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한국 명시와 시조 1수

임기종 2018. 10. 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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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유치환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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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잔 양 점 숙

 

지게미의 세상 맹물에도 잔은 넘쳐

오줌독 오기마저 잔술로 받아낸

뒤꿈치 묻어온 술내 봉화처럼 붉었다.

 

그림자 굵은 푸서리의 바람 속에서

정수리 뭉개지던 풋바심에 죽사발

술잔에 멍석말이한 세월 뼈대마저 노랗다.

 

뿌리 뽑힌 먹 장승 모로 누운 저녁엔

아버지의 사진첩, 삭정 끝에 달로 뜰고

흐려온 봄밤의 그림자 장지문 밖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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