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명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8. 8. 13. 07:33
728x90





승무 僧舞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초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백지(白紙) 우 홍 순

 

뉘 작은 지문(指紋) 한 올 찍히기를 거부했다

잔꾀 묻은 발자국이 몰래 찍혀 있을 게다

백지는 본디 흰빛이라

그냥 시샘 받았다.

 

태초 강물 지나간 흔적 어딘가 남아 있으리

한 점 티 안 묻어서 질투에 시달렸지만

하늘이 함께 내려앉아

더 순결 할 수 있었다.

 

천진한 첫 돌나기 재롱이 그려져 있다

깔깔대는 아기들의 웃음소리 들려온다

보인다 잠든 모습이

모두 아기 빛깔이다.

 

매미*에도 날아가지 않을 백지 한 장 품었지만

불어대는 흙바람에 걸레처럼 더렵혀졌다

세태가 그런 걸 어쩌나

변명하며 살았다.

 

*매미 : 2002년 휩쓸고 간 태풍 이름.

 




'한국현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명시와 시조 1수  (0) 2018.08.16
한국 명시와 시조 1수  (0) 2018.08.14
한국 명시와 시조 1수  (0) 2018.08.10
한국 명시와 시조 1수  (0) 2018.08.09
한국 명시와 시조 1수  (0) 2018.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