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유리창(琉璃窓) - 정지용(鄭芝溶)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 한국현대시 2016.01.15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향수(鄕愁) - 정지용(鄭芝溶)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 한국현대시 2016.01.14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카페 프란스 - 정지용(鄭芝溶) 옮겨다 심은 종려(棕櫚)나무 밑에 비뚜로 선 장명등(長明燈) 카페․프란스에 가자.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 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비쩍 마른 놈이 앞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먼트*에 흐느끼는 불빛 카페․프란스에 가자. 이놈의 머리.. 한국현대시 2016.01.13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작은 짐승 - 신석정(辛夕汀) 난(蘭)이와 나는 산에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밤나무 소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다문다문 선 사이사이로 바다는 하늘보다 푸르렀다. 난이와 나는 작은 짐승처럼 앉아서 바다를 바라다보는 것이 좋았다. 짐승같이 말없이 앉아서 바다같이 말없이 앉아.. 한국현대시 2016.01.12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들길에 서서 - 신석정(辛夕汀)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不絶)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한국현대시 2016.01.11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임께서 부르시면 - 신석정(辛夕汀)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근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한국현대시 2016.01.08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춘향(春香) - 김영랑(金永郞) 큰 칼 쓰고 옥(獄)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한국현대시 2016.01.07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북 - 김영랑(金永郞) 자네 소리 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몰이 보아 이렇게 숨결이 꼭 맞아서만 이룬 일이란 인생에 흔치 않어 어려운 일 시원한 일. 소리를 떠나서야 북은 오직 가죽일 뿐 헛 때리면 만갑(萬甲)*이도 숨을 고쳐 쉴밖에 장단(長短)을 친.. 한국현대시 2016.01.06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金永郞)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 한국현대시 2016.01.04
한국현대시와 시조 1수 내 마음을 아실 이 - 김영랑(金永郞)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한국현대시 2015.12.31