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명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8. 6. 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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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僧舞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초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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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가는 사람 정 일 옥


벼루에 물을 부어 먹을 간다 혼을 간다

삼십여 긴 세월에 손과 옷은 먹이 돼도

뇌리 속 깊은 골짜기에 먹물 한 점 튀겼을까


해가 뜨면 같이 뜨고 별이 뜨면 같이 뜨니

어느 결에 필묵 놓고 환담이나 길게 할까

나 이제 먹물에 젖어서 후회없이 가고 있다


구름도 흘러가고 사계도 두루 돌아

주름주름 홈이 파인 황혼의 언덕에서

아직도 새벽인양 하여 먹만 갈고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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