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가시내 - 이용악(李庸岳)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 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굴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리 천리 또 천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도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 줄께
손때 수줍은 분홍 댕기 휘 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치는 벌판에 우줄우줄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 호개 : 호가(胡歌), 호인(胡人)들의 노랫소리
* 눈포래 : 눈보라.
* 불술기 : 불수레, 즉 태양
({시학}, 19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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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 물빛 /조 성 문
청송땅 샛별 품은 갈맷빛 외진 못물
갓밝이 저뭇한 숲 휘감아 도는 골짝만
된비알 뼈마디 꺾는 물소리 가득하다.
호반새 울음 뒤에 퍼지는 새벽 물안개
실오리 감긴 어둠도 한 올씩 풀어내고
삭은 살 연기가 되고 재 되는 저 춤사위.
사는 일 짐 부려 놓고 제 거울 들여다보는
고요도 버거운 이 차갑게 돌아앉고
못 속에 누운 왕버들 퉁퉁 부은 발이 시리다.
숨 돌릴 겨를 없이 짙붉게 타는 수달래
먹울음 되재우고 저마다 갈 길 여는가
내 앞에 툭툭 튄 물살 쌍무지개 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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