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현대시와 시조

임기종 2015. 12. 11.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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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앞에서           - 오장환(吳章煥)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잣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

 

* 상고(商賈) : 장수.

({인문평론}, 19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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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신춘문예]시조 당선작

 

화첩기행 김종훈

 

오종종한 징검돌이 샛강 건너는 배경으로

미루나무 두엇 벗삼아 길나서는 물줄기와

기슭에 물수제비 뜨는 아이들도 그려 넣는다

 

여릴 대로 여리더니 어깨 맞댄 물길들이

한 줄 달빛에도 울렁이던 맑은 서정을 삼키고

여울은 화폭을 휘적시며 세차게 뒤척인다

 

구도마저 바꿀 기세로 홰를 치며 내달리다

분 냄새 이겨 바른 도회지 그 풍광에서

노을 빛 그리움에 젖어 물비늘 종일 눕는다

 

어느새 귓가 허연 강가 풀빛 아이 불러내며

캔버스를 수놓던 현란한 물빛 지운 채

꿈꾸던 역류를 접고 강은 고요 속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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