란 것을 삶의 목표로삼아야겠다.

  사람은 용모가 추한 것을 곱게 할 수 없다. 본래 체력이 약한 것을 강하게 할 수없으며, 신체가 짧은 것을 길게 할 수 없는 법이다그것은 이미 정해진 분수라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마음의 본 바탕만은 어리석은 것을 지혜롭고 어질게 고칠 수 있으니, 이것은마음의 신령스러움이 타고난 분수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지혜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고 어진 생각보다 더 귀한 것이 없는데, 무엇이괴로워서 어질고 지혜로움을 좇지 않으랴.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왜 손상시킬 것인가.

  사람이 이런 뜻을 간직하고 굳게 지켜 물러서지 않는다면 거의 세상의 이치를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모름지기 사람들이 스스로 입지(큰 뜻을 세우다)하였다고 말하면서도 그 뜻에 맞게힘쓰지 않고 방황하며 막연히 기다리는데 그것은 말로만 입지를 내세울 뿐, 실제로배움의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진실로 나의 뜻이 참다운 배움에 있다면 어진 뜻을 행동으로 실천하라. 그렇게하려고 들면 그렇게 되고야 만다. 그런데 어찌 남에게서 그것을 찾고 어찌 훗일만을기다릴 것인가.

  뜻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즉시 공부를 시작하되 끝까지 물러서지 않으려는배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만일 뜻을 따르지 못한 채 그럭저럭 날을 보낸다면 나이가 다하여 죽도록 어찌 그뜻을 성취할 수 있으랴.

 

     옳게 사는 길

 배우는 자는 반드시 성심으로 도덕을 닦고, 세속의 잡스런 일에 흔들리지 않은 후에야학문하는 기초가 서게 된다그러므로 공자의 말씀에 '충성과 믿음을 기둥으로 삼는다'는 대목이 있다. 주자가해석하기를 '사람이 믿음직스럽지 않으면 모든 일에 맺음이 없어 나쁜 짓을 저지르기는쉬워도 착한 일을 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충신으로써 일을 행하기는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충신으로써 기둥을 삼아야 한다'하였다. 반드시 충성과믿음을 두 기둥으로 하여 용감하게 공부를 시작한 후에야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된다.

  황면재(중국 송나라의 학자 황간을 말함. 주희의 애제자로 세상에서 면재 선행이라함)가 이른바 '진실심지''각고공부'라는 두 마디 말이 다 이것을 뜻하는 것이다.

  항상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며, 차림새를 반드시 바르게 하고 용모와 얼굴색을반드시 엄숙하게 하라. 두 손을 모으고 바로 앉으며, 걸음걸이는 점잖고 말은 신중히하라. 모든 행동을 경솔히 말고, 또 건방져서도 안 된다몸과 마음을 가짐에 있어 '9'보다 더 진실한 것이 없다. 그리고 학문을 진취시키고뜻을 펴는 데는 '9'보다 더 진실한 것이 없다이른바 '9'이라는 것은, 걸음걸이를 무겁게 하라. 무엇보다도 행동을 가볍게 하지말아야 한다손가짐을 공손히 하라. 손을 게으르게 놀리지 말며 일이 없을 때에는 단정히 모으고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눈 가짐을 단정히 하라. 눈을 똑바로 뜨고 흘겨보거나 간사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입을 조용히 가지라. 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함부로 움직이지말아야 된다.

  말소리를 조용히 하라. 재채기나 기침 등 쓸데없는 소리도 가능한 한 말아야 한다머리를 항상 곧게 하고 몸은 한쪽으로 기울거나 비스듬하게 하지 마라숨쉬기를 정숙히 하라. 숨쉬기를 잘 조절하여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설 때는 덕스럽게 서라. 한쪽으로 비뚤어지게 서지 말고 똑바로 위엄 있는 모습이우러나야 한다.

  얼굴을 엄숙하게 가꾸라. 얼굴 모습을 잘 가꾸어 태만한 기색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9'라는 것은, 밝게 볼 것(보는 데 편견이나 욕심이 없이 바로 보면밝아진다), 총명스럽게 들을 것(듣는 데 어려움이 없으면 모든 것이 밝아진다).

  안색을 온화하게 할 것(얼굴빛을 온화하게 가지고 성난 티를 내지 말라).

  태도가 공손할 것(단정치 않은 곳이 없게 하라).

  말하는 데는 충실하게 할 것(한마디 말을 하더라도 진실이 아닌 말은 말라).

  의문이 있을 때는 물을 것(의심나는 것은 선생에게 물어서 반드시 알도록 하라).

  화를 참으라(성이 나거든 이성으로 억제하여야 한다).

  도리에 합당하여야 비로소 얻을 것(재물을 보거든 의리의 분별을 밝혀 도리에 합당한후라야 취한다).

  항상 이와 같은 9, 9용을 마음에 새기고 몸을 살펴서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라.

  공부방의 책상 모서리에 이를 써 두고 자주 보아야 한다.

  '예의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의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의가 아니면 말하지도말며, 예의가 아니면 움직이지도 말라'는 이 네 가지 말은 몸가짐을 닦는 데 가장중요한 요점이다. 예의와 예의가 아닌 것은 처음 배울 때엔 분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반드시 그 이치를 연구하고 밝혀서 아는 데까지 힘써 실천한다면 깨닫는 바가 퍽 많을것이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날마다의 일상을 올바로 실천함에 있다. 평상시에 행동이공손하여 일을 공경하고 다른 사람과 깊이 사귀면 그게 바로 공부이다글을 읽는 것은 이러한 이치를 밝히기 위해서이다.

  의복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면 안 된다. 추위를 막으면 되고, 음식은 감미로울 것이아니라 시장끼를 채울 정도면 충분하다. 사는 곳은 필요 이상 안락할 것이 아니라병나지 않을 정도면 된다.

  오직 학문하는 노력과 마음씀씀이의 바름, 예의 규칙을 지키는 데 날마다 힘쓰고힘써서 자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세상살이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극기의 공부다. 이른바 ''라는 것은 '내 마음이좋아하는 바가 하늘의 뜻과 순리에 합당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그것을 이겨내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내 마음이 '여자를 좋아하는가, 재물을 좋아하는가, 명예를 좋아하는가,벼슬을 좋아하는가, 편안한 일을 좋아하는가, 먹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가, 장난감을좋아하는가'를 검토하고 살펴서 그 좋아하는 것이 만일 이치에 합당치 않으면 완전히끊어 버리라.

  그 뿌리를 남기지 않은 후에야 내 마음에 좋아하는 것이 의리에 합당하여 이기심을이길 수 있게 될 것이다말 많고 쓸데없는 생각 많은 것이 마음에 가장 해로우니, 일이 없으면 마땅히 바로앉아 존심(욕망 따위로 본마음을 해치는 일없이 언제나 그 본연의 상태를 지키는일)하고, 타인을 접하거든 마땅히 말을 가리어 간략하고 신중히 하라. 그렇게 되면말할 때 말이 간단명료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 간단명료한 자는 도인에 가깝다.

  선비의 예복이 아니면 절대 입지 않고, 선비의 말씀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않으며,선비의 덕행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것을 평생토록 명심해야 할것이다.

  공부하는 자는 한결같이 옳은 것만을 지향해야 하며, 불의가 이기게 되어서는 안된다.

  마음 밖의 부정한 것은 마땅히 일체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한다.

  친구들이 모여서 나쁜 장난을 치고 놀면 절대 눈으로 보지도 말고 물러나 피할것이요, 쓸데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을 만나도 반드시 피해 가야 한다여러 모임에 윗사람이 억지다시피 참석시켜 피할 수 없으면 비록 거기에 앉아있더라도 용모를 바로 하고 마음을 맑게 하라. 간사스런 외침이나 험상궂은 인상을지어서는 안 된다연회에서 술을 마시더라도 너무 취하지 말고 알맞게 마시는 것이 옳다. 무릇 음식도적당히 들것이며, 내키는 대로 먹다가 몸을 망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말과 웃음을 절제하여야 하며 시끄럽게 굴어 그 절도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움직임과 휴식은 얌전히 취하되 그 품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

  일이 있으면 '이치'로써 응하여야 하며, 독서할 땐 정성을 다하여 그 이치를밝혀 내야 한다.

  이 두 가지 외에도 바로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이 고요하여 어지러운 생각이없으며 언제나 깨어 있어 사리에 밝아야 할 것이다이른바 '우러러 안을 곧게 하라'는 것이 이것이다.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로잡아 겉과 안이 한결같고, 어두운 데서도 밝은 데서와 같이행동하며, 혼자 있을 때에도 여러 사람이 있을 때와 같이 행동하라내 마음을 사람들이 푸른 하늘을 보는 것처럼 훤히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항상 '한 가지 불의를 행하고 한 사람의 무죄한 이를 죽여서 천하를 얻을지라도 결코그렇게는 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슴속에 새겨 둘 일이다우러름을 바탕으로 그 근본을 세우며, 이치를 밝혀 선에 이르며, 힘써 행하여실천하는 것, 이 세 가지는 평생의 목표이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을 것''공경하지 않음이 없을 것'의 두 구절은 일생 동안애용하여도 다하지 못할 것이다마땅히 벽 위에 붙여 두고 잠깐씩이라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날마다 자주 점검하라.

  '마음이 굳건하지 않은가, 배움에 진전이 없지 않은가, 실천하기를 힘쓰지않는가'하여,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써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이같은 일들은 죽은 뒤에나 그만둘 일이다.

 

     공부하는 즐거움

  배우는 자는 항상 책읽는 마음을 간직하라. 모름지기 이치를 궁리하여 그 착함을밝힌 후에야 행동할 도리가 분명히 앞에 나타난다그리하여 진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옳은 길로 들어가는 데는 이치를 궁리하는 일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이치를 궁리하는 데는 독서보다 더 먼저 할 일이 없다. 위인들의 마음 자취와 선악의본받을 만한 점, 경계할 만한 것들이 다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독서하는 학생은 반드시 단정하고 바르게 앉아서 공경스럽게 책을 대하되, 마음을하나로 묶어 똑바로 정신을 차리라. 그리고 뚫어질 듯 생각하고 또 깊이 깊이 따져서그 주제를 풀이하여 매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만일 입으로만읽거나 마음으로 체득하지 못하고 몸으로 행동하지도 못한 채 '글은 글이요, 나는나'일 뿐 아무런 깨우침이 없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독서를 할 때에는 반드시 한 권의 책을 깊이 읽어서 뜻을 모두 알도록 통달하라의심이 없게 된 다음에야 다른 책을 다시 읽을 것이요, 이것저것 많이 읽는 데에만힘써 바쁘게 섭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이 해야 할 일

  사람으로서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그러나 진정으로 효도하는 이가 적은 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모르는 까닭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버지는 날 낳으시고 어머니는 나를 기르셨으니, 이 은덕을갚고자 하면 하늘같이 망극하다. 사람이 태어날 때 그 목숨과 혈육은 모두 어버이가주신 것, 숨과 기와 맥이 두루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래서 효자들은 늘상 슬프도다부모의 은혜를 어이 갚으리' 하였다어찌 감히 몸을 제 것이라 생각하여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람마다항상 이 마음을 보전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 부모에 대한 정성이 생기리라요컨대 부모를 섬기는 자식은 한 가지 일, 한 가지 행동이라도 감히 제 마음대로말고, 반드시 명령을 받은 후에야 행동 할 일이다.

  만일 당연히 할 일을 부모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반드시 간곡하게 말씀드려 승낙을얻은 후에야 실행 할 것이요,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더라도 제 의사대로 곧장 밀고나가서는 안된다.

  만일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의복을 갖춘 후, 부모의 침실에 가서태도를 바로 하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따뜻하고 추운지를 여쭈어라. 저녁이면 침실에가서 이부자리를 보아 드리되 덥고 추운 것을 살피며, 시중을 들 때에는 항상 즐거운얼굴로 공손히 응대하여 매사에 지성을 극진히 하라.

  바깥으로 출입할 때에는 반드시 인사드리고 아뢰어야 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흔히 부모에게 의지할 뿐 자신의 힘으로 부모를 보양하지 않으려한다.

  만약 이렇게 세월만 보내다 보면 끝내 부모에게 은혜 갚을 날이 없으리라모름지기 살림을 맡아 부모를 극진히 모신 후에야 자식의 할 일을 바로 닦는 것이다만일 부모가 자식이 모시려 해도 듣지 않으시면, 비록 살림살이가 궁색하더라도마땅히 부모가 잡수실 것을 극진히 준비하여야 한다. 생각이 오로지 부모 봉양에있다면 어떠한 진미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왕연이라는 사람은 한겨울에 성한 옷이 없으면서도 부모에게는 극히 맛있는음식을 드렸다고 한다. 이를 생각하면 감탄하여 눈물이 절로 흐르지 않을 수 있으랴보통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은 지나치게 허물이 없다. 그러나 이런 폐습을반드시 씻어 버리고 존경심을 극진히 가지라.

  부모가 앉거나 누운 자리에는 자식이 감히 앉거나 눕지 못하며, 부모께서 접객하던곳에선 자식이 감히 손님을 접대하지 못하며, 부모가 말을 타고 다니던 곳에선 자식이감히 말을 타고 다녀서는 안 된다.

  부모의 뜻이 의리를 해치는 것이 아니면 반드시 받들어서 조금도 어기지 말 것이요,만일 이치에 부당한 것이면 화평하고 부드러운 기색과 음성으로 되풀이 말씀드려이해하시도록 할 것이다.

  부모가 병환에 들어 계시면 마음으로 걱정하고 다른 일을 제쳐놓은 채 의원부터찾아가라. 약을 짓고 치료하는 일에만 힘쓰다가 병이 나으신 다음에야 평상시대로행동할 것이다. 나날이 살아가면서 잠깐이라도 부모를 잊지 않을 때 비로소 '효도'라할 수 있다. 제 몸가짐이 착실하지 못하고 말하는 것에 법도가 없으며, 항상 즐겨놀기만 하는 자식은 모두를 배반하는 불효자이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부모님을 오래 섬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식된 자는 모름지기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도 부모의 은혜를 끝내 갚지 못한다옛사람의 시에 '하루의 부모 공양은 높은 벼슬의 부귀와 바꿀 바가 아니다'라고하였다이른바 '시간을 아낀다'고 하는 일이 이와 같은 것이다.

 

     꽃피는 사람들

  집을 꾸려 가는 데는 마땅히 예법을 잘 지켜서 가족들을 거느리되 저마다 직분을나누고 일을 맡겨 그 성공을 책임 지워야 한다씀씀이와 법도를 마련하여 수입을 헤아려서 지축하며, 경제 수준에 맞추어 윗사람,

아랫사람의 의식과 집안 행사비용에 충당하되, 긴요치 않은 비용은 줄이고 사치를금지하라. 그리고 항상 여분을 두어 예기치 않은 쓸 일에 대비해야 한다관혼의 제도는 마땅히 가정의례 준칙에 의할 것이요, 유행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형제는 부모의 몸을 한 가지로 받아 한 몸과 같다.

  서로 너와 나의 구별 없이 음식과 의복을 모두 다 같이 입고 먹어야 한다만약 형은 배고픈데 아우만 배부르거나 아우는 추운데 형만 따뜻하다면 이것은 한 몸가운데 한 부분은 병들고 건강한 것이니, 심신이 어찌 한 쪽만 편안하랴요즈음 사람들이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까닭이다만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형제가 만일 불량한 행실이 있으면 마땅히 정성을 다해 충고하여 이치로써 점점알아듣고 깨닫도록 할 것이요, 불쑥 성난 기색과 거슬리는 말을 하여 화기를 잃어서는안 된다. 요새 배웠다는 자들은 밖으로는 긍지를 내보이고 있으나 안으로는 착실함이적다. 남녀 사이에 정욕을 지나치게 낭비하여 그 예를 잃는 까닭에, 남녀가 서로희롱할 뿐 공경할 줄 모른다.

  이렇게 하고서 수신제가(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일)하려면 역시어렵지 않겠는가.

  모름지기 남편은 부드럽되 바른 도리로써 절제하고, 아내는 순하되 바른 도리로써받들어 부부간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게 된 후에야 집안 일이 잘 다스려질 수 있다만일 전에는 서로 희롱하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서로 공경하려 한다면 잘 행해지기어렵다. 그럴 때는 모름지기 처와 서로 경계하여 반드시 이전의 습관을 버리고 점차로예의에 들어맞도록 해야 한다.

  아내가 남편의 언어와 몸가짐이 한결같이 올바른 것을 보면 점점 서로 믿고 순종하게될 것이다.

  자식을 낳으면, 조금씩 사리를 알기 시작할 때부터 착한 쪽으로 인도하라. 어리다고가르치지 않는다면 커 가면서 이미 비리에 물들고 방만해져 가르치기 어렵다한 집안에 예법이 바로 서 있고, 서적과 붓, 먹 외의 다른 잡기가 없다면, 자식들도역시 밖으로 내달아 학문을 저버릴 염려는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도 내 자식과 같다. 사랑하고 가르치기를 마땅히 하나같이 고르게 해야지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인들은 나의 수고로움을 대신하므로 의당 은혜를 먼저 베풀고 위엄을 뒤로내세워야 그 존경심을 얻을 것이다. 임금이 백성에게, 주인이 하인에게 대하는 이치는모두 똑같다.

  임금이 백성을 생각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지고,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한다.주인이 하인을 거두지 않으면 하인이 흩어지고  하인이 흩어질 때 집이 망하는 것은진리인 것이다.

  하인에게는 반드시 춥고 배고픈 것을 염두에 두고 살펴서 옷과 먹을 것을 주어 제생계를 해결하도록 하라. 허물이나 악의가 있으면 먼저 부지런히 가르쳐서 고치도록하라. 가르쳐도 고치지 않을 경우에는 매를 치되 마음속으로 주인의 매질이 '가르쳐깨우침'에 있을 뿐 결코 미워서가 아닌 줄 알게 할 때 그의 잘못을 고치고 복종케 할수 있다.

  집안을 다스리는 데에는 마땅히 예법으로써 내외를 분별하여 비록 하인들이라도남녀가 섞여 거처하지 못하게 하라. 만일 싸우고 시끄럽게 구는 자가 있으면 엄격히다스려야 한다.

  군자는 바른 도리를 근심할 뿐 가난을 걱정해서는 안 된다. 집안이 가난하여 살아갈수 없으면 궁색함을 구할 계책을 세우더라도 춥고 배고픈 것이나 면케 할 뿐, 재물을모아 풍족하게 살 생각을 말라.

  또한 보잘것없는 세간을 마음속에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옛날 선비들은 짚신을삼아서 팔아먹고 사는 이도 있고, 나무를 하거나 고기잡이를 한 자도 있으며, 밭을갈아먹고 사는 사람도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부귀가 결코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까닭에 이러한 생활에도 마음이 편했다. 만일 이해를 헤아려 풍족한 살림을 꾀하는마음이 있다면 어찌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부귀를 가벼이 알고 청빈(깨끗하게 살아 가난함)을 지키겠다는마음을 가져야 한다.

  집이 가난하면 가난에 시달리어 그 본분과 명예를 잃는 이가 많다. 배우는 자는올바르게 판단하여 이 점에 유혹되어서는 안 된다옛사람의 말에 '궁색하거든 그 일하지 않는 바를 보며, 가난하거든 얻고자 노력하지않는 그 모습을 보라'하였으며, 공자는 '소인배는 궁하면 예의와 법을 어긴다'고하였다. 만일 가난에 동요되어 옳은 도리를 행하지 못한다면 공부하여 무엇에 쓰랴모름지기 사양할 때는 주저하지 말라. 무엇을 주고받는 경우에도 반드시 도리와 도리아닌 것을 바르게 생각하여, 도리거든 받고 불의라면 털끝만큼도 받아서는 안 될것이다. 친구 사이에는 재물을 나누는 의리가 있으므로 어려울 때 주고받는 것은 당연한노릇이지만 내가 부족하지 않을 때 재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밖에 아는 사이에도 다만 명분 있는 선물만 받고, 명분 없는 선물은 받지 말아야한다. 명분이 있다 함은 초상났을 때의 부의, 여행할 때의 여비, 혼사 때의 부조나양식이 없을 때에 도와주는 것 등이 그것이다.

  만일 대단히 약한 자로서 내 마음에 더럽고 밉게 여기던 이라면 그 선물이 비록명분이 있더라도 받으면 마음이 불안할 것이다불안한 것은 억지로 받지 말아야 한다.

  맹자는 말하기를,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말라'하였으니 이것이 바른 도리를 행하는법도이다.

 

     나눔이 공식

  사람을 상대하는 데는 마땅히 인정과 존경심에 힘쓸 일이다. 나이가 나보다 배가되면아버지처럼 섬기며, 십년 위이면 형으로 섬기라. 그가 누구든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먼저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조금 배웠다고 해서 그 지식을 믿고 스스로 높은 체하거나기개를 뽐내어 남을 능멸치 말아야 한다.

  벗을 택하되 반드시 학문을 숭상하고 착한 일을 좋아하며, 바르고 엄숙하고 정직하고성실한 사람을 선택하라. 그와 함께 거처하면서 그 벗의 법도를 진심으로 받아들여나의 부족함을 다스릴 것이요, 만일 태만하여 장난을 좋아하거나 유약하고 아첨하며정직하지 못한 자는 사귀지 말아야 한다.

 

  고향의 착한 사람과는 반드시 친근하여 정분을 통할 것이로되 착하지 않은사람이라도 나쁜 말로 그의 비루한 행위를 널리 퍼뜨리지 말라. 그저 태연히 대접하되서로 왕래하진 말아야 한다. 만날 때 서로의 안부나 묻고, 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으면자연히 멀어지게 된다.

  원망하거나 성낼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소리가 같으면 서로 화답하고 기질이 같으면 서로 찾게 되는 것이니, 만일 내가학문에 뜻을 두면 내가 또다시 학문하는 친구를 구할 것이요, 학문하는 친구는 또한나를 구할 것이다.

  명색이 '학문한다'하면서 마당에 잡객이 찾아 들어 시끄러이 나날을 보내는 자는반드시 그 즐거워하는 바가 학문에 있지 않은 까닭이다인사 차리는 예법은 꼭 정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대개 아버지의 친구분이거나동네에서도 나이가 열 다섯 이상 연장인 분, 선생님, 집안 어른들에게는 깍듯이 절하는것이 법도이다.

  장소와 때에 따라 들어맞게 할 것이요,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한 크게 구속될 필요는없다.

  그러나 항상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의사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것이 옳다.  "시경"'온화하고 공손한 사람이여, 오직 덕의 기초로다'하였다.

 

  남이 나를 훼방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를 반성하라. 만일 내가 정말훼방 받을 만한 행동이 있었으면 스스로 꾸짖어 고쳐야 할 것이다만일 나의 과실이 아주 작은데도 그가 보태어 말했다면 그의 말이 비록 지나치기는하지만, 내가 실로 훼방 받을 근거가 있었으니 역시 지난날의 잘못을 통절히 파헤쳐털끝만큼이라도 남겨 두지 말아야 한다.

  만일 내게는 보래 허물이 없는데 헛소리를 날조하였다면 그는 망령된 사람일뿐이니,망령된 사람과 어찌 잘잘못을 따질 것인가그러므로 헛된 훼방은 바람이 귀를 스쳐 가고 구름이 허공에 떠 있는 것과 같다.

그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되겠는가따라서 훼방이 될 만한 일이 있었으면 고치고, 없었으면 더욱 착한 일에 힘 쓸것이다.

  그러면 나에게 유익하지 않을 것이 없다.

  만일 그것을 듣고 시끄러이 스스로를 변명하면서 자기를 허물없는 입장에 놓으려고한다면, 그 허물은 더욱 깊어져서 남으로부터의 훼방은 더욱 무거워진다옛날에 훼방을 없게 하는 방법을 물었더니, 문중자(중국 수나라의 왕통:그가지었다는 "문장자중설"을 말하기도 함)가 답하기를 '스스로 몸가짐을 바로 하는 것이제일이다'하였다그 사람이 다시 한 말씀을 더 청하였더니 '변명하지 말라'하였다.

  이 말은 곧 배우는 자의 법이 될 만하다. 무릇 선생이나 웃어른을 모실 때는 마땅히의리의 알기 어려운 곳을 질문하여 그 배움을 밝혀야 한다.

 

  집안이나 마을의 어른을 모실 때에는 마땅히 조심하고 공손하며 함부로 말하지않는다. 묻는 것이 있으면 공경히 진실로써 대답해야 한다친구와 같이 있을 때에는 마땅히 도의로써 연구 연마하여 오로지 문자와 의리만 말할뿐이요, 세속의 비루한 말이나 이해 득실과 윗사람들의 어질고 어질지 못한 점, 타인의허물이나 좋지 아니한 점을 일체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동네 친구와 더불어 있을때에는 비록 묻는 데 따라 응답하더라도 끝내 비루하고 잡스런 말을 뱉지 말라. 오직착한 말로 달래고 이끌어서 학문에 나아가도록 해주며, 나보다 나이 적은 자에게는순순히 효도와 우애, 충성, 믿음을 말하여 착한 마음이 생겨나도록 하여 줄 것이다이렇게 하기를 즐기면 풍속을 점점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항상 온순하고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남을 이롭게 하라.

  남에게 재물을 주는 것을 즐길 것이요, 남을 괴롭히거나 해끼치는 일은 털끝만큼도마음에 두지 말라.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려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게 되는 까닭에 배우는 자는먼저 이기심을 끊은 후에야 학문에 정진할 수 있다선비는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관가에 출입하지 말라. 고을의 수령이 비록 친한사이라도 자주 찾지 말일인데 하물며 친구가 아님에랴.

  의롭지 못한 청탁 같은 것은 일체 말일이다.

 

     먼저 '인간'이 되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 시험 때문에 학문을 할 수 없다' 하나, 이것은 핑계일 뿐성심에서 나온 말은 아니다. 옛사람은 부모를 봉양할 때 밭을 갈기도 하고 품팔이도하고 쌀을 지고 다니던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고생이 심한 상황에서 어느 겨를에 글을 읽었을까마는, 부모를 위하여 일하고자식된 직분을 닦으며 여력으로 글을 배웠어도 역시 덕을 쌓을 수 있었다.

  지금의 학자들은 옛사람같이 부모를 위하여 일하지 않고, 다만 시험 공부 한 가지가부모의 욕심이므로 그에 열심히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시험 공부는 학문을 연구하는것과는 다르나 역시 앉아서 글을 읽고 짓는 것이니, 밭갈고 품팔이하며 쌀을 지는것보다는 백배나 편하지 않겠는가.

  요즘 사람들은 고시 공부를 한다면서 실제로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성리학을공부한다면서 실제로는 시간만 죽인다. 만일 고시 공부를 나무라면 '나는 철학에 뜻을두어 거기에 전념할 수 없다'하고, 만일 철학이 모자란다고 나무라면 '나는 고시 공부관계로 그것을 할 수 없다'한다.

  이처럼 형편대로 둘러대고 유유히 날만 보내다가 마침내 시험과 성리학을 모두성취하지 못하게 되니 늙어서 뉘우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아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벼슬하기 전에는 벼슬에만 급급하다가 벼슬한 뒤에는 또 그 벼슬을 잃을까걱정한다. 이렇게 골몰하다 본심을 잃는 사람도 많다. 이 어찌 두렵지 않을 수있겠는가.

  벼슬이 높은 이는 도(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도덕)를 행하기를 주장하되 도를 행할수가 없으면 물러날 것이요, 만약 집이 가난하여 녹(관원에게 주는 봉급)을 위한벼슬을 면하지 못하겠으면 모름지기 바쁜 자리를 사양하고 한직을 구하라. 높은 지위를사양하고 낮은 자리를 구하여 굶주림만 면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비록 먹고살기 위한 벼슬을 하더라도 반드시 청렴결백하게 그 직무를 다할 것이요,직무에 태만한 채 나랏돈을 먹기만 해서는 안 된다.

 

     큰 뜻을 품으라

  참된 인간은 먼저 큰 뜻을 품어야 한다성스럽고 위대한 인물의 경지에까지 이르는 것을 목표로 삼아, 털끝만큼이라도 그에미치지 못하면 결코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가 없다.

  나는 끝까지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말은 곧 생각이다

  마음이 굳게 정해진 사람은 말수가 적어진다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을 결정할 때 역시 말을 적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말을 많이 하면 어떤 일도 순탄하게 시작할 수가 없다.

  굳이 말을 해야 될 경우라면, 가능한 한 간단명료하게 끊고 맺어야 한다.

 

     유혹의 구렁텅이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 마음이 오랫동안 풀어져 있으면 어떠한 일에서도힘을 얻을 수가 없다. 마음은 곧 살아 움직이는 것이어서 무엇보다도 나쁜 마음이우러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은 곧잘 유혹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나쁜 행동을 불러일으킨다한번 나쁜 길로 빠지게 되면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해도 더욱 어지러운혼란만을 느껴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진다.

  나쁜 마음을 끊을 경우에도, 그 끊었다는 사실 자체가 어지러운 장애물로 가슴속에가로놓여 새로운 혼란을 또 부채질한다정신이 어지러울 땐 모름지기 마음을 하나로 묶어 조용히 다스리며 관조할 뿐,거기에 더불어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마음을 잘 다스리면 결국엔 안정을 되찾고 자신이 목적하는 일을 위해 정진할 수가있다.

  이것이 곧 마음을 안정시키는 첫째 단련법이다.

 

     항상 바쁘게 살아라

  항상 삼가고 두려워하는 조심성을 지니라혼자 있을 때 더욱 근신(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조심하는 것)하는 뜻을 가슴에 새겨바르게 행동할 일이다. 게으르지 않고 바쁘게 살면 결코 못된 마음이 일어나지 못한다모든 악은 조심성 없고 심성이 착하지 못한 데서 생겨나는 법이다.

  착하고 조심성 있는 삶을 살 때에라야 비로소 목욕하고 난 다음의 개운함 같은의미를 깨닫고 맛볼 수 있다.

 

     생활 속의 학문

  생각을 멈추지 말라. 새벽에 일어나면 아침에 해야 될 일을 생각하고, 아침밥을 먹고나서는 낮에 할 일을 챙기며, 잠자리에 들 때에는 하루 일을 반성하고 내일 해야 될일을 생각하라.

  일은 반드시 합당하고 순리에 맞게 처리할 것을 생각하라그러기 위해선 글을 읽어야 하니, 글을 읽으면서 잘잘못을 가리는 지혜를 터득하고그 지혜를 일 속에서 써먹을 줄 알아야 한다.

  만약 일의 잘잘못을 가리지 않거나, 일은 하지 않고 그저 글만 읽는다면, 그 학문은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마음 다스리기

  재산이나 영화를 얻고자 지나치게 욕심부리지 말라.

  비록 그같은 욕심을 버렸다 할지라도 어떤 일을 쉽게 처리할 것 같으면 그 욕심은아직 가슴속에 남아 있는 셈이 된다가능한 한 욕심부리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 잘 다스려야 한다.

 

     무슨 일이든 화끈하게

  공부나 일을 할 때에는 화끈하게 성실을 다하여야 한다. 싫증을 내거나 억지로 하는듯한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어떤 불행이 내 앞에 닥쳐오면 그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여 스스로 반성하고 잘못을깨우쳐야 한다.

  그럼으로써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다.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나듯, 한 집안에서도 못된 자식이 생겨날 수 있다그러나 끝내 그 자식이 바르게 살아가지 못함은 다른 가족들이 사랑과 성의를 힘껏기울이지 않은 탓이다.

 

     잠을 내쫓으라

  밤잠을 몹시 설쳤어도 몸이 아프지 않은 다음에는 결코 쓰러져 눕지 말라비스듬히 벽에 기대어서도 안 된다비록 한밤중일지라도 아직 졸립다는 생각이 없으면 더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

  낮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잠을 자서는 곤란하다졸음이 오면 찬물로 세수하여 잠을 쫓고, 그래도 눈꺼풀이 감길 만큼 졸음이덤벼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적당한 운동으로 그 잠을 쫓아야 한다.

 

     죽은 뒤에나 끝날 일

  공부에는 끝이 없다.

  그러므로 너무 급하거나 느리게 하지 말고 아주 꾸준히, 죽은 뒤에나 이 공부가끝나리라는 생각으로 정진하여야 한다만약 그 효과가 빨리 드러나기를 바란다면 이 또한 부질없는 욕심에서 비롯되었다고보아야 한다공부에는 욕심을 부리되 그것으로 얻어지는 영화는 바라지 말라.

  만약 헛된 욕심으로 공부에 매달린다면 이는 부모에게 큰 부끄러움을 안겨 드리는꼴이니 곧 사람의 아들이라 할 수 없느니라.

 

     '교육'이 엉망이다

  하늘이 백성을 내리심에 있어 인간이 있으면 법이 있는 것이다. 법을 잡고 덕을아름답게 함을 그 누가 하늘로부터 받지 않았으리그런데 사도가 끊어지고 교육이 밝지 못하므로 오늘의 학교 환경은 자연 엉망인것이다학자들의 풍습이 경박하여지고 양심이 묶이고 가벼운 공명심만 받들며 진리를 실행치아니한다.

  위로는 나라에 덕망가가 모자라서 벼슬자리가 많이 비어 있고, 아래로는 풍속이 날로썩어 윤리의 기강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참으로 마음이 떨린다.

  이제 나쁜 버릇에 물든 것을 씻어 버리고, 학문의 기풍을 크게 변화시키면서 모범학생을 택하여 열심히 가르치기 위해 학교 모범을 만드니, 많은 선생과 학생들로 하여금몸가짐과 일을 처리해 나가는 데 규범으로 삼으라제자된 학생은 진실로 이를 지켜 나갈 것이며 스승된 이는 이것으로써 그 몸을바르게 하여 학생들이나 남들의 표준이 되고 솔선하는 태도를 다해야 할 것이다.

 

     무엇부터 시작할까

  첫째는 입지, 뜻을 세우는 일이다.

  배우는 학생은 먼저 뜻을 세워 옳은 일로써 자기의 임무를 삼으라. 옳은 일은 높고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스스로 실천하지 않고 있다그것은 곧 '나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자만하기 때문이다. 단점 고치는 일을늦추지도 말고 기다리지도 말라.

  단점 고치는 일을 두려워 말고 어렵다고 주저하지도 말라. 지금 곧 세상을 위하여뜻을 세우고 이웃을 위하여 정성을 다하라옛 성인들이 이루어 놓았으되 그 맥이 끊어진 학문을 계승하고, 훗날의 좋은 세상을열어 주기 위하여 원대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스스로 목표하는 것에 금을 그어 두라.

  자신을 용서하는 버릇은 털끝만큼이라도 가슴속에서 생겨나지 않도록 할 것이며명예를 손상 당하거나 영욕과 이애, 행복이나 고통 따위에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도록해야 한다.

 

     대쪽같은 몸가짐

  둘째는 몸가짐을 바로 하는 것이다.

  배우는 학생은 이미 위대한 사람이 외겠다는 뜻을 세운 이상 반드시 나쁜 관습을씻어 버리고 한 가지 생각으로 학문을 지향하여 몸가짐과 행동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언제나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며, 차림새는 반드시 서로  공경하는 예의를 갖추며,걷거나 서거나 할 땐 바르게 행동하고 음식은 반드시 절제 있게 먹는다.

  글씨는 똑바로 쓰고 책상은 반드시 가지런하게 놓으며, 공부방은 반드시 깨끗하게정돈해야 한다.

  그리고 늘 경솔하지 않게 걷는다손도 게으르게 그냥 두지 않는다. 만일 일이 없어도 단정하게 가다듬고 함부로움직이지 않는다.

  눈동자를 안정되게 놀려 눈을 바르게 뜨고 상대방을 흘겨보거나 삐딱하게 보아서는안 된다.

  말할 때와 음식을 먹을 때 외에는 입을 움직이지 않는다목소리는 늘 바른 발음을 내야하고 쓸데없이 가래침 뱉는 듯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는안 된다머리는 바르게, 몸과 직선이 되게 세우며 기울거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한다호흡은 늘 콧소리를 고르게 내쉬며, 이상한 숨소리를 내지 않는다.

  무엇보다 바르게 서라.

  어디에 기대지 말아야 하며 자세에는 항상 덕스러운 기상이 있어야 한다얼굴빛은 늘 깨끗하고 태만한 기색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바르지 않으면 보지말고, 바르지 않으면 듣지 말고, 바르지 않으면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 말 것이다.  '바르지 않으면'이라는 말은 조금이라도 하늘의 뜻과 순리에 위배되는 것을 뜻한다안 좋은 예를 들어 말한다면 광대들의 바르지 못한 행색이라든지, 속된음악소리라든지, 비루하고 외설스럽고 요상한 놀이라든지, 방탕 난잡한 춤과 오락 등은더욱더 경계하고 끊어야 될 것이다.

 

     책 속에서 찾는 환희

  셋째는 글읽기이다.

  배우는 학생이 선비의 행동으로써 몸가짐을 거두어 지킨 다음에는, 모름지기 독서와깊은 연구로 진리를 밝히는 데 힘쓰라. 그래야 학문에 나아가는 길이 막히지 않을것이다.

  스승을 따라 배우되 배움은 넓어야 하고 질문은 자제해야 하며 생각은 조심스러워야하고 이해력은 명확해야 한다그래야 반드시 가슴으로 터득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글 읽을 때에는 반드시얼굴을 정숙하게 가지고 단정히 앉아서 마음과 뜻을 오로지 하나로 통일시키라그리하여 한 가지 글이 확실하게 이해된 다음에 비로소 다른 글을 읽을 것이요, 많이읽는 데만 힘쓰지 말고 글 내용을 억지로 외려 들지도 말라위대한 인물이 짓지 않은 글은 읽지 말고, 무익한 글은 보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 말의 천마디 의미

  넷째는 말을 삼가는 일이다.

  배우는 학생이 학자의 행동을 닦으려면 모름지기 기본틀을 갖춰야 한다우리의 잘못은 언어로부터 오는 것이 많은 법이다말은 반드시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럽게 해서 적시적소에 맞추어 말하라.

  긍정이나 허락을 함부로 뱉어 내서는 안 된다목소리를 조용하고 엄숙하게 하며 희롱과 농지거리로 시끄럽게 떠들지 말아야 한다오직 문자와 이치에 맞게 유익한 말만 하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나시장 바닥의 상스러운 말을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그리고 떼를 지어 쓸데없는 잡소리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모두 공부에 방해되고하고자 하는 일을 망치게 되는 것이니 일체 경계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

  다섯째는 마음속에 잘 간직하는 일이다.

  배우는 학생이 행동거지를 닦으려면 반드시 마음을 바로 추스려서 바깥 세상의 유혹을받지 말아야 여러 가지 사악함이 물러나고 바야흐로 충실한 덕을 쌓을 수 있다그러므로 배우는 학생은 먼저 마땅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앉아서 마음속에 잘간직하며 조용한 가운데에 흐트러짐 없이 사리에 맞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라만약에 어떤 상념이 생길 때에는 반드시 선악의 기미를 살펴, 그것이 착한 것일때에는 그 뜻과 도리를 깊이 연구하고, 그것이 악한 것일 때에는 그 싹을 잘라 마음을다스리고 보살피는 노력을 끊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그러면 살아가는 데 있어 의리와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부모 섬기기, 미룰 일이 아니다

  여섯째는 어버이를 섬기는 일이다.

  자식의 온갖 행실 중에서 효도와 우애가 가장 중요한 근본이다그리고 죄목 3천 가지 중에서는 불효가 제일 큰 것이다어버이를 섬기는 이는 반드시 그 공경심을 다하여 어른의 뜻을 순순히 따라야 하고즐거움을 다하여 음식을 공양하라. 병환 중에는 극진한 근심으로 의약 처방을 다하여모시고, 돌아가실 때에는 지극한 슬픔으로 마지막 이별의 도리를 다할 것이요, 제사때에는 엄숙하게 추모의 성의를 다하여야 한다. 겨울에는 따스하게 대접해 드리고여름에는 시원하게 살펴 드리며, 아침저녁으로 외출할 때에는 반드시 문안 인사로알리라외출에서 돌아와서도 반드시 인사 드린다.

  만일에 잘못이 있을 때에는 성의를 다하여 그 잘못을 빌 것이며, 내 몸을 돌아보아늘 잘못된 행동이 없게 하라언제나 덕을 온전히 간직하여 부모를 욕되게 하지 말아야 비로소 어버이를 섬긴다고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

  일곱째는 스승을 섬기는 일이다배우는 학생이 성심으로 옳은 것을 지향한다면 모름지기 먼저 스승 섬기는 도리를높여야 한다. 사람은 세 가지(나라와 스승, 그리고 어버이)에서 났으므로 섬기기도 그세 가지를 똑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마음을 다하지 않으랴함께 살게 되면 새벽과 저녁에 인사드리고, 따로 살게 되면 공부 배울 때에 예의를다하여 뵈옵는다.

  평상시 모셔 받듦에 존경을 다하고 가르침을 착실히 따라 믿음직스럽게 해서복종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만일 말씀과 행사는 일에 의심나는 점이 있을 때에는  조용히 질문하여 지식을얻을 것이요,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스승을 비난하지 말라하지만 바른 도리를 따지지 않은 채 스승의 말만 무조건 믿어서도 옳지 못한 것이다틀린 것이 있으면 조용히 말씀드리되 받들어 모심에 대해서는 힘에 따라 성의를다하여 제자의 도리를 지켜야 한다.

 

     가장 좋은 친구

  여덟째는 벗을 선택하는 일이다.

  옳게 사는 법과 공부의 의문을 해결하는 것은 비록 스승을 통해서이지만 세상을살아가는 데 서로 은혜를 입고 돕는 것은 진실로 가장 좋은 친구에 의지하게 된다배우는 학생은 반드시 충성과 신의,, 효도와 우애가 중요하다. 품행을 단단하고바르게 해서 듬직하고 착실한 학생을 선택하여 벗으로 삼는다. 잘못이 있으면 서로경계하고 서로 철차탁마(갈고 닦아서 가꾸는 일)하여 친구 사이의 의리를 가꾸고지키라.

  만약 뜻을 세움이 굳세지 못하고 어떤 일을 추진하며 정리하는 힘이 부족하거나떠돌아다니면서 즐겁게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으면 그런 친구는 멀리하라말이나 기운만 숭상하는 자도 모두 벗으로 사귀지 말아야 한다.

 

     집안의 웃음소리

  아홉째는 참된 가정 생활이다.

  배우는 자가 심신을 닦으려 한다면 반드시 가정에서 윤리를 다하여 형은 우애하고아우는 공손하여 한 몸 같이 보라남편은 온화하고 아내는 양순하여 예의를 잃지 말 것이며, 올바른 방법으로 자녀를교육하되 맹목적인 사랑만 가지고 참된 교육을 현혹시키지 말 것이다가정을 통솔하는 데는 엄숙함을 주로 하되 너그러운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굶주림과 추위에 대한 사정을 헤아려 생각하고, 위아래가 정연한 질서 의식으로안팎의 구별이 분명하여야 한다한집안 일의 처리는 극진한 합리성과 바른 도리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넉넉한 마음으로

  열 번째는 사람을 넉넉한 마음으로 상대하는 일이다.

  배우는 학생이 이미 가정 생활을 잘 꾸려 가고 있으면 그것을 사람 대하는 데까지연장시켜 한결같이 예의를 지켜 나가라. 어른을 극진히 섬기되(침식과 걸음을 모두어른보다 뒤에 하며 나이가 10세 이상 위이면 형같이 모시고, 배 이상 위이면 더욱공손하게 대우하여야 한다) 어린이는 자비로운 사랑으로써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가족들끼리 화목하고, 이웃들과는 잘 사귀어 즐거워하는 마음을 서로 주고받을 수있어야 한다.

  항상 덕과 학업을 서로 권장하고, 허물을 서로 고쳐 주며, 예의와 풍속을 서로 잘지키고,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 항상 남을 이롭게 하라남에게 이로움이 있기를 생각하여야 하며, 남을 해칠 생각은 털끝만큼이라도마음속에 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실력 앞에서는 못 당한다

  열한 번째는 시험 공부에 나서는 일이다과거의 급제는 뜻있는 선비가 애써 구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벼슬로 통하는 길이 되어 있으니, 만일 도덕에 온 마음을 쏟아서예의를 제일로 치는 이는 과거를 숭상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국가를 위해 일하고싶을 때면 마땅히 성심으로써 공을 이루어야지 날짜만 헛되이 보내서는 안 된다벼슬길에 나아가면 항상 몸을 아끼지 말고 옳은 일을 실천하여 나라에 충성하고백성을 위해 헌신하라.

  구차스레 따뜻하고 배부름만 구할 일이 아니다진실로 옳은 일을 지향하여 게으르지 않고, 평상시의 일을 도리대로 따르면과거 공부도 역시 일상의 일 중의 한 가지일 뿐이다.

  요즈음의 선비들은 게으르고 방종하며, 글읽기에 힘쓰지 않는다. 순수한 학문만을사모한다면서 한갓 세월만 보내고, 학문과 과거 공부 중 한 가지도 성취하지 못하는자가 많으니 진실로 경계할 점이다.

 

     불의를 용서하지 말라

  열두 번째는 정의를 지키는 일이다.

  배우는 학생은 정의와 이익을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정의란 것은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조금이라도 '무엇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이익을 따라가는 무리이니어찌 경계하지 않으랴. 좋은 일을 위하면서 이름을 얻으려는 것 또한 이익을 구하는마음이니, 군자는 그것을 흙 파먹고 사는 것보다 더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하물며착하지 않은 일을 행하면서 이득을 보겠다는 자임에랴.

  배우는 학생은 털끝 만한 욕심이라도 가슴 가운데 간직해서는 안 된다.

  옛사람은 부모를 위하여 노동에 힘쓰고 비록 품팔이와 쌀을 짊어지는 일도 마다하지않으면서 마음은 항상 깨끗하여 자기만의 이익 때문에 땀을 흘리지는 않았는데,오늘날의 선비는 온종일 성현의 글을 읽으면서도 오히려 욕심을 면하지 못하니 이 어찌애석한 일이 아니랴.

  혹시 집이 가난하여 생계를 꾸려 가자면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워야 하되오직 이득만을 구하는 생각은 싹트지 못하게 해야 한다그리하여 주고받고 하는 일에는 그것이 사리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살피고, 물질의얻음이 있을 때에는 '도리'를 생각해야 한다조금이라도 구차스럽게 살아서는 안 된다.

 

     성실, 정직한 삶

  열세 번째는 성실, 정직하게 사는 일이다.

  충후(충직하고 인정이 두터운 것)와 기절(기개와 절조)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스스로 지키는 절조가 없이 적당히 넘어가는 것은 옳지 못하고, 근본의 덕이 없이교만과 거친 행동으로 삶을 살아서도 안 된다.

  세속이 잡스러워 덕스러움이 날로 상실되어 가고 있는 게 오늘의 실정이다궤변과 아부로써 남을 따르지 말라거만스럽게 언행을 일삼을 뿐, 중용을 지키는 학자를 보기가 실로 어렵다.  "시경"'온화하고 공손한 사람이여, 오직 덕의 기초로다'하였고 '약한 자라도업신여기지 않으며 강한 자라도 두려워하지 않는다'하였으니 반드시 온화하고 공손하여근본이 깊고 두터워진 뒤에라야 정의를 수립하여 큰 절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저 비루하고 아첨하는 못난 인간들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명색이 학문한다는선비로서 자신의 재주와 어질다는 사실만 믿고서 남을 경멸하고 재물을 모욕하는경우가 있는데 그 폐해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자그마한 이득을 얻으면 희희낙낙 만족하고 너무 좋아 날뛰는 자를 어찌 진정 기개있는 인간이라고 할까.

  요즘 학자들의 이와 같은 병폐는 진실로 예법에 밝지 못하여 허례와 교만이 습성을이룬 데서 생긴 것이다그러므로 모름지기 예법을 밝혀 윗사람을 높이고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를 다하여야한다.

  진실로 이와 같이 하면 성실하고 정직한 삶을 모두 얻을 수 있다.

 

     덕을 쌓는 일

  열네 번째는 공경심을 갖고 덕을 쌓는 일이다.

  배우는 학생이 덕으로 천성의 잘못을 닦는 것은 오직 남에 대한 공경심을 잘 지키는데 있으니, 공경하지 않으면 다만 빈말이 될 뿐이다. 모름지기 겉과 속이 한결같고그것이 조금도 그침이 없어야 한다.

  말에는 가르침이 있고 움직임에는 법도가 있으며, 낮에는 하는 일이 있어야 하고밤에는 그 일의 결과가 있어야 한다. 눈 한 번 깜짝하는 동안에도 얻을 것이 있고, 숨한 번 쉬는 동안에도 키우는 것이 있어야 한다공부를 오랫동안 계속했는데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날마다 쉬지 않고 힘쓰라공부는 모름지기 죽은 뒤에나 그만 두라그것이 실학이다.

  만일 이런 데 힘쓰지 않은 채 오직 많이 아는 것만 따지고 이야기를 꾸며서 이름을빛내려는 자는 학문하는 사람의 적이 되나니,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랴.

 

     학교생활에 철저하라

  열다섯 번째는 학교생활을 성실히 수행하는 일이다배우는 학생이 학교에 있을 때에는 그 행동거지를 어디까지나 학칙에 따라야 한다책도 읽고 글도 지으며, 학교에 갈 때에는 미리 목욕하여 정신을 맑게 하고돌아와서는 숙제를 열심히 끝내야 한다여럿이 함께 있을 때에는 반드시 토론으로 서로 실력을 키우고, 예법에 맞는몸가짐을 가지라.

  모든 것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질서를 엄숙히 지켜야 한다스승에게는 항상 예의를 다해 섬기며 정중하게 질문하라그리고 거리낌없이 그 가르침을 따르라무익한 것을 물어서 마음과 힘을 헛되이 써서는 안 된다.

 

     독서는 바느질하듯

  열여섯 번째는 글 읽는 방법이다.   학당에 모여 사제간에 서로 인사를 마치면 비로소 '공부'에 들어간다.

  그것은 곧 책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그러고 나서는 서로 토론하여 실질적인 공부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는반드시 스승에게 질문하여 그것을 해결토록 노력한다.

  만약 의논할 일이 있을 때에는 곧 토론할 안건을 정하여 진지하게 접근하되 스승이먼저 문제를 제기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학생이 사고로 출석하지 못할 때에는 반드시 결석계를 써서 알린다.

 

     실천하지 않으면 도루묵

  이상의 열여섯 가지 조항은 스승과 제자, 학우 사이에서 서로 타일러 힘쓰고경계하며 도와 힘껏 실천해야 한다학생들 가운데 마음을 잘 단속하고 모범적으로 학문이 성취되어 뛰어난 자가 있으면그를 칭찬하고 상을 주라만일 여러 학생들 중학교 규칙을 준수하지 아니하여 향학열이 부족하거나 허황하게날짜만 보내며 허송세월 하는 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몸가짐이 바르지 못하거나 건방지게 굴어 못된 짓을 일삼거나, 행동거지가 정중하지않거나, 언어가 진실 되지 않거나, 스승을 존경하지 않거나, 어른과 덕이 있는 분을업신여기거나, 예법을 경멸하거나, 염치를 돌아보지 않거나, 사람답지 못한 자와사귀기를 좋아하거나, 아래 또래에게 몸을 굽실거리고, 방탕하게 굴고, 노는 것을낙으로 삼거나, 따지기를 좋아하거나, 재물의 이익 때문에 남의 원망을 듣거나, 공부잘하는 친구를 시기 질투하며 선량한 이를 속여 헐뜯는 사람은 아예 사귀지 말라.

  일가 친척에게 화목하지 못하고 이웃과 불화하며, 제사 때 엄숙하지 못하고 예의풍속을 지키지 못하며, 사고를 당했을 때 그 어려움을 서로 구제하지 않으면 진정코안될 일이다.

  이러한 과실은 벗들이 보고 듣는 대로 깨우쳐 주되, 고치지 않을 때에는 선생님이나윗사람에게 알려 혹독하게 꾸짖으며, 그래도 고치지 않고 억지 변명으로 복종하지 않을때에는 가차없이 벌을 주고 학칙에 의해 퇴학시킨다학교에서 쫓겨난 뒤에 마음을 바꾸고 허물을 고쳐서 착하게 공부하려는 흔적이뚜렷이 있을 때에는 다시 학교에 들어오기를 하가하고 출석부에 다시 이름을 올린다만약 끝까지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못된 짓을 되풀이하며 자기를 나무라는 이를도리어 원망하는 자가 있을 때에는 '사람'이 될 때까지 더욱 엄한 벌을 주도록 한다.

 

     마음은 몸의 주인

  내가 생각하건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을 성(사람과 사물에 있어서의 본성이나본바탕, 본체)이라 이르고, 성과 기를 합하여 한 몸의 주인이 된 것을 마음이라고이르며, 마음이 사물에 응하여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정이라 이른다성은 마음의 몸체요, 정은 마음의 쓰임새이며, 마음은 감정이 아직 일어나지않았거나 일어난 것의 모든 것이므로 마음은 성과 정을 모두 다스린다고 한다성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인 의 예 지 신'-, 어질고 정의롭고 예의 바르며 많이알고 믿음이 그것이요, 정에는 일곱 가지가 있으니 '희 노 애 구 애 오 욕'-, 즐겁고화나고 슬프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 내는 것이 그것이다.

 

     도덕심과 그리움

  정이 생길 때엔 도의를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 있으니, 어버이에게 효도하고자 하는것,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것,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고 재빨리 건져내는것, 자신의 결점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나쁜 점을 미워하는 것, 종묘나 선산 옆을 지나갈때 엄숙한 마음을 갖는 것들이 그것이다. 이것을 도덕심이라 한다또 육체를 위하여 나타나는 것이 있으니, 배고플 때 먹으려 하는 것, 추울 때 입으려하는 것, 고단할 때 쉬려고 하는 것, 정이 많으면 이성을 그리는 것 등이 그것이다이것을 인심이라 한다.

 

     마음이 움직이면

  우주의 본체와 힘은 한데 섞여서 융화하여 원래 서로 떠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이움직여 정이 되고, 그것이 나타나는 것은 힘이요, 그것이 나타나는 이유는 하늘의뜻이다.

  힘이 아니면 능히 나타나지 못할 거시요, 뜻이 아니면 생겨날 것도 없을 것이니,어찌 뜻이 나타나는 것과 힘이 나타나는 것이 다름이 있겠는가단지 도덕심도 힘에서는 떠나지 못하지만 그 생겨남이 도의를 위한 것이므로 생명에속하고, 인심도 역시 뜻에서 나왔지만 그 생겨남이 육체를 위한 것이므로 겉모양과기운에 속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마음 가운데에는 애초에 두 마음이 없었다. 다만 마음이 생기는 곳에 두 가닥이 있기때문에 도덕심을 나타내는 것이 기이지만 생명이 아니면 도덕심이 생겨나지 못하고,인심에 근원 되는 것도 이이지만 겉모양과 기운이 아니면 인심이 생겨나지 못한다도덕심은 순수한 하늘 뜻이므로 선은 있되 악이 없으며, 인심을 천리도 있고 욕심도있으므로 선도 있고 악도 있다. 예를 들면, 마땅히 먹을 경우에는 먹고, 입을 경우에입는 것은 공자나 부처도 면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은 천리요, 오직 먹고 색정의생각으로만 흘러 악이 된다면 이것은 욕심이다.

 

     어떤 욕망인들 못 막으랴

  도덕심은 능히 지킬 수 있되 인심은 욕심에 흐르기 쉬우므로 비록 착하나 역시위태롭다.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한 마음으로 도덕심인 줄 알면 확충시키고, 인심인 줄 알면정확하게 살펴서 반드시 도덕심으로써 절제하라인심이 항상 도덕심의 명령을 듣게 될 때 인심도 도덕심이 될 것이다.

  어느 뜻인들 간직하지 못할 것이며 어떤 욕망인들 막지 못하랴.

  진서산(중국 송나라 때의 학자. 이름은 진덕수)이 하늘의 섭리와 욕심의 문제를분명하게 논하여 학자로서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잘 밝혀 주었으므로 매우 유익하나,다만 인심을 욕심으로만 돌려 해석해서 한결같이 '극기'만 하라고 하였으므로 무리한

데가 있다.

 

     선악의 모든 것

  주자의 말에 '비록 높은 지혜를 자긴 사람이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다'하였으니,성인도 역시 인심이 있는데 어찌 다 욕심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이로써 본다면 칠정이란 곧 인심과 도덕심, 선악의 모든 것이라 하겠다맹자는 칠정 중에서 착한 일면만 끄집어내 '사단'이라고 이름지었으니, 사단은 곧도덕심과 인심의 착한 부분인 것이다사단에서 ''을 말하지 않은 것을 정자가 해설하였으되 '성심으로 사단이 되고 보면벌써 믿음은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하였다칠정 이외는 다른 정이 없는데, 만일 칠정을 인심만으로 돌린다면 이는 반만 취하고반은 버리는 것이 된다.

  이것은 너무 명백하여 의심할 것이 없다.

 

     힘이란 뜻을 담는 그릇

  마음에 갖추어진 본성이 일어나 정이 되는 것이니, 성이 본시 착한 것이면 정 또한마땅히 착하여야 할 것인데 정에 혹 착하지 않음이 있는 것은 어찌된 까닭일까뜻은 본래 순수한데 그것을 움직이는 힘에 맑고 탁한 것이 있는 것이다힘이라는 것은 뜻을 담는 그릇이다뜻이 생기지 않았을 때에는 힘이 쓰이지 못하므로 순수하나 뜻이 생겨날 때에는선악이 비로소 나뉘이니, 선이란 맑은 기운이 일어난 것이요, 악이란 탁한 기운이일어난 것으로 그 근본은 다만 천지 조화일 뿐이다.

 

     뿌리를 박아라

  정의 착한 것은 청명한 기를 타고서 자연을 따라 곧바로 나가 그 중심을 잃지 않고인 의 예 지의 뿌리가 됨을 볼 수 있으므로 사단이라 이름한다정이 착하지 않은 것은 비록 뜻에서 비롯되었으나 일단 더러운 힘이 가로막아 그본체를 잃는다그래서 혹 지나치기도 하고 미치지 못하기도 하여 어진 것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도도리어 어진 것을 해치는 것이다.

  옳은 것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 도리어 정의를 해치며, 예의 도덕에 뿌리를 박고있으면서 도리어 예의 도덕을 해치고, 지식에 뿌리를 박고 있으면서 도리어 지식을해치므로 단(도덕심과 인심을 말함)이라 할 수 없다.

 

     내가 곧 하늘이다

  주자(중국 송나라의 대유학자 주돈이를 말함)'오성이 감동하여 선악이나뉘어진다'하고, 정자는 '선악이 다 하늘 뜻이다'하였으며, 주자는 '하늘 뜻으로 인하여욕심이 있다'하였다.

  요즘 학자들은 선악이 ''의 청탁에 말미암은 줄 알지 못하거나 그 설명을 듣지못하였으므로, ''가 일어나는 것을 선이라 하고, 기가 일어나는 것을 악이라'하여,''''가 서로 떨어진 것으로 잘못 아니 이것은 밝지 못한 이론이다.

 

        3 퇴계 이황

  옛사람들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자기 자신의 실천이 그에 미치지 못함을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친구들과 학문을 논하느라 편지를 서로 나누면서한 말은 부득이한 것이었지만, 스스로 그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다더군다나 이미 말한 뒤에 저쪽 사람은 잊지 않았는데 내가 잊은 것이 있는가 하면저쪽과 내가 다 잊어버린 것이 있으니, 이것은 부끄러울 뿐 아니라 거리낌없는 무례같아서 두렵기 그지없다.

  그 동안 옛 책장을 뒤져 보존되어 있는 편지 원고들을 다시 베껴서 책상에 두고,때때로 펼쳐 보면서 자주 반성하기를 그치지 않았었다이 중에는 원고가 없어져 기록하지 못한 것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잃어버리지않은 모든 편지를 다 모아서 큰 책을 만들었다 한들 무슨 유익함이 있으리오퇴계 이황 씀@ff

 

     마음의 병을 먼저 고쳐라

  마음의 병은 바로 이치를 살핌이 투철하지 못해 쓸데없는 고집으로 무리하게탐구하며,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괴롭히고 정력을 극도로 소모하였기 때문이다. 이또한 학문을 처음 하는 사람들이 공통된 병이다.

  이러한 것을 알고 미리 고칠 수 있었더라면 다시는 근심될 리 없겠지만, 일찍 알아서빨리 고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병이 드디어 생기게 된 것이다내가 겪은 평생 동안의 모든 병의 근원도 다 여기에 있었다. 지금은 마음의 병이전날 같지는 않지만, 다른 병이 이미 심하여졌으니 나이 탓일까.

  당신과 같은 젊은이야 기력이 왕성하니, 그 시초에 급히 고치고 섭생과 요양을절도 있게 한다면 어찌 계속 괴로울 까닭이 있겠으며, 또 무슨 다른 증세가 생길 리있겠는가?

  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제일 먼저 세상의 모든 욕심을 생각밖에 두어, 마음을괴롭히지 말아야 한다.

  이 마음을 온전히 가질 수 있다면, 병은 이미 5내지 7할 정도는 나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일상 생활에서 타인과의 만남을 적게 하고, 취미와 욕망을절제하고, 마음을 비워 편안하고 유쾌히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며, 독서와 화초 기르기,등산이나 물고기 기르기의 즐거움 같은, 진실로 항상 부드럽고 따뜻한, 성내고 원한품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긴요한 치료법이다.

  책을 읽어도 마음을 괴롭힐 정도로는 읽지 말 것이며, 몸이 아플 때는 절대로 많이읽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마음내키는 데 따라 그 뜻을 음미하며 즐기고, 이치를궁리함에는 모름지기 일상 생활의 쉽고 명백한 곳에서 간파하고 숙달시켜야 할 것이다편안하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그것을 음미하고, 너무 집착하는 것도 아니요 집착하지않는 것도 아닌 사이에 마음을 두고 꾸준히 공을 쌓으면, 저절로 이해되어 깨달음이있게 될 것이다너무 집착하거나 마음을 얽매여 무조건 빠른 효과를 거두려 해서는 안 된다.

 

     명예에 집착하지 말라

  무릇 선비의 병폐는 뜻을 세움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뜻이 높고 깊으면, 어찌 학문이 지극치 못하여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걱정하겠는가.

  그러므로 알맹이 없이 이름만 더하는 것을 옛사람들은 좀도둑에 견주었다. 이것이내가 이름을 함부로 얻지 않으려는 까닭이다옛사람들은 학문하는 데 반드시 효, , , 신에 근본을 두고 차례로 천하의 만 가지일에 목숨을 걸 듯 열심히 한다고 들었다. 그 목표는 물론 무엇이나 포함하지 않은것이 없지만, 가장 먼저 시급히 해야 할 것은 가정에서 더욱 화평 하는 데에 있다.그러므로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집안일 때문에 공부를 할 수없다 함은 옛사람들이 말한 것과 다르지 않을까?

  바라건대 그 이름을 떨치려 하지 말고 실리를 따지는 것을 고치기 바란다. 어버이의뜻을 잘 좇고 즐겁게 봉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일을 오직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에 따라 하면, 이제까지 영위해 오던 일도 틀림없이 다 그 속에들어 있게 마련이다그 자세한 것은 책 속에 다 있으므로, 오직 어떻게 그것을 살펴 가며 골라 읽고 힘써행하느냐에 달렸을 뿐이다.

 

     인간이 곧 우주이다

  '마음이 곧 우주 만물의 근원'이라 함은 '인간이 곧 우주'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이치는 사물과 내가 없고, 안과 밖이 없고, 병이 있을 때마다 곧 그 약이 있다고생각케 한다. 그런데 주자는 '버리려고 하는 마음이 곧 버릴 수 있는 약이다'고 했다묵묵히 공부를 더해 가며 전진하기를 그치지 않고, 오래도록 익혀서 완전히익숙해지면 자연히 마음과 이치가 하나가 되어, 잡았다 놓쳤다 하는 병이 없어질것이다.

  정자는 '학문은 익힘을 중히 하는 것인데, 익힘은 마음을 오직 한 곳에 집중할 때가가장 좋다'고 했다.

  그는 또 말하기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엄숙하면 마음이 곧 하나로 통일되고, 그러면저절로 간사함임 생길 수 없다'고 했는데 바로 이것을 일컬은 것이다그러나 그 익히는 방법은 마땅히 '옳지 않으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움직이지 말아야'하고, 몸을 움직일 때나 안색을 바르게 할 때나 말을 할 때나 제대로공부를 해야만 그 뜻이 참되고 노력하기에도 쉬운 것이다.

  그러한 참된 노력이 쌓이고 쌓여 시간이 지나면 얻음이 있게 된다.  '마음에 있는 것이나 일에 있는 것이나 다만 하나의 이치일 뿐이다'한 것은 옳다그러나 '이른바 한 근본이란 이치의 가장 순수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지, 마음에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고 하는 것은 옳다.

  무릇 이미 하나의 이치일 뿐이라고 했으며, 이치의 핵심 되는 곳이 마음에 있지 않고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모름지기 마음에 있는 것과 사물에 있는 것이 본래 두 가지가 아님을 분명하고투철히 알아야 비로소 참답게 아는 것임을 깨달아야겠다진실로 그렇게 않고 막연하게 '하나의 이치일 뿐'이라고 한다면, 한 근본과 만가지의 다름에 대하여 아직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이것이 바로 내가 전에 늘 '이자는 알기 어려운 것이다'고 한 이유이다.

 

     먼저 실천하고 뒤에 말하라

  그대는 학문에 있어서 그 방법을 이미 알았고, 그 병폐의 소재도 알았다. 진실로'빨리 나아가는 자는 물러가기도 빨리 한다'는 경계를 잘 지키면서, 배움을 오래 쌓아습관이 이루어지면 바탕이 변하고 어진 지혜가 무르익어, 아마도 인생의 한 가지 큰기쁜 일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급히 얻으려고 서둘다가 깨닫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부딪히는 곳마다 다 사실대로 보고, 당연한 곳에서는 곧 실천하는 것이다. 사실이이와 같음을 알면서 실천이 따르지 못하면, 공자님 말씀의 '먼저 행하고 뒤에말한다'는 교훈에 매우 부끄러울 뿐이다.

  오로지 고요한 곳에서 정신 집중하여 공부하고 싶다고 흔히 말하지만, 이것도 다맞다고 할 수는 없다. 속된 일을 무조건 외면하다 보면 그 또한 학문에 해 되는 경우가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의 일상사라면 어느 선에서 큰 뜻을 세워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만약 반드시 고요히 공부만 해야 한다면, 그것은 당장 긴요하지 않은 이차적인 일이되겠다.

  과연 그래서야 옳겠는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우주의 본체가 마음에도 있고 사물에도 있다는 이론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이것을알면 이치의 알기 어려운 점을 차츰 부족한 곳 없이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해는 땅 아래 있어도 틀림없이 밝게 빛난다. 이것은 그 빛이 방출되어 달의 밝음으로연결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겨울은 사계절의 음이고, 지하는 지상의음이다. 지상의 햇빛이 겨울에 으르러 점차 미약해지는 것은 해가 미약해서가 아니라본래의 음기가 그렇게 되도록 한 것일 뿐이다.  '측은 한 마음이 사람의 사는 길이다'고 한 정자의 말에 대하여서는, 주자와 그문인들이 주장한 글에서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는데, 대개 이 산다는 ''자는생활이라는 의미로서, '생하고 생하여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즉 천지의 사물을 만드는 마음과 더불어 일관하여 있는 것은 다만 하나,''자뿐이다.

  그러므로 주자는 '천지의 사물을 창조하는 마음'에 대하여 묻는 어느 사람의 질문에답하기를, "천지의 마음은 다만 하나의 생일 뿐이다. 무릇 사물은 다 생함으로써만물이 있게 된다. 사람이나 만물이 생하고 생하여 다함이 없는 까닭은 그 생명력때문이다. 생명력이 없다면 곧 말라죽어 버린다"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폭군이나 도둑놈 또한 이것이 없으면 살 수 없으니 역시 생활이 가장중요하다.

  몸과 마음이 포함한 것이야말로 무엇이나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인은 물론 마음의덕이고, 지혜 역시 마음이 덕일 수밖에 없다. 지각은 지혜의 일인 까닭에 마음의덕이라 하는 것이다.

  '타고난 악도 그 사람의 본바탕의 이치다'라는 말은 괴이한 듯 보인다그러나 정자 이후로 이 이치를 논해 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개 사람의본바탕은 물에 비유되는데, 맑고 고요히 흐름이 물의 본바탕이다.

  그것이 흙탕물을 만나 흐려진다거나, 험준한 곳에서 파도가 거세게 일어남은 물의본질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물이라 하지 않을 수는 없다다만 만난 대상이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악한 기질이 비록 사람의 도리는 아닐지라도 어찌 본능의 이치라고 할 수없겠는가?

 

     외모가 흐트러지면 마음도 변한다

  '외모가 흐트러지면 마음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이것은 우리에게 하찮게 여겨질 일이 아니다.

  마땅히 빨리 고쳐야 할 것이다그러나 고치기란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만하더라도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때 미리 쓸데없이 신경을 쓴다면 성공할 수 없다. 다만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말고,깊고 너그럽게 인격을 길러, 말을 경솔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이렇게 오래오래 노력하여 점점 익숙하게 되면 자연히 자신도 실수 없을 것이고 남을상대하는 데도 절도에 맞을 것이다. 비록 맞지 않는 말이 있더라도 남들 역시 심하게

그대를 원망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옛 선비들이 공부한 것을 살펴보면, 끊임없이 학문과 스승을 공경하고 힘써 잠시의중단도 없었다. 또한 수많은 공부를 쌓아 유구한 세월에 걸쳐 충분히 연구하고 실천한다음에야 지식과 행동이 자연히 순서에 따라 얻어졌던 것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학문에 있어 너무 급하게 이루려는 병폐가 있는 듯하다그런 까닭에 빠른 효과를 얻으려는 것을 피하지 못하여 항상 어긋나게 행하기 쉬운염려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계속하면 쉽사리 편견에 빠져 도리어 진리를 해칠까염려되는데, 이는 적은 폐단이 아니다.

  또한 부모를 섬기는 일은 하늘이 준 양심과 지극한 도리가 아님이 없으니, 이치에마땅한 것을 헤아려 지성으로 온순히 섬기고 조심하여 차츰차츰 행한다면, 어찌 위로는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아래로는 집안 식구들이 섭섭하게 여기겠는가부모의 뜻을 거스르고 집안 식구들이 섭섭하게 여기는 것은 너무 급히 구하고지나치게 빨리 하려는 때문이다역시 마땅한 것을 헤아려 보지 않고 점진적으로 하지 않아서 그 자취가 너무 드러난때문이 아니겠는가?

  행하여 들어맞지 않거든 자신을 반성하여 자책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부모에게 드릴 음식을 몸소 장만하는 일이야말로 부모를 섬기는 일 중에 중요한사항이다. 사는 게 풍족해지고 버릇없이 자란 자식이 많아 이것을 실행하는 경우가드물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갑자기 몸소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혹 부모의 마음을 편치못하게 한다면, 형편에 따라 적당히 참작하여 차차 더해 가야 한다문제는 마음을 다하여,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 공부

  학문이란 단번에 뛰어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참으로 옳다. 그러므로한두 해의 공부로 효과를 기대한다거나 만약 이처럼 마음을 먹었다면 이는 참으로꼼꼼하지 못한 짓이다.

  학문이란 죽을 때까지 닦아야 하는 일로서 비록 성현의 경지에 도달했더라도 끝났다할 수 없는데 하물며 그 보다 못한 사람은 어떻겠는가? 그러나 아플 경우, 불필요한억지 탐색과 무리를 하지 말아야겠다. 인간의 마음이란 붙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도망쳐 없어지는 법 공부만을 무작정 생각하지 말고, 평상시의 명백한 곳에 눈을 두고마음을 여유 있게 가지면서, 이 속에서 한가롭고 편안히 쉴 필요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결심을 굳혀야 한다. 이처럼 오랜 세월의 공을 쌓으면 마음의 병이 치료될 뿐 아니라,흐트러짐 없는 정진의 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성찰의 공부를 생각에 떠올리지말라는 말은 학자의 길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마음의 병은 반드시 이처럼 한뒤에야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질을 바로잡는 일이 내게 있지 남에게 있지 않다'는 말은 참으로 불변의이론이다. 그러나 엄한 스승, 훌륭한 벗과 함께 지내면 이끌어 주고 갈고 닦는 데 더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라

  가난하여 농토를 사는 것은 본래 의리에 크게 손상되는 일이 아니며 값의 높고낮음을 따져서 비싼 것을 깎아 알맞은 시세에 따르려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이다. 다만한 번이라도 자기만을 이롭게 혹 남을 이기려는 생각이 있으면, 이는 곧 선과 악이분별되는 분기점인 만큼 반드시 재빨리 전신을 바로잡아 옳고 그름을 판별하여야비로소 소인배를 면하고 군자가 될 수 있다.

  굳이 농토를 사지 않는 것이 고상하다고 여길 것은 못 된다. 그러나 일에 마음을오래 쓰면 인생의 헛된 함정에 빠지기 쉬우므로 항상 마음을 착실하고 꼼꼼하게가다듬어 타락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공자의 말씀은, 산이 어질다거나 물이 지혜롭다고한 말이 아니다. 또한 사람과 산수의 본바탕이 본래 동일하다고 한 말도 아니다다만 어진 이는 산과 비슷하기 때문에 물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인데, 비슷하다고함은 다만 어진 이와 지혜로운 이의 기상과 뜻을 가리켜 한 말이다.

  어짐과 지혜로움의 이치는 미묘하여 알기 어렵기 때문에, 여기서 기상과 뜻을가리키고 반복하여 표현하였으니, 이것은 사람들이 그 형상을 통하여 근본을 구해모범을 삼게 하려는 것이지, 산과 물에서 그것을 구하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그러므로 산과 물을 좋아한다는 '요산요수'라는 두요의 뜻을 알려면, 마땅히 어진이와 지혜로운 이의 기상과 의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진 이와지혜로운 이의 기상과 의사를 아는 데 있어서 어찌 다른 곳에서 구하겠는가?

  내 마음에 돌이켜 결과를 얻어야 하겠다. 참으로 내 마음에 어진 지혜의 결과가충만 되어 밖으로 나타난다면, 요산요수는 간절히 구하지 않더라도 자연히 그 즐거움이있게 된다.

  그렇게 힘쓸 줄은 모르고 한낱 높고 푸른 것만 보면서 '내가 이것으로 어진 이의즐거움을 구한다'하고, 또 끝없이 넓게 흐르는 것만 보면서, '내가 이것으로 지혜로운이의 즐거움을 구한다'하면 넓고 아득하여 구할수록 더욱 멀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그러므로 '어진 이가 산과 같다'는 것은 옳지만, '어짊이 산의 본바탕'이라 한다면전체의 인이 아니며, '지혜로운 자가 물과 같다'는 것은 옳지만, '지혜가 본바탕'이라한다면 지라고 이름한 본래의 뜻이 아니다대개는, 사람과 산수의 본바탕이 본래 동일하다는 것만 알고 나뉘어 다른 것은 알지못하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생각하면 얻는다

  대개 사람이 학문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일이 있을 때나 일이 없을 때나, 뜻함이있을 때나 뜻함이 없을 때 나를 막론하고 마땅히 존경심으로써 기둥을 삼아 그 중심을잃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그 사려가 생기지 않은 때에는 몸과 마음이 비워지고심성이 순수하게 되며, 그 사려가 이미 생겨난 때에는 바른 도리가 환히 드러나고물욕이 물러나 하늘의 이치에 복종하므로 복잡한 근심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노력을 쌓고 쌓으면 성공에 이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학문의 길인 것이다.

  이것을 힘쓰지 않고 그때그때 저절로 생각이 나오는 것을 옳다고 한다면, 이것은한가로울 때 깊은 생각을 절대로 하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맹자는 '마음의 일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먼저 큰 뜻을 세워 놓으면 작은 뜻이 빼앗지 못한다'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무릇 사람의사사로운 욕심이 생기는 것은 바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하면 곧사사로운 욕심이 있다'하는 것은 그 말의 뜻이 정학하지 못하다밝게 보고자 하는 것과 밝게 듣고자 하는 것을 일시에 합하면 하나를 생각하는것이지 둘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힘씀이 오래면 자연히 각각 그 이치에맞는다는 말도 매우 맞다. 이른바 '한 가지 일을 생각하고 있을 때는 비록 다른 일이있더라도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한 것은 마음을 두 갈래로 쓰지 않고 한 곳에집중하는 공부로서 옳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가령 어떤 사람이 보기와 듣기를 함께 하거나 손과 발을 동시에 사용하는경우가 있다고 하자. 여기서 만일 듣는 데에만 오로지 마음을 두고 보는 것을 전연돌보지 않는다거나, 손짓에만 집중하고 발짓은 되는대로 아무렇게 내버려둔다면, 어찌일에 있어서 한 가지는 잘하고 한 가지는 못하는 것이 되겠는가?

  돌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내버려둔 곳에서 마음이 그 일을 당하여 마땅히 응하고응하지 말아야 할 것이 불분명하여 통하지 못하게 됨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친 욕심을 버려라

  일이란 좋은 일과 나쁜 일, 큰 일과 작은 일을 막론하고 그것을 마음속에 오래두어서는 안 된다. '둔다'는 글뜻은 한 군데 붙어 얽매여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꿍심을 품거나 나쁜 일을 조장하고 이익만을 따지는 여러 가지 폐단이 주로 여기에서생기기 때문에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라는 한 글자도 알기 어려운말이다. 이른바 '마음에 두는 것도 아니요, 아니 두는 것도 아니다'란 것이 곧 이''이란 글자의 뜻이다고요히 생각하면 하늘의 이치를 기르고, 움직이면 곧 욕심이 생기는 법, 그것이싹트는 기미를 보일 때에 잘라 버려야 한다이렇게 참된 공부가 쌓이고 노력이 오래되어 순수히 숙달되면, 일상 생활에 있어서비록 백 가지 천 가지 일이 생겨나고 사라지더라도 마음은 제대로 굳건히 자리잡고있어서 잡스런 생각들이 절로 나의 걱정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온 정신을 한데 모아서

  글씨를 쓸 때엔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켜야 한다글자 자체가 좋거나 나쁨을 미리 기대하지 말고 오로지 글자 쓰기에 정성을기울인다.

  쓴 글자가 교묘하거나 치졸한 것은 그 사람의 타고난 자질의 분수와 공부한 노력이따라 절로 결정될 뿐이다. 이러한 옛 성현들의 태도는 '기를 기르는 데에 있어서는반드시 의로움을 모아 하고 그 결과를 마음에 두지 말라이 일을 절대 잊지 말고 무리하게 꾸미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현의 마음의 법은 반드시 글씨를 쓰는 데에만 해당되는 것이아니다. 그러한 까닭으로 주자 또한 '일이 그 가운데 있으면 모든 점과 획이 저절로이루어진다. 뜻을 멋대로 버려 두면 글씨가 거칠어지고, 예쁜 것을 취하면 글씨가흐트러진다'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의 이른바 일이란 곧 정성을 말한다.

 

     남을 통해 스스로의 선악을 찾으라

  말을 타고 길을 갈 때 경치는 그곳에 객관적으로 놓여 있는 것이지만, 사물에 관해시를 읊는 것은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함께 관계하는 일로서, 여기서도 어찌 정성을첫째로 쳐야 하는 원칙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독서할 때의 책을 읽는 것이나 외출할 때 옷을 입는 것에만 주력하라는 것과비교해도 심한 차이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동쪽을 바라보면서그쪽으로만 고개를 돌렸을 때, 시선이 좇아가지 않더라도 마음은 이미 새가 앞에날아가는 것을 헤아리는 경우이다. 사람의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다른곳을 따라 날아가고 달려가게 된다. 이것은 '고개를 돌린 채 애써 새를 보는 것'과같은 것이니, 몸은 이곳에 있으면서 마음은 저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뜻한다.

  사물이 통과하여 비치는 거울은 마치 불이 하늘 가운데에 밝게 탐으로써 만상이 두루비치는 것과 같고, 사물을 좇아 비추는 것은 마치 햇빛이 일정한 사물을 좇아내리비추는 것, 예컨대 응달진 벼랑의 뒷면이나 오두막집의 아랫부분으로 스며드는것과 같다. 이들 두 가지 말은 매우 비슷한 것 같지만 실상은 크게 다른 것이다자신에게서 구하는 것과 남이 나에게서 구하는 것은 군자와 소인의 마음씀씀이구분되는 가름길이다. 남의 선악을 보고 스스로의 선악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군자의것이다.

  자신을 돌아보고 구하면서 허물을 고치고 착한 데로 나아가며, 결점을 살펴서 고치는곳에 어찌 사사로움이 용납되겠는가?

  남들을 비평하는 사람들의 단점은 자기 스스로를 닦는 데 힘쓰지 않고 남의 장단점을비교하는 데에 있다. 이것은 그 마음이 바깥으로 치달을 뿐 스스로를 다스리도록 하는데에는 소홀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닦아 스스로의 시비를 판단하는 사람들은 이같은 사람들과는 그 마음씀이결코 같지 않은 것이다.

  모름지기 우리의 마음이 그 바름을 얻었을 때는 하늘과 아버지, 땅과 어머니가 같고만민이 형제자매처럼 되며 만물과 내가 하나로 된다모든 것이 뒤섞여 용납되며 측은하고 근심스러워지면서 안과 밖, 멀고 가까움의차이가 없는 절실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부모를 섬기는 것과 하늘을 섬기는것이 진실로 하나의 이치로 통한다. 눈을 들면 보이는 것은 온통 이 일 아닌 것이없고, 숨 한 번 쉴 동안의 정지도 용납되지 않으면서 뜻과 생각이 분명해짐으로써비로소 이와 같은 것이 억지로 꾸며댄 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게으름이 가장 큰 죄악

  공부는 뒤로 미루지 말고 순간순간 항상 정지해야 한다. 머뭇거리지 말고 어디에서나힘써야 한다.

  험심탄회하게 이치를 관찰할 뿐 선입견을 두지 말며, 꾸준히 배움을 쌓아 익힐것이지 짧은 시간 내에 효과를 바라서는 안 된다.

  완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내버려두지 말고 평생 노력해야 한다.이치가 완전히 이해되고 하나로 되는 것은 모두 깊이 쌓은 후에 자연스레 얻어지는것이다. 한순간에 문득 깨달았다는 사람들처럼, 어지럽고 아득한 가운데 그림자만 얼핏보고서 큰일은 다 끝났다고 떠들어대면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궁리한 다음 실천으로 이를 몸소 체험해야 비로소 진짜가 되는 것이다.지금 비록 진리를 깨쳤다 하더라도 겉핥기를 면치 못하거나, 지식을 유지하고 있다하더라도 혹 일순간이라도 이를 잃어버리면 이에 따라 일상 생활은 한없이 문란해지기쉽다. 처음 배울 때에는 이치를 보는 것이 진실되거나 절실하지 못하고, 지식을유지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법으로 이 또한 우리 모두의 근심이다.

  돌이켜 세상 사람들을 볼 때 훌륭한 재주와 뛰어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둘이아니지만, 벼슬을 얻지 못한 사람은 과거 공부에 얽매여 버리고 이미 벼슬을 얻은사람은 이해 득실에 빠져 비록 뜻이 있어도 용기 있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한없이 많은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뜻은 이들과는 다르다.

  그대가 어렵지 않게 결단을 내린 점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대가 어렵지 않게 결단을 내린 점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대가 진실로 그러한 결단의 마음을 잘 확대하여 처세한다면 비록과거 공부나 이해 득실 문제가 눈앞에 있더라도 보통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을것임을 믿는다.

 

     길은 어디에나 열려 있다

  궁리란 복잡다단한 것이니 만큼 한 가지 방법에 구애되어서는 안 된다. 한가지 일을궁리해서 터득하지 못하였다면 이는 옳지 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궁리하는 사물이 복잡하고 어려워서 힘껏 탐색해도 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아니거나, 나의 모든 재주로써는 이를 잘 밝히지 못하여 억지로 터득하기 어려운경우라면우선 그 일을 놓아두고 다른 일을 궁리해야 한다.

  이렇게 이 일 저 일 궁리하는 가운데 오랫동안 쌓고 깊이 익히면 자연히 마음이 점점밝아지고 진리가 눈앞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때에 지난번에 풀지 못했던 미세한뜻의 실마리를 다시 잡아내어 이미 터득한 지식을 응용해서 살피면 자기도 모르는사이에 전에 풀리지 않던 것이 함께 일시에 깨달아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궁리의 활용법이다.

  궁리하다 풀리지 않으면 그만두라는 말은 아니다. 한 가지 일에 완전히 궁리 터득된다음에 조금씩 순서에 따라 나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궁리의 대원칙으로, 이와 같이한다면 의미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내 살을 주신 분

  효자가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살을 베어 내는 것에 대해서는 앞 시대의유학자들이 자세히 말했다. 지극히 절박한 때를 당해서 다른 데서 얻을 수 없었을경우에는 자기의 살을 베어 내서라도 어버이의 목숨을 건지려는 것이 자식된 자의진실한 정이다그러나 이러한 것을 원칙으로 삼아 효도하라고 사람들에게 훈계할 수는 없다그러므로 주자는 그에 대해 다만 '거의 효도했다'고 말했을 뿐이요, 그것을 더없는선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모든 일에 있어서 어째 해야 할 방법과 합당한 도리를 찾지 못했을 경우에는 부득이차선책을 찾아서 이에 따라야 할 것이다.

 

     세상을 위한 학문

  우리 동방의 선비로서 도를 행하고 의로운 일을 사모하는 데 뜻이 있는 사람은대개가 세상의 화를 당하는데이것이 비록 땅이 좁고 인심이 야박한 까닭이라 할지라도, 역시 그 자신의 행위에미진함이 있어 그러한 것이다그 이른바 미진함이란 다름 아니다. 학문이 지극하지 못하면서도 지나치게 높이자처하고, 때를 헤아리지 못하면서도 세상을 다스리려는 데에는 날쌘 탓이다이것이 그 실패를 가져오는 길인 만큼, 큰 이름을 띄고 큰일을 맡는 사람이 절실히삼가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신을 위하는 길도 지나치게 높이 자처하지 말아야 하고, 세상을다스리는 일에도 서둘러 만용을 부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무릇 자신의 주장에절대로 지나침이 없게만 한다면, 이미 출세의 길로 나선 바에야 나라의 살림을 열심히꾸려 가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에 나아가 벼슬을 할 때에는, 그 맡은 바의 걱정거리를 주로 생각하는이외에, 항상 한 걸음 물러서고 한번 머리 숙여 학문에 전념하면서 '나의 학문이지극하지 못한데 어찌 나라 살림의 책무를 맡겠는가' 자문해야 할 것이다. 시대가 나의뜻과 다를 때에는, 조금도 밖의 세상일에는 관계하지 않고 쉴 것을 청한다든지 혹은물러설 것을 청하라학문에 전념하면서 '나의 학문이 부족하므로 조용히 닦아 나아가도록 할 때가 바로지금'이라고 다짐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것을 오래도록 기약하여, 나아가거나 물러가거나 학문을 우선으로 삼아야한다. 진리의 무궁함을 깊이 깨닫고 항상 스스로 부족한 생각을 지니고, 내 허물듣기를 기뻐하고 착한 일하기를 즐기며 참다운 노력을 오래 쌓는다면, 도가 이루어지고덕이 세워지고, 공이 저절로 높아지고 업이 저절로 넓혀질 것이다.

  위에 말한 세상을 다스리고 도를 행하는 책임은 이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맡을 수있다.

  선비가 한 번이라도 조정에 나서면 모두들 낚시에 걸린 고기꼴이 되고 만다. 그중꿋꿋하고 악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화를 당하기가 일쑤이고, 이리저리 아부나 하는나약한 사람들은 서로를 조심하여 너무 모나거나 아니면 굽신거리는 작태뿐이다이 두 경우 모두 안타깝다. 출발할 시초부터 이미 소문이 사방에 퍼져 덕을 깊이쌓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정치를 맡게 된다면 화를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고, 완전히믿어 주지 않는 상태에서 어리석게 떠들어대면 몸을 욕되게 하고 말 것이다. 앞사람들의패망을 살펴보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그러므로 학문에 오직 힘쓰고자 한다면 조정에 나서지 말고 물러나 있는 것이 제일바람직하다.

  불나비가 불에 뛰어드는 것 같은 일이나 높은 담장 밑에 서서 깔려 죽는 일을자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부득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각기 직분과 책임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그러나 생명을 버리고 의리를 취하는 데에는 반드시 확실한 법칙이 있다이는 이른바 일찍 죽거나 오래 사는 것에 개의치 않고 덕을 닦아 죽음을 기다린다는것이다출세길로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일을 이와 다르게 볼 것이 아니다.

 

     선과 악의 갈림길

  주자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사람이란 하늘과 땅의 뜻을 받고 태어나므로 아무 느낌도 없을 때는 순수하고깨끗하다. 온갖 원리를 갖추고 있으니 이른바 본바탕이 그것이다그러나 사람에게 이 본바탕이 있게 되면 곧 형상이 생겨나고, 형상이 있게 되면 곧마음이 생겨나 사물에 대한 느낌이 없을 수 없다. 사물에 감동되면 본능의 욕구가나오고, 여기에서 선과 악이 갈리게 된다본능의 욕구가 곧 정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비록 간략하지만, 이치만은 인간의 타고난 성품에 관한 것을 다 갖추어 모든뜻을 남김없이 말하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그런데 이른바 정이란 '희 노 애 구 오 욕'이라는 것으로 "중용"'희 노 애 락'과동일한 정의이다. 이미 마음이 있으면 사물에 대한 느낌이 없을 수 없으므로 정이우주의 본체와 그 현상을 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물에 감동되면 선악이 여기서나뉘므로, 정에 선악이 다 있음을 또한 알 수 있다.

 

 

     참되게 익혀 실천하는 배움

  나랏님의 한 마음은 온갖 정치가 나오게 되는 자리이며 온갖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뭇 욕심이 침공하고, 뭇 간사함이 갈마들며 침해하는 곳이다그 마음이 만일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하여지면서 방종해 진다면, 마치 산이무너지고 바닷가 들끊는 것과 같아서, 그 누구도 막아낼 수 없다.

  옛날의 성스럽고 현명한 황제나 군왕은 이러한 점을 걱정하여, 항상 조심하고두려워하는 태도로 하루하루를 삼가 지내면서도 오히려 미흡하다고 여긴 나머지,스승을 세우는 한편 바른 말을 올리는 직책을 두었고, 전후좌우에 보필하는 사람이있게 하였다.

  소반이라든가 밥그릇, 책상, 지팡이, , 들창문에 이르기까지 무릇 눈길이 닿는곳과 몸이 머무는 곳에는 어디나 교훈 되는 문구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 마음을유지하고 몸을 지키게끔 하는 것이 이토록 지극하였다. 그런 까닭에 덕이 날로 새롭고나라살림이 날로 번창하여, 티끌만한 허물도 없게 되고, 나아가 큰 이름이 남게 되었다대개의 군주들이란 하늘의 명령을 받고 왕위에 오른 만큼 그 책임이 지극히 크고무겁건만, 어떻게 되어서인지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은 하나같이 게으르기십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불손한 태도로 스스로 성자인 체하는가 하면 오만한 태도로수많은 백성들 위에서 교만을 떨었다. 이러한 태도가 결국 파멸의 길로 이끄는 것이어찌 이상한 일이겠는가?

  일찍이 맹자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이해되고 생각하지 않으면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였고, 기자가 무왕을 위하여 아뢸 때에도, '생각하는 것을 예라하는데, 예는 성인을 이룩한다'고 하였다. 무릇 마음이란 가슴 밑에 있는데 지극히나약하고 미묘한 것이다.

  이성이야말로, 지극히 확실하고 알찬 것이다지극한 마음으로 확실하고 알찬 이치를 구하면 틀림없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을것이다그러므로 '생각하면 이해되고 성인도 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오늘날이라 하여 틀린말이겠는가?

  그러나 잡념이 없이 마음이 영묘하다 할지라도 만일 마음의 주재하는 능력이 없으면일을 앞에 당하여 놓고도 생각하지 않게 되고, 품은 생각이 확실하더라도 만일 찾아서처리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항상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두워지고, 생각만 하면서 배우지않는다면 위태로워진다'고 하였다원래 학문이란 마음을 떠나서는 어두워져 깨우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생각하여 그 미묘한 점에까지 이르러야 하며, 그렇게 하고서도 그 일을 익히지 않으면위태로운 불안하므로 반드시 배워서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생각과 배움은 서로서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지도자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곧 생각과 배움을 겸하고 마음과 행동을 합치시키고,드러난 것과 숨겨진 것을 한 가지 되게 하는 도리다. 정성스런 태도를 유지하는 방법은반드시 이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고 엄정하게 가지며, 정신을 조용히 통일시킨 상태속에서 이에 대한 이치를 배우고 묻고 생각하며 분별하는 것이다. 항상 궁리하며, 남이보거나 듣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을 경계하며 두려워하는 것을 더욱 엄숙 공경스럽게하며, 혼자만 있는 은밀한 곳에서는 '성찰' 즉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피는 일을 더욱더정밀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일을 익힐 때는 그 일에만 전념하여 마치 다른 일이 있는 것은 모르는 듯이해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변함없이 그렇게 하여야 하고 오늘과 내일, 매일매일계속하여야 한다.

  혹은 새벽녘 정신이 맑을 때에 되풀이하여 그 뜻을 음미하여 보기도 하고, 혹은일상생활 속에서 사람과 상대할 경우에도 그것을 경험하면서 키워 가야 하겠다그렇게 하면 처음에는 혹 부자유스럽고 모순되는 난점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거나,때로는 극히 고통스럽고 불쾌한 일들도 없지 않겠으나, 이러한 것은 바로 옛사람들의이른바 '장차 크게 나아갈 기미'이며 또한 '좋은 소식의 징조'이니 절대로그만두어서는 안 된다.

  더욱더 자신을 가지고 힘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리하여 진리를 많이 쌓는 한편 오랫동안 힘을 기울이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이치가 서로 영향을 미쳐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을 환히 꿰뚫듯 이해하게 되고, 익히는것과 그 익혀진 일이 서로 익숙해져 점차로 순탄하고 순조롭게 행하여지게 될 것이다처음에는 각각 그 한 가지에만 전념하던 것이 끝내는 모두 일치할 것이다이것이야말로 맹자가 말한 '학문을 깊이 파고들어 스스로 깨닫는 경지'이며,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만두지 못할 경험이다.

 

     존경의 태도를 가지면

  '오직 인간만이 그 빼어난 능력을 얻어서 가장 영특하다'한 것은 순수하고 지극히착한 본바탕을 말하는 것이다. '형체가 생기자 정신이 일어났다'  것은 음기가움직이고 정지하며 이루는 것이다.

  '다섯 가지 본바탕이 감동한다'함은 양과 음이 변하고 합하여 수 화 금 토의본바탕을 낳는 것을 말한다.

  앞서간 성인은 힘써 닦지 않아도 저절로 이룬다.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하여몸을 닦는 것은 곧 군자의 책무이기 도하다이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 도리를 거스르는 것은 소인의 짓거리이며 그가 흉하게되는 까닭이다존경의 태도를 가지면 욕심이 적어지고 사리는 밝아진다욕심을 줄이고 또 적게 하다가 아예 없애 버리면, 곧게 나아가 성인이 될 수 있다.

 

     나는 세상의 아들

  하늘은 아버지며 땅은 어머니라고 한다나는 매우 작은 존재로서, 자연히 그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천지 사이에 들어찬 것은 나의 몸이며, 천지를 이끄는 원리는 나의본성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의 동포이며, 모든 사물이 나와 같은 친구이다나이 많은 사람을 높이는 것은 그 어른을 어른으로 섬기는 근본이며, 외롭고 약한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 어린이를 어린이로 보살피는 근본이다. 성인이란 그덕이 천지와 더불어 합치되는 사람이며, 현인이란 무엇이든 빼어난 사람이다이 세상의 늙고 허약한 사람이라든가, 병들어 고통을 받는 사람이라든가, 형제가없는 사람이라든가, 혹은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든가, 혹은 홀아비나 과부와 같이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사람들은 모두 다 나의 형제가 심히 곤란한 처지를 당하고서도호소할 데가 없는 경우와 같다.

  하늘의 뜻을 보존하는 것이 내가 세상의 아들로서 천지를 공경하는 것이며, 늘즐거워하고 근심하지 않는 것이 효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이와 같이 하지 않고 천명을 어기는 것을 패덕이라 하고, 어진 일을 해치는 것을도둑이라 한다. 악한 일을 더하는 자는 못난 놈이고, 하늘로부터 받은 천성에 따라행동하는 것은 부모를 닮는 경우가 많다천지의 조화를 알면 그 부모의 사업을 잘 이어가며, 그 조화 속의 오묘함을 다 알면그 부모의 뜻을 잘 계승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방구석에서도 부끄럽지 않는 일이 부모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며,마음을 보존하고 착한 본성을 기르는 것이 부모를 섬기는 일이다.

 

     덕을 높이고 학업을 넓혀라

  , 여름, 가을, 겨울의 원리는 하늘의 불변의 법칙이고, , , , 지는 인간이가다듬어야 되는 본성이다이 인간의 본성들은 원래 착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버이를 사랑하고 형을 공경하며,임금께 충성하고 어른에게 공손히 대하는 바로 이것이 타고난 본성이라는 것이다.이것은 자연스럽게 또 순리적으로 되는 것이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성인만이 그 본성이 자연스럽게 실현되어 하늘과 같이 넓어지고 털끝만큼의 힘을더하지 않아도 온갖 착함이 다 갖추어진다일반 사람들은 어리석어 물욕에 눈이 어두운 나머지 그 도리를 무너뜨리고 서슴없이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진다.

  성인이 이것을 가엾게 여겨 학문을 만들고 스승으로서 가르치어 그 본성의 뿌리를북돋는 한편 그 가지를 뻗게 하였다.

  배움의 첫걸음은 우선 청소를 깨끗이 하고 손님 접대를 공손히 하며 집안에서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남에게 공경하여 행동이 조금도 법도를 어김이 없어야 하는것이다. 이러한 것을 완전히 실천하고 난 다음에 힘이 남으면 시를 외고, 글을 읽고,노래를 읊조리고, 춤을 추되 모든 생각이 지나침이 없어야 한다. 이 법도를 궁리하고깊이 생각하여 몸을 닦음이 학문의 큰 뜻이며 목적이다.

  밝은 본성은 환하여 안팎이 없다덕을 높이고 학업을 넓혀야 곧 본래의 본성의 회복하게 된다. 세월이 많이 지났고어진 사람들이 돌아갔는 데다 예의범절이 없어지고 교육마저 해이해져, 어린이의양육이 바르지 못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아이들이 자란 뒤에는 더욱 경박하고사치스러워 질 것이다.

  좋은 풍습이 없어지고 어진 인재가 드물며, 사리사욕으로 뒤얽혀 싸우는 바람에세상이 시끄러워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인간의 본성은 하늘에 표준을 둔 것이어서 결코 없어지지 않는법이다.

 

     천하를 얻으려면

  "대학"의 뜻은 밝은 본성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에 있으며,지극히 착한 경지에 머무는 데 있다. 머무를 데를 안 뒤에야 목적이 있고, 목적을 정한뒤에야 동요되지 않을 수 있으며, 동요되지 않은 뒤에야 편안할 수 있다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고, 일에는 시초와 종결이 있으니, 먼저하고 나중에 할

것을 알면 정의에 가까워질 것이다옛날 큰 덕을 천하에 밝히려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그 나라를다스리려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바로잡았고, 그 집안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은 먼저그 몸을 닦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참되게 했고, 그 뜻을참되게 하려는 사람은 먼저 그 얾을 투철히 했으니, 앎을 투철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밝히는 데 있다.

  사물의 이치가 밝혀진 뒤에 라야 앎이 투철하여지고, 앎이 투철하여진 뒤에 라야뜻이 진실하여지고, 뜻이 진실하여진 뒤에 라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뒤에 라야 몸이 닦아지고 몸이 닦이고 난 뒤에 라야 집안이 바로잡히고, 집안이바로잡히고 난 뒤에 라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라야 천하가화평하게 된다지도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다 몸을 닦는 것으로써 근본을 삼아야한다그 근본이 어지러우면 백성이 다스려지는 법이 없으며, 후덕하게 해야 할 데에야박하게 굴고, 야박하게 해야 할 데에 후덕하게 되는 법이다.

 

     자신부터 잘 다스리라

  주의가 가만히 살펴보니, 옛날의 성현이 사람들을 가르쳐 학문을 하게 한 뜻은 어느것이나 다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알게 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닦은 다음에그것을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치게 하려는 것이지, 한갓 읽은 것을 외는 데 힘쓰고문장을 일삼음으로써 명성이나 구하고 이익이나 취하려는 것이 아니었다그런데 오늘날 학문하는 사람들은 이미 이와 다르다그러나 성현이 사람들을 가르치던 법은 경전에 갖추어져 있다. 뜻있는 선비는 마땅히책을 열심히 읽고 깊이 생각하여 묻고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진실로 이치의 당연함을 안 후에 자신을 다스려 반드시 이에 따르게 한다면, 지켜야할 법칙을 어찌 다른 사람들이 마련하여 준 뒤에 지키려 하겠는가요즘 학교에는 규약이 있지만, 스승을 대함이 이미 천박하고, 그 법이 또한 결코옛사람들의 뜻에 들어맞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라

  어진 사랑이란 만물을 창조하는 천지의 마음이며, 또한 이것을 얻어 사람의 마음으로삼는 것이다. 천지 변화가 아직 생기기 전에도 마음은 갖추어져 있었지만, 오직 어진사랑만이 4계절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어진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며 포괄하지 않음이 없는것이다.

  천지의 마음은 그 특성을 네 가지 갖고 있다. , 여름, 가을, 겨울이 그것이다이것들이 운행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차례로 되는데, 이 중에서도 봄을 만드는기운은 네 계절에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마음에도 네 가지의 덕이 있다. 곧 인, , , 지가 그것인데, 인은다른 덕을 모두 포함한다네 가지 덕이 발동하면 사랑과 공경심, 아름다움과 헤어짐이라는 정으로 되는데,측은의 마음, 즉 사랑이 그것이다참으로 어진 사랑을 체험하여 보존할 수만 있다면, 모든 선의 원천과 백 가지 행위의근본이 다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로 공자님의 가르침이 반드시 배우는 사람으로하여금 '어진 사랑을 찾는 일'에 두는 까닭이다. 공자의 말씀에 '극기하여 참사랑을알면 어진 사랑을 하게 된다'고 한 것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한 것인가 하면 자기의 나쁜 마음을 이겨내고 하늘의 뜻에 돌아갈 수있으면 이 마음의 본체가 다 생기게 되며 이 마음의 작용이 다 이루어지게 됨을 이르는것이다. 집에 있을 때에는 공손한 태도를 가지며, 일을 볼 때에는 정성의 태도를가지고, 남을 대할 때에는 받드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역시 이 마음을 보존하게끔 하는근거이다.

  효도로써 어버이를 섬기고, 우애로 형을 섬기고, 너그럽게 사물을 다루는 것이 역시이 마음을 잘 다스리게 하는 근거이다이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세상에서는 만물을 낳는 마음이고, 사람에게서는 사람을 사랑하고 만물을 이롭게하는 마음이다.

 

     무엇보다 생명을 사랑하라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은 욕심이 물들지 않은 양심이지만어른이 되면 벌써 욕구에 눈을 뜬다. 어른 된 마음이란 의리가 다 갖추어진이성과 판단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도덕심이란 곧 의리를 깨달은 것을 말한다.

  이것은 두 가지의 마음이 따로 있다는 것이 아니다바깥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그에 따른 인생이 없을 수 없게 되고 생명을사랑하면 도덕심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개미까지도 밟지 말고

  옷차림을 바르게 하고, 눈매를 똑바로 하고, 마음을 가라앉혀 공부해야 한다발놀림은 무겁게 할 것이며, 손가짐은 반드시 공손하게 하여야 하고땅은 가려서 밟아, 개미까지도 밟지 말고 돌아서 가자.

  문을 나설 때는 손님을 뵙듯 해야 하며, 일을 할 때는 제사를 지내듯 조심조심하여,혹시라도 작은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한다입 다물기를 병마개 막듯하고, 잡념 막기를 성곽처럼 튼튼히 하며, 성실하고진실하여 조금도 경솔함이 없어야 한다동쪽을 가야 할 때 서쪽으로 다지 말고, 북쪽을 가야 할 때 남쪽으로 가지 말며,일을 할 때에는 오직 그 일에만 마음을 두어, 그 마음씀이 다른 데로 가지 않도록한다.

  두 가지, 세 가지 일로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 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오직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모아 만 가지 변화를 살피도록 한다이러한 것을 그치지 않고 일삼는 것을 곧 '정성을 지닌다' 하니, 움직일 때나조용할 때나 어그러짐이 없고, 겉과 속이 서로 바로잡히도록 하라.

  잠시라도 틈이 벌어지면 나쁜 욕심이 만 가지나 일어나 불꽃도 없이뜨거워지고 얼음 없이도 차가워진다.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하늘과 땅이 자리를 바꾸고 삼강오륜이 땅에떨어지며 배움 또한 못 쓰게 될 것이다.

 

     밤은 곧 아침으로 돌아오느니

  새벽에 잠을 깨면, 이런저런 생각이 점차로 일어나게 된다. 바로 그 때 조용히마음을 가다듬자.

  과거의 허물을 반성하기도 하고, 혹은 새로 깨달은 것을 생각해내어, 차례로 조리 있게 세워 분명하게 이해하여 두자근본이 세워졌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세수하고 옷을 바로 입은 다음 단정히앉는다. 이 마음 이끌기를 마치 솟아오르는 해와 같이 밝게 한다.

  마음의 상태를 엄숙하게 갖고 책을 펼쳐 성현들을 대하게 되면, 공자께서 자리에계시고, 여러 성현들이 앞뒤에 계실 것이다.

  성현의 말씀을 친절히 경청하고, 학우들의 질문을 반복해서 참고하여 바로 잡아야한다그리고 곧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하늘의 뜻은 밝고 밝은 것, 항상 여기에 눈을두어야 한다일을 끝내고 난 다음에는 나는 곧 예전의 나로 되돌아가야 한다마음을 고요히 하고 정신을 모으며 잡념을 버려야 할 것이다자연의 움직임이 순환하는 중에도 마음만은 이것을 볼 수 있다.

 

     물 속의 달은 달이 아니다.

  달이 여러 시냇물에 비치매 곳곳마다 둥근 달이 있다는 이야기는 옳지 않다.하늘이든 물 속이든 비록 같은 하나의 달이라 하더라도 하늘의 것은 진짜이지만 물속의 것은 달 그림자 일 뿐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달을 가리키면 실상을 얻지만, 물 속의 달을 잡으려 하면 얻지못한다. 대체로 물에 있는 달은 물이 고요하면 달도 고요하고, 물이 움직이면 달도움직인다.

 

  그 움직일 때만 하더라도 그렇다.

  고요히 흐르는 물, 광경이 또렷이 드러날 정도로 맑은 물에서는 달의 움직임은아무 방해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물이 아래로 급히 흐르는데 바람이 불어 물결을 일으키기도 하고 돌에부딪혀 물을 튕기게 되면 달은 부서져 이리저리 번득이다가 심하면 마침내없어지고 만다.

  고요한 때는 정숙하고 움직일 때는 살펴야 하지만, 마음이 두 갈래 세 갈래로갈려서는 안된다.

  독서하고 남은 사이에는 틈틈이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인격을 길러야 한다날이 저물고 사람이 권태로워지면 흐린 기운이 엄습하기 쉬우니, 정중히가다듬어 밝은 정신을 떨쳐야 한다.

  밤이 늦어지면 잠자리에 들되,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을 모은다. 잡생각을일으키지 말고 심신이 돌아와 쉬게 한다그 심신을 양심으로써 밝게 길러 나가라.

  밤은 곧 아침으로 돌아오느니 이것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밤낮으로 쉬지 말고부지런히 힘써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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