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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 僧舞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초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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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가는 사람 정 일 옥
벼루에 물을 부어 먹을 간다 혼을 간다
삼십여 긴 세월에 손과 옷은 먹이 돼도
뇌리 속 깊은 골짜기에 먹물 한 점 튀겼을까
해가 뜨면 같이 뜨고 별이 뜨면 같이 뜨니
어느 결에 필묵 놓고 환담이나 길게 할까
나 이제 먹물에 젖어서 후회없이 가고 있다
구름도 흘러가고 사계도 두루 돌아
주름주름 홈이 파인 황혼의 언덕에서
아직도 새벽인양 하여 먹만 갈고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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