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정
어느 소문난 큰 부자가 강물에서 익사했다. 그런데 그의 유족들이 시체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실로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 후 누군가가, 건너 마을에 사는 아무개가 그 시체를 건졌다는 사실을 귀띔해 주었다. 유족들은 급히 그 사람을 찾아가서 시체를 넘겨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체를 건졌다는 사람은 상대가 큰 부자의 유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엄청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유족들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유족들은 하는 수 없이 당대의 석학 등석 선생을 찾아가서 이 어처구니 없는 일에 대해 의논했다.
등석선생은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원 별 걱정을 다하는군. 그냥 내버려 두시오. 당신네가 사지 않으면, 그 시체를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겠소?>
이 말은 듣고 유족들은 다소 여유가 있었다. 유족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소극적이 된 것을 눈치 챈 건너 마을 사람들은 이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별다른 방도가 없자 그 사람 역시 등석 선생을 찾아가 물었다. 건너마을 사람으로부터 전후 사정을 잠자코 듣고 난 등석 선생은 능청스럽게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을 다하는군. 그대가 끝까지 버티고 있으면, 유족들이 다른데서 시체를 사간단 말입니까?>
경우에 따라서 사정이 이렇게 상반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쪽에서나 저쪽에서나 늘 서두르는 초조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