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명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8. 10. 2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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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으로 짠 병실 박영희

 

 

밤은 깊이도 모르는 어둠 속으로

끊임없이 구르고 또 빠져서 갈 때,

어둠 속에 낯을 가린 미풍의 한숨은

갈바를 몰라서 애꿎은 사람의 마음만

부질없이도 미치게 흔들어 놓도다.

 

가장 아름답던 달님의 마음이

이 때이면은 남몰래 앓고 서 있다.

 

근심스럽게도 한발한발 걸어오는 달님의

정맥혈로 짠 면사 속으로서 나오는

병든 얼굴에 말 못하는 근심의 빛이 흐를 때,

갈 바를 모르는 나의 헤매는 마음은

부질없이도 그를 사모하도다.

 

가장 아름답던 나의 쓸쓸한 마음은

이 때로부터 병들기 비롯한 때이다.

 

달빛이 가장 거리낌없이 흐르는

넓은 바닷가 모래 위에다

나는 내 아픈 마음을 쉬게 하려고

조그마한 병실을 만들려 하여

달빛으로 쉬지 않고 짜고 있도다.

 

가장 어린애같이 비인 나의 마음은

이 때에 처음으로 무서움을 알았다.

 

한숨과 눈물과 후회와 분노로

앓는 내 마음의 임종이 끝나려 할 때,

내 병실로는 어여쁜 세 처녀가 들어오면서

-당신의 앓는 가슴 위에 우리의 손을 대이라고,

달님이 우리를 보냈나이다.

 

이 때부터 나의 마음에 감추어 두었던

희고 흰 사랑에 피가 묻음을 알았도다.

 

나는 고마와서 그 처녀들의 이름을 물을 때,

-나는 <슬픔>이라 하나이다.

나는 <두려움>이라 하나이다.

나는 <안일>이라 부르나이다.

그들의 손은 앓는 내 가슴 위에 고요히 닿도다.

 

이 때로부터 내 마음이 미치게 된 것이

끝없이 고치지 못하는 병이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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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속으로 이 원 식

 

버려진 손거울이었다

한 하늘을 바라보는

구름보다 가벼운 새 한 마리 날아간다

허기진 꽃잎이 질 때

누군가의

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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