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명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8. 5. 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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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눈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좀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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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수어장대 전세중

 

 

발치에 한강 두르고 솟아오른 남한산성

성채를 굽이돌아 아픈 기억 저 편에는

북풍에 깎여 무너진 인광()들이 번득인다

 

 

홑처마 청량당은 굳게 잠겨 말이 없고

무망루 등 돌려 앉아 반쪽 하늘 바라본다

새하얀 억새꽃 무리, 안개 속을 떠도는데

 

 

수어장대 팔작지붕 비상을 꿈꾸는가

추녀 끝 웅크린 저 수막새도 불러세워

해빙의 아침을 연다, 물안개를 걷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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