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재치 143

육담(肉談) . 과부의 보시

가난하지만 오랫동안 정절을 지키고 사는 과부가 있었다. 어느 저녁 무렵 석장(錫杖)을 든 노승이 과부 집 문을 두드리며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한다. “제 집은 워낙 가난하고 또 남정네 없이 홀로 단간 방에 살 뿐이니 딴 데로 가십시오” 하고 과부가 말한다. 그러자 노승은 “ 날은 저물었고 주변에 인가가 없으니 하루 밤 재워 주시면 그 은혜가 크리다” 하고 간청한다. 과부가 어쩔 수 없어 허락하고 보리밥과 토장국을 한상 차려드리니 스님이 달게 먹었다. 과부는 늙은 스님을 아랫목에서 쉬게 하고 자기는 윗목에서 자는데 옷도 벗지 않고 그냥 잔다. 서로 잠이 오지 않아 끙끙대던 중 스님이 잠든 체하고 다리를 여주인 허벅지 위에 올리자 여인이 공손히 내려놓는다. 얼마 후 또 한 손을 여인의 가슴 위에 놓자 여인이..

해학과 재치 2024.11.13

육담(肉談) .스님이 축원하니

시골 스님이 서울 경치가 좋다는 소리를 듣고 송기떡과 깨 밥을 싸가지고 남문에서 동쪽을 향해 가다가 사직동 뒷길에 이르렀다. 이미 날이 저물매 인경 칠 때가 다 됐는데 잘 곳이 없다. 밤에 순라꾼에게 붙잡힐 것 같아 한 재상가의 집 뒤 행랑 굴뚝 옆에 숨어 파루 칠 때를 기다리는데 밤이 깊어 삼경이 되자 온천지가 고요하다. 문득 그집 행랑방에서 한 사내가 그의 처에게 하는 말이 들린다. “우리 두 사람이 밤마다 그 일을 빼지 않고 하되 헛되이 정혈(精血)만 낭비하고 아직까지 자식 하나 얻지 못했으니 심히 괴상한지라 이는 반드시 축원을 하지 않고 일을 하기 때문이니 지금부터 원하는 바를 정성을 다해 입으로 축원 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오.” 하자 여인이 “그걸 진작 그렇게 할 걸 그랬어요” 하며 남편을 향해..

해학과 재치 2024.11.12

육담(肉談) . 도대체 뭔 소린지

거시기라는 마을에 모로쇠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맹인이었으나 땅에 떨어진 개털도 찾을 수 있고 귀가 먹었지만 개미가 씨름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코가 막혔으나 쓰고 단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고 말 못하는 벙어리인데도 구변이 떨어지는 폭포수와 같더라. 다리(?)를 절지만 아들, 딸 구남매를 뒀고 집은 낡아 초라해도 항상 눈같이 하얀 털을 가진 말을 타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숯섬에 먹칠한 것 같았다. 언제나 자루도 날도 없는 낫을 띠도 매지 않은 허리에 차고 2월 3,7일에 산에 들어가 풀을 베니 양지쪽에는 눈이 아홉 자나 쌓였고 응달에는 풀이 무성해 키 넘을 정도였다. 드디어 낫을 들어 풀을 베려 하는데 머리, 몸통, 꼬리도 없는 다리가 세 개나 달린 뱀이 나타나 보일락 말락 하더니 갑자기 덤벼들어..

해학과 재치 2024.11.11

육담(肉談) .청상과부의 욕심

어느 부잣집 청상과부가 매일 젖어미와 함께 잠을 잤는데 하루는 젖어미가 병이 들어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 이 과부가 이웃집 여인을 불러 말하기를 “젖어미가 출타해 혼자 자기 무서우니 아주머니 집 종 고도쇠(高道釗)를 보내 주시면 저녁을 잘 대접할 테니 저를 지켜주심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이웃집 아주머니가 곧바로 고도쇠를 보내줬다. 고도쇠는 나이 열여덟에 우둔하고 좀 모자라는 놈이다. 고도쇠가 과부 집에 와서 저녁밥을 얻어먹고 당상(堂上)에서 누워 자는데 코고는 소리가 우레 같았다. 아직 한번도 여자를 경험하지 못한 순수한 양물이 뻣뻣이 일어나서 잠방이 속을 뚫고 나와 당당하게 뻗치고 섰다. 밤이 깊어 적막해지자 호기심 많은 어린 과부가 이를 보고 갑자기 음심이 발동해 가만히 고도쇠 바지를 벗기고 자기의 ..

해학과 재치 2024.11.10

육담(肉談) . 멍청한 것은 남자

선비 최생(崔生)은 부친이 함흥 통판(通判)으로 부임하자 따라갔다. 최생은 그곳에서 한 기생을 사랑했는데 후에 그의 부친이 전보되자 그 역시 기생과 서로 헤어지게 된다. 이별하던 날, 기생이 최생의 손목을 잡고 울면서 말한다. "한 번 하직하면 다시 만날 기회가 없으니 원컨대 도련님 신변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 하나를 선사하시어 서로 잊지 않을 징표를 삼는 것이 어떨까요?" 결국 최생은 이 말에 감동해 이빨 하나를 빼 주고 길을 떠났다. 중도에 길가 나무그늘 밑에서 말을 먹이다가 기생 생각이 나자 눈물을 짓는다. 그때 한 청년이 오더니 역시 눈물을 뿌리며 훌쩍거린다. 또 한 청년이 그 뒤 이어 오면서 역시 눈물을 흘린다. 최생은 마음속으로 괴이하게 여겨 "너희들은 무슨 이유로 우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

해학과 재치 2024.11.09

육담(肉談) .정신없는 사람

옛날에 어떤 사람이 어찌나 건망증이 심하던지 제 성과 이름자도 곧잘 잊어버린다. 하루는 나들이를 가는데 활갯짓을 하며 걸으니까 담뱃대가 앞으로 왔다 뒤로 갔다 한다. 손이 뒤로 가서 담뱃대가 안 보이면 "어, 내 담뱃대 어디 갔나" 하고 팔이 앞으로 와서 담뱃대가 보이면 "아, 여기 있구나." 하는 것이다. 손이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어, 내 담뱃대 어디 갔나" "아, 여기 있구나." 가다 보니 덥고 다리가 아파 쉴 곳을 찾는데 마침 맑은 개울물이 보인다. 이 사람이 갓과 옷을 나무에 걸고 신을 벗어 바위 위에 얹은 후 목욕을 한다. 목욕을 하고 나와 보니 나무에 자기가 벗어 놓은 갓과 옷이 보인다. "어, 웬 정신없는 사람이 여기다 이런 걸 벗어 놓고 갔지? 이건 내가 입어야겠다" 옷과 갓을 입고 ..

해학과 재치 2024.11.08

육담(肉談) .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겨서야

어느 선비가 예쁜 첩을 하나 뒀다. 하루는 첩이 고향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하자 선비는 남녀간의 음사(淫事)를 알지 못하는 놈에게 첩을 따르게 해야지 생각하고 종들을 불러 "너희들은 옥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묻는다. 그때 어리석은 듯하나 속으로 엉큼한 한 종놈이 더듬거리며 하는 말이 "그것이야 말로 바로 양미간에 있습지요" 하고 대답한다. 선비가 기뻐하며 그 종에게 첩을 따르게 했다. 두사람이 집을 떠나 큰 냇가에 당도하자 첩이 잠깐 쉬자고 말한다. 그 동안 종은 벌거벗고 개울 속에서 미역을 감는다. 첩이 종놈의 양물을 문득 보니 워낙 크고 실함에 반해 놀리면서 하는 말이 "네 두 다리 사이 고기로 된 막대기는 대체 무엇이냐" 종놈이 대답한다. "날 때부터 있던 혹부리 같은 것이 점점 돋아나더니 오늘날..

해학과 재치 2024.11.07

육담(肉談) . 과부의 욕망

어느 과부댁에서 머슴을 원하는데 모두 새경을 너무 많이 달라고 해서 구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날 등치가 커다란 총각이 와서 하는 말이 “ 새경은 한 푼도 안줘도 되니 대신 저녁마다 양초 두 자루 씩만 주시오” 하는 것이다. 과부는 이게 웬 떡이냐 하며 선뜻 응했다. 머슴은 첫날부터 초 두 자루로 자기 방을 환하게 밝혀 놓는다. 과부가 도대체 양초 두 자루로 무엇을 하는 걸까 궁금하다. 하루는 문틈으로 엿보는데 아니 그곳에서 머슴 놈이 벌거벗은 아랫도리에 힘을 준채 물건을 바짝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과부가 황당해 자기 방에 돌아왔지만 머슴의 빳빳한 물건이 눈에 아롱거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며칠을 더 엿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머슴방에 쳐들어갔다. 그날도 머슴은 자기 물건을 세워 놓고 “ 아..

해학과 재치 2024.11.06

육담(肉談) . 낫 좋으라고 가는거지

한 건달이 기생집에서 오입을 한 후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고 그냥 나가려고 한다. 기생이 꽃값을 달라고 하니 건달이 도리어 역정을 내며"야, 이년아, 들어봐라. 귀 후비개로 귀를 후비면 귀가 시원하지 귀 후비개가 시원하냐. 내가 너를 후벼 줬으니 네가 도리어 나한테 돈을 줘야지""야, 이 종내기야. 꿀단지에 혀를 들이밀면 단지가 달다 그러냐, 혀가 달다 그러냐. 네가 내 꿀단지 맛을 봤으니 돈을 내야 될게 아니냐""그러면 나는 단맛을 봤고 너는 귀가 시원했으니 피장파장이다. 그러니까 돈 줄 일도 받을 일도 없네 뭐. 낫을 숫돌에 갈면 낫이 닳나 숫돌이 닳나. 둘 다 닳지""이런 숙맥 보게나. 그래 숫돌에 낫 갈았다고 낫이 숫돌에게 낫값을 받는 것 봤어. 숫돌이 낫한테 숫돌 쓴 값을 받지. 그리고 낫 좋으..

해학과 재치 2024.11.05

육담(肉談) .시냇가엔 홍합이 말안장엔 송이가

한 선비가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큰 냇가에 이르렀다. 냇물을 건너려고 둘러보니 건너편 냇가에 많은 여인들이 쭈그리고 앉아 빨래를 하는 것이 보였다. 이 때 선비의 시선은 여인들의 벌어진 허벅지 사이에 머물렀다. 선비가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말위에서 정신없이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는데 스님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와 역시 내를 건너려고 신을 벗는다. 정신을 차린 선비가 스님에게 말을 걸었다."스님, 초면에 인사도 없이 실례합니다만 스님도 시를 지을 줄 아시지요 ? 내가 먼저 시 한 구절을 읊을테니 스님이 그 대구를 지어 보시겠소?""예, 소승 그 말씀에 따르겠나이다. 나무아미타불""천변홍합개(川邊紅蛤開) (시냇가 조개 입이 벌어졌구려)""선비께서는 속세에 사시는 분이라 조개라는 고기(肉物)를 가지..

해학과 재치 2024.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