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철학우화 15

임기종 2014. 6. 2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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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체

  두 절이 이웃해 있었는데, 두 절의 주지에게는  심부름을 하는 작은 소년이 하나씩 있었다. 두 소년은 절에서 필요한 채소나 물픔 등을 시장에 가서 사오곤 하였다.   그런데 이 두 절은 서로 적대적이었다. 그러나 소년들은 역시 소년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관계를 잊어버리고 길에서 만나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놀곤 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도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한쪽 절이 소년이 시장에서 돌아와 주지에게  말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늘 시장에 가다가 저쪽 절에 사는 소년을 만나게 되어 그에게 어디 가는 중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애가 바람부는 대로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의 대답이 저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그 절의 주지가 말했다.

  <우리 절의 사람은 누구나, 설사 하인까지도 저쪽 절의 사람들에게 져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너도 그 아이에게 이겨야만  한다. 내일 만나거든 다시 어디 가는 중이냐고 물어봐라. 그 아이가 바람부는대로 라고 대답하면 너는 바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니? 하고 말하여라>

  그 소년은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여러 번 되새겼다. 그가 물어보고 상대편 소년이 대답하면 그때 그는 준비한 질문을 할 것이다.

  다음날 그는 길에서 소년을 기다렸다. 마침내 소년을 만나, 그가 물었다.

  <어디 가는 중이니?>

  그 소년이 대답했다.

  <발 가는대로>

  그는 다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의 대답은 고정되어 있었고 상대의 대답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매우 침울하게 돌아와서 주지에게 말했다.   <그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대답은 바뀌었고 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자 주지가 말했다.

  <내일 그 아이가 발 가는 대로라고 말하면 너는 네가 절름발이가 되거나 발이 잘려지면 어떻게 할래?하고 물어라> 다시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는 일찌감치 나가서 길에서 그 소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 소년이 왔을 떄 그가 말했다.

  <어디 가는 중이니?>

  그러자 그 소년이 대답했다.

  <시장에서 야채를 사오려고!>

  그는 매우 혼란스러워져서 돌아와 주지에게 말했다.

  <그에게는 도저히 안되겠어요. 그는 계속 바뀌고 있어요>

  삶이란 그 소년과 같다. 실체는 고정된  현상이 아니다. 그대는 현재에 존재해야 한다. 자녕스럽게 그 안에... 오직 그대의 반응만이 실체와 부합할 수 있다. 만약 그대의 대답이 미리 고정되어 있다면 그대는 이미 죽은 것이며, 이미 놓친 것이다. 내일이 오면 그대는 내일을 맞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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